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9일 토요일

◇ 티라노사우루스와 은행나무 그리고 고생대

◇ 티라노사우루스와 은행나무 그리고 고생대

◇ 티라노사우루스와 은행나무 그리고 고생대

흔해서 귀한지 모르는 게 있다. 발에 치이는 은행나무가 대표적이다. 은행나무는 화석식물의 대표 격이다. 대략 3억년 전에 등장했다. 티라노사우루스로 상징되는 공룡이 지구상에 등장하기 이전인 고생대 무렵이다. 지구과학 교과서에 빠지지 않는 삼엽충이 은행나무와 어깨를 나란히 했던 생물이다. 삼엽충은 사라졌지만, 은행나무는 살아남았다.

그만큼 외로운 식물이 바로 은행나무다. 지구상에 생존한 유일한 종이다. 그의 형제자매는 모두 멸종했다. 생물분류체계에 따르면 은행나무는 식물계→은행나무문→은행나무강→은행나무목→은행나무과→은행나무속→은행나무종으로 분류된다. 유일한 종이다 보니 멸종위기종에도 올라있다.

세계적으로 은행나무가 자생하는 지역은 한국·중국·일본 정도다. 한국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특유의 노란색 낙엽 때문이다. 독특한 색감은 사람의 시선을 단숨에 사로잡았고 가로수로 간택돼 인기를 끌고 있다. 서울특별시는 1971년 4월 3일 서울을 상징하는 나무로 은행나무를 지정했다. 화석식물이다 보니 웬만한 병충해를 가볍게 이겨내는 것도 장점이다. 여느 식물과 마찬가지로 은행나무도 자신을 아낌없이 나눈다. 국내에선 고급 가구의 소재로 쓰인다. 나뭇결과 나이테 무늬가 촘촘해서다. 최근에는 은행나무 추출물로 치매 치료제를 개발하는 연구도 진행되고 있다.

딱 하나 불만이 있다면 꾸리꾸리한 악취를 내는 종자일 거다. 들여다보면 여기에도 사연이 있다. 악취는 종자의 육질층에서 배출되는데 포식자에게 먹히지 않고 살아남기 위한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은행나무가 스스로 악취를 선택했다는 학설도 있다. 자손 번식을 위해선 공룡의 먹이가 돼야 했는데 이를 위해 악취가 필요했다는 것이다. 설명을 듣다 보면 고개가 절로 끄덕인다. 가로수와 호프집 안줏거리는 은행나무도 미처 예상치 못한 시나리오였던 것이다. 최근에는 악취도 사라지고 있는데 지자체가 암나무를 수나무로 교체하고 있어서다.

길을 걷다 은행의 악취가 풍겨오면 공룡을 떠올려 보자. 코끝이 한결 가벼워진다. 나아가 충분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이른다. 은행잎이 떨어지는 이 무렵은 무언가를 조금 더 깊이 이해하기 좋은 계절이다. 사람이든 나무든 뭐든 좋다.

-중앙일보-

문방사우文房四友 - 종이, 붓, 먹, 벼루의 네 가지 문방구

문방사우文房四友 - 종이, 붓, 먹, 벼루의 네 가지 문방구

문방사우(文房四友) - 종이, 붓, 먹, 벼루의 네 가지 문방구

글월 문(文/0) 방 방(戶/4) 넉 사(口/2) 벗 우(又/2)

文房(문방)은 학용품과 사무용품 등을 파는 문방구도 되지만 서적을 갖추고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서재를 가리키기도 한다. 우리 선조들은 기품 있는 풍류를 즐겨 詩書畵(시서화)를 중요시했기에 문방에는 항상 글과 그림을 그릴 종이 붓 먹 벼루 등 四友(사우)를 갖추고 있었다. 이것을 한꺼번에 칭해 紙筆墨硯(지필묵연)이라 하기도 하고 文房四寶(문방사보)나 文房四侯(문방사후)로 높여 부르기도 한다. 사후는 이들을 의인화시켜 벼슬이름을 붙인 것인데 붓은 管城侯(관성후), 벼루는 墨侯(묵후), 종이는 好峙侯(호치후), 먹은 松滋侯(송자후)로 불렀다고 한다.

