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4일 월요일

캄보디아 왓트마이 사원 정원에 있는 나무입니다.

캄보디아 왓트마이 사원 정원에 있는 나무입니다.

캄보디아 왓트마이 사원 정원에 있는 나무입니다.

열매가 많지도 않고 달랑한개만 달렸어요.먹는나무인지?

인면수심人面獸心 - 사람의 얼굴에 마음은 짐승

인면수심人面獸心 - 사람의 얼굴에 마음은 짐승

인면수심(人面獸心) - 사람의 얼굴에 마음은 짐승

사람 인(人-0) 낯 면(面-0) 짐승 수(犬-15) 마음 심(心-0)

사람이 몹쓸 짓을 저질렀을 때 비유하여 짐승 같다, 짐승보다 못하다, 짐승보다 더 하다고 수시로 짐승에 갖다 붙인다. 그러나 실제 동물들은 억울하다. 사람보다 더 부모를 위할 줄 알고, 새끼들을 귀여워하고, 사랑하고 은혜를 안다. 대충의 성어를 떠올려 봐도 反哺之孝(반포지효)의 까마귀, 老牛舐犢(노우지독)의 소, 鴛鴦之契(원앙지계)의 원앙, 黃雀銜環(황작함환)의 꾀꼬리 등을 사람에게 본받으라고 한다. 그런데 사람의 얼굴(人面)을 하고 있으면서도 마음은 짐승과 같다(獸心)는 이 말은 잘못 갖다 붙인 것일지라도 사람들이 멋대로 쓴다. 도리를 지키지 못하고 배은망덕하고, 또 음탕하거나 흉악한 짓을 한 사람에게 손가락질하면서 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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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어가 처음 사용된 곳은 漢書(한서)다. 班固(반고)가 20년에 걸쳐 완성하여 史記(사기)와 비견되는 책이다. 열전 속의 匈奴傳(흉노전)에 처음 묘사했을 때는 흉악하기보다는 오랑캐들을 일반적으로 지칭한 것으로 나온다. 흉노는 기원전 3세기 말부터 기원후 1세기 말까지 몽골고원과 만리장성 일대를 중심으로 거주했던 유목 기마민족이다. 周(주)나라 때부터 괴롭혔던 종족의 후예라거나 유럽의 훈족과 관련이 있다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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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이 자주 침공하여 漢(한)나라는 절세미인 王昭君(왕소군)을 흉노 족장에게 보내 화친을 도모하기도 한 것은 알려진 이야기다. 흉노를 가리킨 부분을 인용하면 이렇다. 오랑캐들은 머리를 풀어 헤치고 옷깃을 왼쪽으로 여미며, 사람의 얼굴을 하였어도 마음은 짐승과 같다(夷狄之人 被髮左衽 人面獸心/ 이적지인 피발좌임 인면수심). 狄은 오랑캐 적, 衽은 옷깃 임. 옷깃을 한족과 반대쪽으로 여미는 풍습을 가리켜 미개하다 하고, 자신들을 많이 괴롭혀 흉악하다 한 것이다. / 제공 : 안병화 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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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유이 복구재측牆有耳 伏寇在側 - 담에도 귀가 있고 엎드린 도둑이 옆에 있다, 말을 조심해

장유이 복구재측牆有耳 伏寇在側 - 담에도 귀가 있고 엎드린 도둑이 옆에 있다, 말을 조심해야 한다.

장유이 복구재측(牆有耳 伏寇在側) - 담에도 귀가 있고 엎드린 도둑이 옆에 있다, 말을 조심해야 한다.

담 장(爿/13) 있을 유(月/2) 귀 이(耳) 엎드릴 복(亻/4) 도적 구(宀/8) 있을 재(土/3) 곁 측(亻/9)

세상에 비밀은 없다. 단 둘이 한 약속, 아무리 비밀을 지키려 해도 너에게만 말한다며 제삼자를 통해 새나간다. 세월이 지나면서 밝혀지기도 한다. 여기에는 미물도 가세하여 속담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는 말로 남았다. 晝語鳥聽 夜語鼠聽(주어조청 야어서청)이다. 언젠가는 들통 날 일이지만 남들은 모를 비밀을 많이 알아 위협 도구로 쓰는 기구나 사람도 있다. 그래서 ‘비밀이 없다는 것은 재산 없는 것처럼 가난할 뿐만 아니라 더 불쌍하다’(이상)고 했는지도 모르겠다.

