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11일 월요일

◇ 한국은 예측 어려운 판내부 지진환경…‘활성단층’ 찾아야 대비도 가능

◇ 한국은 예측 어려운 판내부 지진환경…‘활성단층’ 찾아야 대비도 가능

◇ 한국은 예측 어려운 판내부 지진환경…‘활성단층’ 찾아야 대비도 가능

지진은 판구조 운동에 의해 지각 내부에 축적된 응력이 단층운동으로 해소되면서 발생하는 땅 흔들림 현상이다. 지진은 매년 태풍, 홍수 등 다른 자연재해와 비슷한 빈도로 발생하지만 지진과 동반되는 또 다른 공포의 대명사인 쓰나미(지진해일)까지 포함하면 인류에게 가장 위협적인 자연재해라고 할 수 있다. 역사상 가장 많은 인명피해를 가져온 자연재해는 1556년 중국 산시(陝西) 대지진(사진)이다. 규모 8.0으로 추정되는 당시 지진으로 약 83만명이 사망했다. 인구밀도가 높고 내진설계와 같은 대비가 미비한 낙후지역에 지진이 발생하면 그 충격과 피해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다.

지진은 지판의 경계부에서 발생하는 ‘판경계 지진’과 대륙 내부의 ‘판내부 지진’으로 구분되며, 그 피해도 뚜렷하게 다른 양상을 보여준다. 지구에서 일어나는 지진의 대부분은 판경계부에 집중된다. ‘불의 고리’라 불리는 환태평양 조산대에 자리 잡고 있는 일본, 미국 서부, 뉴질랜드 등에서 지진이 빈번한 이유다.

판경계 지진은 공간적으로 판경계부를 따라 좁고 길게 분포한 단층대에서 일어난다. 빈도가 잦고 단층운동의 재발 주기가 짧아 지진 대비를 위한 발생 위치와 시점을 비교적 높은 확률로 추정할 수 있다. 반면 판내부 지진은 지각 내부에 복잡하게 분포하는 단층 재활동으로 일어난다. 결국 미래 지진의 발생 위치와 시점을 예측하기 매우 어렵다.

지난 120년 지진 역사에서 1000명 이상 인명피해를 가져온 지진은 130회 정도다. 발생 횟수와 규모에서는 판경계 지진이 압도적으로 많지만, 오히려 사망자 수는 판내부 지진(약 140만명)이 판경계 지진(약 80만명)보다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판경계 지진 인명피해 절반 이상이 쓰나미로 발생했기 때문에 실제로는 판내부 지진이 판경계 지진에 비해 4배 정도 위험하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한국은 판내부 지진 환경에 속한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지표와 지하에 존재하는 모든 단층들이 잠재적 지진원이라고 할 수 있다. 많은 전문가들은 한국도 이제 규모 6.0 이상의 중대형 지진 발생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지진재해의 안전·안심지대라는 문구는 옛말이 됐다. 그렇다면 미래에 닥쳐올 지진재해에 효과적으로 대비·대응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우선돼야 할까.

바로 단층 조사에 답이 있다. 특히 제4기(250만년 이전부터 현재까지)에 지진을 일으킨 이력이 있는 ‘활성단층(Active Fault)’ 조사를 서둘러야 한다. 한국은 2016년 9월12일 발생한 규모 5.8의 경주 지진을 계기로 2017년부터 전 국토를 대상으로 활성단층 조사사업을 수행하고 있다. 한반도 동남권 지역을 시작으로 4단계에 걸쳐 20년간 전국에 분포하는 활성단층을 조사해 지진 대비를 위한 효과적인 정보 제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활성단층 조사는 제4기 지질시대에 지진을 일으킨 단층에 의한 지표 파열의 흔적을 찾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지표 파열은 규모 6.0 이상 중대형 지진에 의해 일어나기에 활성단층이 존재한다는 것은 해당 지역에 비슷한 규모의 지진 발생 확률이 높다는 증거다.

활성단층 조사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요구되는 반면, 연구 결과에서 결정적 증거 또한 찾아내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언제 어디서 발생할지 모르는 지진에 대한 선제적 대비와 대응을 통해 지진 피해를 최소화하고 국민의 안전에 기여하겠다는 책임감과 사명감으로 오늘도 연구자들은 활성단층을 찾기 위해 현장을 누비고 있다.

