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14일 목요일

【미선나무】

【미선나무】

【미선나무】

미선나무의 이름은 아름다운 부채라는 뜻의 미선(美扇) 또는 부채의 일종인 미선(尾扇)에서 유래한다.

열매의 모양이 둥근 부채를 닮아 미선나무라고 부르는데, 우리나라에서만 자라는 한국 특산식물이다.따라서 자생지를 모두 천연기념물로 지정 하였음

▷ 학명 : Abeliophyllum distichum

▷ 분류 : 물푸레나무과

▷ 분포지역 : 한국 충북 괴산, 전북 부안

▷ 서식장소 : 볕이 잘 드는 산기슭

▷ 특징 : 미선나무의 종류는 흰색 꽃이 피는 것이 기본종이다. 분홍색 꽃이 피는 것을 분홍미선(for. lilacinum), 상아색 꽃이 피는 것을 상아미선(for. eburneum), 꽃받침이 연한 녹색인 것을 푸른미선(for. viridicalycinum), 열매 끝이 패지 않고 둥글게 피는 것을 둥근미선(var. rotundicarpum)이라고 한다

현애살수懸崖撒手 - 절벽에서 잡고 있는 손을 놓다, 작은 것에 매달리지 않고 나아가다.

현애살수懸崖撒手 - 절벽에서 잡고 있는 손을 놓다, 작은 것에 매달리지 않고 나아가다.

현애살수(懸崖撒手) - 절벽에서 잡고 있는 손을 놓다, 작은 것에 매달리지 않고 나아가다.

달 현(心/16) 언덕 애(山/8) 뿌릴 살(扌/12) 손 수(手/0)

높은 낭떠러지에 매달렸을 때(懸崖) 잡고 있던 손을 놓는다(撒手). 손을 떼면 죽을 수 있는 절체절명의 마지막 순간을 포기하기란 가능하지 않다. 불교에서 말하는 심오한 원리로 생을 포기하라는 말이 아니라 사소한 것에 매달리지 말라는 뜻이란다. 어떤 사람이 절벽에서 미끄러져 떨어질 때 나뭇가지를 잡았다. 두 손을 놓으라는 하늘의 말에 신앙심이 깊은 사람은 놓지만 그렇지 않으면 힘이 빠질 때까지 매달린다. 실제 절벽은 그리 높지 않아 손을 놓으면 살 수 있어도 그렇다. 손에 움켜쥔 나뭇가지에 연연하게 되면 모든 것을 잃어버릴 것이라는 집착에서 헤어날 길이 없어진다는 가르침이다.

불경의 여러 곳에서 만날 수 있는데 가장 잘 알려진 것이 중국 宋(송)나라 선사 冶父道川(야부도천)의 ‘偈頌(게송)‘이다. 속명이 狄三(적삼)인 그는 궁수였다가 道謙(도겸)로부터 道(도)가 시냇물(川/ 천)처럼 불어나도록 내려준 법명대로 정진했다. 金剛經(금강경) 해설을 시로 표현하는 것이 뛰어나 많이 알려졌다. 성어가 나오는 앞부분을 보자.

’나뭇가지 붙잡는 것은 기이한 일이 아니라(得樹攀枝未足奇/ 득수반지미족기), 벼랑에서 손을 놓아야 비로소 대장부로다(懸崖撒手丈夫兒/ 현애살수장부아).‘ 攀은 더위잡을 반. 역대 선승들의 화두100개를 담은 禪宗(선종)의 ‘碧岩錄(벽암록)’에는 선문답이 어긋날 때 ‘마땅히 낭떠러지에서 붙잡고 있던 손을 놓아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直手懸崖撒手 自肯承當/ 직수현애살수 자긍승당)’고 깨우친다.

이 말은 또한 白凡(백범) 金九(김구) 선생이 항상 실천하려 했던 명구로 알려져 있다. 백범은 20세 무렵 安重根(안중근)의사의 부친 집에서 스승 高能善(고능선)을 만났을 때 결단력이 부족함을 일깨우려 가르쳐준 이 글귀를 좌우명으로 삼았다고 했다.