먼저 종이는 기록할 수 있는 가장 기초적인 자료다. 문자가 발명되고도 상대에 전달하려면 필수적인 종이가 발명되기 전에는 돌이나 나무, 대나무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종이의 기원은 서양에서는 이집트 나일강 주변 지중해 연안에서 자생하는 파피루스(papyrus) 속을 말린 것을 친다. 동양에서는 중국 後漢(후한)시대의 환관 채륜이 105년 만든 종이를 蔡侯紙(채후지)로 부르며 오늘날 한지의 선행형태이자 완성형으로 보고 있다.

문자가 보급되고 바탕이 되는 종이가 있다면 그곳에 쓸 필기구가 필요하다. 붓을 말하는 筆(필)의 글자를 보면 원래의 붓을 뜻했던 聿(율)의 위에 대 竹(죽)이 있다. 대나무를 재료로 秦(진)나라 때 처음 蒙恬(몽염)이 만들었다고 한다. 竹簡(죽간)에다 금으로 만든 칼로 글을 새기는 것이 직업인 刀筆吏(도필리)로 漢(한)의 劉邦(유방)을 도왔던 蕭何(소하), 曹參(조참) 등이 두각을 나타낼 수 있었던 연유이기도 f하다. 그 뒤 짐승의 털을 추려서 모아 대나무 관에 고정시킨 붓으로 발전했다. 붓끝의 가는 털을 毫(호)라고 하는데 毫釐(호리)라 하면 매우 적은 분량을 가리킨다.

먹은 종이와 같이 후한시대에 오늘날과 같은 것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五代十國(오대십국)의 後周(후주) 때 먹의 사용을 권장하여 李廷珪(이정규) 같은 유명한 墨工(묵공)을 배출했다. 고구려의 曇徵(담징)이 일본에 불법을 강론하고 610년 종이와 함께 먹도 전래하여 매우 귀중한 문방으로 여기고 있다.

대개 돌로 만드는 벼루는 瓦硯(와연), 陶硯(도연) 외에 보석까지 다양하고 형태도 직사각형에서 타원형까지 독특한 의장도 많다. 먹을 가는 부분이 硯堂(연당), 먹이 모이는 오목한 곳이 硯池(연지)다. 좋은 조건으로는 첫째 먹이 잘 갈리고 고유의 묵색이 잘 나타나는 것을 친다. 오늘날 서예 외에는 사우를 사용하는 일은 드물다. 먹과 벼루는 물론 종이와 펜도 컴퓨터로 문서를 작성하는 시대에 옛날 물품이 되고 있다. 지필묵연의 기품 있는 문예가 한꺼번에 일상에서 사라지는 것이 아닌지 염려스럽다. / 글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도문계살屠門戒殺 - 도살장에서 살생하지 말란다, 행해지지 않을 일을 훈계하다.

도문계살屠門戒殺 - 도살장에서 살생하지 말란다, 행해지지 않을 일을 훈계하다.

도문계살(屠門戒殺) - 도살장에서 살생하지 말란다, 행해지지 않을 일을 훈계하다.

죽일 도(尸/9) 문 문(門/0) 경계할 계(戈/3) 죽일 살(殳/7)

자신의 주제나 능력을 알지도 못하면서 허세를 부리거나 불가능한 일에 도전하는 사람이 주변에 흔하다. 속담이나 성어가 많은 것도 분수 모르는 사람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공자 앞에서 문자 쓴다’, ‘지붕의 호박도 못 따면서 하늘의 天桃(천도) 따겠단다’ 등의 속담이 잘 말해준다. 기술의 달인 魯班(노반)의 문 앞에서 도끼를 자랑한다는 班門弄斧(반문농부), 조그만 사마귀가 앞발을 들고 수레에 막아서는 螳螂拒轍(당랑거철) 등의 성어는 모두 자기 역량을 모르고 위세를 부리는 夜郞自大(야랑자대)와 같다.

