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10일 일요일

언서혼鼹鼠婚 – 두더지의 혼사, 분수에 넘치는 짝을 구함

언서혼鼹鼠婚 – 두더지의 혼사, 분수에 넘치는 짝을 구함

언서혼(鼹鼠婚) – 두더지의 혼사, 분수에 넘치는 짝을 구함

두더지 언(鼠/9) 쥐 서(鼠/0) 혼인할 혼(女/8)

땅 속에 굴을 파서 생활하는 두더지를 나타내는 한자는 鼹(언)외에 鰋(언), 蝘(언) 등 모두 어렵다. 田鼠(전서)나 野鼠(야서)라고도 표현한다. 두더지의 혼인 이란 뜻의 이 말은 아 난에 소개한 적이 있는 野鼠之婚(야서지혼)과 똑 같은 말이다. 두더지가 처음에는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지 않고 분수에 넘치는 짝을 구하다가 결국에는 같은 족속에게로 돌아간다. 짚신이 유리 구두와 짝이 될 수 없듯 자기의 처지를 생각하지 않는 엉뚱한 희망을 갖는 것을 꼬집었다.

의인화된 동물이 주요한 캐릭터로 등장하는 설화가 動物譚(동물담)이다. 우리나라에선 곰과 호랑이가 사람이 되기 위해 동굴에서 경쟁하는 三國遺事(삼국유사)의 檀君神話(단군신화)부터 기원한다고 했다. 그리스의 이솝(Aesop) 우화에 많이 등장하는 동물 이야기가 조선 인조 때 洪萬宗(홍만종)의 문학 평론집 ‘旬五志(순오지)’에도 같이 실려 있는 것이 박쥐의 오락가락과 두더지 혼사다. 짐승과 새 사이에서 자기 이익만을 위해 박쥐가 이리 붙고 저리 붙는 줏대 없는 행동을 하는 것이 蝙蝠之役(편복지역, 蝙은 박쥐 편, 蝠은 박쥐 복)이란 말로 실려 있다.

두더지 한 마리가 새끼를 칠 때가 되어 짝을 구하러 나섰다. 가장 높은 데 살고 있는 하늘에게 먼저 청혼을 했다. 그러자 하늘은 자신이 온 세상을 총괄하고 있기는 하지만 해와 달이 아니면 덕을 드러낼 수 없다고 했다. 그길로 해와 달에게 혼인해 줄 것을 청하니 자기를 가리는 구름보다 못하다고 했다.

이번에는 구름이 바람 한 번 불면 흩어진다고 반대하고, 다시 바람에게 가서 혼인을 청하니 밭 가운데 있는 돌부처는 넘어뜨릴 수가 없다며 또 거절당했다. 돌부처에 찾아가니 이렇게 말했다. "내가 비록 거센 바람도 무섭지 않지만 오직 두더지가 내 발밑을 뚫고 들어오면 바로 넘어지고 말지(我雖不畏風 惟野鼠 穿我足底 則傾倒/ 아수불외풍 유야서 천아족저 즉경도).‘

부지런히 좋다고 생각하는 곳을 찾아가 청혼해도 결국은 두더지가 가장 좋은 배필이라는 소리를 듣고선 자기가 세상에서 제일 높다고 기고만장했다. 재산이나 지위가 턱없이 차이나는 집안과 결혼을 했다고 처음에 으스대다가 나중에는 불행으로 결말이 나는 것을 종종 본다. “자기보다 뛰어난 상대는 반려가 아니고 주인을 구하는 것”이란 격언이 실감난다. / 글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전거후공前倨後恭 - 전에는 거만하다 뒤에는 공손하다, 처지에 따라 태도가 바뀌다. 

전거후공前倨後恭 - 전에는 거만하다 뒤에는 공손하다, 처지에 따라 태도가 바뀌다. 

전거후공(前倨後恭) - 전에는 거만하다 뒤에는 공손하다, 처지에 따라 태도가 바뀌다.\xa0

앞 전(刂/7) 거만할 거(亻/8) 뒤 후(彳/6) 공손할 손(心/6)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나 평소 말하는 대로 행동하면 知行合一(지행합일)이고 言行一致(언행일치)가 된다. 겉과 속이 같아야 도리를 다한 사람이라 우러름 받는다. 하지만 이러한 사람보다 겉 다르고 속 다른 속물이 더 많았기에 이에 관한 말이 압도적이다.

겉으로 꿀 바른 소리를 하고선 돌아서서 남을 해친다고 口蜜腹劍(구밀복검)이나 綿裏藏針(면리장침), 笑裏藏刀(소리장도) 등이 있다. 뱀의 마음에 부처의 입 蛇心佛口(사심불구)도 같다. 이보다는 덜해도 뒤에서는 돌아서는 面從腹背(면종복배)나 羊頭狗肉(양두구육)도 表裏不同(표리부동)하기는 마찬가지다.