나무에 오를 때 가지를 잡고 오르는 것은 이상할 것이 없으나 낭떠러지에 매달렸을 때 손을 놓는 것이 대장부라며 결단할 때는 과감해야 한다는 가르침이었다. 懸崖撒手(현애살수)의 장면을 잊지 않기 위해 백범은 낭떠러지에 매달린 원숭이를 그린 그림을 벽에 붙여놓았다고 하고, 尹奉吉(윤봉길) 의사의 거사 직전에도 당부했던 말이라 한다.

百尺竿頭進一步(백척간두진일보)란 말을 많이 쓴다. 백 자나 된 장대의 끝에선 더 나아갈 곳이 없음에도 더 노력한다는 말이다. 더 이상 이룰 것이 없을 정도로 많이 가지고도 더 욕심을 부리는 일은 없을지 뒤돌아봐야 한다는 뜻으로 달리 생각할 수도 있다.

살아가면서 지금에 만족하고 때로는 마음을 비우고 내려놓아야 할 때도 생긴다. 집착하기만 하고 더 위로 오르려고만 하다가는 가진 것도 잃게 되는 경우가 많다. 정부 고위직에 오르려는 사람이 인사 청문회 때 온갖 잡음이 쏟아져도 눈도 꿈쩍 않고 불명예스런 자리에 앉는다. 공을 이루고 물러나는 功成身退(공성신퇴)는 그만큼 어렵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저양촉번羝羊觸藩 - 숫양이 울타리를 들이받다, 함부로 달려들다 쩔쩔매다.

저양촉번羝羊觸藩 - 숫양이 울타리를 들이받다, 함부로 달려들다 쩔쩔매다.

저양촉번(羝羊觸藩) - 숫양이 울타리를 들이받다, 함부로 달려들다 쩔쩔매다.

숫양 저(羊/5) 양 양(羊/0) 닿을 촉(角/13) 울타리 번(艹/15)

달리는 호랑이의 등에 엉겁결에 올라타게 됐다고 하자. 뛰어 내려도 돌밭에 깨지거나 언덕에 구르고, 끝까지 가도 호랑이밥이 될 처지다. 정신만 똑똑히 차리면 산다고 전하지만 그 전에 얼이 빠져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 이리 갈까 저리 갈까 판단을 못하다 右往左往(우왕좌왕), 나중에는 옴짝달싹 못하는 進退維谷(진퇴유곡)에 갇히게 되는 것이 騎虎難下(기호난하)다. 중국 春秋時代(춘추시대) 강대국 齊(제)와 楚(초) 사이에 끼여 눈치만 보는 滕(등, 滕은 물솟을 등)나라의 처지를 말한 事齊事楚(사제사초)와 같다.

이처럼 자기의 의지로 어찌할 수 없는 경우와는 달리 자만심으로 밀고 나가다 낭패를 볼 경우는 더 고약하다. 왔던 길을 잘 찾고 평소 온순한 성격의 숫양(羝羊)이라도 힘이 뻗치면 마구 내달려 울타리에 뿔이 걸린다(觸藩). 무모하고 저돌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이 마침내 덫에 걸려 도리어 일을 더 망치게 되는 경우를 비유하는 성어로 ‘易經(역경)’에서 유래했다. 만물을 陰陽(음양)으로 나눠 六十四卦(육십사괘)로 설명하는 이 경전의 大壯卦(대장괘)의 설명을 종합해 보자. 大(대)는 陽(양)을 의미하며 壯(장)은 왕성하다는 뜻이란다.

우선 34괘인 이 대장괘는 우레를 상징하는 진괘(震卦,☳)와 하늘 건괘(乾卦,≡)가 거듭된 괘로 나타낸다. 하늘 위에서 우레가 치는 형국으로 양의 세력이 막강함을 나타낸다고 했다. 강한 양의 세력은 교만에 빠지기 쉽고, 성급하여 일을 그르칠 위험이 따르기 때문에 소인과 군자의 태도가 달라진다.