-경향신문-

온공자허溫恭自虛 - 가르침을 공손히 겸허하게 받다, 스승에 대한 제자의 태도

온공자허溫恭自虛 - 가르침을 공손히 겸허하게 받다, 스승에 대한 제자의 태도

온공자허(溫恭自虛) - 가르침을 공손히 겸허하게 받다, 스승에 대한 제자의 태도

따뜻할 온(氵/10) 공손할 공(心/6) 스스로 자(自/0) 빌 허(虍/6)

‘아버지로부터는 생명을 받았으나 스승으로부터는 생명을 보람 있게 하기를 배웠다.’ 스승의 가르침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말한 서양의 격언이다. 제자를 보기엔 스승만한 눈이 없다고 사람을 옳은 길로 인도하는 데에는 스승을 덮을 사람이 없다.

그러니 君師父一體(군사부일체), 스승의 은혜가 임금이나 부친과 같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은혜를 고마워했고, 어렵기도 해서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雁行避影(안행피영)이란 말이 나왔다. 스승을 어떻게 대해야 한다는 말이 많은 중에서도 가장 기본적인 것이 ‘管子(관자)’에 나오는 온순과 겸허의 이 성어다.

중국 최고의 재상으로 꼽히는 管仲(관중)은 鮑叔牙(포숙아)와의 우정 管鮑之交(관포지교)로 유명한 바로 그 사람이다. 春秋時代(춘추시대) 齊(제)나라에서 부국강병에 힘썼고 자신을 발탁한 桓公(환공)을 中原(중원)의 覇者(패자)로 만들었다. 관중의 가르침을 후대의 사람들이 썼다는 책 관자에는 法家(법가)의 사상을 위주로 여러 학파의 잡다한 지식을 포함하고 있다. 그 중 弟子職(제자직) 편에 학생들이 지켜야 하는 법도에 대해 기술하고 있다. 배움의 태도뿐 아닌 식사, 청소, 잠자리 돌보기 등 참으로 상세한 내용이다.

첫 부분에 이 성어의 가르침이 나온다. ‘선생님이 가르침을 베풀 때 제자는 이를 본받아서, 온화하고 공손한 태도로 겸허하게 배워 이를 극진히 해야 한다(先生施教 弟子是則 溫恭自虛 所受是極/ 선생시교 제자시즉 온공자허 소수시극).’ 이 뒤에 따르는 말도 너무나 원칙적인 옳은 이야기라 소개해보자.

‘선한 것을 보면 이를 따르고, 옳은 것을 들으면 실천한다(見善從之 聞義則服/ 견선종지 문의즉복). 온화하고 유순하며 부모에 효도하고 형제와는 우애롭게 하여, 제 능력을 믿고 교만하게 되어선 안 된다(溫柔孝悌 毋驕恃力/ 온유효제 무교시력).’

제자의 능력을 잘 파악하고 더욱 북돋아 자신을 능가하면 靑出於藍(청출어람)이라 하여 스승이 더욱 가르친 보람을 느낀다. 훌륭한 스승이 대부분인 중에 가르치는 교사가 많아지다 보니 제자와 추문이 일어나는 등 일탈하는 사람이 나타난다.

이런 사람이 아주 소수인데도 학부모와 심지어 제자까지 함부로 대해 폭력을 휘두르는 일까지 종종 일어난다. 오죽했으면 은혜를 기리고 존중해야 하는 스승의 날까지 없애야 한다고 하는 청원이 나올까. 교권이 무너지면 나라의 앞날이 어둡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가서만금家書萬金 – 집의 편지는 만금의 값어치가 있다.

가서만금家書萬金 – 집의 편지는 만금의 값어치가 있다.

가서만금(家書萬金) – 집의 편지는 만금의 값어치가 있다.

집 가(宀/7) 글 서(曰/6) 일만 만(艹/9) 쇠 금(金/0)

안부, 용무를 전하는 편지를 나타내는 말은 의외로 많다. 書信(서신), 書簡(서간), 書札(서찰) 등 간혹 사용하는 것 외 簡牘(간독), 書尺(서척), 聲問(성문), 鯉素(이소), 尺翰(척한) 등 생소한 것도 많다. 아주 먼 곳에서 온 편지는 漢(한)나라 蘇武(소무)에게서 유래한 雁書(안서)라고 한다.