반면 아무리 노력을 해도, 오래 기다려도 가능하지 않은 일도 있다. ‘바람벽에 돌 붙나 보지’란 말은 되지도 않을 일이거나 오래 견뎌 나가지 못할 일은 아예 하지도 말라는 뜻이다. ‘그 사람 인간되기는 백년하청’이라 말하면 사람 구실을 못할 사람이니 상종하지 말라는 이야기다. 짐승을 잡아 고기를 파는 거리(屠門)에서 살생을 하지 말라고 점잖게 훈계(戒殺)하면 생업을 포기하라는 소리이니 먹혀들 리가 없다.

부처를 논하는 屠門談佛(도문담불)도 어울리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우리 속담을 한역한 ‘旬五志(순오지)’에는 ‘개백정보고 살생하지 말란다’고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비어를 등장시켰지만 더 앞서 조선 전기 문신 徐居正(서거정)의 ‘太平閑話滑稽傳(태평한화골계전)’에 재미있는 이야기로 등장한다.

내용을 간단히 보자. 서울서 경주로 내려간 젊은이가 관아의 한 요염한 창기에게 홀딱 반했다. 상경할 때 서럽게 우는 창기에게 보따리를 털어 주었으나 재물을 원하지 않는다며 앞니 빼어주기를 원했다. 할 수 없이 이를 빼어주고 온 젊은이는 이 창기가 다른 남자를 사귄다는 소식을 들었다. 화가 치민 젊은이는 하인을 시켜 앞니를 찾아오도록 시켰다. 하인이 찾아가니 창기가 비웃으며 말했다. ‘어리석은 어린놈이 백정에게 살생하지 말라고 타이르고, 창녀보고 예절을 갖추라고 하는 격이니 바보 아니면 망령든 놈이로다(癡孩子 屠門戒殺 娼家責禮 非愚則妄/ 치해자 도문계살 창가책례 비우즉망).’ 그러면서 자루를 던져 주니 그 속에는 치아가 가득했다.

자기만 사랑한다고 살살대던 창기가 스쳐간 남자에게서 하나씩 얻은 것이 한 자루였다. 기생에게 예가 없다고 꾸짖어봐야 효과 없다는 娼家責禮(창가책례)도 여기서 나왔다. 한 사람이 ‘앞니가 확 트이고 까까머리 되는 것은 장수의 조짐(齒豁頭童是壽徵/ 치활두동시수징)’이라 놀려도 할 말이 없게 됐다. 나라의 앞일을 항상 걱정하는 우리국회는 다른 정파의 의원들과 일치하는 의견이 거의 없다. 급박한 일이라 합의를 하고서도 돌아서면 자기 당의 이익만 따진다. 이런 국회에서 화합을 바라는 것은 어디에 훈계를 하는 것과 같지 않을까. / 글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고명사의顧名思義 - 이름을 돌아보고 뜻을 생각하다.

고명사의顧名思義 - 이름을 돌아보고 뜻을 생각하다.

고명사의(顧名思義) - 이름을 돌아보고 뜻을 생각하다.

돌아볼 고(頁/12) 이름 명(口/3) 생각 사(心/5) 옳을 의(羊/7)

이름을 남기려는 욕망은 누구나 갖고 있다. 이 난에도 더러운 이름이나 명예스런 이름이나 오래 간다는 遺臭萬年(유취만년), 流芳百世(유방백세)이 있다. ‘사람은 죽으면 이름을 남기고 범은 죽으면 가죽을 남긴다’는 우리 속담과 똑같은 豹死留皮 人死留名(표사유피 인사유명/ 표범은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란 격언도 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생전에 보람 있는 일을 해놓아 후세에 명예를 떨치는 것임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어떤 일을 당하여 자신의 명예를 더럽히는 일이 아닌지 돌이켜 보고(顧名), 또한 의리에 어긋나는 일이 아닌지 생각(思義)한다는 것이 이 성어다.

見危授命(견위수명)과 見利思義(견리사의)를 연상시키는 말이지만 孔子(공자)님 말씀은 아니고 王昶(왕창, 昶은 해길 창)이란 학자가 한 말이다. 그는 三國時代(삼국시대) 曹操(조조)의 아들 曹丕(조비)의 치세 때 태자의 스승으로 있었다.

