2024년 3월 11일 월요일

일거수 일투족一擧手 一投足 - 손 한 번 들고 발 한 번 옮긴다, 크고 작은 동작 하나하나

일거수 일투족一擧手 一投足 - 손 한 번 들고 발 한 번 옮긴다, 크고 작은 동작 하나하나

일거수 일투족(一擧手 一投足) - 손 한 번 들고 발 한 번 옮긴다, 크고 작은 동작 하나하나

한 일(一/0) 들 거(手/14) 손 수(手/0) 한 일(一/0) 던질 투(扌/4) 발 족(足/0)

손을 한 번 들고(一擧手) 발을 한 번 내딛는(一投足) 일은 무척 쉽다. 손발이 불편한 장애인에겐 어려운 일이지만 갓난아이도 할 수 있는 이 동작이 쉬운 일의 비유가 된 것은 중국 唐(당)나라의 韓愈(한유, 768~824)에서 비롯됐다. 문장에서 빼어난 唐宋八大家(당송팔대가)의 한 사람인 한유도 25세에 과거시험 1차에 합격한 뒤 2차 吏部(이부) 시험에서는 몇 번을 응시하여 번번이 낙방한 모양이었다.

이 당시의 과거에서는 시험관에게 응시자들이 자신의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시문을 지어 제출하는 것이 관례였다는데 한유도 실력을 발휘했다.

제목이 ‘과거에 응시하면서 담당자에게 주는 편지(應科目時與人書/ 응과목시여인서)’인 이 글에서 한유는 시험관에게 자신을 소개하면서 급제의 영광을 베풀어 달라고 구구절절 부탁을 하고 있다. 천지 바닷가나 큰 강가에 사는 큰 괴물이 물을 얻으면 비바람을 몰아치게 하고 하늘은 오르내리는 것이 문제가 아니지만, 물을 만나지 못하면 평범한 작은 물고기에 불과할 뿐이라며 이어간다. 그것을 힘 있는 사람이 안타깝게 여겨 옮겨주는 것은 ‘손 한 번 움직이고 다리 한 번 움직이는 노고에 불과하지만(蓋一擧手一投足之勞也/ 개일거수일투족지로야)’ 이 동물에겐 큰 힘이 된다고 했다.

본론에 들어가면서 다시 한 번 등장한다. 지금 힘 있는 사람이 앞에 있어 외쳐 보는데 ‘어찌 손 한 번 움직이고 다리 한 번 움직이는 노고를 잊어버리고(而忘一擧手一投足勞/ 이망일거수일투족로)’ 맑은 물에 옮겨놓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읍소한다. 한유 자신은 비바람을 몰아치는 큰 인물과 같은데 물을 만나지 못해 뜻을 펼치지 못하고 있으니 발탁해 달라는 이야기다. 담당자에게는 자신을 급제시키는 일이 손발 한 번 까딱하는 정도로 쉽게 할 수 있는 일이니 무엇이 문제일까 생각한 것이다.

당시 과거시험의 자기 소개서인 셈인데 훌륭한 문장으로 급제시키는 것이니 오늘날의 청탁과는 다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뽑는 일이 손발 한 번 움직이는 정도로 쉬운 일은 아닐 것임은 분명하다. 그래서인지 갓난애도 할 수 있다는 쉬운 이 말이 크고 작은 동작 하나하나를 일컫는 말이 됐고, 특히 지도층에 있는 사람들은 모든 사람이 지켜보니 더욱 어려운 일이 됐다. 말 한 마디가 중요한 의미로 해석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행동도 조심해야 한다는 의미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휘질기의諱疾忌醫 - 병을 숨기고 의사를 꺼리다, 충고에도 결점을 고치지 않다.

휘질기의諱疾忌醫 - 병을 숨기고 의사를 꺼리다, 충고에도 결점을 고치지 않다.

휘질기의(諱疾忌醫) - 병을 숨기고 의사를 꺼리다, 충고에도 결점을 고치지 않다.

숨길 휘(言/9) 병 질(疒/5) 꺼릴 기(心/3) 의원 의(酉/11)

모든 일은 작은 일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다가 큰 일이 터지면 허둥지둥한다. ‘천하의 어려운 일은 반드시 쉬운데서 이루어지고, 천하의 큰일은 반드시 작은 일로부터 이루어진다(天下之難事必作於易 天下之大事必作於細/ 천하지난사필작어이 천하지대사필작어세).’ 韓非子(한비자)의 말이다. 자기 몸의 병도 마찬가지다. ‘모르면 약이요, 아는 게 병’이라지만 숨기지 않고 병자랑은 할수록 좋다는 말도 있다.

