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14일 목요일

다언삭궁多言數窮 - 말이 많으면 자주 궁지에 몰린다.

다언삭궁多言數窮 - 말이 많으면 자주 궁지에 몰린다.

다언삭궁(多言數窮) - 말이 많으면 자주 궁지에 몰린다.

많을 다(夕/3) 말씀 언(言/0) 셈 수, 자주 삭(攵/11) 다할 궁(穴/10)

자신의 생각이나 느낌을 전달하는데 꼭 필요한 것이 말이다. 전하기만 하면 좋은데 이것이 넘치거나 잘못 알려져 관계를 갈라놓기도 하고 원수를 만들기도 한다. 모든 화의 근원은 말을 하는 입에서 나온다는 馮道(풍도)은 口禍之門(구화지문)은 말조심을 하라고 할 때 맨 처음 등장한 정도로 유명하다.

말은 조심할 뿐만 아니라 적게 해야 한다는 경계의 말도 많다. 하지 않아도 될 말을 이것저것 늘어놓다 보면 무엇을 전하려 했는지 잊을 경우가 있다. ‘군말이 많으면 쓸 말이 적다’는 우리 속담이 콕 집었다.

말이 많으면(多言) 자주 어려움에 처하게 된다(數窮)는 이 말도 자기가 한 여러 말이 결국 자기를 옭아매는 올가미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잘 아는 바와 같이 셈 數(수)는 數尿(삭뇨)‘라 할 때의 자주 삭‘, 빽빽한 그물 數罟(촉고)라 할 때는 ’촘촘할 촉‘도 된다.

상대방을 설득할 때 말을 적게 하거나 침묵으로도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으니 말이 많다고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이 성어는 ’道德經(도덕경)‘에서 老子(노자)가 한 말이다. 道家(도가)의 창시자 노자는 希言自然(희언자연)이라 하여 말을 적게 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강조하며 여러 장에 걸쳐 말이 많은 것을 멀리 하라고 했다.

제5장 虛用章(허용장)에 실려 있는 부분의 내용을 보자. 천지만물의 변화는 누구의 개입이나 간섭도 없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고 하면서 이어진다. ‘지도자도 자신의 의도를 확실히 드러내서는 안 된다, 그저 백성들을 풀강아지 정도로 생각하며 간섭하지 말라(聖人不仁 以百姓爲芻狗/ 성인불인 이백성위추구).’ 芻狗(추구)는 건초로 만든 개의 모형인데 제사에 쓰고 나면 밟히는 천한 존재다.

그러면서 ‘말이 너무 많으면 자주 궁지에 몰린다, 그저 말없이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것만 못하다(多言數窮 不如守中/ 다언삭궁 불여수중)’고 결론짓는다. 성인을 지도자로 보고 백성들에게 간섭 없이 내버려 두는 것이 잘 다스리는 것이란 뜻이다.

일반인들도 말이 많은 것을 조심해야 한다. 말을 주고받으면서 일을 해야 하는 정치인들은 말이 많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말로 남을 설득하거나 속뜻을 명확히 전달하기는 어려운 만큼 특히 필요한 말만 해야 한다. 그런데도 막말과 욕설이 섞여야 화제가 된다고 생각하는지 말로써 말이 많은 것은 갈수록 더하다. 시끄러운 말이 오가지 않고 할 말만 해서 국정을 이끌 수는 없을까.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돈견豚犬 - 미련하고 못난 사람의 비유, 자기의 아들을 낮추어 부르는 말

돈견豚犬 - 미련하고 못난 사람의 비유, 자기의 아들을 낮추어 부르는 말

돈견(豚犬) - 미련하고 못난 사람의 비유, 자기의 아들을 낮추어 부르는 말

돼지 돈(豕/4) 개 견(犬/0)

돼지(豚)와 개(犬)를 함께 이르는 이 말을 뒤집어 犬豚(견돈)이나 더 어렵게 狗彘(구체, 彘는 돼지 체)라고도 한다. 포유류 중에서 가장 오래된 가축으로 개는 사냥이나 番犬(번견)에서 伴侶犬(반려)위 위치까지 올랐고, 돼지는 제사의 희생에서 인간에 항상 고기를 제공했다. 이러한데도 개돼지라 하면 두 가축을 아울러 말하기보다 행동이 개차반인 사람이나 미련하고 못난 사람을 비유할 때 사용된다.