말을 조심하라는 경구로 모든 화는 입에서 나온다는 口禍之門(구화지문), 禍生於口(화생어구)가 있다. 이는 남의 험담과 비방을 하지 말라는 뜻이 담겼다. 이보다 앞서 아예 비밀은 없기 때문에 경솔하게 말하지 말라는 것이 ‘벽에도 귀가 있다’는 속담이다. 이것을 번역한 듯이 똑 같은 성어가 牆有耳(장유이)다. 春秋時代(춘추시대) 齊(제)나라의 명신 管仲(관중)의 저작이라고 하는 ‘管子(관자)’에 ‘엎드린 도둑이 옆에 있다(伏寇在側/ 복구재측)’는 말과 함께 나온다. 군주와 신하 사이의 도리를 논하고 있는 君臣(군신) 하편의 부분을 보자.

‘옛말에 경계로 삼던 두 가지 말이 있으니 담장에도 귀가 있고 숨은 도적이 옆에 있다고 했다(古者有二言 牆有耳 伏寇在側/ 고자유이언 장유이 복구재측), 담장에 귀가 있다는 말은 은밀하게 모의하더라도 밖으로 새기 마련임을 말하는 것이고(牆有耳者 微謀外泄之謂也/ 장유이자 미모외설지위야), 엎드린 도적이 바로 옆에 있다는 말은 민심을 얻는데 깊이 의심함을 일컫는다(伏寇在側者 沈疑得民之道也/ 복구재측자 침의득민지도야).’ 아무리 비밀스럽게 말을 해도 결국은 밖으로 새어나가 자기에게 불리할 수 있으므로 조심하라는 이야기다.

중국 고대부터 각종 격언을 모아 古今賢文(고금현문)이라고도 하는 ‘增廣賢文(증광현문)’에도 비슷한 구절이 있다. ‘담에는 틈이 있고 벽에는 귀가 있다(牆有逢 壁有耳/ 장유봉 벽유이).’

적과 대치하고 있는 아군의 군사 기밀과 마찬가지로 산업체에서 앞으로 크게 매출을 올릴 비장의 발명품은 사전에 새어 나가서는 안 된다. 그래서 서로 정보를 캐내려고 눈에 불을 켜고 있다. 쥐가 듣고, 귀에도 벽이 있어 드러나기 미련이라고 허술히 했다가는 치명적 피해가 앞에 기다린다. / 제공 : 안병화 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고양주도高陽酒徒 -고양 지방의 술꾼. 제멋대로 행동하는 사람

고양주도高陽酒徒 -고양 지방의 술꾼. 제멋대로 행동하는 사람

고양주도(高陽酒徒) -고양 지방의 술꾼. 제멋대로 행동하는 사람

높을 고(高-0) 볕 양(阝-9) 술 주(酉-3) 무리 도(彳-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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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은 극단적으로 찬사와 비난을 동시에 받는 존재다. 술은 마시지 않아도 아무 말도 않는데 이렇게 말이 많으니 억울하다. 삼천갑자 東方朔(동방삭)은 근심을 없애는 데엔 술보다 나은 것이 없다(銷憂者 莫若酒/ 소우자 막약주)라는 말을 남긴 반면 러셀은 음주는 일시적인 자살이다. 음주가 갖다 주는 행복은 단순히 소극적인 것, 불행의 일시적인 중절에 지나지 않는다고 해악을 경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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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들 받아들이기 나름이지만 지나치게 마셔 문제가 되는 것은 탈이다. 주위는 아랑곳없이 기고만장하는 술꾼은 술 권하는 사회라 해도 지탄받으니 조심할 일이다.