병의 증세를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말하면 좋은 치료 방법을 찾을 수 있다. 병을 숨기고(諱疾) 고쳐줄 의원을 꺼린다면(忌醫) 나을 수가 없다. 잘못이 있는데도 다른 사람의 충고를 듣지 않고 고치지 않음을 비유하는 성어다. 護疾忌醫(호질기의)도 같은 말이다.

北宋(북송)때의 성리학자 周敦頤(주돈이, 頤는 턱 이, 1017~1073)의 ‘周子通書(주자통서)’에 이 표현이 먼저 등장한다. ‘요즘 사람들은 잘못이 있어도 다른 사람들이 바로잡아주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병을 숨기면서 의원에게 보이지 않아 몸을 망치면서도 깨닫지 못하는 것과 같다(今人有過 不喜人規 如護疾而忌醫 寧滅其身而無悟也/ 금인유과 불희인규 여호질이기의 영멸기신이무오야).’ 주돈이는 당시의 세태를 비판하며 전설적인 扁鵲(편작)의 이야기에서 따와 예를 들었다. ‘史記(사기)’ 편작 倉公(창공) 열전에 자세히 나온다.

죽어가는 사람을 일으켰다는 起死回生(기사회생)에서 소개한 대로 편작은 인도의 장수의 신 耆婆(기파)나 조선의 許浚(허준)과 같이 중국을 대표하는 명의다. 虢(괵, 虢은 나라 이름, 범발톱자국 괵)나라의 태자를 살려 소문이 자자한 편작을 齊(제)나라의 桓侯(환후)가 초청했다. 편작은 처음 보고 환후가 병이 있음을 알아챘다.

지금 치료가 필요하다고 해도 환후가 의원들은 병이 없는 사람에게 재주를 자랑한다면서 거절했다. 두 번째, 세 번째 갔을 때는 더 위중해졌지만 역시 치료를 거부했고 마침내 환후는 죽고 말았다. 똑 같은 이야기가 ‘한비자’ 喩老(유로)편에 나오는데 환후 대신 蔡(채)나라 환공으로 되어 있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일취천일一醉千日 - 한 번 취하면 천일 가는 술, 아주 좋은 술을 이르는 말

일취천일一醉千日 - 한 번 취하면 천일 가는 술, 아주 좋은 술을 이르는 말

일취천일(一醉千日) - 한 번 취하면 천일 가는 술, 아주 좋은 술을 이르는 말

한 일(一/0) 취할 취(酉/8) 일천 천(十/1) 날 일(日/0)

술이 건강을 해친다는 사람이 있는 반면 술은 약 중에서도 으뜸인 百藥之長(백약지장)이라 예찬하는 사람도 많다. 사람의 체질에 따라 알코올을 분해하는 능력이 모두 다르므로 음주의 양도 천차만병일 수밖에 없다. 보리밭을 지나기만 해도 취한다는 過麥田大醉(과맥전대취)의 맹탕이 있는가하면 고래가 물을 마시듯이 주량이 한정 없는 鯨飮(경음)도 있다. 酒道有段(주도유단)이란 글을 남긴 靑鹿派(청록파) 시인 조지훈은 18계급의 급수와 단수로 나눴다. 전혀 안 먹는 사람 不酒(부주)가 9급, 겁내는 畏酒(외주) 8급에서 유유자적하는 樂酒(낙주) 단계가 7단이다. 그 위는 이미 마실 수 없는 觀酒(관주)이고, 최고 단수인 9단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닌 廢酒(폐주)로 술이 사람을 잡은 경우다.

정도껏 마시면 온갖 시름을 잊게 해 주는 忘憂物(망우물)이 된다고 한 사람은 歸去來辭(귀거래사)의 시인 중국 六朝(육조)의 陶淵明(도연명)이다. 주량에 따라 나누는 방법 말고 가장 좋은 술은 어떤 것일까.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넥타르(Nectar)는 죽음을 물리친다는 神酒(신주)를 말하는데 오늘날 과일을 으깨어 만든 진한 주스를 가리키니 술의 단계는 아니다. 한 번 취하면(一醉) 1000일(千日)을 기분 좋게 누워있다는 술이 최고의 술이란다. 술 마시고 뻗어 장례까지 치르게 한 술이 가장 좋다고 하는데 의견을 달리 하는 사람이 많겠지만 西晉(서진)의 張華(장화)가 지은 기담집 ‘博物志(박물지)’에 나오는 이야기다.