그래도 개돼지는 원망할 줄 모르고 사람은 감사할 줄 모른다. 조금은 양심이 남은 사람이 있었던지 남에게 자기의 아들을 낮추어 이를 때 겸손의 뜻으로 표현하긴 한다. 豚兒(돈아)가 그러한데 犬子(견자)는 여전히 개새끼다.

어리석고 못난 아들을 개돼지로 경멸하여 부른 것은 중국 北宋(북송)의 司馬光(사마광)이 쓴 11세기에 쓴 역사서 ‘資治通鑑(자치통감)’에서 曹操(조조)가 언급했다며 여러 번 등장한다.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14세기 元明(원명) 교체기의 사람 羅貫中(나관중)의 ‘三國志演義(삼국지연의)’일 듯하다.

赤壁大戰(적벽대전)에서의 패배를 설욕하기 위해 조조는 군사를 일으켜 孫權(손권)의 吳(오)나라 江南(강남)으로 향했다. 정세를 살피고 온 병사들과 높은 곳에 오른 조조는 오나라의 선단들이 질서정연한 것을 보고 탄식하며 말했다.

‘자식을 낳으려면 손중모 같은 아들을 낳아야지, 유경승의 아들은 개돼지에 불과하다(生子當如孫仲謀 若劉景升兒子豚犬耳/ 생자당여손중모 약유경승아자돈견이).’ 仲謀(중모)는 손권의 자인데 孫堅(손견)의 둘째 아들로 황제에 올랐고 劉備(유비)와 함께 삼국의 위치를 공고히 했다. 荊州(형주)지역에서 세력을 떨치던 劉表(유표)의 자가 景升(경승)인데 그가 죽은 후 아들 劉琮(유종)은 싸우기도 전에 조조에 항복했다. 조조는 자기에 맞선 자는 평가했고 항복한 자는 업신여긴 것이다.

우리 역사에도 곧잘 등장한다. 신라의 충신 朴堤上(박제상)은 일본에 볼모로 간 왕자를 탈출시키고 일왕의 신하가 되도록 회유를 받았다. 박제상이 일갈했다. ‘차라리 신라의 개돼지가 될지언정 왜국의 신하가 되지는 않겠다(寧爲雞林之犬㹠 不爲倭國之臣子/ 영위계림지견돈 불위왜국지신자).’ 㹠은 돼지새끼 돈. 張志淵(장지연)은 乙巳五賊(을사오적)에게 ‘저 개돼지만도 못한 소위 우리 정부의 대신’이라며 꾸짖었다.

이처럼 큰 힘을 갖고 큰 죄를 지은 사람이 아닌데도 대한민국 국민들은 곧잘 개돼지가 된다. 몇 년 전 고위 공무원이 큰 비리를 보고 분노하는 대중들을 향해 어차피 곧 잊는 개돼지와 같다고 하여 분노로 들끓었다. 이념이 다른 사람들을 향해서도 걸핏하면 사용하더니 국민들은 이제 잊어버리는 일이 없다. 실제 높은 사람들이 더 닮았다고 돌려주고 있는 셈이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논공행상論功行賞 - 공의 유무를 논의하여 알맞은 상을 주다.

논공행상論功行賞 - 공의 유무를 논의하여 알맞은 상을 주다.

논공행상(論功行賞) - 공의 유무를 논의하여 알맞은 상을 주다.

논할 론(言/8) 공 공(力/3) 다닐 행(行/0) 상줄 상(貝/8)

여러 사람이 힘을 모아 큰 성취를 이뤘다. 지도자가 잘 이끌어 일을 잘 풀리게 했더라도 혼자 힘으로는 될 수가 없다. 각기 다른 재주를 가진 여러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다. 성공하기까지는 서로 힘을 합쳐 잘 나가는데 문제는 끝난 뒤의 마무리다.

모두들 자기의 공이 제일 크다고 생각하기 마련이라 응분의 보상이 없으면 분란이 생긴다. 그래서 중요한 것이 공적의 크고 작음을 논의(論功)하여 그에 맞는 상을 주는 일(行賞)이다. 이것이 공정하지 않으면 큰일을 이루고도 얼마 안 있어 조직이 흔들린다.