왕창은 명예와 절조를 중시하여 아들이나 조카의 이름을 지을 때도 늘 그 의미를 생각했다. 하루는 아들과 조카를 불러 말했다. ‘너희들의 이름을 玄默沖虛(현묵충허)란 네 글자를 이름으로 삼은 것은 명예와 의리를 중시하게 하려고 한 것이니 어겨서는 안 된다(故以玄默沖虛爲名 欲使汝曹顧名思義 고이현묵충허위명 욕사여조고명사의 불감위월야). 무릇 모든 사물은 빨리 성공하면 빨리 망하고, 늦게 진출하면 좋게 끝나는 법이다.

아침에 피는 꽃은 저녁엔 시들고, 무성한 송백은 혹한에도 쇠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경솔하게 타인을 비방하거나 칭찬하는 것은 삼가야하며, 다른 사람이 자신을 비난하면 물러나 먼저 반성하라고 했다. 다른 사람이 한 얘기가 맞으면 비난할 필요가 없고, 틀리면 자신에게 손해날 일이 없으니 보복할 필요도 없다不敢違越也/ 고 가르친다 / 글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운을 부르는 풍수인테리어 기법

운을 부르는 풍수인테리어 기법

운을 부르는 풍수인테리어 기법

거실 풍수인테리어 기법 ⑨

거실은 가족이 모여 대화를 나누고, 휴식을\xa0얻는\xa0공간이기도 하다. 또한 집 안의 중심이자 애정 운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손님을 맞이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거실에 향기 좋고, 잎이 많은 식물이나 꽃을 놓거나 꽃 그림을 걸어두면 애정 운이 상승한다. 거실의 운기를 좋게 하기\xa0위해서는 잎이 많은 관엽 식물을\xa0햇볕이 잘 들지 않는 곳에 키우도록 해야 한다.

특히 부와 명예, 부부 화합을 가져다주는 모란꽃이나 주황색의 장미꽃을 놓아두면 좋다.

식물은 가전제품의 전자파를 차단해주는 중요한 역할도 하지만, 시든 꽃이나 잎이 마른 꽃은 운을 나쁘게 하므로 반드시 치우는 것이 좋다.

참고로 미세먼지 및 공기 정화 식물로 너무 지나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놓아두면 좋은 식물로는 행잉 플랜트, 이오난사 틸란드시아, 몬스테라, 극락조, 테이블 야자, 스투키, 크루시아, 크로톤, 셀렘 필로덴드롬, 보스턴 고사리, 아레카 야자, 보석 금전수 등이 있다.

♣ IFSA 국제풍수협회 선정 2018 대한민국 최고 풍수인테리어 전문가 / 문의 : 010-2432-5522

절발역주截髮易酒 - 머리카락을 잘라 술과 바꾸다, 자녀에 대한 지극한 정성

절발역주截髮易酒 - 머리카락을 잘라 술과 바꾸다, 자녀에 대한 지극한 정성

절발역주(截髮易酒) - 머리카락을 잘라 술과 바꾸다, 자녀에 대한 지극한 정성

끊을 절(戈/10) 터럭 발(髟/5) 바꿀 역, 쉬울 이(曰/4) 술 주(酉/3)

동요에 나오는 대로 높고 높은 하늘보다, 넓고 넓은 바다보다 더 높고 넓은 것이 어머니 은혜다. 자식을 낳고 길러준 위에 바르게 커나가도록 자신은 모든 것을 희생하기에 한 사람의 훌륭한 어머니는 백 사람의 교사에 필적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자식을 위해서라면 어떤 고통도 감수한다. 여성들이 假髮(가발)을 위해 애지중지하던 긴 머리카락을 싹둑 잘라 자녀의 학비로 보태던 때가 불과 수십 년 전이다. 눈물겨운 削髮母情(삭발모정)이다. 예로부터 곳곳에 전하던 이야기인데 유래가 있는 것으로는 陶侃之母(도간지모)가 처음이 아닌가 한다.