高陽(고양) 땅의 술꾼이라는 말의 주인공은 酈食其(역이기, 酈은 땅이름 역, 食은 밥 식, 사람이름 이)다. 秦(진)나라가 쇠퇴하고 項羽(항우)와 劉邦(유방)의 楚漢(초한) 대결로 압축됐을 때 유방의 휘하로 들어가 공을 세우며 以食爲天(이식위천) 성어를 남긴 바로 그 사람이다. 그는 중국 陳留縣(진류현)의 고양에서 태어나 평소 독서를 즐겼지만 실력을 드러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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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주를 해결할 직업이 없어 하는 수 없이 그는 고을 성문을 관리하는 일을 맡았는데 술을 즐기고 성격이 괴팍하여 사람들이 미친 선생으로 불렀다. 어느 때 역이기가 유방을 위해 일하고 싶다고 말하고 친구의 도움으로 만나러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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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방이 선비를 싫어한다는 귀띔을 받아 짐작한 대로 군문 앞에서 부하에게 뵙기를 원한다고 전하자 보기 좋게 거절당했다. 선비를 만날 시간이 없다고 하는 소리를 듣고 역이기는 호통을 쳤다. 빨리 들어가서 나는 고양의 술꾼이지 선비가 아니라고 전하시오(吾高陽酒徒 非儒人也/ 오고양주도 비유인야). 처음 대면하는 자리에서 두 여인에게 발을 씻기며 뒤돌아보지도 않는 유방에게 선비의 중요성을 일깨워 역이기는 모사로 일하게 되었다. 史記(사기) 酈生陸賈(역생육가) 열전에 실린 이야기다. / 제공 : 안병화 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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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화자찬自畵自讚 - 자기 그림을 스스로 칭찬하다.

자화자찬自畵自讚 - 자기 그림을 스스로 칭찬하다.

자화자찬(自畵自讚) - 자기 그림을 스스로 칭찬하다.

스스로 자(自/0) 그림 화(田/8) 스스로 자(自/0) 기릴 찬(言/19)

글자 그대로 자기가 그린 그림을 잘 그렸다고 자랑을 한다는 이 성어는 좀 간지럽다. 요즈음이 자신의 능력을 끊임없이 알리지 않으면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시대라고 해도 그렇다. 전문적인 실력을 가진 사람은 내세우지 않아도 드러나게 마련이다.

이 분야엔 최고라고 자신을 내세우는 사람은 과장이 있고 거짓이 있기 쉽다. 自畵自讚이 심한 사람은 불안하고 여린 마음을 감추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하는 사람도 있다. 自讚(자찬), 自畵讚(자화찬)이라 줄여 쓰기도 한다.

이처럼 역겨움을 경계하여 많이 사용되는 성어의 출처는 막상 모호하다. 스스로 대단하다고 여겨 우쭐댄다는 沾沾自喜(접접자희), 자신을 뽐낸다는 自我夸耀(자아과요)라는 말이 보인다. 沾은 경박할 접 또는 젖을 첨, 夸는 자랑할 과. 또 중국의 격언에 ‘하늘도 스스로는 높다고 말하지 않으며 땅도 스스로 넓다고는 말하지 않는다(天不言自高 地不言自原/ 천불언자고 지불언자원)’는 말이나 ‘스스로 크다고 말하는 사람에게는 추한 냄새가 풍긴다(自大則臭/ 자대즉취)’라면서 자기 자랑을 하지 말라는 교훈을 주는 말이 있다.

국내에선 自畵自讚에 꼭 들어맞는 그림과 글이 있다. 조선 후기의 문인이자 시서화 모두 뛰어났던 豹庵(표암) 姜世晃(강세황)의 1782년 작 초상화인데 윗부분에 직접 쓴 撰文(찬문)이 있다. 글의 앞뒤 부분만 인용하면 이렇다. ‘彼何人斯鬚眉晧白 項烏帽披野服於以.. 胸藏二酉筆搖五嶽.. 翁年七十翁號露竹 其眞自寫其贊自作(피하인사수미호백 항오모피야복어이.. 흉장이유필요오악.. 옹년칠십옹호노죽 기진자사기찬자작/ 저 사람은 누구일까? 눈썹 수염 하얗구나, 오사모를 쓰고서 야복을 걸쳤다네, 가슴속엔 기이한 책 간직해두고 붓으로는 오악을 뒤흔드누나, 옹의 나이 칠십이요 옹의 호는 노죽이다, 그 초상은 직접 그리고, 찬도 직접 지었다네). <정민 한양대교수 역>’ 70노인의 관모를 쓰고 야복을 입은 모습으로 마음은 항상 초야에 있는 것이라고 자부했다 한다. / 제공 : 안병화 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탈영이출脫穎而出 -뾰족한 부분이 뚫고 나오다