渭水(위수)에서 낚시를 하다 文王(문왕)에게 발탁된 姜太公(강태공)은 武王(무왕)을 도와 周(주)나라를 세우는데 큰 공을 세웠다. 그 공을 인정하여 무왕은 齊(제)나라의 제후로 봉했고 강태공은 시조가 되는 상을 받았다. 가장 오래고 공정한 행상이라 볼 수 있다.

중국 法家(법가)를 확립했다는 평을 받는 韓非(한비)는 ‘韓非子(한비자)’ 八說(팔설) 편에서 강조한다. 군주가 사람을 쓸 때는 ‘능력과 공적에 따라서 상을 주고, 능력을 가늠하여 일을 맡겨야 한다(計功而行賞 程能而授事/ 계공이행상정능이수사)’고 했다. 여기서는 군주가 따져 벼슬을 내리는 것이 논의와 멀지만 공을 앞세우는 것은 같다.

劉邦(유방)이 項羽(항우)를 물리치고 왕에 올랐을 때 전장에서 고락을 같이 한 韓信(한신)이나 張良(장량)보다 蕭何(소하)를 높이 쳤다. ‘군신들이 공을 다투며 해를 넘길 때 고조가 결단한 것이다(論功行封 群臣爭功 歲餘功不決 高祖以蕭何功最盛/ 논공행봉 군신쟁공 세여공불결 고조이소하공최성)’. 군량 보급을 빈틈없이 하고 후방을 안정시켰을 뿐 아니라 제도를 완비했기 때문이다. ‘史記(사기)’의 蕭相國世家(소상국세가)에 실려 있다

왕자가 부왕을 도와 건국에 혁혁한 공을 세웠음에도 장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밀려나자 玄武門(현무문)의 변을 일으켜 집권한 唐(당)나라 太宗(태종)이나 조선 초기 王子(왕자)의 난으로 왕위에 오른 太宗(태종)도 행상에 대한 불만이었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동족방뇨凍足放尿 - 언 발에 오줌 누기, 일시적인 효과뿐 결과는 더 나쁘게 됨

동족방뇨凍足放尿 - 언 발에 오줌 누기, 일시적인 효과뿐 결과는 더 나쁘게 됨

동족방뇨(凍足放尿) - 언 발에 오줌 누기, 일시적인 효과뿐 결과는 더 나쁘게 됨

얼 동(冫/8) 발 족(足/0) 놓을 방(攵/4) 오줌 뇨(尸/4)

어떤 일을 처리하다 난관에 부딪치거나 잘못이 발견됐을 때 근본적인 처방을 미루고 땜질을 한다. 당장에 편한 것을 찾는 것은 인지상정인데 이것이 바로 彌縫策(미봉책)이다. 일시적인 효력이 나타나 임기응변의 재주로 우쭐하더라도 다음에 같은 잘못으로 더 악화돼 돌이킬 수 없게 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것을 잘 나타낸 속담이 ‘언 발에 오줌 누기’다. 추위로 꽁꽁 언 발(凍足)에 오줌으로 녹여(放尿) 잠시 따스한 효과는 보았더라도 그 물기까지 더 얼어붙는다. 우리 속담을 한역한 ‘旬五志(순오지)’에 나오는데 趙在三(조재삼)의 ‘松南雜識(송남잡지)’에는 凍足放溺(동족방뇨, 溺은 빠질 닉, 오줌 뇨)로 되어 있다.

유학 오경의 禮記(예기)에 나오는 姑息之計(고식지계)는 아녀자나 어린아이가 꾸미는 것과 같이 구차하고 편안한 것만을 찾는 소인배의 행동이라 했다. 어떤 상황을 돌파하는데 지혜와 재치가 필요하지만 안목이 좁아 판단을 그르치면 해결하기가 더 어렵게 된다.

범을 보고 창구멍으로 들어오지 않을까 질겁하여 ‘호랑이 보고 창구멍 막기’라는 속담은 급한 나머지 서두르는 어리석은 행동을 나타냈다. ‘우물 옆에서 목말라 죽는다’는 말과 같이 어떤 일에 당하여 도무지 융통성이 없고 처신할 줄 모르는 답답함을 가리킨다.