중국 東晉(동진)의 무장으로 유명한 陶侃(도간, 257 ~ 332, 侃은 강직할 간)은 어려서 아버지를 잃고 고생을 많이 했으나 홀어머니 밑에서 반듯하게 자랐다. 또 음양지리에 능통하고 근면역행하여 주변의 신망을 얻었다. 40년간 將相(장상)의 자리에 있으면서 크고 작은 반란을 진압하여 왕실을 위해 충성을 바친 도간은 바로 陶淵明(도연명)의 증조부이기도 하다. 그가 젊었을 때 이야기에서 성어가 나왔다. 어머니 湛氏(담씨, 湛은 즐길 담)가 급작스럽게 찾아온 아들의 친구에 대접할 것이 없어 쩔쩔매다 머리카락을 잘라(截髮) 술을 바꿔(易酒) 와서 곤란한 지경을 벗어나게 했다.

唐(당)나라 房玄齡(방현령) 등이 엮은 ‘晉書(진서)’ 도간전에 내용이 실려 있다. 도간의 친구 范逵(범규, 逵는 길거리 규)는 먼저 孝廉科(효렴과)에 발탁된 인재였는데 어느 날 갑자기 집으로 찾아왔다. ‘급작스러운데다 집이 가난하여 아무 음식도 대접할 것이 없었다. 도간의 어머니는 양 갈래 머리카락을 잘라내어 술과 안주로 바꿔 온 뒤 대접했다(時倉卒無以待賓 其母乃截髮得雙髟皮 以易酒肴/ 시창졸무이대빈 기모내절발득쌍표피 이역주효).’ 髟는 늘어질 표. 친구 모친의 정성에 감복한 범규는 뒷날 도간을 중앙에 추천하여 세상에 이름을 날리게 하는데 도움을 줬다.

자기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부모는 없을 것이다. 무조건 자기 자식을 사랑하는 慈母(자모)에 비해 賢母(현모)는 옳게 가르치는 어머니다. 잘못된 길로 빠질까 항상 노심초사하며 사랑의 매도 들 줄 아는 어머니다. 도간의 어머니는 좋은 친구를 만나도록, 또 그 친구에 체면 빠지지 않도록 정성을 기울였다. 오늘날 어머니는 귀한 자녀를 위해 희생을 하면서도 기죽을까봐 옳을 길로 가는 교육은 뒷전인 경우가 많다. 한두 명인 자녀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해도 다른 사람에 피해를 주고 공정한 기회를 짓밟는 것을 배우고선 바르게 클 수가 없다. / 글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백팔번뇌百八煩惱 – 사람이 지닌 108가지의 번뇌

백팔번뇌百八煩惱 – 사람이 지닌 108가지의 번뇌

백팔번뇌(百八煩惱) – 사람이 지닌 108가지의 번뇌

일백 백(白/1) 여덟 팔(八/0) 번거로울 번(火/9) 번뇌할 뇌(心/9)

심신을 시달리게 하는 괴로움이 煩惱(번뇌)다. 마음을 맑게 하여 涅槃(열반)에 이르게 하는 불교에서 그것을 방해하는 것을 번뇌라 했다. 고통을 주다, 괴롭히다, 아프게 하다, 고통을 야기하다, 괴로워하다 등을 의미하는 범어에서 나왔다고 한다. 보통 사람에게 마음이나 몸을 괴롭히는 노여움이나 욕망 등이 끊이지 않겠지만 중생들의 한량없는 번뇌가 108가지나 된다고 하니 놀랍기만 하다.

108이란 숫자는 원래 많다는 뜻으로 씌었다고 하며 百八結(백팔결)이나 百八結業(백팔결업)이라고도 한다. 불교도가 아니라도 이 말이 친숙한 것이 기도할 때 백팔배를 드리고 108개의 구슬을 꿴 念珠(염주)로 기원한다. ‘百八煩惱(백팔번뇌)’는 崔南善(최남선)이 1925년 발행한 시조집 이름이기도 하다.

