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3일 일요일

백구과극白駒過隙 - 흰 망아지가 빨리 달리는 것을 문틈으로 본다.

백구과극白駒過隙 - 흰 망아지가 빨리 달리는 것을 문틈으로 본다.

백구과극(白駒過隙) - 흰 망아지가 빨리 달리는 것을 문틈으로 본다.

흰 백(白/0) 망아지 구(馬/5) 지날 과(辶/9) 틈 극(阝/10)

흔히 세월이 살같이 빨리 지나간다고 한다. 평소 살아갈 때는 느끼지 못하다가 뒤돌아보면 어느새 이렇게 지났는지 깜짝 놀랄 때가 있다. 한창 바쁘게 생활하는 젊은 층은 느끼지 못하지만 지긋한 나이의 어르신들은 지나간 세월 뭐 했던가 하고 탄식도 한다. 이와 같이 白駒過隙은 세월을 가리키는 흰 망아지(白駒)가 빨리 지나가는 모습을 문틈으로 보며(過隙) 사람의 일생을 잠시라고 느끼는 것이다. 인생이나 세월이 덧없이 짧아 무상함을 이르는 말이다. 여기에서 틈을 나타내는 隙은 일부에선 郤(극)으로도 썼는데 姓(성)의 일종이지만 틈이라는 뜻도 갖기 때문이다.

戰國時代(전국시대, 기원전 403년~221년) 때의 책 종횡무진한 상상과 표현으로 우주본체를 寓言寓話(우언우화)로 설명하는 ‘莊子(장자)’에 이 성어가 나온다. 표현이 재미있고 철학적인데 부분을 인용하면 이렇다. 사람이 천지 사이에서 사는 것은 흰 망아지가 달려 지나가는 것을 문틈으로 보는 것과 같이 순간일 뿐이다(若白駒之過郤).

모든 사물들은 물이 솟아나듯 문득 생겨났다가 물이 흘러가듯 아득하게 사라져 간다. 죽음이란 화살이 살통을 빠져 나가고 칼이 칼집을 빠져 나가는 것처럼 혼백이 육신에서 빠져 나가고 몸도 이에 따라 무로 돌아가는 것을 말함이니 이야말로 위대한 복귀가 아닌가!‘ 外篇(외편) 知北遊(지북유)에 전한다.

司馬遷(사마천, 기원전 145년~80년)의 ‘史記(사기)’에는 劉備(유비)의 악독한 왕비 呂太后(여태후)가 한 말로 다음과 같이 실렸다. ‘인생의 한 세상은 마치 흰 말이 달려가는 것을 문틈으로 보는 것처럼 순식간이다. 어찌 스스로 괴로워하는 것이 이와 같아서 되겠는가?’ 留侯(유후)가 된 張良(장량)을 회유하는 말이다.

가는 세월 잡지 못하고 오는 세월 막지 못한다는 말도 있다. 흘러가는 인생을 막을 수는 없으므로 순간순간을 열심히 살아가도록 하는 가르침이다.

다언삭궁多言數窮 - 말이 많으면 자주 궁지에 몰린다.

다언삭궁多言數窮 - 말이 많으면 자주 궁지에 몰린다.

다언삭궁(多言數窮) - 말이 많으면 자주 궁지에 몰린다.

많을 다(夕/3) 말씀 언(言/0) 셈 수, 자주 삭(攵/11) 다할 궁(穴/10)

자신의 생각이나 느낌을 전달하는데 꼭 필요한 것이 말이다. 전하기만 하면 좋은데 이것이 넘치거나 잘못 알려져 관계를 갈라놓기도 하고 원수를 만들기도 한다. 모든 화의 근원은 말을 하는 입에서 나온다는 馮道(풍도)은 口禍之門(구화지문)은 말조심을 하라고 할 때 맨 처음 등장한 정도로 유명하다. 말은 조심할 뿐만 아니라 적게 해야 한다는 경계의 말도 많다. 하지 않아도 될 말을 이것저것 늘어놓다 보면 무엇을 전하려 했는지 잊을 경우가 있다. ‘군말이 많으면 쓸 말이 적다’는 우리 속담이 콕 집었다.