어려운 일을 당했으면 지레 포기하는 束手無策(속수무책)보다 난관을 뚫을 묘책을 써야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임시변통이 필요하다. 여기에 연상되는 것이 逢場作戱(봉장작희)라는 불가의 禪語(선어)다. 옛날 광대나 예인들은 길을 가다가 적당한 장소를 만나면 어디서든 공연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구경꾼들이 적거나, 장소가 썩 내키지 않더라도 구애를 받지 않고 상황에 닥치면 놀이를 벌이는 것이다. 대본을 가지고 연희하기보다 즉흥적인 대처를 높이 평가하는 말이기는 해도 그 방법이 다음에도 통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은 마찬가지다.

어떤 대책을 썼을 때 생각지도 못했던 효과를 봤다고 계속 이어지지는 않는다. ‘노루 때린 막대기 세 번이나 국 끓여 먹는다’는 말이 있다. 조금이라도 이용 가치가 있을까 하여 보잘것없는 것을 두고두고 되풀이하여 이용함을 비유한다. 지난날의 구태의연한 방법들을 상황이 변했는데도 무조건 적용한다면 어리석기 짝이 없다.\xa0/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면이무치免而無恥 - 법을 어기고도 형을 피하면 부끄러움이 없다.

면이무치免而無恥 - 법을 어기고도 형을 피하면 부끄러움이 없다.

면이무치(免而無恥) - 법을 어기고도 형을 피하면 부끄러움이 없다.

면할 면(儿/5) 말이을 이(而/0) 없을 무(灬/8) 부끄러울 치(心/6)

다른 사람들을 볼 낯이 없거나 스스로 떳떳하지 못하면 부끄럽다. 태초의 아담과 이브 때는 부끄러움을 몰랐다지만 모여 살게 된 이후부터는 인간의 본성으로 모든 도덕의 원천이 됐다. 마크 트웨인이 비튼다. ‘인간만이 얼굴이 붉어지는 동물이고, 그렇게 할 필요가 있는 동물이다.’ 또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다짐한 시인(윤동주)과 같이 대체로 양심에 어긋나지 않게 행동하려는 사람이 많다.

그런데 간혹 그렇지 않은 인간이 있어 도무지 부끄러움을 모른다. 낯가죽이 두꺼운 鐵面皮(철면피)나 厚顔無恥(후안무치), 厚黑(후흑)이라 손가락질 받는 사람들이다.

잘못을 저질렀으면 남에게 부끄러운 것은 당연하다. 이 부끄러움을 처음부터 못 느끼는 철면피들 말고도 낯을 들고 떳떳한 경우가 있다. 진심으로 자기 잘못을 부끄러이 여기는 것이 아니라 드러나지 않았거나 최소한의 형벌을 면하게 되면(免而) 부끄러움이 없다(無恥)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孔子(공자)가 이런 사람들이 나오게 되는 연유를 ‘論語(논어)’ 爲政(위정)편에서 설명하는 데서 이 성어가 나왔다.

‘백성들을 정치로 인도하고 형벌로 다스리면, 백성들은 그것을 피하고자 할 뿐이요 부끄러움이 없게 된다(道之以政 齊之以刑 民免而無恥/ 도지이정 제지이형 민면이무치).’ 道는 ‘이끌다’, 齊는 ‘질서정연하게 하다’란 뜻으로 푼다. 법만을 엄격하게 적용하면 사회질서는 유지되지만 백성들은 형벌에 대한 두려움이 앞서 자신의 잘못을 숨기려든다고 했다.

이러한 것을 고치는 처방도 내놓는다. 이어지는 말이다. ‘백성들을 덕으로써 인도하고 예로써 질서를 유지하게 한다면, 잘못을 수치로 알고 바르게 될 것이다(道之以德 齊之以禮 有恥且格/ 도지이덕 제지이례 유치차격).’ 格은 ‘바르다’로 해석했다. 가혹한 형벌로 다스리는 법치에 대해 덕치와 禮敎(예교)를 내세우는 유가의 기본이념을 잘 드러냈다.