108이란 숫자는 어디에서 나왔을까. 불교의 교리 발달과 함께 그 산출법이 여러 가지로 생겨났는데 대체적으로 많이 알려진 방법을 보자. 우리 몸에는 대상을 깨닫는 여섯 가지 작용이 있는데 이것의 근원이 눈, 귀, 코, 혀, 몸, 뜻 등의 六根(육근)이다.

눈으로 보는 眼識(안식), 귀로 듣는 耳識(이식), 코로 냄새 맡는 鼻識(비식), 혀로 맛보아 아는 舌識(설식), 몸으로 느끼는 身識(신식), 그리고 마음으로 느끼는 意識(의식)이 그것이고 六識(육식)이라 한다. 이들이 감각을 느낄 대 각각 좋거나 나쁘거나 좋지도 싫지도 않은 세 가지 인식 작용을 하게 되는데 계산하면 6×3 하여 18가지가 된다. 이 각각의 것을 탐하는지 탐하지 않는지에 따라 갈라지므로 18×2 하면 36가지가 된다. 이것을 과거, 현재, 미래 즉 前生(전생)과 今生(금생), 來生(내생)의 3세계를 곱하면 36×3 하여 모두 108이 나온다.

불교에서 어떻게 수행을 해서 번뇌를 원천적으로 제거할 것인가를, 사고의 영역과 실천의 영역으로 나누어 산출하는 다른 방법도 있다고 한다.

이렇게 많은 번뇌를 모두 안다고 하여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 않아도 괴로움이 많은데 번뇌를 더할 뿐이다.

다만 이것은 인간의 번뇌를 108종으로 세분한 것에 불과하고 근원은 하나로 모아진다고 본다. 그것은 모든 번뇌가 본래의 자기인 一心(일심)을 잃는데서 오는 것이므로 무슨 일에서나 본심을 잃지 않는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다. 일시 유혹에 넘어가 본심을 잃더라도 빨리 평정을 되찾는 것이 번뇌를 벗어나는 길이 될 수 있다. / 글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선유자익善游者溺 - 헤엄 잘 치는 사람이 물에 잘 빠진다.

선유자익善游者溺 - 헤엄 잘 치는 사람이 물에 잘 빠진다.

선유자익(善游者溺) - 헤엄 잘 치는 사람이 물에 잘 빠진다.

착할 선(口/9) 헤엄칠 유(氵/9) 놈 자(耂/5) 빠질 닉(氵/10)

무슨 일에서나 처음 배운 초보자는 조심스럽다. 자신의 실력을 알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수준에 오르면 남에게 과시하고 싶어진다. 이럴 때 자만하면 큰 화가 기다린다. ‘헤엄 잘 치는 놈 물에 빠져 죽고 나무에 잘 오르는 놈 나무에서 떨어져 죽는다’는 우리 속담과 꼭 맞아 떨어진다.

나무를 잘 타는 원숭이가 떨어질 때가 있듯, 헤엄 잘 치는 사람은 자신의 능력을 과신한 나머지 물에 빠질 수가 있음을 경계한 말이다. 아무리 익숙하고 잘하는 사람이라도 간혹 실수할 때가 있으니 실력이 늘수록 겸손하라고 이 성어는 가르친다, 善游者溺 善騎者墮(선유자익 선기자타)라고 대구까지 합쳐 명언으로 서예에 자주 사용되기도 한다.

재주만 믿고 자만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은 여러 곳에서 찾을 수 있다. 老子(노자)의 제자인 文子(문자)의 ‘通玄眞經(통현진경)’에 나타난다고 하고 ‘韓非子(한비자)‘의 難勢(난세)편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있다. 제일 자주 인용되는 것은 중국 前漢(전한)의 淮南王(회남왕) 劉安(유안)이 빈객과 方術家(방술가) 수천 명을 모아서 편찬한 책 ’淮南子(회남자)‘의 구절이다.