옛날 劉玄石(유현석)이란 사람이 中山(중산)의 술집에서 술을 샀다. 주막에서는 한 번 마시면 1000일 동안 취한다는 사실을 전하는 것을 깜빡했다. 취한 채 집에 돌아온 유현석은 인사불성 꼼짝할 수 없었다. 가족들은 그가 죽었다고 여기고 장례를 치렀다. 주막에서는 천일이 다가오는 것이 생각나 깰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고 집에 찾아가 이야기했다. 집안사람들이 관을 열어 보니 유현석은 부스스 술이 깨기 시작하던 참이었다. 그 뒤 세간에서는 ‘현석이 술을 마셔 한 번 취하면 천일 간다(玄石飮酒 一醉千日/ 현석음주 일취천일)’는 말이 생겼다. 唐(당)나라 李瀚(이한)의 아동용 교재 ‘蒙求(몽구)’에도 玄石沈湎(현석침면, 湎은 빠질 면)으로 같은 내용이 실려 있다.

술 좋아하는 사람치고 악인이 없다고 한다. 자신이 이기지 못할 정도로 술이 취하면 천하에 두려워하거나 어려운 것이 없으므로 醉中無天子(취중무천자)가 된 듯 기고만장이지만 다른 사람이 볼 때는 영락없이 ‘술 먹은 개’다. 자신은 술에 취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주변에 피해를 주는 경우가 너무 많다. 酒暴(주폭)이 되어 행패를 부리다 경찰에서도 난동을 부리고, 가장 심한 경우가 음주운전으로 남의 생명을 빼앗기도 한다. ‘윤창호법’으로 처벌이 강화됐다고 안심하기 전에 아예 근절할 일이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독서백편의자현讀書百遍義自見 - 책을 백번 읽으면 그 뜻은 저절로 알게 된다.

독서백편의자현讀書百遍義自見 - 책을 백번 읽으면 그 뜻은 저절로 알게 된다.

독서백편의자현(讀書百遍義自見) - 책을 백번 읽으면 그 뜻은 저절로 알게 된다.

읽을 독(言/15) 글 서(曰/6) 일백 백(白/1) 두루 편(辶/9)

옳을 의(羊/7) 스스로 자(自/0) 볼 견, 뵈올 현(見/0)

좋은 책을 읽으면\xa0옛 현인과도 벗이 될 수 있다고 한 말이 孟子(맹자)의 讀書尙友(독서상우)다. ‘좋은 책을 읽는 것은 과거의 가장 뛰어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과 같다’고 한 데카르트의 말과 똑 같다. 독서의 유익함에 대한 성어는 부지기수고 이 난에서도 다수 소개했다. 책을 많이 갖고 있는 것, 밤낮으로 책에서 눈을 떼지 않고 열심히 읽는 태도, 독서의 이득에 대한 깨우침 등등이다. 책을 펴기만 하면 졸린다고 머리카락을 매달고 넓적다리를 찔러가며 읽었다는 懸頭刺股(현두자고) 못지않게 수도 없이 반복하면 뜻을 알 수 있다는 이 성어도 유명하다.

글을 여러 번 계속해서 읽으면(讀書百遍) 뜻이 저절로 드러난다(義自見)는 이 성어는 학문을 열심히 닦게 되면 그 뜻을 스스로 깨우쳐 알게 된다는 뜻이다. 後漢(후한) 말기 魏(위)나라에 董遇(동우)라는 학자가 있었다. 겨울과 밤과 비 올 때를 가리키며 책 읽기에 좋은 세 가지의 여유 있는 시간이란 뜻의 三餘讀書(삼여독서) 고사의 주인공이다. 빈한한 집에서 태어났어도 배우기를 좋아하여 조용히 농사지으면서 책을 읽었다. 뜻을 알 수 없는 책도 읽고 또 읽어 결국 문리를 터득했고 문장도 탁월했다.