법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들이 잘못을 저지르고도, 아니 잘못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큰소리치는 예를 자주 본다. 최소한의 부끄러움도 모르는 사람들이 지도층에 있으니 국민이 부끄럽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여시아문如是我聞 -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불교 경전의 첫머리에 쓰는 용어

여시아문如是我聞 -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불교 경전의 첫머리에 쓰는 용어

여시아문(如是我聞) -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불교 경전의 첫머리에 쓰는 용어

같을 여(女/3) 옳을 시(日/5) 나 아(戈/3) 들을 문(耳/8)

이와 같이(如是) 나는 들었다(我聞), 또는 내가 들은 바는 이와 같다는 뜻의 이 말은 불자가 아니라도 불경을 암송할 때 처음 나오는 것이라고 알 수 있을 정도로 잘 알려져 있다. 부처님의 말씀을 전하는데 조금도 거짓이 없이 진실 되게 옮긴다는 의미를 갖는다. 我聞如是(아문여시), 聞如是(문여시)라고도 한다.

부처님은 釋迦牟尼(석가모니)의 존칭으로 고대인도 샤카Sākya/ 釋迦 민족의 성인을 뜻하는 모니muni/ 牟尼란 뜻이다. 본명은 성이 고타마Gautama/ 瞿曇(구담), 이름이 싯다르타Siddhārtha/ 悉達多(실달다)인 것도 상식이 되어 있다. 4대 성인으로 추앙받는 부처님 말씀은 어떻게 불경으로 남아 전해졌을까.

훌륭한 말씀이라도 전하는 사람이 믿음직스럽지 못하면 신뢰받지 못한다. 부처님의 말씀은 涅槃(열반)하기 전까지 25년간 시중을 들었던 阿難陀(아난타)의 기억으로 전해졌다. 석가모니의 사촌이며 10대 제자 중의 한 사람인 아난타는 곁에서 가장 많은 말을 들었으므로 多聞第一(다문제일)이라고도 불린다. 그렇더라도 자기 개인의 의견이 아닌 부처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한다는 뜻을 강조하여 경전 앞에 썼다.

초기 불교의 경전은 석가의 사후 제자 중의 영도자 역할을 하여 頭陀第一(두타제일)이라 불린 摩訶迦葉(마하가섭)의 영도로 결집사업이 이뤄졌다고 한다.

大般若經(대반야경)의 전반적인 주석서 ‘大智度論(대지도론)’에 아난이 모든 경전의 앞에 어떤 글자를 붙여야 하는지 여쭙자 부처님께서 답했다는 내용이 나온다고 한다. ‘모든 경전의 앞에 제가 들은 바는 이와 같습니다란 말을 두면 된다(一切經首置 如是我聞等言/ 일체경수치 여시아문등언).’

좀 더 풀이를 옮겨 보면 불법의 큰 바다는 믿음으로 들어갈 수 있고 지혜로 건널 수 있는데 ‘이와 같이(如是/ 여시)’의 의미가 바로 믿음이라 했다. 그러면서 깨끗한 믿음이 있어야 불법에 들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 믿음을 말하는 표현은 열반 500년이 지나 편찬된 초기 경전에도 그대로 전통이 이어졌다고 한다.

부처님이 어디서 누구에게 설법한 내용은 이와 같다고 전한 아난의 말은 사실대로 전하는 뉴스와 닮았다. 없는 사실을 전하고 실제보다 부풀려 말하고, 악의적으로 왜곡하는 가짜뉴스가 판치는 세상에서 느끼게 하는 점이 크다. 목소리 크게, 여러 매체를 동원하여 동시다발로 전한다고 해도 사실이 아니면 일시적인 믿음은 곧 사라진다. 전하는 사람이나 그 내용이나 믿음이 앞서야 하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중류격즙中流擊楫 - 강 가운데서 노를 두들기다, 실지를 회복하려 사기를 북돋우다.

중류격즙中流擊楫 - 강 가운데서 노를 두들기다, 실지를 회복하려 사기를 북돋우다.

중류격즙(中流擊楫) - 강 가운데서 노를 두들기다, 실지를 회복하려 사기를 북돋우다.