‘대체로 헤엄 잘 치는 사람이 물에 빠지고, 말 잘 타는 사람이 말에서 떨어지는 것은 좋아하는 것을 즐기다가 그렇게 되는 것으로서 도리어 화를 자초한 것이다. 그러므로 일을 좋아하는 사람은 반드시 해를 입고 이익을 다투는 사람은 반드시 궁핍해진다(夫善游者溺 善騎者墮 各以其所好 反自爲禍 是故好事者 未嘗不中 爭利者 未嘗不窮也/ 부선유자익 선기자타 각이기소호 반자위화 시고호사자 미상부중 쟁리자 미상불궁야).

” 제일 첫머리 原道訓(원도훈)에서는 善遊者溺(선유자익)으로 나와 있는데 遊(놀 유)는 논다는 뜻으로는 游(헤엄칠 유)와 통용되지만 헤엄친다는 뜻이 잘 통하므로 游로 쓰는 것이 옳겠다. 또 착할 善(선)자가 잘한다는 뜻으로 많이 쓰이는 것은 善戰(선전)이 잘 싸움, 善防(선방)이 잘 막아냄 등에서 용례를 볼 수 있다. / 글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도리만천하桃李滿天下 - 복숭아와 오얏이 가득하다, 우수한 문하생이 많다

도리만천하桃李滿天下 - 복숭아와 오얏이 가득하다, 우수한 문하생이 많다

도리만천하(桃李滿天下) - 복숭아와 오얏이 가득하다, 우수한 문하생이 많다

복숭아 도(木/6) 오얏 리(木/3) 찰 만(氵/11) 하늘 천(大/1) 아래 하(一/2)

우리나라 제2의 大姓(대성)인 李(이)가 ‘오얏 리‘인 줄은 모두 안다. 오얏이 무엇인지는 그만큼 알지 못하고 넘어간다. 오얏은 자두의 옛말이다. 자주색 복숭아 紫桃(자도)에서 나온 말로 살구보다 조금 크고 껍질 표면은 털이 없이 매끈한데다 맛은 시큼하며 달콤하여 대접받은 과일이다. 오얏나무 아래선 군자라도 열매에 욕심을 내는지, 의심을 받지 않아야 한다는 李下不整冠(이하부정관)이란 성어는 유명하다. 복숭아와 오얏이란 桃李(도리)는 꽃이나 열매가 좋아 그냥 있어도 찾아오는 사람이 많아서 그 밑으로는 길이 저절로 생긴다는 桃李不言下自成蹊(도리불언하자성혜)란 명언도 남겼다.

인재를 천거하거나 과거 등을 통해 발탁한 어진 인물을 복숭아와 오얏꽃에 비유하기도 했다. 많은 사람이 그 나무 아래로 모여들기 때문에 후진을 교육하는 일, 거기서 나아가 사제지간의 뜻도 생겼다. 복숭아와 오얏(桃李)이 천하에 가득하다(滿天下)는 이 말은 재주나 풍모가 뛰어난 문하생이 많은 것을 나타냈다. 桃李滿門(도리만문), 桃李門前(도리문전), 滿門桃李(만문도리)라 써도 같고, 학식과 능력이 뛰어난 제자를 가리킬 때는 門墻桃李(문장도리)라 했다.

이 성어가 더욱 잘 알려지게 된 것은 唐(당)나라의 명신 狄仁傑(적인걸, 630~700)의 고사에서다. 그는 則天武后(측천무후)가 세운 後周(후주)의 재상이었는데 인재를 발탁하여 당 왕조의 부활에 공이 컸다. 최고의 재판관인 大理丞(대리승)을 맡았을 때는 공평무사하게 일을 처리하여 주위의 칭송이 자자했다. 어느 때 측천무후가 尙書郞(상서랑)이란 자리에 인물을 추천하라고 하자 아들 光嗣(광사)를 내세웠다. 처음 의혹을 샀지만 아들이 능력을 발휘하여 더 큰 믿음을 얻었다. 이후 적인걸이 추천한 사람들이 실권을 장악하게 됐다. 사람들이 말했다. ‘천하의 인재들이 모두 공의 문하에 있구려(天下桃李 悉在公門矣/ 천하도리 실재공문의).’ 悉은 다 실. ‘資治通鑑(자치통감)’ 唐紀(당기)에 나온다.