소문이 나자 벼슬자리에 나아가 獻帝(헌제)의 글공부 상대가 되었고 위 明帝(명제) 때에는 侍中(시중) 자리까지 올랐다. 고위직에 오른 뒤에도 학문을 게을리 하지 않아 老子(노자)와 左傳(좌전)의 주석서를 만들어 문명을 떨쳤다. 동우의 명성이 높아지자 많은 사람이 그에게 글을 배우겠다고 몰려들었다. 하지만 그는 선뜻 가르치려 하지 않고 그들에게 당부한다. ‘마땅히 먼저 백 번을 읽어야 한다. 백 번 읽으면 그 뜻이 저절로 드러난다(必當先讀百遍 言讀書百遍而意自見/ 필당선독백편 언독서백편이의자현).’ 이 이야기는 ‘三國志(삼국지)’ 魏書(위서) 王肅傳注(왕숙전주)에 실려 있다.

朱子(주자)도 ‘訓學齋規(훈학재규)’에서 ‘책은 다만 읽는 것이 귀한 것이다. 많이 읽으면 자연스럽게 깨닫게 된다(書只貴讀 讀多自然曉/ 서지귀독 독다자연효)’라 하면서 동우의 이 말을 인용하고 있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장경오훼長頸烏喙 - 긴 목에 뾰족한 입, 사람의 관상을 표현한 말

장경오훼長頸烏喙 - 긴 목에 뾰족한 입, 사람의 관상을 표현한 말

장경오훼(長頸烏喙) - 긴 목에 뾰족한 입, 사람의 관상을 표현한 말

긴 장(長/0) 목 경(頁/7) 까마귀 오(灬/6) 부리 훼(口/9)

단지 겉모습만 보고 사람을 판단하면 나중에 큰 코 다친다고 말한다. 그렇다고 첫인상이 나쁘면 호감이 가기 어려우니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만약 목이 길고(長頸) 입이 새의 부리처럼 뾰족 튀어나왔다면(烏喙) 어떤 인상을 줄까. 사슴을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라고 읊은 시가 있었는데 자신의 운명을 생각해서라 했다. 아무래도 사람의 목이 기린같이 너무 길면 비호감이기 쉽다. 까마귀 부리처럼 길게 튀어나온 입도 경망하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이 말은 사람의 관상을 표현할 때 쓴다고 하며 중국 春秋時代(춘추시대) 越王(월왕) 句踐(구천)의 모습을 나타낼 때 썼다.

구천은 처음 이웃 吳王(오왕) 闔閭(합려)를 죽여 두각을 나타냈다. 이 때문에 臥薪嘗膽(와신상담)의 흥미진진한 고사가 따른다. 합려의 아들 夫差(부차)는 원수를 갚기 위해 장작더미 위에서 잠을 자며 칼을 갈았고 곧 구천과 전쟁을 벌여 대승했다. 會稽山(회계산)으로 쫓겨 간 구천은 책사 范蠡(범려, 蠡는 좀먹을 려)의 건의로 대부 文種(문종)을 부차에 파견하여 항복을 애원했다. 미인 西施(서시)까지 보낸 뇌물작전이 통해 목숨을 부지한 구천은 처지가 바뀌어 쓸개를 핥으며 노예생활을 10년이나 이어가야 했다. ‘史記(사기)’ 越世家(월세가) 등에 박진감 있게 묘사된 이야기는 이렇게 이어진다.

부차가 齊(제)나라를 정벌하러 나라를 비운 사이 구천이 정예병을 이끌고 오에 쳐들어가 마침내 복수에 성공했다. 20년을 보좌하여 구천을 마지막 覇者(패자)로 오르게 한 범려는 자기 일이 끝났다며 작별을 고했다. 구천의 사람됨을 꿰뚫어 보았던 범려는 제나라에 간 뒤 문종에게 편지를 썼다. ‘월왕의 얼굴은 목이 길고 입은 까마귀 주둥이를 닮았습니다. 이런 사람은 어려움은 함께 할 수 있으나 즐거움은 함께 누릴 수 없는 법이오(越王爲人長頸鳥喙 可與共患難 不可與共樂/ 월왕위인장경조훼 가여공환난 불가여공락).’ 그러면서 문종에게도 빨리 떠나라고 조언했다.