가운데 중(丨/3) 흐를 류(氵/7) 칠 격(手/13) 노 즙(木/9)

나라를 굳건히 지키기 위해서는 장병들의 士氣(사기)가 높아야 함은 말할 필요도 없다. 하늘을 찌를 듯한 士氣衝天(사기충천)의 군대가 있으면 아무리 강국이라도 넘보지 못한다. 훌륭한 장수는 부하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상처까지 보듬는다는 吮疽之仁(연저지인, 吮은 빨 연, 疽는 종기 저)의 인자함과, 함께 창을 베고 갑옷을 입은 채 잠을 자는 枕戈寢甲(침과침갑)의 자세를 가졌다면 무적이겠다.

여기에 이런 기개를 더하면 말할 것도 없다. ‘예부터 영원한 삶은 없는 법(人生自古誰無死/ 인생자고수무사), 나라 위한 단심 역사에 비추고 싶구나(留取丹心照汗靑/ 유취단심조한청).’ 중국 宋(송)나라 충신 文天祥(문천상)의 시 구절이다.

적에게 빼앗긴 땅을 되찾기 위해 병사를 배로 인솔하고 강을 건넌다. 장수가 강 가운데서(中流) 노를 뱃전에 두들기면서(擊楫) 사기를 북돋운다. 東晉(동진)의 장수 祖逖(조적, 逖은 멀 적)의 이야기에서 나온 이 성어는 치욕을 갚고 실지를 회복하겠다는 기개를 나타낸다.

渡江楫(도강즙)이라 해도 뜻이 같은데 가슴에 품은 웅지를 비유하는 말이기도 하다. 이 말이 나오게 된 4세기 전후는 司馬炎(사마염)이 세운 晉(진)나라가 16년간의 내란인 八王(팔왕)의 난 끝에 이민족에 쫓겨 揚子江(양자강) 이남에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피 끓는 젊은이 조적 등은 외적의 침입에 시달리는 백성들의 참상을 보고 실지를 해야겠다는 결심을 굳히고 당시의 元帝(원제, 재위 317~322)에게 북진을 주장했다. 큰 의욕이 없었던 왕의 명을 받자 조적은 군사를 모집하고 어려운 가운데서도 무기를 조달했다.

장강을 건너 북쪽으로 향하던 중 조적은 ‘뱃전에 노를 치면서 맹세했다(中流擊楫而誓曰/ 중류격즙이서왈)’. 중원을 편정하고 적들을 몰아내지 않으면 돌아오지 않겠다고 하자 부하들도 용기백배했다. 이후 조적이 이끄는 병사들은 黃河(황하) 이남의 땅을 수복하는데 성공했다. 唐(당)의 房玄齡(방현령) 등이 지은 ‘晉書(진서)’에 실린 내용이다.

우리나라도 적의 침략에 굳건히 대항하고 쪼그라든 고토를 회복하기 위해 애쓴 장군들이 많았다. 隋(수)와 唐(당)의 대군을 물리친 고구려의 乙支文德(을지문덕)이나 楊萬春(양만춘)에서 왜군의 야욕을 꺾은 조선의 李舜臣(이순신) 장군 등이다. 徐熙(서희)와 崔潤德(최윤덕) 장군 등은 잃어버린 땅을 되찾았다.

이런 빛나는 장군들의 전통은 오늘도 잘 지켜지고 있을까. 단호하게 대하지 못하고 중국과 일본에게 바다에서 밀리거나 同族相殘(동족상잔)의 전쟁을 일으킨 북한에게 양보만 하다간 아무리 노를 두들겨도 호응을 얻지 못한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척포두속尺布斗粟 - 한 자의 베와 한 말의 조, 나누지 않는 형제의 다툼

척포두속尺布斗粟 - 한 자의 베와 한 말의 조, 나누지 않는 형제의 다툼

척포두속(尺布斗粟) - 한 자의 베와 한 말의 조, 나누지 않는 형제의 다툼

자 척(尸/1) 베 포(巾/2) 말 두(斗/0) 조 속(米/6)

한 부모 밑에서 태어나 자란 형제는 우애도 배우고 경쟁도 하는 사이다. 길을 가다 금덩이를 주운 형제가 욕심에 우애를 버릴까봐 강에 던졌다는 兄弟投金(형제투금) 이야기도 있고, 인류 최초의 살인자도 동생을 죽인 형 카인이었다. 외부서 싸움을 걸면 형제가 힘을 합쳐 막아내지만, 재산이 비슷할 때만 우애가 가능하다거나 형제라도 돈에서는 남이라는 서양 격언은 알력은 어쩔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성어도 많아 이 난에서도 煮豆燃萁(자두연기, 萁는 콩대 기)나 同室操戈(동실조과) 등을 소개했다.