‘소인은 강성하면 세력을 함부로 휘두르고, 군자는 태연히 자신을 바로잡는다(小人用壯 君子用罔 貞厲/ 소인용장 군자용망 정려).’ 그래서 ‘숫양이 무작정 돌진하다가 울타리를 받아 뿔이 걸려 괴로운(羝羊觸藩 羸其角/ 저양촉번 리기각)’ 일이 생기게 된다. 羸는 괴로워할 리, 그리 되면 ‘물러나지도 나아가지도 못한다(不能退 不能遂/ 불능퇴 불능수)’.

사람이 자기의 능력을 헤아리지 못하고 자신감에 넘쳐 달려들었다가 일을 망치는 경우가 잦다. 국가의 정책도 인기만 믿고 부작용을 점검 않은 채 밀어 붙이다가 進退兩難(진퇴양난)에 빠지면 국민 모두의 불행이다. ‘菜根譚(채근담)’에서도 깨우친다.

세상사 한 걸음 물러서 생각하지 않는다면 ‘부나비가 촛불로 날아들고, 숫양이 울타리를 들이받는(飛蛾投燭 羝羊觸藩/ 비아투촉 저양촉번)’ 것과 같아 편안할 수 없다고 했다. 蛾는 누에나방 아. 매사에 먼저 깊이 생각하고 나설 일이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절부지의竊鈇之疑 - 도끼를 훔쳐갔다고 의심하다, 공연한 의심

절부지의竊鈇之疑 - 도끼를 훔쳐갔다고 의심하다, 공연한 의심

절부지의(竊鈇之疑) - 도끼를 훔쳐갔다고 의심하다, 공연한 의심

훔칠 절(穴/17) 도끼 부(金/4) 갈 지(丿/3) 의심할 의(疋/9)

사람을 믿지 못해서 나오는 의심은 갈수록 커진다. 서양의 철학자는 ‘진리를 검토하기 위해서 모든 사물을 의심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지만 보통사람들엔 의심이 의심을 낳는 법이다. 疑心生暗鬼(의심생암귀)가 바로 말한다. 이것을 경계하여 옛 선인들은 여러 가지 교훈을 남겼다.

친한 친구와 술자리를 가졌는데 술잔에 비친 뱀 그림자를 보고 자기를 해치려는 것이라 의심하여 큰 병이 났다는 杯弓蛇影(배궁사영)이나 하늘이 무너질까 의심하여 쓸데없는 걱정을 하는 杞人之憂(기인지우)는 어리석음의 대명사다. 그래서 李下不整冠(이하부정관)이라며 자두나무 아래서 갓끈을 바로잡으면 도둑으로 몰릴 수 있으니 아예 남에게 의심받을 일을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한 사람의 행동이 의심쩍으면 하는 짓마다 더 의심이 커져 나중에는 확신하게 된다. 약간 뭣하지만 적합한 속담이 있다. ‘삼밭에 한 번 똥 싼 개는 늘 싼 줄 안다‘고 한 번 잘못을 저지르면 눈에 띌 때마다 의심을 받게 된다. 이 개는 한 번 잘못이 있기라도 한데 잘못이 없고도 의심을 받으면 억울하다.

이웃 사람이 도끼를 훔쳐갔다(竊鈇)고 의심한다(之疑)는 말은 공연히 남의 행동이 미심쩍어 확신하다간 나중에 크게 실수한다는 이야기다. 중국 秦(진)나라 呂不韋(여불위)가 제자백가 지식을 집대성한 책이라 자부하는 ’呂氏春秋(여씨춘추)‘에서 이런 예를 든다. 마음에 얽매여 있는 혹을 없애야 한다는 去尤(거우)편에서다.

한 사람이 도끼를 잃어버렸는데 이웃집 아들을 범인이라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그의 걸음걸이가 도끼를 훔친 것으로 보였고 안색도 수상했으며 말도 그렇게 들렸다(視其行步竊鈇也 顏色竊鈇也 言語竊鈇也/ 시기행보절부야 안색절부야 언어절부야). 며칠 뒤 골짜기를 이리저리 뒤져 도끼를 찾았다. 다음날 다시 옆집의 아들을 보니 동작과 태도 모두 도끼를 훔친 범인과 같이 보이지 않았다.