얼굴 생김새가 성격과 운명까지 좌우한다고 믿어지지 않지만 범려가 본 구천은 틀림이 없었다. 문종은 이후 병을 핑계로 두문불출했으나 모함을 받은 구천은 살려두지 않았다. 토끼 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는 삶겨 죽는다(狡兎死 走狗烹/ 교토사 주구팽)는 것을 알았던 범려는 이후 陶朱公(도주공)이란 큰 부호로 여생을 보냈다. 오늘날 기형의 얼굴은 예사로 성형하여 모습을 바꾼다. 얼굴은 자연의 작품이고 나이가 든 사람은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이 있다. 아무래도 수양을 해서 덕이 자연스레 배어나오게 해야 한다는 말이지 싶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xa0

원려근우遠慮近憂 - 멀리 생각해야 가까운 근심이 없다.

원려근우遠慮近憂 - 멀리 생각해야 가까운 근심이 없다.

원려근우(遠慮近憂) - 멀리 생각해야 가까운 근심이 없다.

멀 원(辶/10) 생각할 려(心/11) 가까울 근(辶/4) 근심 우(心/11)

하지 않아도 될 걱정을 하거나 관계도 없는 남의 일에 끼어들며 오지랖을 떤다. 근심걱정이 없는 사람이 있을 수는 없지만 하늘이 무너질까 걱정하며 땅이 꺼질까 근심하는 杞憂(기우)처럼 쓸데없는 걱정을 할 땐 한심할 뿐이다. 큰 뜻을 펼치려는 사람도 ‘사는 해는 백년을 채우지 못하면서/ 항상 천년의 근심을 품는다(生年不滿百 常懷千歲憂/ 생년불만백 상회천세우)’는 말처럼 일반 사람은 그 걱정을 이해 못한다. 이런 ‘걱정도 팔자’인 사람을 제외한 보통 사람이라도 살아가는데 근심이 없을 수가 없다.

孔子(공자)님 말씀에 이런 것이 있다. ‘사람이 멀리 내다보며 깊이 생각하지 않으면, 반드시 가까운 근심이 있게 된다(人無遠慮 必有近憂/ 인무원려 필유근우).’ 수신과 처세에 관해 좋은 말이 많이 실린 ‘論語(논어)’ 衛靈公(위령공) 편에서다. 목전의 안일에만 취해서 앞으로의 일에 충분히 대비하지 않으면 바로 큰 우환이 닥친다고 경고한다. 장래의 일만 생각하고 목전의 작은 일을 소홀히 해선 물론 그것도 안 된다. 앞으로의 일을 중시한다고 주변의 일을 무시했다간 장래의 일을 숙고한 것이 아니라는 말씀이다. 慮(려)와 憂(우)는 같은 걱정근심이지만 중복을 피해 사용됐다.

北宋(북송)의 蘇軾(소식)은 사람이 앞으로 나갈 때 발 디디는 곳 이외의 땅은 필요 없지만 버릴 수도 없듯 천리 밖의 일을 생각하지 않으면 지금 앉은 자리에서 화가 일어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조선 후기 학자 李瀷(이익, 瀷은 강이름 익)도 대표적인 저술 ‘星湖僿說(성호사설, 僿은 잘게부술 사)’에서 인사에 있어서 대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나라 일을 맡으면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백년대계를 갖춰야 하고, ‘일은 추호도 소홀히 다룰 수 없으니 소홀한 곳에 반드시 폐단이 따른다(事無一毫可以放過者 放過處必有患/ 사무일호가이방과자 방과처필유환)’고 했다. 11권 人事門(인사문)의 내용이다.

앞으로 일어날 일을 대비하고, 지금 주변의 작은 일을 점검한다는 것은 현재와 미래의 걱정을 모두 한다는 말과 다름없다. 하지만 목적에 맞는 일에 대비하는 것이지 쓸데없는 일에 정력을 낭비하라는 말이 아니다. 폭풍우를 대비해 둥지를 나무뿌리로 감는 새의 지혜 未雨綢繆(미우주무, 繆는 얽을 무)가 바로 有備無患(유비무환)이다. 특히 주변의 강대국과 북한의 핵 위협에 대비한 국방안보에는 아무리 대비해도 쓸데없는 걱정이 없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노마식도老馬識途 - 늙은 말이 길을 알다, 경험 많은 사람의 지혜