이보다는 약간 생소하지만 한 자의 베(尺布)와 한 말의 조(斗粟)란 뜻의 이 말도 형제간의 불화를 나타낸다. 거꾸로 斗粟尺布(두속척포)라 해도 같다. 얼마 안 되는 옷감과 곡식이라도 모아서 의식에 보태는 것이 형제인데 그러지 못한 漢(한)나라의 5대 文帝(문제)를 조롱하는 고사에서 나왔다.

‘史記(사기)’와 ‘漢書(한서)’의 淮南衡山(회남형산) 열전에 비슷한 내용으로 실려 전한다. 간단하게 내용을 보자. 漢高祖(한고조) 劉邦(유방)은 나라를 세운 후 각 지역을 순시하다 趙王(조왕)이 바친 미녀의 시중을 받고 아들을 얻는다. 하지만 정무에 쫓겨 까마득하게 잊었다가 여인은 아들을 유방에 보내고 자살한다.

劉長(유장)이라 이름을 지어준 아이는 총명하고 자랄수록 유방을 닮아가 사랑을 독차지했고 일찍 淮南王(회남왕)으로 봉했다. 고조가 죽고 呂后(여후)가 전단하던 왕조를 평정한 뒤 왕위에 옹립된 劉恒(유항)이 문제다. 그즈음 유장은 회남에서 이복 형이 황제가 되자 기고만장해서 마음대로 행동했다. 황제를 알현하러 와서도 군신의 예를 무시하기 일쑤였고 사냥을 나갈 때도 수레에 억지로 같이 탔다.

문제는 여러 차례 주의를 주었지만 회남왕은 고쳐지지 않았고 급기야 반란을 꾀하기까지 했다. 문제는 이를 알아차리고 유장을 체포해 蜀(촉)으로 귀양 보냈다. 그곳에서 유장이 굶어죽자 문제는 박정하게 한 것을 후회했다. 민간에서는 왕이 천하를 차지하고도 동생에게 무정했다는 노래가 퍼지기 시작했다.

‘한 자의 조각 천이라도 이어서 꿰매면 입을 수 있고, 한 말의 조라도 나누어 먹으면 굶어 죽지 않는데, 형제가 서로 용납하지 않는구나(一尺布 尚可縫 一斗粟 尚可舂 兄弟二人不能相容/ 일척포 상가봉 일두속 상가용 형제이인불능상용).’ 舂은 찧을 용.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삼년지애三年之艾 - 삼년간 숙성한 쑥, 오랫동안 계획을 세워 준비해야 일을 이룰 수 있다는

삼년지애三年之艾 - 삼년간 숙성한 쑥, 오랫동안 계획을 세워 준비해야 일을 이룰 수 있다는 말

삼년지애(三年之艾) - 삼년간 숙성한 쑥, 오랫동안 계획을 세워 준비해야 일을 이룰 수 있다는 말

석 삼(一/2) 해 년(干/3) 갈 지(丿/3) 쑥 애(艹/2)

세 해 동안(三年) 자란 쑥(之艾)을 산야에서 찾을 수 있을까. 쑥은 일년생 풀이라 오래 된 쑥을 구하려면 캐 와서 기간 동안 말려야 한다. 당장 필요하다고 아무리 돌아다녀도 숙성된 쑥은 구할 수 없다. 어떤 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준비 단계부터 오랫동안 계획을 세워야 한다는 의미로 ‘孟子(맹자)’에 실린 이야기다.

맹자가 하려는 이 말은 어느 효자 이야기에서 왔다. 효성이 지극한 아들이 병든 홀어머니를 치유하려면 3년 묵은 쑥을 다려 드리면 된다는 말을 듣고 7년 동안 헤맸으나 허탕이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말았는데 만약 처음 쑥을 캔 뒤 3년간 말렸으면 될 일을 헛고생만 했다.