이러한 편지를 받았을 때는 희망, 읽고 난 뒤엔 실망이라며 큰 기대를 말라고 한 사람도 있지만 아무래도 반가운 마음이 앞서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집에서 기쁜 소식을 전하는 편지를 직접 뜯었을 때(家書手自啓緘縢/ 가서수자계함등) 그 얼마나 흔쾌할까라며 茶山(다산)은 不亦快哉行(불역쾌재행)에서 노래했다.

기쁘고 즐거움을 넘어 집에서 부쳐 온 편지(家書)는 천만금보다 더 귀하고 반갑다(萬金)고 한 사람은 杜甫(두보, 712~770)다. 그는 詩聖(시성)으로 불리며 시를 숭상하던 唐(당)나라에서 詩仙(시선) 李白(이백)과 함께 李杜(이두)로 통칭될 정도로 우뚝했다.

하지만 당시 玄宗(현종)이 간신들에게 정사를 맡겨 극도로 혼란했을 때 安祿山(안록산)의 난이 일어나 미관말직에 있었던 두보도 포로가 되는 등 고생했다. 그가 홀로 長安(장안)에 있으면서 피란 간 처자를 생각하며, 난리로 폐허가 된 땅과 백성의 아픔을 보고 노래한 것이 유명한 ‘春望(춘망)’이란 시다. 앞 구절부터 유명한 시의 전문을 보자.

‘나라는 깨졌어도 산하는 남아, 성 안에 봄이 오자 초목은 우거지누나(國破山河在 城春草木深/ 국파산하재 성춘초목심). 시절이 아파 꽃에도 눈물 뿌리고, 이별이 서러워 새 소리에도 놀란다(感時花濺淚 恨別鳥驚心 /감시화천루 한별조경심). 봉화가 석 달이나 연이어지니, 집안 편지는 만금의 값이 되네(烽火連三月 家書抵萬金/ 봉화연삼월 가서저만금). 흰 머리 긁을수록 더욱 짧아져, 쓸어 묶으려도 비녀질도 안 되네(白頭搔更短 渾欲不勝簪/ 백두소갱단 혼욕불승잠).’ 濺은 흩뿌릴 천, 簪은 비녀 잠. 생사를 모를 때 가족의 편지는 헤아릴 수 없는 가치이겠지만 여기서는 그보다 사람들은 생고생을 하는 중에도 자연의 이치는 어김없이 찾아 온 봄을 쓸쓸히 노래한다.

집에서 부쳐 온 편지가 반가운 것은 군대에서 이상 없을 것이다. 시대가 바뀌어 전화나 문자로 소식을 주고받게 된 오늘에서도 손편지는 가치를 잃지 않을 것이다. 아날로그 시대가 그리운 사람들은 그리운 사람들에게 손편지를 쓰는 게 유행이라 하고 그렇게 되면 만금의 가치를 아는 사람도 많아질 터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자허오유子虛烏有 - 존재하지 않는 허구의 사실, 가공의 인물

자허오유子虛烏有 - 존재하지 않는 허구의 사실, 가공의 인물

자허오유(子虛烏有) - 존재하지 않는 허구의 사실, 가공의 인물

아들 자(子/0) 빌 허(虍/) 까마귀 오(灬/6) 있을 유(月/2)

子虛(자허)는 ‘헛것’이란 의미로, 烏有(오유)는 ‘어찌 그런 일이 있겠는가’란 뜻으로 모두 있을 수 없는 비현실적인 말이나 존재를 말한다.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사람을 烏有先生(오유선생)이라 했는데 어느 것이나 가상의 꾸며낸 존재다.

이러한 풍자적 인물을 창조한 사람은 중국 前漢(전한)시대의 문인으로 뛰어난 辭賦(사부)의 작가 司馬相如(사마상여, 기원전 179~117)다. 아름다운 문장으로 비유보다 직접 서술하는 중국 고전문인 사부는 屈原(굴원)에서 시작하여 六朝(육조)까지 성행했다는데 특히 천자의 덕을 찬양한 相如(상여)의 작품이 유명하다.

사마상여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刎頸之交(문경지교)로 알려진 趙(조)나라 재상 藺相如(인상여, 藺은 골풀 린)의 인품을 흠모해서 따 왔다. 어려서부터 책 읽기를 좋아하여 글재간이 비상했다. 그의 문명이 널리 알려지기 전 지은 ‘子虛賦(자허부)’는 사냥을 묘사한 내용이었다.