노마식도老馬識途 - 늙은 말이 길을 알다, 경험 많은 사람의 지혜

노마식도(老馬識途) - 늙은 말이 길을 알다, 경험 많은 사람의 지혜

늙을 로(老/0) 말 마(馬/0) 알 식(言/12) 길 도(辶/7)

知識(지식)은 노력에 의해 얻을 수 있으나 智慧(지혜)는 쉽게 습득할 수 없다. 사물의 이치를 깨닫고 바르게 행할 수 있는 능력인 지혜는 남에게 전할 수도 없어 지식을 능가한다. ‘사람이 오래면 지혜요 물건이 오래면 귀신이다’라는 속담이 있다. 물건은 오래 될수록 쓸데없게 되어도 사람은 나이가 들면서 경험을 많이 쌓게 되어 지혜로울 수 있다. 늙은 것을 우세하는 老醜(노추)는 제외하고 영국서도 ‘Older and Wiser’라는 격언, 나이를 먹을수록 현명해진다니 그런 경우가 많다는 의미다. 늙은 말(老馬)이 길을 안다(識途)는 성어도 뒷전의 퇴물이 큰 지혜를 발휘한다는 고사에서 나왔다.

앞서 나온 老馬之智(노마지지)와 마찬가지로 중국 齊(제)나라의 桓公(환공)과 재상 管仲(관중)의 원정 이야기에서 예로 든 ‘韓非子(한비자)’ 說林上(설림상)에 실려 있다. 春秋五覇(춘추오패)의 맹주였던 환공은 관중과 함께 허베이河北/ 하북 북쪽에 위치했던 燕(연)나라를 도와주러 갔다가 길을 잃어 늙은 말의 지혜로 곤경을 벗어났었다. 참전하게 된 전후는 ‘東周列國志(동주열국지)’에 상세한데 간단히 보자. 연나라를 침범했던 山戎(산융)족의 국왕 密盧(밀로)는 제나라에 쫓겨 答理呵(답리가)가 다스리는 험준한 나라 孤竹國(고죽국)에 의지했다. 환공의 제나라 군대는 봄부터 공격을 시작했으나 지형을 잘 이용한 고죽국의 장군 黃花(황화)의 전략에 고전하다 겨울이 되어서야 마무리할 수 있었다.

천리나 떨어진 곳으로 원정 가서 고생하다 막상 끝내고 돌아가려니 갈 길을 알 수가 없었다. 제나라 군사들은 승리에만 급급하여 지형지물의 관찰에 소홀했던 것이다. 국상 관중이 노획한 고죽국의 말이 생각났다. ‘늙은 말의 지혜를 이용할 수 있을 것이라며 말을 풀어놓고 그 뒤를 따르게 하여 길을 찾았다(老馬之智可用也 乃放老馬而隨之 遂得道/ 노마지지가용야 내방로마이수지 수득도).’ 이보다 앞서 대부 隰朋(습붕)은 식수가 떨어졌을 때 남쪽의 개미집 땅 속을 파게하여 갈증을 해소했다. 늙은 말과 노대신의 지혜를 활용할 수 있어서 무사히 귀환했다.

현명한 재상도 알지 못하는 일을 미물인 늙은 말과 개미에게 지혜를 빌린 셈이다. 노령사회가 되면서 노인들이 많아지자 젊은이들은 자기들의 앞날을 가로막는 방해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기수문화가 철저한 사회에선 하급자가 중책을 맡게 되었을 때 상급자가 줄줄이 사퇴하여 경험을 사장시킨다. 원로들의 의견을 들으면서도 바른 길은 외면하고 제 갈 길만 간다. 한비자가 한탄했듯이 자신의 어리석음을 알면서도 앞선 사람의 지혜를 본받을 줄 모른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식자우환識字憂患 - 글자를 아는 것이 근심이다.

식자우환識字憂患 - 글자를 아는 것이 근심이다.

식자우환(識字憂患) - 글자를 아는 것이 근심이다.

알 식(言/12) 글자 자(子/3) 근심 우(心/11) 근심 환(心/7)

‘아는 것이 병‘이란 속담대로 지식이 해가 될까? 이것은 정확하지 못하거나 분명하지 않은 지식은 오히려 걱정거리가 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지 실제로 몰라도 된다는 것은 물론 아니다. 그래서 영국의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은 ’아는 것이 힘‘이라는 격언을 남겼다. 모르는 편이 나을 때가 간혹 있겠지만 도리를 알고 있는 까닭으로 도리어 불리하게 되었을 때 한탄하는 것이 識字憂患이다.