이웃집 아들이 변한 것이 전혀 없는데 자신이 생각하는바 편견에 얽매이는 것이 없어졌을 뿐이었다. 좋아하든가 싫어하든가 어떤 생각에 사로잡히면 일이 반드시 어그러지게 된다는 것을 말해준다. 같은 이야기가 ‘列子(열자)’ 說符(설부)편에도 나온다.

의심이 의심을 낳는 중생들에게 부처님은 지혜 없는 자가 의심 끊을 날이 없다고 했다. 자신의 생각만이 옳고 남의 의견은 마음에 들지 않아 귀에 들어오지도 않는 사람들과는 더불어 살 수가 없다. 자신이 잘못된 점이 있는지 남의 충고를 받아 들여야 발전이 있다. 그렇다고 남이 하는 이야기를 무조건 ‘옳소!’하고 자기 의견을 수정한다면 그것도 옳지 않다.

菜根譚(채근담)에 이에 관한 좋은 말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의심한다고 하여 자신의 견해를 굽히지 말고, 자신의 생각대로만 하여 남의 말을 물리치지도 말라(毋因群疑而阻獨見 毋任己意而廢人言/ 무인군의이조독견 무임기의이폐인언).’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물이유취物以類聚 - 사물이 같은 종류에 따라 모인다.

물이유취物以類聚 - 사물이 같은 종류에 따라 모인다.

물이유취(物以類聚) - 사물이 같은 종류에 따라 모인다.

물건 물(牛/4) 써 이(人/3) 무리 류(頁/10) 모을 취(耳/8)

사람들은 끼리끼리 모여 산다. 개미나 벌 같은 곤충들은 군집생활이 필수적이지만 일반 동물들도 더 큰 동물의 위험을 막으며 살기 위해서는 집단생활이 적합하다. 사람도 혼자서는 의식주를 해결 못하기 때문에 모여 살아갈 수밖에 없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모이더라도 적대적인 사람과는 가까이 하지 않는 것이 상정이다.

자기의 편을 들어주고, 자기의 사정을 잘 아는 사람들과 끼리끼리 모인다. 이 난에 나온 적 있는 同氣相求(동기상구)이고 同病相憐(동병상련)이다. ‘과부 설움은 과부가 안다’는 兩寡分悲(양과분비)도 같은 뜻으로 사용된다. 그런데 가재는 항상 게 편을 들고, 풀도 같은 녹색이라며 草綠同色(초록동색), 같은 종류끼리만 類類相從(유유상종)한다면 좋은 소리를 못 듣는다.

사물(物以)은 같거나 비슷한 종류에 따라 모인다(類聚)는 이 말도 변화를 겪었다. 유사한 부분이 나오는 ‘周易(주역)’부터 먼저 보자. ‘만물은 같은 종류끼리 모이고 무리를 지어 나누어지니, 이로부터 길함과 흉함이 생긴다(方以類聚 物以群分 吉凶生矣/ 방이유취 물이군분 길흉생의).’ 繫辭上(계사상) 편에 실려 있다.

同氣相求(동기상구)가 나오는 文言(문언)의 뒷부분은 이렇다. ‘하늘에 근본을 둔 것은 위와 친하고, 땅에 근본을 둔 것은 아래와 친하니, 이는 모두 각자가 그 비슷한 것을 좇기 때문이다(本乎天者親上 本乎地者親下 則各從其類也/ 본호천자친상 본호지자친하 즉각종기류야).’

戰國時代(전국시대) 齊(제)나라에 淳于髡(순우곤, 髡은 머리깎을 곤)이란 대부가 있었다. 천한 신분이었지만 익살과 다변으로 유명했다. 어느 때 宣王(선왕)이 인재를 구한다는 소식을 듣고 하루 사이에 7명이나 천거했다. 선왕은 놀라 천리를 다니며 백 년을 찾아도 한 사람 찾기가 힘든데 이들이 과연 현인인지 물었다. 순우곤이 대답한다. 새는 새들과 함께 있고 짐승은 짐승들과 있는 법인데 이것이 바로 ‘물건은 각기 비슷한 부류가 있다(物各有疇/ 물각유주)’는 이야기라 했다. 그리고 자신은 같은 무리기 때문에 주위에 현인이 많다고 말했다. ‘戰國策(전국책)’ 齊策(제책)에 나온다.