사냥을 즐겨하는 漢武帝(한무제)가 글을 읽고 이런 재주를 가진 대작가와 동시대의 사람이 아닌 것을 애석해했다. 사냥개를 관리하는 신하가 왕에게 같은 고을의 사람이라 일러주자 급히 초대하게 하여 사마상여를 만나게 됐다. 글을 칭찬하는 왕에게 더 훌륭한 작품을 올리겠다고 하여 나온 것이 ‘上林賦(상림부)’다.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이 자허와 오유선생, 그리고 한 사람 더 亡是公(망시공, 또는 무시공)이다. 자허가 楚(초)의 사신으로 齊(제)에 가서 왕의 사냥을 자랑하자 오유가 비난하는 내용이다. ‘상여는 헛것이란 자허로 초나라를 칭찬하고(相如以子虛 虛言也 爲楚稱/ 상여이자허 허언야 위초칭), 어찌 있겠는가란 오유로 비난하자(烏有先生者 烏有此事也 爲齊難/ 오유선생자 오유차사야 위제난) 이런 사람 없다란 망시공이 천자의 도리를 밝히게 했다(亡是公者 無是人也 明天子之義/ 망시공자 무시인야 명천자지의).’ 司馬遷(사마천)의 ‘史記(사기)’ 사마상여열전의 내용이다.

허구로 창조해 낸 인물이 왕과 신하의 성대한 수렵 행사를 은근히 꼬집은 내용이다. 하지만 끝부분에 사치와 방탕을 반대하고 절제와 검소함을 내세웠기 때문에 불같은 성격의 무제도 흡족해했다고 한다. 이같이 가공의 세 사람 모두 없는 사람, 虛無(허무)라는 뜻을 내포하여 동의어로 쓰게 됐다.

우리나라 단편소설의 개척자로 꼽는 玄鎭健(현진건)의 호 憑虛(빙허)도 허구인물의 의미란다. 그러고 보니 理想鄕(이상향)을 말하는 유토피아(Utopia)가 어느 곳에도 없는 장소란 뜻이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위고금다位高金多 - 지위가 높고 재물이 많다, 크게 성공해 귀인이 되다.

위고금다位高金多 - 지위가 높고 재물이 많다, 크게 성공해 귀인이 되다.

위고금다(位高金多) - 지위가 높고 재물이 많다, 크게 성공해 귀인이 되다.

자리 위(亻/5) 높을 고(高/0) 쇠 금(金/0) 많을 다(夕/3)

매우 말솜씨가 좋은 사람을 가리키는 우리 속담에 ‘말 잘 하기는 소진, 장의로군’이라는 것이 있다. 합쳐서 ‘蘇張(소장)의 혀’라고도 한다. 잘 알려졌듯이 蘇秦(소진)과 張儀(장의)는 말로써 중국 秦(진)나라와 六國(육국)을 잡고 흔들었던 縱橫家(종횡가)의 대표였다.

두 사람은 楚(초)나라의 鬼谷(귀곡) 지방에 은둔했던 鬼谷子(귀곡자)의 제자였다. 그는 강력한 진에 대항하여 천하의 패권을 다투던 戰國時代(전국시대)에 권모술수의 외교책을 앞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렇지만 두 제자는 상반된 방책으로 이들 나라에서 꿈을 펼쳤다.

소진은 강국에 맞서려면 작은 나라가 연합해야 한다는 合縱策(합종책)으로, 장의는 진나라와 각각 동맹을 해야 살 수 있다며 連衡策(연횡책, 衡은 저울대 형, 가로 횡)을 갖고 각국을 순회하며 세치의 혀로 왕들을 설득했다. 이들은 고생 끝에 소진이 여섯 나라의 재상으로, 장의는 진나라에서 재상이 되었다.

이 중 지위가 높고(位高) 재물도 많다(金多)는 이 성어는 먼저 출세한 소진에게서 나왔다. 그는 처음 실속 없이 여러 해 동안 떠돌다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형제와 형수가 비웃으며 농사나 지으라고 했다. ‘史記(사기)’의 소진 열전에 실린 내용을 보자.

소진은 분발하여 상대를 설득하는 법을 통달한 뒤 설득에 나섰다. 소국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는 힘을 합쳐야 한다는 합종이 楚燕齊韓魏趙(초연제한위조)의 왕들에 먹혀 들어가 높은 자리에 오르게 됐다. 소진은 합종 맹약의 우두머리가 됐고 제후들마다 사신을 보내 모시려 했다.