탈영이출脫穎而出 -뾰족한 부분이 뚫고 나오다

탈영이출(脫穎而出) -뾰족한 부분이 뚫고 나오다

벗을 탈(肉-7) 이삭 영(禾-11) 말이을 이(而-0) 날 출(凵-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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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방의 생각을 알아낼 수 있는 讀心術(독심술)은 다년간 도를 닦은 초능력자나 할 수 있지 일반 사람들은 엄두를 못 낸다. 천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의 속은 모른다는 속담이 괜히 나온 것은 아닐 터이다. 하지만 아무리 숨기고 싶어도 저절로 알아차릴 수 있는 것이 지니고 있는 특별한 재주다. 주머니 속에 들어 있는 송곳이 튀어나오듯 능력과 재주가 뛰어난 사람은 스스로 두각을 나타낸다. 많이 쓰는 囊中之錐(낭중지추)란 성어가 여기에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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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어의 이삭 穎(영)은 이삭의 뾰족한 끝 부분이나 물건의 자루, 빼어남을 뜻한다. 이 말도 유래가 똑같이 史記(사기)의 平原君虞卿列傳(평원군우경열전)이다. 평원군은 趙(조)나라의 귀족으로 이름은 趙勝(조승)이다. 戰國時代(전국시대) 말기에 각 제후국에서 수천 명의 빈객을 거느리고 세력을 키웠던 戰國四君(전국사군)의 한 사람이다. 다른 세 사람은 齊(제)의 孟嘗君(맹상군), 魏(위)의 信陵君(신릉군), 楚(초)의 春申君(춘신군)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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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나라가 秦(진)의 공격을 받자 왕이 초나라로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평원군을 파견하게 되었다. 평원군은 자신의 식객 중에서 문무를 겸비한 20명을 뽑아 함께 가기로 했는데 19명을 뽑은 뒤 더 이상 고를 사람이 없었다. 이 때 毛遂(모수)라는 사람이 자신을 데려가기를 원했다. 바로 毛遂自薦(모수자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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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원군은 재주가 있었다면 주머니 속 송곳과 같이 벌써 알았을 터인데 하며 거절했다. 그러자 모수는 만약 저를 좀 더 일찍 주머니 속에 넣었더라면 송곳의 끝만 드러난 게 아니라 자루까지 뚫고 나왔을 것입니다(使遂蚤得處囊中 乃穎脫而出 非特其末見而已/ 사수조득처낭중 내영탈이출 비특기말견이이). 蚤는 벼룩 조, 일찍이란 뜻도 있다. 뒤에 합류한 모수는 19명의 몫을 능가할 정도로 활약을 펼쳐 초나라를 설득하고 합종을 성공시켰다. 평원군은 모수를 이후 상객으로 대우했다. / 제공 : 안병화 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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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마등走馬燈 - 달리는 말이 나오는 등, 사물이 덧없이 빨리 흘러감

주마등走馬燈 - 달리는 말이 나오는 등, 사물이 덧없이 빨리 흘러감

주마등(走馬燈) - 달리는 말이 나오는 등, 사물이 덧없이 빨리 흘러감

달릴 주(走/0) 말 마(馬/0) 등 등(火/12)

불을 켜서 어둠을 밝히거나 신호를 보내는 기구가 燈(등)이다. 요즘이야 집집마다 전기가 보급돼 등을 구경하기도 어렵지만 ‘등잔 밑이 어둡다’는 燈下不明(등하불명)이나 독서를 하기 좋은 계절에 등을 더 가까이 한다는 燈火可親(등화가친) 등의 성어로 남아 있다. 등불과 전깃불의 차이를 이어령 선생은 이렇게 표현했다. 등불을 ‘방의 어둠만을 밝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영혼까지 밝혀 준다’고 하며 그 근거로 등불은 시를 낳았고 전깃불은 단지 전기세만을 남겼다고 했다.

달리는 말(走馬)이 나오는 등은 안팎 두 겹으로 된 틀의 안쪽에 말과 같은 갖가지 그림을 붙여 놓고 그 틀을 돌려 안에 켜 놓은 등불 때문에 종이나 천을 바른 바깥에 비치게 만든 등이다.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을 이 주마등은 말이 달려가듯 사물이 덧없이 빨리 지나가는 것을 비유하는 말로 사용됐다. 그래서 실물은 보기 힘들어도 세월이 주마등처럼 훌쩍 흘러 지나갔다고 자주 표현한다.