모여서 자신들만의 이익을 쫓고 타인에게는 해를 끼친다면 바람직한 모임이 아니다. 고급정보를 사유화하고 조직 안의 의견만이 옳다고 똘똘 뭉쳐 고집한다면 외부에서 욕을 먹는다. 처음에는 그런 의미를 가지지 않았지만 類類相從(유유상종)을 비롯한 이 성어들은 점점 나쁜 사람들의 집합체를 가리키거나 배타적인 집단으로 부정적인 의미를 더 많이 갖게 됐다. 끼리끼리의 힘을 자기들만이 사유화했기 때문이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정좌관심靜坐觀心 - 고요히 앉아 마음을 들여다보다.

정좌관심靜坐觀心 - 고요히 앉아 마음을 들여다보다.

정좌관심(靜坐觀心) - 고요히 앉아 마음을 들여다보다.

고요할 정(靑/8) 앉을 좌(土/4) 볼 관(見/18) 마음 심(心/0)

몸을 바르게 하여 조용히 앉은 채(靜坐) 마음의 본바탕을 살펴본다(觀心)는 말은 쉬워도 실천하기는 어렵다. 눕지 않고 몇날며칠을 용맹 정진하는 선승들의 長坐不臥(장좌불와)나 오래 전 대작 드라마 ‘太祖 王建(태조 왕건)’에서 弓裔(궁예)의 관심법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瑜伽(유가)라고도 하는 심신단련법 요가(yoga)가 고대 인도에서 시작됐다고 하여 불교만의 전유물일 수는 없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고요히 자신을 되돌아보는 수양과 명상을 중시하여 선인들은 갖가지 좋은 말을 많이 남겼다. 마음과 행실을 바르게 닦아 악을 물리치고 선을 북돋는 修身(수신)을 무엇보다 우선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修身齊家治國平天下(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는 말이 처음 ‘大學(대학)’에 나오듯이 먼저 마음의 수양도 언급한다. ‘머무름의 경지를 안 다음에야 자리를 잡고(知止而後有定/ 지지이후유정), 자리를 잡은 뒤에야 마음이 고요할 수 있으며(定而後能靜/ 정이후능정), 마음이 가라앉은 뒤에야 안정될 수 있고(靜而後能安/ 정이후능안), 안정된 뒤에야 깊이 생각할 수 있으며(安而後能慮/ 안이후능려), 사색한 뒤에야 능히 얻을 수 있다(慮而後能得/ 려이후능득).’ 그러면서 마음이 그렇지 못하면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는다(視而不見 聽而不聞/ 시이불견 청이불문)’고도 했다.

비슷한 의미로 老子(노자)의 道德經(도덕경)에는 ‘만물이 근원으로 돌아가면 고요함을 찾는다(歸根曰靜/ 귀근왈정)’고 했고, 宋(송)의 程頤(정이, 頤는 턱 이)는 ‘마음이 고요해진 후에 만물을 보면 자연히 모두 봄의 생기를 가지게 된다(靜後見萬物 自然皆有春意/ 정후견만물 자연개유춘의)’고 近思錄(근사록)에서 말했다.

淸(청)의 蘭生(난생) 金纓(금영)이 엮은 격언집 格言聯璧(격언연벽)에는 더 와 닿는 명구가 있다. ‘고요히 앉은 연후에 평시의 성급함을 알 수 있다(靜坐然後 知平日之氣浮/ 정좌연후 지평일지기부)’, ‘고요함으로 움직임을 제어할 수 있고, 마음을 가라앉혀야 평시 말의 경솔함을 알 수 있다(守默然後 知平日之言躁/ 수묵연후 지평일지언조).’