이동 때는 선물을 실은 수레가 끝이 안 보일 정도이고 호위하는 병사도 많아 왕의 행차로 착각할 정도였다. 도중에 고향을 지나가면서 집에 들렀다. 식구들은 쳐다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 소진이 ‘어찌 전에는 오만하더니 이렇게 공손한가요(何前倨而後恭也/ 하전거이후공야)?’ 하고 물으니 형수가 답했다. 倨는 거만할 거. ‘작은 시아우님의 지위가 높고 재물도 많다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見季子位高金多也/ 견계자위고김다야).’

부귀해지면 친척까지도 우러러보고 비천해지면 업신여기는 것을 보고 소진은 탄식했다. 일반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다. 높은 자리에 오른 사람에게 줄을 대기 위해 모두 기를 쓴다. 그러다 세력을 잃으면 언제 보았느냐며 즉시 돌아선다. 이런 세태를 탓하지 말고 부귀할 때 덕을 베푼다면 그나마 오래 지속할 수 있다.

소진은 천금을 풀어 일족과 친지들에게 나눠주며 위로했다. 나중에 참혹하게 죽음을 당했어도 소진의 합종책은 15년이나 위력을 발휘해 진나라를 견제하는데 성공한 바탕이 됐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용양호보龍驤虎步 - 용처럼 날뛰고 범처럼 걷다, 용맹스런 영웅의 모습

용양호보龍驤虎步 - 용처럼 날뛰고 범처럼 걷다, 용맹스런 영웅의 모습

용양호보(龍驤虎步) - 용처럼 날뛰고 범처럼 걷다, 용맹스런 영웅의 모습

용 룡(龍/0) 말날뛸 양(馬/17) 범 호(虍/2) 걸음 보(止/3)

상상의 동물로 신성시되는 용은 무적이다. 하늘을 날아다니면서 불이나 독을 내뿜으니 당할 자가 없다. 호랑이는 또 百獸(백수)의 왕이니 만만찮다. 이 들의 싸움은 한 쪽이 실체가 없으니 이뤄질 수는 없다. 하지만 이 둘을 싸움 붙여 龍虎相搏(용호상박)이라면 라이벌끼리의 혈투가 된다. 둘을 대비시켜 된 말을 더 들어 보자. 맞붙어 싸우는 龍拏虎擲(용나호척)이나 대단한 기세를 말하는 龍盤虎踞(용반호거), 엄숙한 용모 龍顔虎眉(용안호미) 등이 있다.

용처럼 날뛰고(龍驤) 범처럼 걷는다(虎步)는 이 비유를 듣기만 해도 위풍이 당당하다. 龍行虎步(용행호보)라 해도 같은 말이고, 매서운 눈초리로 쏘아보는 龍驤虎視(용양호시)도 기개가 높고 위엄에 찬 영웅의 모습을 나타내는 말이다. 이 성어는 南北朝時代(남북조시대) 때의 宋(송)나라 范曄(범엽)이 쓴 ’後漢書(후한서)‘에 나온다. 후한은 4대 和帝(화제) 이후 외척과 환관들이 권력 다툼으로 조용할 때가 없었다. 선비 집단인 黨人(당인)들도 휩쓸려 黨錮(당고)의 禍(화) 이후 나라는 쇠락의 길을 걸었다.

백정 출신이었던 何進(하진)은 누이가 12대 靈帝(영제)의 귀인이 되고 태후에 오르자 권세가 점점 커져 黃巾賊(황건적)의 난 때는 대장군이 되었다. 하진은 환관 세력을 제거하기 위해 董卓(동탁)을 비롯한 각지의 장수들을 동원할 계획을 세웠다. 하진의 밑에서 주부로 있던 陳琳(진림)이라는 사람이 나섰다.

‘장군께서는 황제의 권위와 병권을 가지고 있고, 또 용마가 날뛰고 호랑이처럼 위엄이 있어 마음먹은 대로 할 수 있는데(今將軍皇威 握兵要 龍驤虎步 高下在心/ 금장군황위 악병요 용양호보 고하재심)’ 동탁 등을 부를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다. 진림의 걱정대로 정보를 빼낸 환관들이 선제공격을 하여 하진은 피살되고 말았다. 하진 열전에 실려 있다.

작전도 잘못 짰고 수하의 건의도 묵살한 하진에게 용처럼 날뛰는 위엄은 너무 과한 형용이겠다. 우리 역사상 역대 명장들은 이러한 풍모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기로망양岐路亡羊 - 갈림길에서 양을 잃다, 정확한 방향을 몰라 우왕좌왕하다.