離婁上(이루상)에는 이렇게 나온다. ‘오늘날 천하를 얻고자 하는 자가 있다면 마치 칠년 묵은 병을 고치기 위해 삼년 묵은 쑥을 구하는 경우와 같다(今之欲王者 猶七年之病 求三年之艾也/ 금지욕왕자 유칠년지병 구삼년지애야).’ 夏(하)와 商(상)의 마지막 폭군 桀(걸)과 紂(주)가 천하를 잃은 것은 백성을 잃었기 때문이고 백성을 잃은 것은 마음을 얻는데 실패했기 때문이라며 설명한다.

백성을 얻으려면 그 마음을 얻고 그러기 위해서는 원하는 것을 해 주고 싫어하는 것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백성이 어진 군주에게 돌아감은 물이 아래로 흘러가는 것과 같은데 桀紂(걸주)는 오히려 백성을 湯王(탕왕)과 武王(무왕)에 몰아준 꼴이란 것이다. 큰일을 도모하려면 긴 안목을 가지고 바른 길을 가야 한다는 이야기다.

한국고전에도 이 말이 종종 인용됐다. 고려의 문호 李穡(이색, 1328~1396)은 ‘牧隱詩藁(목은시고)’에서 과거 공부는 놓은 지 오래이면서 합격하기 어렵다고 걱정하는 젊은이에게 충고한다. ‘병중에 약쑥 구하기 너무 급하고, 목마른 뒤에 샘 파기 어렵고말고(病中求艾急 渴後掘泉難/ 병중구애급 갈후굴천난).’ 또 근심과 병이 잇따른 지 일곱 해라면서 읊는다. ‘종신토록 약쑥 못 구할 줄 알기에, 맹자를 읽으면서 호연지기 강구한다오(端知不蓄終身艾 爲讀鄒書講浩然/ 단지불축종신애 위독추서강호연).’ 鄒書(추서)는 맹자의 별칭.

한말의 우국지사 黃玹(황현, 1855~1910)도 ‘梅泉集(매천집)’에서 읊는다. ‘내 몸 위한 계책은 삼년 묵은 약쑥도 없는데, 나라 다스림에 어찌 오무의 뽕을 논할까(謀身尙乏三年艾 經國寧論五畝桑/ 모신상핍삼년애 경국영론오무상).’ 畝는 이랑 무, 오무상은 오무의 집 둘레에 뽕나무를 심어 미래를 대비하는 계책이다.

선거 때가 되면 나라를 위해 자신이 이러이러한 일을 하겠다고 거창한 공약을 발표한다. 떨어진 후보자야 말할 필요도 없지만 당선된 지도자도 언제 그러한 말을 했는지조차 모르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기 일쑤다. 이런 사람에게 큰일을 이루려는 의지가 있는지, 심지어 계획이나 있었는지 의심을 사는 경우도 많다.

여와 야의 당을 떠나 머리를 맞대고 차근차근 실천해야 나라의 발전을 위한 삼년 묵은 쑥이 될 수 있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미선나무】

【미선나무】

【미선나무】

미선나무의 이름은 아름다운 부채라는 뜻의 미선(美扇) 또는 부채의 일종인 미선(尾扇)에서 유래한다.

열매의 모양이 둥근 부채를 닮아 미선나무라고 부르는데, 우리나라에서만 자라는 한국 특산식물이다.따라서 자생지를 모두 천연기념물로 지정 하였음

▷ 학명 : Abeliophyllum distichum

▷ 분류 : 물푸레나무과

▷ 분포지역 : 한국 충북 괴산, 전북 부안

▷ 서식장소 : 볕이 잘 드는 산기슭

▷ 특징 : 미선나무의 종류는 흰색 꽃이 피는 것이 기본종이다. 분홍색 꽃이 피는 것을 분홍미선(for. lilacinum), 상아색 꽃이 피는 것을 상아미선(for. eburneum), 꽃받침이 연한 녹색인 것을 푸른미선(for. viridicalycinum), 열매 끝이 패지 않고 둥글게 피는 것을 둥근미선(var. rotundicarpum)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