이 성어는 唐宋八大家(당송팔대가)의 한 사람인 北宋(북송)의 대표적 시인 東坡(동파) 蘇軾(소식)이 ‘石蒼舒醉墨堂(석창서취묵당)’이란 시의 첫 구절에 바로 시작한다. ‘인생은 글자를 알면서 우환이 시작되니, 성명이나 대강 적을 수 있으면 그만둠이 좋도다(人生識字憂患始 姓名麤記可以休/ 인생식자우환시 성명추기가이휴).’ 麤는 거칠 추.

‘三國志演義(삼국지연의)’에 설명하는 내용은 이렇다. 劉備(유비)가 諸葛亮(제갈량)을 三顧草廬(삼고초려)로 맞이하기 전에 있었던 軍師(군사)가 徐庶(서서)였다. 그는 曹操(조조)가 탐을 내는 인물이었는데 휘하에 끌어들이려고 계략을 썼다.

그가 효자라는 사실을 알고 어머니 衛(위)부인이 위독하다는 가짜편지를 보냈다. 영문을 모른 위부인은 아들이 돌아오자 자기 필체를 위조한 계락인 것을 알고 통탄했다. 나중에 서서가 조조 진영으로 간 것을 알고 효심과 거짓편지 때문이라며 ‘여자가 글씨를 안다는 것이 걱정을 낳게 하는 근본 원인(女子識字愚患/ 여자식자우환)’이라 했다. 위부인의 말을 인용해 후세 사람들은 여자가 글을 배우면 안 된다는 논리를 펴기도 했지만 실제는 원본에 없는 내용이 번역소설에 재미로 삽입된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이보다 울분에 차지만 더 멋진 사용처가 있다. 조선 말기 우국지사 梅泉(매천) 黃玹(황현) 선생은 1910년 한일강제병합 소식을 듣고 ‘絶命詩(절명시)’ 4수를 남기고 자결했다. 3수에 나오는 ‘秋燈掩卷懷千古 難作人間識字人(추등엄권회천고 난작인간식자인/ 가을 등불 아래서 책 덮고 회고해 보니, 인간 세상 식자 노릇 참으로 어렵구나)’란 절절한 구절을 남겼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군자지덕풍君子之德風 - 군자의 덕은 바람과 같다, 위에서 솔선수범하다.

군자지덕풍君子之德風 - 군자의 덕은 바람과 같다, 위에서 솔선수범하다.

군자지덕풍(君子之德風) - 군자의 덕은 바람과 같다, 위에서 솔선수범하다.

임금 군(口/4) 아들 자(子/0) 갈 지(丿/3) 큰 덕(彳/12) 바람 풍(風/0)

君子(군자)라 하면 요즘 사람들은 융통성 없이 격식만 따지는 케케묵은 사람을 많이 연상한다. 하지만 전통 사회에서 행실이 점잖고 어질며 덕과 학식이 높아 유교사회의 이상적 인간상이었다. 이러한 사람들이 높은 벼슬에 오르는 경우가 많아 높은 지위의 고관을 말하기도 했다. 유교의 대표 경전인 論語(논어)와 孟子(맹자)에는 군자가 어떠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수없이 나오고 성어로도 끝없이 사용되고 있다. 군자의 덕(君子之德)은 바람(風)과 같다는 이 말도 그 중의 하나다. 바람이 불면 풀이 그 방향으로 눕듯이 윗사람의 행동은 아랫사람의 표본이 되니 주의해야 한다는 뜻이 들어 있다.

‘논어’에서 仁(인)과 禮(예)에 대해 좋은 말이 많이 나오는 顔淵(안연)편에 이 말이 등장한다. 春秋時代(춘추시대, 기원전 770년~403년) 말기 魯(노)나라의 대부였던 季康子(계강자)가 정치에 대해서 孔子(공자)에게 물었다. 만약 무도한 자들은 죽여서라도 도가 있는 사람들을 앞세운다면 괜찮지 않을까라고 했다. 말하자면 자신이 힘으로 권세를 잡았듯이 一罰百戒(일벌백계)나 殺一儆百(살일경백, 儆은 경계할 경)이라도 하여 본보기로 삼도록 하면 어떨까 물은 것이다.