기로망양岐路亡羊 - 갈림길에서 양을 잃다, 정확한 방향을 몰라 우왕좌왕하다.

기로망양(岐路亡羊) - 갈림길에서 양을 잃다, 정확한 방향을 몰라 우왕좌왕하다.

갈림길 기(山/4) 길 로(足/6) 망할 망(亠/1) 양 양(羊/0)

모든 길은 서로 통한다. 서양에선 모든 길이 로마로 통한다(All roads lead to Rome)는 격언이 있다. 실제 로마에는 군사목적으로 사통팔달의 길이 일찍부터 있었다고 해도 같은 목표에 이르는 데는 많은 다른 길이 있다는 의미로 썼다. ‘길을 두고 뫼로 갈까’란 우리 속담이 있다.

쉽게 할 수 있는 것을 구태여 어렵게 하거나 편한 곳을 두고도 불편한 곳으로 가는 것을 비유한다. 가는 길이 여러 곳으로 통하지만 어리석거나 모험심이 강한 사람이 아니고선 일부러 둘러 가는 어려운 길을 택할 필요는 없다. 여러 갈래난 갈림길(岐路)에서 양을 잃는다(亡羊)는 말은 정확한 방향을 몰라 오락가락하는 것을 뜻한다.

중국 道家(도가)의 전설적인 사상가 列禦寇(열어구)의 ‘列子(열자)’에 나오는 이야기에서 유래했다. 衛(위)나라에 楊朱(양주)라는 학자가 살았는데 어느 때 이웃집에서 양을 잃었다며 양을 쫓으러 하인을 청하러 왔다. 양주가 법석을 떠는 이웃에 물었다. ‘한 마리 양이 달아났을 뿐인데 쫓는 사람이 왜 이렇게 많소(亡一羊 何追者之衆/ 망일양 하추자지중)?’ 이웃 양 주인이 대답했다. ‘갈림길이 많기 때문이오(多岐路/ 다기로).’ 허탕을 치고 돌아온 그에게 다시 물었더니 이렇게 답한다. ‘갈림길에 또 갈림길이 있어서였소(岐路之中 又有岐焉/ 기로지중 우유기언).’

이후 양자가 걱정스런 안색으로 말도 하지 않자 제자들이 남의 사소한 가축을 잃은 것에 왜 신경 쓰는지 물었으나 대답하지 않았다. 후일 心都子(심도자)란 제자에게 전한 말은 이렇다. ‘큰길은 갈림길이 많아 양을 잃게 되며, 학문하는 사람은 방법이 많아 삶을 잃게 된다(大道以多岐亡羊 學者以多方喪生/ 대도이다기망양 학자이다방상생).’ 학문하는 사람들이 지엽말단적인 것에만 매달려 근본적인 목표를 잃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란 것을 풍자한 내용이다. 說符(설부)편에 실려 있다.

태초에 길이 있었기에 인간은 그 길을 찾기 위해 방황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선인이 개척해 놓은 지름길을 안다면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목적지에 이른다. 길은 가까운 데 있는데 먼 곳을 두르는 사람들은 어디서나 있다.

가장 이상적인 대책이라고 철석같이 믿은 것이라도 이용을 잘못해 부작용이 난다. 이럴 땐 재빨리 되돌아서는 것도 현명한 방법이다. 자기의 길이 옳다고 꾸역꾸역 먼 길을 간다면 모두에게 피해만 준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오곡불분五穀不分 - 오곡을 분간 못하다, 아주 어리석다.

오곡불분五穀不分 - 오곡을 분간 못하다, 아주 어리석다.

오곡불분(五穀不分) - 오곡을 분간 못하다, 아주 어리석다.

다섯 오(二/2) 곡식 곡(禾/10) 아닐 불(一/3) 나눌 분(刀/2)

五穀(오곡)은 온갖 곡식을 이르는 말이기도 하지만 대체로 쌀, 보리, 콩, 조, 기장을 가리킨다. 주식으로 많이 사용하는 중요한 곡식이기 때문이다. 이 다섯 가지 곡식을 모른다면 무식한 사람이 될까. 옛날 농경시대라면 몰라도 오늘날에는 오곡이 무엇인지, 그것을 구별 안 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이들은 각기 다른 부문에서 생산에 종사하고 연구에 매진하여 전문가가 된 사람이 많다. 어떤 분야에 조금 안다고 다른 사람을 얕보고 우쭐거리다간 큰 코 다치기 십상이다.