말이 많으면(多言) 자주 어려움에 처하게 된다(數窮)는 이 말도 자기가 한 여러 말이 결국 자기를 옭아매는 올가미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잘 아는 바와 같이 셈 數(수)는 數尿(삭뇨)‘라 할 때의 자주 삭‘, 빽빽한 그물 數罟(촉고)라 할 때는 ’촘촘할 촉‘도 된다. 상대방을 설득할 때 말을 적게 하거나 침묵으로도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으니 말이 많다고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이 성어는 ’道德經(도덕경)‘에서 老子(노자)가 한 말이다. 道家(도가)의 창시자 노자는 希言自然(희언자연)이라 하여 말을 적게 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강조하며 여러 장에 걸쳐 말이 많은 것을 멀리 하라고 했다.

虛用章(허용장)에 실려 있는 부분의 내용을 보자. 천지만물의 변화는 누구의 개입이나 간섭도 없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고 하면서 이어진다. ‘지도자도 자신의 의도를 확실히 드러내서는 안 된다, 그저 백성들을 풀강아지 정도로 생각하며 간섭하지 말라.’ 芻狗(추구)는 건초로 만든 개의 모형인데 제사에 쓰고 나면 밟히는 천한 존재다. 그러면서 ‘말이 너무 많으면 자주 궁지에 몰린다, 그저 말없이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것만 못하다’ 고 결론짓는다. 성인을 지도자로 보고 백성들에게 간섭 없이 내버려 두는 것이 잘 다스리는 것이란 뜻이다.

논공행상論功行賞 - 공의 유무를 논의하여 알맞은 상을 주다.

논공행상論功行賞 - 공의 유무를 논의하여 알맞은 상을 주다.

논공행상(論功行賞) - 공의 유무를 논의하여 알맞은 상을 주다.

논할 론(言/8) 공 공(力/3) 다닐 행(行/0) 상줄 상(貝/8)

여러 사람이 힘을 모아 큰 성취를 이뤘다. 지도자가 잘 이끌어 일을 잘 풀리게 했더라도 혼자 힘으로는 될 수가 없다. 각기 다른 재주를 가진 여러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다. 성공하기까지는 서로 힘을 합쳐 잘 나가는데 문제는 끝난 뒤의 마무리다. 모두들 자기의 공이 제일 크다고 생각하기 마련이라 응분의 보상이 없으면 분란이 생긴다. 그래서 중요한 것이 공적의 크고 작음을 논의(論功)하여 그에 맞는 상을 주는 일(行賞)이다. 이것이 공정하지 않으면 큰일을 이루고도 얼마 안 있어 조직이 흔들린다.

渭水(위수)에서 낚시를 하다 文王(문왕)에게 발탁된 姜太公(강태공)은 武王(무왕)을 도와 周(주)나라를 세우는데 큰 공을 세웠다. 그 공을 인정하여 무왕은 齊(제)나라의 제후로 봉했고 강태공은 시조가 되는 상을 받았다. 가장 오래고 공정한 행상이라 볼 수 있다. 중국 法家(법가)를 확립했다는 평을 받는 韓非(한비)는 ‘韓非子(한비자)’ 八說(팔설) 편에서 강조한다. 군주가 사람을 쓸 때는 ‘능력과 공적에 따라서 상을 주고, 능력을 가늠하여 일을 맡겨야 한다(計功而行賞 程能而授事/ 계공이행상정능이수사)’고 했다. 여기서는 군주가 따져 벼슬을 내리는 것이 논의와 멀지만 공을 앞세우는 것은 같다.

劉邦(유방)이 項羽(항우)를 물리치고 왕에 올랐을 때 전장에서 고락을 같이 한 韓信(한신)이나 張良(장량)보다 蕭何(소하)를 높이 쳤다. ‘군신들이 공을 다투며 해를 넘길 때 고조가 결단한 것이다’. 군량 보급을 빈틈없이 하고 후방을 안정시켰을 뿐 아니라 제도를 완비했기 때문이다. ‘史記(사기)’의 蕭相國世家(소상국세가)에 실려 있다.

왕자가 부왕을 도와 건국에 혁혁한 공을 세웠음에도 장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밀려나자 玄武門(현무문)의 변을 일으켜 집권한 唐(당)나라 太宗(태종)이나 조선 초기 王子(왕자)의 난으로 왕위에 오른 太宗(태종)도 행상에 대한 불만이었다.

면이무치免而無恥 - 법을 어기고도 형을 피하면 부끄러움이 없다.

면이무치免而無恥 - 법을 어기고도 형을 피하면 부끄러움이 없다.

면이무치(免而無恥) - 법을 어기고도 형을 피하면 부끄러움이 없다.