중국인은 등 달기를 즐기는 민족으로 戰國時代(전국시대)부터 정월 대보름날에 각양각색의 등을 거는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등 위에 둥근 원반을 올려놓고 원반의 가장자리를 따라 말이 달리는 그림을 여러 장 붙인다. 활동사진의 필름처럼 연속 동작이 되게 하고선 밑에서 등불을 밝히면 따뜻해진 공기로 인하여 원반이 돌게 되고 연속된 말의 그림이 질주하는 것처럼 보인다.

사계절에 따른 사물이나 행사, 풍속 등을 기록한 책을 가리키는 歲時記(세시기)는 우리나라서도 東國歲時記(동국세시기), 洌陽歲時記(열양세시기) 등 숱하다. 중국에선 이미 7세기 초에 荊楚歲時記(형초세시기)가 나왔고, 淸(청)나라 시기 북경 지역의 세시풍속을 월별로 정리한 ‘燕京歲時記(연경세시기)’가 있다. 富察敦崇(부찰돈숭, 1855∼1922)이란 사람이 정리한 이 책에 주마등의 풍습이 실려 전한다. ‘주마등은 종이를 잘라 바퀴를 만들고 촛불로 바람을 보내면 수레가 돌고 말이 모여 계속 둥글게 돈다. 촛불이 꺼지면 도는 것을 그친다(走馬燈者 剪紙爲輪 以燭噓之 則車馳馬驟 團團不休 燭滅則頓止矣/ 주마등자 전지위륜 이촉허지 즉거치마취 단단불휴 촉멸즉돈지의).’

흘러간 세월을 아쉬워하며 지난 추억을 옛 친구들끼리 모여 주마등처럼 떠올리는 일은 잦다. 유수같이 흐른 지난 세월을 문득 느끼고는 화들짝 놀라기도 한다. 세월은 누구에게나 기다려주지 않고 흘러간다. 그러니 지난 화려한 시절을 그리기만 하지 말고 남은 시간을 잘 보내는 지혜를 발휘해야겠다. / 제공 : 안병화 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타면자건唾面自乾 – 남이 얼굴에 침을 뱉으면 마를 때까지 기다린다.

타면자건唾面自乾 – 남이 얼굴에 침을 뱉으면 마를 때까지 기다린다.

타면자건(唾面自乾) – 남이 얼굴에 침을 뱉으면 마를 때까지 기다린다.

침 타(口/8) 낯 면(面/0) 스스로 자(自/0) 마를 건(乙/10)

입 속의 침은 소화에 꼭 필요한 액체이지만 이것을 잘못 뱉었다간 큰 사달이 난다. 좋게 대하는 사람에게 나쁘게 대할 수 없다는 뜻의 ‘웃는 낯에 침 뱉으랴’란 속담이 있다. 반면 특정 사람을 향해 침을 뱉었다간 아주 치사스럽게 생각하거나 더럽게 여기어 멸시한다는 뜻이 된다. 사람에 따라서는 도전의 의미로 받아들여 대판 싸움이 난다. 그런데 남이 내 얼굴에 침을 뱉었더라도(唾面) 그것이 저절로 마를 때까지(自乾) 기다린다는 이 성어는 보통 사람은 실행하지 못할 일이다. 처세를 잘 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남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고 수모를 잘 참아야 한다고 한 교훈이다.

중국 역사에서 유일한 여성 황제인 則天武后(측천무후)는 唐(당)나라 2대 太宗(태종)의 후궁으로 들어왔다가 3대 高宗(고종)의 황후가 된 사람이다. 고종이 죽은 뒤 왕위에 오른 두 아들을 폐위시키고 스스로 周(주)나라를 세워 15년 동안 권력을 휘둘렀다. 무후는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무자비한 탄압책을 썼어도 유능한 관리들을 요소에 잘 등용하여 정치는 그런대로 안정됐다는 평을 받는다. 측천무후의 신하 가운데 樓師德(누사덕, 630~699)이란 사람이 있었다.