인을 중시한 공자가 찬성할리 없다. 정치를 하는데 사람을 죽이는 방법을 써서는 안 되고 만약 대부께서 선하고자 노력한다면 백성들이 따라서 착해질 것이라면서 이어 말한다. ‘군자의 덕은 바람과 같고 소인의 덕은 풀과 같습니다(君子之德風 小人之德草/ 군자지덕풍 소인지덕초). 풀 위로 바람이 지나가면 풀은 바람에 쓸려 반드시 눕게 마련이지요(草上之風 必偃)/ 초상지풍 필언).’ 偃은 쓰러질 언. 여기서 군자의 바람은 힘을 동반한 것이 아님은 물론이다. 또 民草(민초)로 불리는 백성들도 쉽게 꺾이지 않는 생명력이 있다. 온화한 바람이 불면 백성들은 그에 감동하여 반드시 따르기 마련이라는 설명이다.

위에서 바른 행동을 하지 않고 윽박지른다고 해서 무조건 따르는 아랫사람은 없다. 남을 다스리고 지도하는 사람이라면 먼저 자신이 率先垂範(솔선수범)해야 함은 물론이다. 하지만 자신은 예외라도 된 듯 탈법과 불법을 예사로 저지른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속담을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도 지도층에서 모든 갈등의 근원이 되는 것을 보면 한심하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회총시위懷寵尸位 - 총애만 믿고 헛되이 자리를 차지하다.

회총시위懷寵尸位 - 총애만 믿고 헛되이 자리를 차지하다.

회총시위(懷寵尸位) - 총애만 믿고 헛되이 자리를 차지하다.

품을 회(心/16) 사랑할 총(宀/16) 주검 시(尸/0) 자리 위(亻/5)

윗자리에 상사가 의젓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때 부하직원들은 복종한다. 그것이 자리에서 오는 위압감에서일 수도 있고 경험과 실력에서 나오는 존경심일 수도 있다. 하지만 겉으로는 그래도 대부분 부하들은 속을 꿰뚫어 보는 경우가 많다. 더 높은 사람의 배경으로 위세를 부리는 상사는 겉으로는 위하는 체해도 속으로는 경멸한다.

윗사람의 신임만 믿고(懷寵) 헛되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尸位)는 이 성어는 물러가야 할 때를 알고서 물러가지 않고 직위에 죽치고 있는 사람을 비유하는 말이다. 전번 尸位素餐(시위소찬)에 나온 대로 시위는 제사를 지낼 때 조상의 신위 대신 앉혀 접신되게 했던 아이 尸童(시동)이 앉은 자리를 가리킨다. 제상의 음식을 마음껏 먹을 수 있었던 시동과 같이 하는 일 없이 자리를 차지하고 녹을 받아먹는 공직자를 비꼴 때 썼다. 거기에 임금의 총애까지 받았으니 백성이 볼 때 세금도둑이 아닐 수 없다.

曾子(증자)가 스승 孔子(공자)에게서 받아 효도에 관한 내용을 엮은 ‘孝經(효경)’에 이런 글이 실려 있다. 아버지의 명령을 따르기만 하면 효도를 다한다고 할 수 있겠느냐고 여쭙자 공자가 답한다. 어른이나 임금에게 옳지 못하거나 잘못된 일을 고치도록 간절히 말하는 신하가 있으면 임금도 천하를 잃지 않고, 아버지에게 이런 자식이 있다면 의롭지 않은 일에 빠지지 않는다면서 ‘의롭지 못한 일을 당했을 때는 간쟁해야 하니 아버지의 명령만 따른다고 어찌 효도라 할 수 있겠는가(當不義則爭之 從父之令 又焉得爲孝乎/ 당불의즉쟁지 종부지령 우언득위효호)?’라고 했다.

諫諍(간쟁, 諍은 간할 쟁)에 나오는데 이것을 공자의 후손 孔安國(공안국)이 풀이하여 간쟁하지 않는 신하는 ‘懷寵尸位 國之姦人/ 회총시위 국지간인’이라 평했다. 총애만 믿고 물러갈 때를 놓친 사람으로 秦(진)나라 통일에 기여한 李斯(이사)가 많이 꼽힌다. 그는 간신 趙高(조고)와 함께 2세 황제 胡亥(호해)를 옹립하고 2인자의 지위를 누렸으나 결국 모함에 빠져 허리가 잘리는 腰斬(요참) 형을 받고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