면할 면(儿/5) 말이을 이(而/0) 없을 무(灬/8) 부끄러울 치(心/6)

다른 사람들을 볼 낯이 없거나 스스로 떳떳하지 못하면 부끄럽다. 태초의 아담과 이브 때는 부끄러움을 몰랐다지만 모여 살게 된 이후부터는 인간의 본성으로 모든 도덕의 원천이 됐다. 마크 트웨인이 비튼다. ‘인간만이 얼굴이 붉어지는 동물이고, 그렇게 할 필요가 있는 동물이다.’ 또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다짐한 시인(윤동주)과 같이 대체로 양심에 어긋나지 않게 행동하려는 사람이 많다. 그런데 간혹 그렇지 않은 인간이 있어 도무지 부끄러움을 모른다. 낯가죽이 두꺼운 鐵面皮(철면피)나 厚顔無恥(후안무치), 厚黑(후흑)이라 손가락질 받는 사람들이다.

잘못을 저질렀으면 남에게 부끄러운 것은 당연하다. 이 부끄러움을 처음부터 못 느끼는 철면피들 말고도 낯을 들고 떳떳한 경우가 있다. 진심으로 자기 잘못을 부끄러이 여기는 것이 아니라 드러나지 않았거나 최소한의 형벌을 면하게 되면(免而) 부끄러움이 없다(無恥)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孔子(공자)가 이런 사람들이 나오게 되는 연유를 ‘論語(논어)’ 爲政(위정)편에서 설명하는 데서 이 성어가 나왔다.

‘백성들을 정치로 인도하고 형벌로 다스리면, 백성들은 그것을 피하고자 할 뿐이요 부끄러움이 없게 된다.’ 道는 ‘이끌다’, 齊는 ‘질서정연하게 하다’란 뜻으로 푼다. 법만을 엄격하게 적용하면 사회질서는 유지되지만 백성들은 형벌에 대한 두려움이 앞서 자신의 잘못을 숨기려든다고 했다.

이러한 것을 고치는 처방도 내놓는다. 이어지는 말이다. ‘백성들을 덕으로써 인도하고 예로써 질서를 유지하게 한다면, 잘못을 수치로 알고 바르게 될 것이다.’ 가혹한 형벌로 다스리는 법치에 대해 덕치와 禮敎(예교)를 내세우는 유가의 기본이념을 잘 드러냈다.

법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들이 잘못을 저지르고도, 아니 잘못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큰소리치는 예를 자주 본다. 최소한의 부끄러움도 모르는 사람들이 지도층에 있으니 국민이 부끄럽다.

야서지혼野鼠之婚 - 두더지의 혼인, 자신의 처지를 헤아림

야서지혼野鼠之婚 - 두더지의 혼인, 자신의 처지를 헤아림

야서지혼(野鼠之婚) - 두더지의 혼인, 자신의 처지를 헤아림

들 야(里/4) 쥐 서(鼠/0) 갈 지(丿/3) 혼인할 혼(女/8)

‘짚신도 제짝이 있다’는 속담은 보잘것없는 사람도 자기의 짝은 있다는 말이다. 두더지(野鼠)의 짝은 어떤 것이기에 이런 말이 나왔을까. 두더지가 자기 분수도 모르고 새끼의 짝을 구하기 위해 이곳저곳에 청을 넣어보다 결국은 같은 종족인 두더지가 제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 이야기에서 엉뚱한 허영심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것과 세상에는 절대적인 것은 없고 모두가 상대적이라는 것을 가르친다. 우리 속담을 한역한 부록으로 유명한 洪萬宗(홍만종)의 문학평론집 ‘旬五志(순오지)’에 소개돼 있다.

어느 때 한 두더지가 자식을 위해 좋은 혼처를 구하려고 했다. 자신은 항상 땅속에서만 생활하여 못마땅해 했는데 자식에게는 넓은 세상에서 당당하게 살게 해주고 싶었다. 하늘의 태양이 가장 훌륭하다고 여겨 하늘에 청혼하니 ‘내 비록 세상을 품고는 있지만 해와 달이 아니면 덕을 드러낼 수가 없네’ 하며 거절했다.

두더지는 이번에 해와 달을 찾아 혼처로 구했지만 ‘나는 구름이 가리면 세상을 비출 수 없다’며 손사래치고, 다시 구름을 찾아가 청혼을 하니 ‘내 비록 해와 달의 빛을 가릴 수는 있지만 바람이 한번 불면 흩어질 뿐이네’ 하고 돌아섰다. 할 수 없이 바람을 찾아가 구혼하니 ‘내가 구름을 흩어지게는 하지만 저 밭 가운데의 돌부처는 끄떡도 할 수 없으니 저보다 못하네’ 하여 돌부처를 찾아가자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닌가. ‘내가 비록 거센 바람도 무섭지 않지만 오직 두더지가 내 발밑을 뚫고 들어오면 바로 넘어지고 말지. 그래서 두더지가 나보다 낫다네.’