우리나라는 사회의 어떤 분야든 급박하게 돌아가 생기가 넘친다. 외국인들은 ‘빨리빨리‘가 우리 국민성으로 여길 정도다. 가난에서 벗어나 경제부국으로 만들고 민주화도 이뤘으니 그럴 만도 하다. 하지만 우리 개개인의 행복도는 모두 낮게 여긴다. 빈부의 격차가 심하고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자기만 옳고 남은 꺾어야만 하는 존재로 여긴다.

사회를 이끌어갈 정치를 비롯한 지도층은 더욱 시끄럽다. 고요함을 찾아야만 소란스런 속세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반성하고 타인을 생각할 수 있다. 깨끗한 세계가 아니라도 고요히 앉아 자신을 돌아보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사위지기자사士爲知己者死 - 선비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

사위지기자사士爲知己者死 - 선비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

사위지기자사(士爲知己者死) - 선비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

선비 사(士/0) 하 위(爪/8) 알 지(矢/3) 몸 기(己/0) 놈 자(耂/5) 죽을 사(歹/2)

모든 좋은 덕목을 가진 이상적인 사람이 선비였다. 학식이 있고 말보다 실천이 앞서고, 예절이 바르며 재물을 탐내지 않고 거기에다 고결한 인품을 지녔으니 말이다. 孔子(공자)가 강조하는 君子(군자)와 같고 우리나라의 양반이나 서양의 젠틀맨(gentleman)이 부분 해당하겠다.

그런 반면 白面書生(백면서생)이나 ‘남산골 딸깍발이’란 말이 일러주는 대로 글만 읽어 세상 물정을 모르고, 가난하고 융통성 없는 사람의 대명사이기도 했다. 선비 중에서도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서 목숨을 바친다는 이 성어 이상으로 의리를 지키기도 어려울 것이다.

자신을 인정해주는 사람에게 충성을 다하며 때로는 목숨까지 바칠 수 있다는 의리의 사나이는 春秋時代(춘추시대) 晉(진)나라의 禮讓(예양)이다. 당시 진나라엔 가신들의 세력다툼이 치열했다. 예양은 처음엔 빛을 못 보다가 智伯(지백)의 휘하에 들어가서부터 총애를 받았다. 제일 강성하던 지백은 趙襄子(조양자)가 다른 세력을 연합하여 싸움을 걸어옴에 따라 패배하고 말았다. 전멸한 병사와 함께 지백은 일가까지 모두 처참하게 죽음을 당했고 예양은 산속으로 도주했다. 자신을 알아준 주군 지백을 위해 원수를 갚으리라 다짐했다.

‘사내대장부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죽고, 여자는 자기를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용모를 꾸민다(士爲知己者死 女爲悅己者容/ 사위지기자사 여위열기자용)’란 말이 있으니 조양자를 없애야 지백의 은혜를 갚고 자신의 영혼이 부끄럽지 않을 것이라 했다. 예양은 이름을 바꾸고 죄인들 틈에 끼여 조양자의 궁중에서 변소의 벽을 바르는 일을 하게 됐다.

비수를 품고 습격했다가 발각됐고, 풀려난 뒤에도 다리 밑에서 기회를 노렸으나 또 실패했다. 의기를 높이 산 조양자도 용서할 수 없다고 하자 의복을 달라고 해서 칼로 찢고 자신도 찔렀다. ‘史記(사기)’의 刺客(자객) 열전과 ‘戰國策(전국책)’ 趙策(조책) 등 여러 곳에 등장하는 유명한 이야기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야서지혼野鼠之婚 - 두더지의 혼인, 자신의 처지를 헤아림

야서지혼野鼠之婚 - 두더지의 혼인, 자신의 처지를 헤아림

야서지혼(野鼠之婚) - 두더지의 혼인, 자신의 처지를 헤아림

들 야(里/4) 쥐 서(鼠/0) 갈 지(丿/3) 혼인할 혼(女/8)

‘짚신도 제짝이 있다’는 속담은 보잘것없는 사람도 자기의 짝은 있다는 말이다. 두더지(野鼠)의 짝은 어떤 것이기에 이런 말이 나왔을까. 두더지가 자기 분수도 모르고 새끼의 짝을 구하기 위해 이곳저곳에 청을 넣어보다 결국은 같은 종족인 두더지가 제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 이야기에서 엉뚱한 허영심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것과 세상에는 절대적인 것은 없고 모두가 상대적이라는 것을 가르친다. 우리 속담을 한역한 부록으로 유명한 洪萬宗(홍만종)의 문학평론집 ‘旬五志(순오지)’에 소개돼 있다.