덕망이 높고 학식이 뛰어난 스승 아래에는 제자들이 구름같이 모인다. 지역마다 큰 학자를 중심으로 학파를 이루기도 한다. 그 제자들이 가르침을 받아 더 큰 학자가 되기도 한다. 무조건 스승을 답습하지 않고 발전시킨 때문이다. 오늘날 이런 학파를 이끄는 학자들은 대학과 대학원이 중심이 되어 활동하고 있다. 그런데 간간이 제자들을 노예처럼 혹사하는 일이 벌어져 학식은 몰라도 덕망까지 갖춘 스승이 드물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인재가 계속하여 배출될 길을 막는 행위다. / 글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부창부수夫唱婦隨 - 남편이 주장하고 아내가 이에 잘 따름

부창부수夫唱婦隨 - 남편이 주장하고 아내가 이에 잘 따름

부창부수(夫唱婦隨) - 남편이 주장하고 아내가 이에 잘 따름

지아비 부(大/1) 부를 창(口/8) 며느리 부(女/8) 따를 수(阝/13)

부부는 二身同體(이신동체)라고 했다. 두 사람이 합쳐 1 1=2가 아니라 1 1=1이 되는 것은 각각 개성이 반만 남게 되기 때문인데 그것이 사랑이라고 一石(일석)이 풀이한 적이 있다. 속담에 ‘내외간 싸움은 칼로 물 베기’란 것이 있다. 물을 칼로 아무리 베어도 흔적이 남지 않고 합쳐지듯이 화합하기 쉬움을 비유한다. 한 몸이 물 베기라고 해서 갈등이 없을 수는 없다. 그래서 부부간의 화합을 바라는 성어가 유난히 많다. 대표적인 것을 든다면 琴瑟相和(금슬상화), 百年偕老(백년해로), 比翼連理(비익연리), 鴛鴦之契(원앙지계), 偕老同穴(해로동혈) 등이다.

지아비가 노래 부르면(夫唱) 아내는 따라 부른다(婦隨)는 이 성어는 부인을 자기의 의견에 따르도록 윽박지르는 남편이 즐겨 내세우는데 사용한다. 하지만 남편이 옳은 의견을 낼 때 아내가 그 뜻에 잘 따라 화합을 이룬다는 뜻이지 男尊女卑(남존여비), 바람을 피우거나 턱없는 뜻에도 잘 따른다는 것이 아님은 물론이다. 중국 周(주)나라 때의 사람 尹喜(윤희)가 지은 ‘關尹子(관윤자)’에서 처음 유래했다. 윤희는 中原(중원)과 關中(관중)을 잇는 험난한 요새 函谷關(함곡관)을 지키는 관리였는데 그곳을 지나던 老子(노자)에게서 道德經(도덕경)을 받았다는 사람으로 알려졌다.

三極篇(삼극편)에 실린 부분을 보자. ‘천하의 이치는 남편이 노래 부르면 아내가 따르고, 수소가 달리면 암소가 뒤쫓으며, 새의 수컷이 울면 암컷이 응한다(天下之理 夫者倡 婦者隨 牡者馳 牝者逐 雄者鳴 雌者應/ 천하지리 부자창 부자수 모자치 빈자축 웅자명 자자응).’ 이러한 까닭으로 성인이 언행을 정하고 현인이 그것을 바로잡는다고 했다. 원문의 倡(창)은 광대, 노래 부른다는 뜻 외에 가무, 연극까지 더 뜻이 넓다. 암소가 내키지 않을 때는 수소를 따라가지 않듯 남편이 끌어도 일방적이지는 않고 사이좋게 잘 화합해야 한다는 뜻을 가졌다.

남남이었던 부부가 부부로 만나 같이 늙으며 같은 무덤에 묻히는 것을 최고의 행복으로 쳤다는 偕老同穴(해로동혈)은 점차 옛 이야기가 되는듯하다. 자식 때문에 산다는 부부가 결혼 시킨 뒤에는 황혼이혼을 하는 부부가 큰 폭으로 는다고 하니 말이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좋은 뜻은 따르고 서로 밀어준다면 노후가 더 행복할 것이다. / 글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