부지런히 새끼의 좋은 짝을 구하러 다니던 두더지는 이 말을 듣고 기고만장하여 ‘천하에 높은 것이 나만한 게 없구먼’ 하며 동족 두더지와 혼인을 시켰다.

잘 어울리는 배우자는 자신이 안다. ‘결혼은 자기와 동등한 자와 할 일이다. 자기보다 뛰어난 상대는 반려가 아니고 주인을 구하는 것’이란 서양 격언이 있다. 그러니 지체 높은 집과 하는 仰婚(앙혼)이 처음에는 보란 듯이 내세우다가도 실제 생활은 불행에 이르는 일이 많다. 결혼 시즌에 대사를 앞둔 청춘남녀들이 한 번 더 생각할 일이다.

동기상구同氣相求 - 마음 맞는 사람끼리 서로 찾다.

동기상구同氣相求 - 마음 맞는 사람끼리 서로 찾다.

동기상구(同氣相求) - 마음 맞는 사람끼리 서로 찾다.

한가지 동(口/3) 기운 기(气/6) 서로 상(目/4) 구할 구(氺/2)

사람은 혼자 사는 것이 아니다. 사회라는 공동체 속에 어울려야 살아갈 수 있다. ‘사람은 남 어울림에 산다’는 속담은 사람이란 원래 남들과 어울려 사귀는 맛에 산다는 뜻으로, 서로 어울리지 않고서는 살 수 없다는 말이다. 그런데 모여 살아가다 보면 마음이 끌리는 사람도 있고, 가까이 가기 싫은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같은 값이면 마음이 맞는 끼리끼리 모인다. ‘가재는 게편’에 草綠同色(초록동색)이고 類類相從(유유상종)이다. 마음이 맞는 사람끼리는 기가 통해(同氣) 서로 찾아(相求) 어울리게 된다는 이 성어도 똑 같은 의미다. 동기는 부모로부터 같은 기를 받은 형제자매를 일컫기도 한다.

이 말은 같은 소리는 서로 응하여 울린다는 뜻의 同聲相應(동성상응)과 함께 ‘周易(주역)’의 文言傳(문언전) 乾卦(건괘)에서 나왔다. 유학 五經(오경)의 하나로 易經(역경)이라고도 한다. 부분을 보자. ‘같은 소리는 서로 호응하며 같은 기운끼리는 서로 찾는다. 물은 습한 곳으로 흐르며 불은 마른 것을 취한다. 구름은 용을 좇고 바람은 범을 따른다.’ 기질이 같은 사람은 서로 찾게 되므로 덕이 있는 사람끼리는 서로 호응하게 된다는 의미로 孔子(공자)의 德不孤 必有隣(덕불고 필유린)과도 통한다.

이 말은 선인들의 수많은 문집에 인용됐고, 조선 중기의 대유학자 李珥(이이) 선생이 지은 ‘擊蒙要訣(격몽요결)’에도 등장한다. 초학자에 뜻을 세우고 몸을 삼가며 부모를 모시고 남을 대하는 방법을 가르쳐, 도를 향하는 기초를 세우도록 노력하게 만든다는 취지로 지었다는 책이다. 사람을 대하는 것에 대한 가르침인 제9장 接人章(접인장)의 내용이다. ‘같은 소리는 서로 응하고, 같은 기운은 서로 찾게 되니, 만일 내가 학문에 뜻을 두고 있다면 나는 반드시 학문하는 선비를 찾을 것이요, 학문하는 선비도 또한 반드시 나를 찾을 것이다.’ 학문하는 사람끼리 어울리되 겉으로만 그런 사람은 멀리 해야 한다고 했다.