어느 때 한 두더지가 자식을 위해 좋은 혼처를 구하려고 했다. 자신은 항상 땅속에서만 생활하여 못마땅해 했는데 자식에게는 넓은 세상에서 당당하게 살게 해주고 싶었다. 하늘의 태양이 가장 훌륭하다고 여겨 하늘에 청혼하니 ‘내 비록 세상을 품고는 있지만 해와 달이 아니면 덕을 드러낼 수가 없네’ 하며 거절했다.

두더지는 이번에 해와 달을 찾아 혼처로 구했지만 ‘나는 구름이 가리면 세상을 비출 수 없다’며 손사래치고, 다시 구름을 찾아가 청혼을 하니 ‘내 비록 해와 달의 빛을 가릴 수는 있지만 바람이 한번 불면 흩어질 뿐이네’ 하고 돌아섰다. 할 수 없이 바람을 찾아가 구혼하니 ‘내가 구름을 흩어지게는 하지만 저 밭 가운데의 돌부처는 끄떡도 할 수 없으니 저보다 못하네’ 하여 돌부처를 찾아가자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닌가. ‘내가 비록 거센 바람도 무섭지 않지만 오직 두더지가 내 발밑을 뚫고 들어오면 바로 넘어지고 말지(我雖不畏風 惟野鼠 穿我足底 則傾倒/ 아수불외풍 유야서 천아족저 즉경도). 그래서 두더지가 나보다 낫다네.’

부지런히 새끼의 좋은 짝을 구하러 다니던 두더지는 이 말을 듣고 기고만장하여 ‘천하에 높은 것이 나만한 게 없구먼’ 하며 동족 두더지와 혼인을 시켰다. 잘 어울리는 배우자는 자신이 안다. ‘결혼은 자기와 동등한 자와 할 일이다.

자기보다 뛰어난 상대는 반려가 아니고 주인을 구하는 것’이란 서양 격언이 있다. 그러니 지체 높은 집과 하는 仰婚(앙혼)이 처음에는 보란 듯이 내세우다가도 실제 생활은 불행에 이르는 일이 많다. 결혼 시즌에 대사를 앞둔 청춘남녀들이 한 번 더 생각할 일이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상선약수上善若水 -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

상선약수上善若水 -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

상선약수(上善若水) -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

윗 상(一/2) 착할 선(口/9) 같을 약(艹/5) 물 수(水/0)

모두들 물을 물같이 보지만 물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것이라고 일찍부터 老子(노자)는 ‘道德經(도덕경)’에서 깨우쳤다. 지극히 선한 것은 물과 같다(上善若水)며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않는 물을 이 세상에서 선의 표본으로 삼았다. 도덕경의 8장 易性章(역성장)에 나오는 이 말은 한 편의 시처럼 잘 요약되어 있어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구절이기도 하다.

해당 부분을 인용해 보면. ‘上善若水 水善利萬物而不爭 處衆人之所惡 故幾於道(상선약수 수선리만물이부쟁 처중인지소오 고기어도)’로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해주고 넉넉하게 해 주지만 다투지 않는다. 모든 사람이 싫어하는 낮은 곳에 머물기에 가장 도에 가깝다’란 뜻이다.

노자는 세상을 물처럼 살아야 한다고 하면서 먼저 남과 다투거나 경쟁하지 않는 不爭(부쟁)과 남이 싫어하는 낮은 곳에 임하는 謙遜(겸손)을 가르친다. 이것은 소극적인 방식이 아니다. 물과 같이 만물을 길러주고 키워주지만 자신의 공을 남과 다투려 하지 않는 것이고 낮은 곳에 임하기에 강이 되고 바다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러면서 이어서 물의 정신을 일곱 가지로 예찬한다. 낮은 땅에 즐겨 임하고(居善地), 연못처럼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心善淵), 아낌없이 누구에게나 은혜를 베푼다(與善仁). 말은 훌륭하고 믿음이 있으며(言善信), 깨끗하게 다스려지게 하고(正善治), 일을 맡으면 잘 융화하여 처리하고(事善能), 움직임은 옳다고 여길 때를 고른다(動善時)는 것이다. 바로 水之七善(수지칠선)이다.