그는 팔척장신에 큰 입을 가졌고 변방 요충지에서 장상으로 30여년을 근무하면서 많은 공을 세웠다. 그러면서도 성품이 인자하여 어떤 무례한 일을 당해도 겸손한 태도로 얼굴에 불쾌한 빛을 드러내지 않았다. 어느 때 아우가 외직으로 나가게 되자 불렀다. 우리 형제가 다 같이 출세하고 황제의 총애를 받아 영광이 이미 극에 이르렀으니 사람들의 시샘이 따를 것인데 어떻게 처신할 것인가 하니 동생이 대답했다.

‘누가 만약 제 얼굴에 침을 뱉는다면 저는 손으로 닦겠습니다(自今雖有人唾某面 某拭之而已/ 자금수유인타모면 모식지이이).’ 그러자 누사덕은 그렇게 하면 상대방의 기분을 거스를 수 있다며 덧붙인다. ‘그 또한 좋지는 않다. 저절로 마를 때까지 두는 게 좋을 것이다(適逆其意 止使自乾耳/ 적역기의 지사자건이).’ 어디까지 인내해야 하는지 잘 보여준다. ‘十八史略(십팔사략)’과 ‘新唐書(신당서)’에 실려 있다.

남을 해치려 하다가 자기가 해를 입게 되는 ‘누워서 침 뱉기’는 어리석은 일이지만 남이 뱉은 침이 마를 때까지 기다리는 사람이야말로 인내심이 무섭다. 조금도 양보 않고 경쟁만 일삼는 사회에서 이런 인내를 발휘하는 사람을 아부한다고 손가락질해도 나중에는 수모를 이겨낸 보람을 찾을 때가 있을 것이다./제공 : 안병화 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중원축록中原逐鹿 - 넓은 벌판 가운데서 사슴을 쫓다, 어떤 지위를 얻기 위해 경쟁하다.

중원축록中原逐鹿 - 넓은 벌판 가운데서 사슴을 쫓다, 어떤 지위를 얻기 위해 경쟁하다.

중원축록(中原逐鹿) - 넓은 벌판 가운데서 사슴을 쫓다, 어떤 지위를 얻기 위해 경쟁하다.

가운데 중(丨/3) 언덕 원(厂/8) 좇을 축( 辶/7) 사슴 록(鹿/0)

넓은 벌판의 한 가운데를 가리키는 中原(중원)은 중국의 중심부를 가리킨다. 고대 周(주)나라의 세력 근거지로 한족의 생활영역이었다. 黃河(황하)의 중류 남부지방이 중심이었다가 남부의 揚子江(양자강) 유역까지 확대되어 중원은 중국의 중심부나 나아가서 중국 전체를 나타내는 말이 되었다. 여기서 주나라의 왕권을 상징하는 사슴을 쫓는다(逐鹿)는 말은 군웅이 제왕의 지위를 얻으려고 쟁탈전을 벌이는 것을 의미한다. 이 말은 조금도 양보하지 않고 치열하게 뿔을 맞대고 싸우는 짐승들의 다툼 角逐(각축)과 같이 어떤 지위를 얻기 위해 경쟁한다는 의미로 확대되어 사용된다.

이 성어가 유래한 곳은 故事(고사)의 보고 司馬遷(사마천)의 ‘史記(사기)’다. 秦(진)나라 말기 劉邦(유방)을 도와 천하를 제패한 韓信(한신)은 처음 楚王(초왕)에 봉해졌다가 모반의 혐의를 받고 淮陰侯(회음후)로 강등되었다. 兎死狗烹(토사구팽)되는 한신의 회음후 열전에 실린 내용을 보자. 고조가 趙(조)나라 재상이었던 陳豨(진희, 豨는 멧돼지 희)의 난을 평정하러 간 사이 한신은 漢高祖(한고조) 왕후 呂后(여후)와 재상 蕭何(소하)의 계략에 빠져 체포된다. 고조가 돌아와 문초하자 한신은 蒯通(괴통, 蒯는 기름새 괴)의 말을 듣지 않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괴통은 잡혀 와서도 한신이 자신의 말을 들었으면 세상이 달라졌을 것이라고 당당히 말했다. 유방이 노해서 삶아죽이라고 명하자 말을 잇는다. ‘진나라가 사슴을 잃자 천하의 호걸들이 모두 이를 쫓고(秦失其鹿 天下共逐之/ 진실기록 천하공축지)’ 있었는데 괴통은 그때 한신을 알고 있었을 뿐 고조는 몰랐다고 했다. 그러면서 천하의 도적 盜跖(도척)의 개가 堯(요)임금을 보고도 짖는 것은 주인이 아니기 때문이라며 유방을 따르지 않은 많은 사람을 다 죽여야 하느냐고 항변한다. 유방은 그의 말이 일리가 있어 풀어줄 수밖에 없었다.