办公室 bàngōngshì

办公室 bàngōngshì

办公室 bàngōngshì

1. 사무실 2. 오피스 3. 행정 부서

명실상부名實相符 - 이름과 실상이 서로 꼭 맞음, 겉과 속이 맞아 떨어짐

명실상부名實相符 - 이름과 실상이 서로 꼭 맞음, 겉과 속이 맞아 떨어짐

명실상부(名實相符) - 이름과 실상이 서로 꼭 맞음, 겉과 속이 맞아 떨어짐

이름 명(口/3) 열매 실(宀/11) 서로 상(目/4) 부호 부(竹/5)

사람 뿐 아니라 모든 동식물, 사물에게는 이름이 있다. 다른 것과 구분하기 위해 이름은 필요하다. 꽃도 이름 없이 자연에 그대로 있었으면 아무도 몰랐지만 꽃이라는 이름을 불러주자 자신에 다가와 꽃이 되었다고 시인은 노래했다(김춘수의 ‘꽃’). 존재의 이유인 이름은 명예도 된다. 그래서 옛날 사람들은 遺臭萬年(유취만년)이라 악명으로 기록되면 후세에 영원히 먹칠한다고 이름을 더럽히지 않게 조심했다. ‘사람은 죽으면 이름을 남기고, 범은 죽으면 가죽을 남긴다’는 속담도 같은 의미다.

孔子(공자)는 특히 바른 이름을 중시했다. 목이 말라도 이름이 도둑의 샘인 우물물은 마시지 않았다는 渴不飮 盜泉水(갈불음 도천수)란 말이 잘 나타낸다. 공자에게 정치를 맡게 되면 무엇부터 하겠느냐는 질문에 이름을 바로잡는(正名/ 정명) 일을 우선하겠다고 했다. 齊(제)나라 景公(경공)이 이상적인 정치에 대해 물었을 때도 서슴없이 답했다.

‘論語(논어)’ 顔淵(안연)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이다.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답고 아버지는 아버지답고 자식은 자식답게 되는 것입니다(君君 臣臣 父父 子子/ 군군 신신 부부 자자).’ 모든 이름은 그에 합당한 실이 갖추어져 있을 때에만 비로소 그 이름이 진정한 의미를 지닐 수 있다는 것을 가르친다.

宋(송)나라의 朱熹(주희)가 선대 학자들의 해석과 자신의 주석을 모아 엮은 ‘論語集註(논어집주)’에는 程子(정자)의 말이라면서 이에 대해 더 명확하게 설명한다. ‘이름이나 실제는 서로 어울려야 한다. 한 가지 일에 있어 이것을 소홀히 하면 나머지도 모두 구차하게 된다.’

그런데 실생활에선 이름이 실제와 맞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름만 그럴듯하고 속은 맹탕이다. 처음엔 맞았더라도 지나면서 有名無實(유명무실)이 된 것도 있다. 가래떡이나 칼국수에 가래와 칼이 들어갈 리 없다. 팽이버섯은 팽이와 관련 없고 철가방은 알루미늄으로 만들어졌다. 大寒(대한)이 小寒(소한)에 와 얼어 죽는다고 했다. 이런 정도는 애교라도 있지만 5공 때의 민주정의당이나 북한이 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을 표방한 것은 조지 오웰(George Orwell)의 ‘1984‘식 작명이다.

석불가난席不暇暖 - 앉은 자리가 따뜻할 겨를이 없다.

석불가난席不暇暖 - 앉은 자리가 따뜻할 겨를이 없다.

석불가난(席不暇暖) - 앉은 자리가 따뜻할 겨를이 없다.

자리 석(巾/7) 아닐 불(一/3) 틈 가(日/9) 따뜻할 난(日/9)

한 곳에 오래 앉아 있으면 체온에 자리가 따뜻해질 텐데 여기저기 옮기면 더워질 틈이 없다. 주소를 자주 바꾸거나 매우 바쁘게 돌아다니는 사람에겐 편안한 자리가 언감생심이다. 한시도 같은 자리에 앉아 있으면 좀이 쑤시거나 진득하게 한 곳에 살지 못하고 휙 떠나는 사람들에 들어맞는 말이다.

하지만 옛날에는 이런 방랑벽을 말한 것이 아니었다. 諸子百家(제자백가) 사상가들이 자기의 학설을 전파하기 위해 이 나라 저 나라 떠돌아다녔기 때문에 집에 머물 시간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孔子(공자, 기원전 551년-479년)가 앉았던 돗자리는 따뜻해질 틈이 없고 墨子(묵자)의 집 굴뚝은 검어질 시간이 없다’ 고 후세 사람들이 표현했다. 後漢(후한)의 역사가 班固(반고)의 ‘答賓戱(답빈희)’라는 글에 소개됐다. 孔席墨突(공석묵돌)이나 墨突不黔(묵돌불검)이라 해도 같은 말이다. 묵자는 兼愛說(겸애설)을 주창한 사상가다. 黔은 검을 검.