유식과 무식을 떠나 다섯 가지 곡식(五穀)을 구분하지 못한다(不分)는 말은 ‘論語(논어)’에서 孔子(공자)를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말한 隱者(은자)의 이야기가 출처다. 殷(은)나라 마지막 왕 紂王(주왕)의 학정을 피해 떠났던 배다른 형 微子(미자)편에 나온다. 공자의 제자 子路(자로)가 일행을 놓쳐 뒤에 쳐졌다가 지팡이로 삼태기를 메고 가는 노인을 만났다. 자로가 선생님을 보지 못했는지 묻자 노인이 답한다.

‘손발을 부지런히 움직여 일하지 않고, 오곡도 분간하지 못하는데 누가 선생이란 말인가(四體不勤 五穀不分 孰爲夫子/ 사체불근 오곡불분 숙위부자)?’ 자로가 핀잔을 받고도 두 손을 맞잡고 김 맬 동안 기다리자 노인은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가 닭을 잡고 잘 대접했다.

다음 날 자로가 스승에 아뢰니 그가 바로 은자라며 다시 만나보라고 했지만 갔을 땐 이미 떠나고 없었다. 노인이 손발도 놀리지 않고 오곡도 모른 사람이라고 낮춰 말해도 자로가 공손함을 잃지 않자 사람됨을 알았고 공자도 은자를 알아봤던 것이다.

농사에서 무식한 사람을 비유하는 말은 이외에도 콩과 보리를 구별하지 못한다는 菽麥不辨(숙맥불변)이나 고무래를 두고도 丁(정) 자를 알지 못한다는 目不識丁(목불식정)이 있다. 不學無識(불학무식)이란 말도 있다. 배운 것이 없어 무식하다고 욕할 때 쓴다. 하지만 배운 사람이 높은 자리에 올라 온갖 비리를 저지르는 것을 볼 때는 유식이 무식보다 못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xa0/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문과식비文過飾非 - 허물도 꾸미고 잘못도 변명하다.

문과식비文過飾非 - 허물도 꾸미고 잘못도 변명하다.

문과식비(文過飾非) - 허물도 꾸미고 잘못도 변명하다.

글월 문(文/0) 지날 과(辶/9) 꾸밀 식(食/5) 아닐 비(非/0)

자기가 잘못을 저지르고도 대체로 사람들은 인정하는데 인색하다. 일이 안될 때 그 책임을 남에게 돌리는 태도를 비꼬는 말은 숱하다. ‘잘 되면 제 복, 못되면 조상 탓’, ‘쟁기질 못하는 놈이 소 탓한다’, ‘글 잘 쓰는 사람은 필묵을 탓하지 않는다’ 등등이다. 孔子(공자)님도 점잖게 타이른다.

‘군자는 자기 자신에게서 잘못을 찾고, 소인은 남에게서 잘못을 찾는다(君子求諸己 小人求諸人/ 군자구저기 소인구저인).’ 諸는 모두 제, 어조사 저. 이렇게 경계하라는 말이 많아도 지키기는 어려운지 허물도 꾸미고(文過) 잘못도 꾸미는(飾非) 것은 인지상정인 모양이다. 잘못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뉘우침도 없이 숨길 뿐만 아니라 도리어 남 탓을 하고 잘난 체만 한다. 文(문)은 물론 꾸민다는 뜻이다.

이 말이 먼저 나온 곳은 ‘論語(논어)’의 子張(자장)편이다. 공자의 제자 子夏(자하)가 말했다. ‘소인은 잘못을 저지르면 반드시 그럴듯하게 꾸며대려 한다(小人之過也必文/ 소인지과야필문).’ 잘못을 인정하기는커녕 잘못이 아닌 듯이 꾸밈으로써 더 큰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 소인이란 뜻이다. 朱子(주자)의 ‘論語集註(논어집주)’에는 이렇게 설명한다. ‘문은 꾸미는 것이다. 소인은 허물을 고치는데 꺼리고, 스스로 속이는 데엔 꺼리지 않으므로, 반드시 꾸며서 그 허물을 거듭한다(文飾之也 小人憚於改過 而不憚於自欺 故必文以重其過/ 문식지야 소인탄어개과 이불탄어자기 고필문이중기과).’