물처럼 순리대로 살아가는 것이 최선이지만 세상을 살아가는 보통 사람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공을 세워서 자랑하려 하고 남을 깎아내려 그 위에 군림하려는 것이 非一非再(비일비재)하다. 그래서 다툼이 끊임없다. 남들이 싫어하는 낮은 곳이 가장 오래 가는 높은 곳일 수도 있는데 깨닫지 못한다. 물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물 절약 분위기를 확산시키려는 것이 목적이지만 上善若水의 정신도 함께 생각했으면 한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명실상부名實相符 - 이름과 실상이 서로 꼭 맞음, 겉과 속이 맞아 떨어짐

명실상부名實相符 - 이름과 실상이 서로 꼭 맞음, 겉과 속이 맞아 떨어짐

명실상부(名實相符) - 이름과 실상이 서로 꼭 맞음, 겉과 속이 맞아 떨어짐

이름 명(口/3) 열매 실(宀/11) 서로 상(目/4) 부호 부(竹/5)

사람 뿐 아니라 모든 동식물, 사물에게는 이름이 있다. 다른 것과 구분하기 위해 이름은 필요하다. 꽃도 이름 없이 자연에 그대로 있었으면 아무도 몰랐지만 꽃이라는 이름을 불러주자 자신에 다가와 꽃이 되었다고 시인은 노래했다(김춘수의 ‘꽃’). 존재의 이유인 이름은 명예도 된다. 그래서 옛날 사람들은 遺臭萬年(유취만년)이라 악명으로 기록되면 후세에 영원히 먹칠한다고 이름을 더럽히지 않게 조심했다. ‘사람은 죽으면 이름을 남기고, 범은 죽으면 가죽을 남긴다’는 속담도 같은 의미다.

孔子(공자)는 특히 바른 이름을 중시했다. 목이 말라도 이름이 도둑의 샘인 우물물은 마시지 않았다는 渴不飮 盜泉水(갈불음 도천수)란 말이 잘 나타낸다. 공자에게 정치를 맡게 되면 무엇부터 하겠느냐는 질문에 이름을 바로잡는(正名/ 정명) 일을 우선하겠다고 했다. 齊(제)나라 景公(경공)이 이상적인 정치에 대해 물었을 때도 서슴없이 답했다. ‘論語(논어)’ 顔淵(안연)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이다.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답고 아버지는 아버지답고 자식은 자식답게 되는 것입니다(君君 臣臣 父父 子子/ 군군 신신 부부 자자).’ 모든 이름은 그에 합당한 실이 갖추어져 있을 때에만 비로소 그 이름이 진정한 의미를 지닐 수 있다는 것을 가르친다.

宋(송)나라의 朱熹(주희)가 선대 학자들의 해석과 자신의 주석을 모아 엮은 ‘論語集註(논어집주)’에는 程子(정자)의 말이라면서 이에 대해 더 명확하게 설명한다. ‘이름이나 실제는 서로 어울려야 한다. 한 가지 일에 있어 이것을 소홀히 하면 나머지도 모두 구차하게 된다(名實相須 一事苟 則其餘皆苟矣/ 명실상수 일사구 즉기여개구의).’

그런데 실생활에선 이름이 실제와 맞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름만 그럴듯하고 속은 맹탕이다. 처음엔 맞았더라도 지나면서 有名無實(유명무실)이 된 것도 있다. 가래떡이나 칼국수에 가래와 칼이 들어갈 리 없다. 팽이버섯은 팽이와 관련 없고 철가방은 알루미늄으로 만들어졌다. 大寒(대한)이 小寒(소한)에 와 얼어 죽는다고 했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