이런 선인들의 일화 말고 직접 이 성어가 나온 곳은 南朝(남조) 宋(송)나라의 문학가 劉義慶(유의경)이 쓴 일화집 ‘世說新語(세설신어)’에서다. 옛날 漢(한)나라에 선비들의 우러름을 받는 陳仲擧(진중거)라는 곧은 선비가 있었다. 그가 豫章(예장)이란 곳의 태수로 좌천되어 갔을 때 먼저 관서보다 그 곳의 유명한 선비 徐孺子(서유자)를 만나 보려 했다. 비서가 관에 먼저 가야 한다며 말리자 진중거가 말했다. ‘옛날 周(주)나라 武王(무왕)은 폭군 紂王(주왕)을 멸한 뒤 商容(상용)을 찾아다니느라 자리가 따뜻해질 틈이 없었는데 내가 먼저 현자를 찾아뵙는 것이 어떻게 안 된다는 말인고?.’ 暖과 煖은 모두 따뜻할 난, 더울 난으로 같은 뜻이다.

물이유취物以類聚 - 사물이 같은 종류에 따라 모인다.

물이유취物以類聚 - 사물이 같은 종류에 따라 모인다.

물이유취(物以類聚) - 사물이 같은 종류에 따라 모인다.

물건 물(牛/4) 써 이(人/3) 무리 류(頁/10) 모을 취(耳/8)

사람들은 끼리끼리 모여 산다. 개미나 벌 같은 곤충들은 군집생활이 필수적이지만 일반 동물들도 더 큰 동물의 위험을 막으며 살기 위해서는 집단생활이 적합하다. 사람도 혼자서는 의식주를 해결 못하기 때문에 모여 살아갈 수밖에 없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모이더라도 적대적인 사람과는 가까이 하지 않는 것이 상정이다. 자기의 편을 들어주고, 자기의 사정을 잘 아는 사람들과 끼리끼리 모인다.

이 난에 나온 적 있는 同氣相求(동기상구)이고 同病相憐(동병상련)이다. ‘과부 설움은 과부가 안다’는 兩寡分悲(양과분비)도 같은 뜻으로 사용된다. 그런데 가재는 항상 게 편을 들고, 풀도 같은 녹색이라며 草綠同色(초록동색), 같은 종류끼리만 類類相從(유유상종)한다면 좋은 소리를 못 듣는다.

사물(物以)은 같거나 비슷한 종류에 따라 모인다(類聚)는 이 말도 변화를 겪었다. 유사한 부분이 나오는 ‘周易(주역)’부터 먼저 보자. ‘만물은 같은 종류끼리 모이고 무리를 지어 나누어지니, 이로부터 길함과 흉함이 생긴다.’ 繫辭上(계사상) 편에 실려 있다. 同氣相求(동기상구)가 나오는 文言(문언)의 뒷부분은 이렇다. ‘하늘에 근본을 둔 것은 위와 친하고, 땅에 근본을 둔 것은 아래와 친하니, 이는 모두 각자가 그 비슷한 것을 좇기 때문이다.’

戰國時代(전국시대) 齊(제)나라에 淳于髡(순우곤, 髡은 머리깎을 곤)이란 대부가 있었다. 천한 신분이었지만 익살과 다변으로 유명했다. 어느 때 宣王(선왕)이 인재를 구한다는 소식을 듣고 하루 사이에 7명이나 천거했다. 선왕은 놀라 천리를 다니며 백 년을 찾아도 한 사람 찾기가 힘든데 이들이 과연 현인인지 물었다. 순우곤이 대답한다. 새는 새들과 함께 있고 짐승은 짐승들과 있는 법인데 이것이 바로 ‘물건은 각기 비슷한 부류가 있다(物各有疇/ 물각유주)’는 이야기라 했다. 그리고 자신은 같은 무리기 때문에 주위에 현인이 많다고 말했다. ‘戰國策(전국책)’ 齊策(제책)에 나온다.

모여서 자신들만의 이익을 쫓고 타인에게는 해를 끼친다면 바람직한 모임이 아니다. 고급정보를 사유화하고 조직 안의 의견만이 옳다고 똘똘 뭉쳐 고집한다면 외부에서 욕을 먹는다. 처음에는 그런 의미를 가지지 않았지만 類類相從(유유상종)을 비롯한 이 성어들은 점점 나쁜 사람들의 집합체를 가리키거나 배타적인 집단으로 부정적인 의미를 더 많이 갖게 됐다. 끼리끼리의 힘을 자기들만이 사유화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