‘孟子(맹자)’엔 옛날 周公(주공)도 잘못이 있었다면서 이렇게 설명한다. ‘옛날의 군자는 잘못이 있으면 고쳤는데, 오늘날의 군자는 허물이 있어도 그대로 밀고 나간다(古之君子 過則改之 今之君子 過則順之/ 고지군자 과즉개지 금지군자 과즉순지)’고 하며 덧붙인다. 옛 군자는 그 과오가 마치 일식이나 월식과 같아서 인민들이 모두 볼 수 있었고 그것을 고쳤을 때 모두 우러렀는데 오늘날 군자는 다만 과오를 따를 뿐 아니라 변명하기까지 한다는 것이다. 公孫丑(공손추) 하편에 실려 있다.

잘못은 성인도 저지를 수 있다. 다만 변명과 거짓말로 둘러 대는가 아닌가에서 차이가 난다. 업무가 마비된듯한 이 위기상황에 책임이 있다는 사람들은 어디에도 없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일거수 일투족一擧手 一投足 - 손 한 번 들고 발 한 번 옮긴다, 크고 작은 동작 하나하나

일거수 일투족一擧手 一投足 - 손 한 번 들고 발 한 번 옮긴다, 크고 작은 동작 하나하나

일거수 일투족(一擧手 一投足) - 손 한 번 들고 발 한 번 옮긴다, 크고 작은 동작 하나하나

한 일(一/0) 들 거(手/14) 손 수(手/0) 한 일(一/0) 던질 투(扌/4) 발 족(足/0)

손을 한 번 들고(一擧手) 발을 한 번 내딛는(一投足) 일은 무척 쉽다. 손발이 불편한 장애인에겐 어려운 일이지만 갓난아이도 할 수 있는 이 동작이 쉬운 일의 비유가 된 것은 중국 唐(당)나라의 韓愈(한유, 768~824)에서 비롯됐다. 문장에서 빼어난 唐宋八大家(당송팔대가)의 한 사람인 한유도 25세에 과거시험 1차에 합격한 뒤 2차 吏部(이부) 시험에서는 몇 번을 응시하여 번번이 낙방한 모양이었다.

이 당시의 과거에서는 시험관에게 응시자들이 자신의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시문을 지어 제출하는 것이 관례였다는데 한유도 실력을 발휘했다.

제목이 ‘과거에 응시하면서 담당자에게 주는 편지(應科目時與人書/ 응과목시여인서)’인 이 글에서 한유는 시험관에게 자신을 소개하면서 급제의 영광을 베풀어 달라고 구구절절 부탁을 하고 있다. 천지 바닷가나 큰 강가에 사는 큰 괴물이 물을 얻으면 비바람을 몰아치게 하고 하늘은 오르내리는 것이 문제가 아니지만, 물을 만나지 못하면 평범한 작은 물고기에 불과할 뿐이라며 이어간다. 그것을 힘 있는 사람이 안타깝게 여겨 옮겨주는 것은 ‘손 한 번 움직이고 다리 한 번 움직이는 노고에 불과하지만(蓋一擧手一投足之勞也/ 개일거수일투족지로야)’ 이 동물에겐 큰 힘이 된다고 했다.

본론에 들어가면서 다시 한 번 등장한다. 지금 힘 있는 사람이 앞에 있어 외쳐 보는데 ‘어찌 손 한 번 움직이고 다리 한 번 움직이는 노고를 잊어버리고(而忘一擧手一投足勞/ 이망일거수일투족로)’ 맑은 물에 옮겨놓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읍소한다. 한유 자신은 비바람을 몰아치는 큰 인물과 같은데 물을 만나지 못해 뜻을 펼치지 못하고 있으니 발탁해 달라는 이야기다. 담당자에게는 자신을 급제시키는 일이 손발 한 번 까딱하는 정도로 쉽게 할 수 있는 일이니 무엇이 문제일까 생각한 것이다.

당시 과거시험의 자기 소개서인 셈인데 훌륭한 문장으로 급제시키는 것이니 오늘날의 청탁과는 다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뽑는 일이 손발 한 번 움직이는 정도로 쉬운 일은 아닐 것임은 분명하다. 그래서인지 갓난애도 할 수 있다는 쉬운 이 말이 크고 작은 동작 하나하나를 일컫는 말이 됐고, 특히 지도층에 있는 사람들은 모든 사람이 지켜보니 더욱 어려운 일이 됐다. 말 한 마디가 중요한 의미로 해석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행동도 조심해야 한다는 의미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