사슴을 쫓는 성어 중에 사슴을 쫓는 사람은 산을 보지 못한다는 逐鹿者不見山(축록자불견산)과 사슴을 쫓는 자는 토끼를 돌아보지 않는다는 뜻의 逐鹿者不顧兎(축록자불고토)가 있다. 앞의 말은 이익에 눈에 어두워 큰 흐름을 보지 못한다는 뜻이고, 뒤는 작은 일에 매달리면 큰일을 이루지 못한다는 뜻이다. 이런 상반된 말이 남은 것은 사슴을 쫓지 말라는 것이 아니고 목적을 향해서는 필요한 것만 향하여 한길만 가라는 뜻으로 새기면 되겠다. / 제공 : 안병화 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대간사충大姦似忠 – 크게 간사한 사람은 충신처럼 보인다.

대간사충大姦似忠 – 크게 간사한 사람은 충신처럼 보인다.

대간사충(大姦似忠) – 크게 간사한 사람은 충신처럼 보인다.

큰 대(大/0) 간음할 간(女/6) 닮을 사(亻/5) 충성 충(心/4)

큰 거짓말은 진실처럼 보인다. 그래서 대중 선동의 천재 히틀러는 이왕 거짓말을 하려면 큰 거짓말을 하라고 했다. 대중은 작은 거짓말을 믿기보다는 큰 거짓말을 믿는다고 봤다. 진실과 유사하게 포장한 허위는 일반 대중들이 파악하기엔 못 미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아주 간사한 사람(大姦)의 언행은 그 아첨하는 모습이 매우 교묘하여 절세의 충신과 닮은 모습(似忠)을 보인다. 악명 높은 간신일수록 그가 떵떵거렸던 시대에는 최고의 충신이란 소리를 많이 들었다. 이와 같이 악한 속마음은 숨겨 놓고 남을 위하는 척, 충실한 척 하는 사람이 바로 이런 사람이다.

중국 元(원)나라 때 완성된 ‘宋史(송사)’에서 비롯된 이 성어는 이런 교훈적인 뜻에도 불구하고 정당한 행위를 중상하기 위한 뜻에서 먼저 사용돼 빛이 바랬다. 뛰어난 산문시를 남겨 唐宋八大家(당송팔대가)에 들어가는 宋(송)의 王安石(왕안석, 1021~1086)은 新法(신법)이란 개혁정책을 시행한 정치가이기도 했다. 송나라는 숭문정책으로 선비들을 우대했지만 이민족의 침략을 금전적으로 해결해왔기 때문에 재정적자에 시달렸다. 19세에 즉위한 6대 황제 神宗(신종)은 부왕 英宗(영종)을 도와 개혁을 진행해 온 왕안석을 크게 신임했다.

개혁에는 반발이 따르는 법이라 농민의 조세와 부담을 덜고 국방을 강화하며, 상인의 물품독점에 제재를 가하는 일련의 정책에 기득권을 가진 지주와 귀족관리들은 거세게 저항했다. 가진 자로부터 없는 자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권력의 재편을 노린다는 구실이었다. 諫官(간관)으로 사람을 가리지 않고 탄핵해 일면 추앙도 받던 呂誨(여회, 1014~1071)라는 사람은 왕안석이 재상에 취임하는 것부터 못마땅했다. 신법이 계속 제출되자 마침내 탄핵 상소를 올렸다. 그는 이 글에서 ‘아주 간사한 사람은 충신과 비슷하고, 큰 속임수는 믿음직스럽게 보인다(大姦似忠 大詐似信/ 대간사충 대사사신)’고 하면서 왕안석을 간특한 사람이라고 맹공했다.

사람은 자신이 믿고 싶은 것만 믿는다고 한다. 믿는다고 하더라도 거기엔 크나큰 허위나 속임수가 들어 있을 수가 있다. 크게 보이는 겉모습도 좋지만 이면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 / 제공 : 안병화 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