이전에는 거만하게 우쭐거리다가(前倨) 나중에는 공손하다(後恭)는 이 말은 상대의 입지에 따라 대하는 태도가 백팔십도 바뀌는 것을 말한다. 중국 戰國時代(전국시대)의 蘇秦(소진)은 張儀(장의)와 함께 말 잘 하는 사람의 대명사였다. 소진은 당시의 강국 秦(진)에 맞서려면 작은 나라가 연합해야 한다는 合縱策(합종책)을 주장하여 楚燕齊韓魏趙(초연제한위조)의 6국에서 재상이 되었다. 이런 소진도 출세하기 전에는 형편이 말이 아니었다. 처음 실패한 뒤 집에 돌아왔을 때 식구들은 냉대하기만 했고 형수는 밥상을 차려주는 것을 거부했다.

분발한 소진은 집에 틀어박힌 채 책과 씨름하여 독심술을 통달했다. 이후 육국의 왕을 찾아 세 치 혀로 유세한 결과 모두에게 뜻이 받아져 여섯 나라의 재상이 됐다. 한 나라를 방문하는 길에 고향을 지나게 됐는데 일행이 임금에 비길 만큼 성대했다. 집에 들어오자 식구들은 감히 쳐다보지도 못했다.

소진이 웃으면서 형수에게 ‘전에는 그렇게 야박하더니 어찌 이렇게 공손한가요(何前倨而後恭也/ 하전거이후공야)?’라고 말했다. 형수는 넙죽 엎드리며 사과했다. 지위가 높아지고 재물이 많아졌기 때문이라 대답한 데서 位高金多(위고금다)란 성어도 나왔다. ‘史記(사기)’ 蘇秦(소진)열전에 실려 있다.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돈과 지위가 보잘 것 없으면 같은 식구에게도 업신여김을 당하는데 사회서의 인간관계는 훨씬 더하다. 권세가 많은 세력가의 집이나 부자가 된 집에 줄을 대기 위해 門前成市(문전성시)를 이룬다. 그 사람이 별 볼 일없이 되면 문밖에 참새 그물을 칠 정도로 인적이 끊기는 門前雀羅(문전작라) 상태가 된다. 자주 찾아가야 한다는 얘기가 아니고 사람의 처지가 어떠하든 대하는 태도는 다름이 없어야 한다는 말이다. / 글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의즉전의疑則傳疑 - 의심나는 부분은 그대로 전한다.

의즉전의疑則傳疑 - 의심나는 부분은 그대로 전한다.

의즉전의(疑則傳疑) - 의심나는 부분은 그대로 전한다.

의심할 의(疋/9) 법칙 칙, 곧 즉(刂/7) 전할 전(亻/11) 의심할 의(疋/9)

의심스러운 것(疑則)은 의심스러운 그대로 전한다(傳疑)는 이 말은 사서의 서술 원칙으로 지켜져 왔다. 확실한 증거가 없는데 과거의 권위에 의존하거나 또는 독단으로 하다가는 후세에 뒤집힐 수 있으니 판단을 미루는 방법이다. 司馬遷(사마천)이 동양 최고의 역사서로 꼽히는 ‘史記(사기)’를 쓸 때 지켰던 원칙이기도 하다. 많이 알려졌듯이 사기는 사마천의 피땀의 기록이다.

중국 前漢(전한)의 武帝(무제)때 역사가로 기원전 145년께 나서 59세에 이르는 생애를 이 책과 따로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부친 司馬談(사마담)이 천문 역법과 도서를 담당하는 太史令(태사령)으로 있을 때 미완의 사서를 완성하라는 유언을 지키려 혼신을 다했다.

사마천은 이후 郎中(낭중)이 되어 황제를 수행하면서 자료를 모았고, 태사령으로 근무할 때 황실 도서관에서 자료에 파묻혔다. 40대 때인 기원전 99년 최대의 시련이 닥쳤다. 당시 흉노에 항복한 李陵(이릉) 장군의 가족까지 처벌받자 부당하다고 변호한 사마천은 무제의 노여움을 사서 생식기를 잘리는 宮刑(궁형)을 당했다.

치욕을 딛고 옥중에서도 저술을 이어간 그는 마침내 13년여에 걸친 사서를 완성했다. 처음 ‘太史公書(태사공서)’로 탄생한 이 책은 제왕의 연대기인 本紀(본기)부터 뛰어난 인물들의 列傳(열전)까지 130편에 52만 6000여 자에 이르는 방대한 규모였다.

魏晋(위진)시대부터 사기로 칭해진 이 책은 독특한 역사체계 紀傳體(기전체)로 이후 모든 정사의 표준이 됐다. 이 책의 특색은 그것만이 아니다. 각 편마다 太史公曰(태사공왈)이라며 예리한 사안으로 독특한 비판을 가해 중국 역사의 아버지로 불릴 정도였다. 거기에 앞부분에 말한 의심스런 부분을 그대로 전해 판단을 유보한 원칙이다. 三代世表(삼대세표)의 서문에 연월이 없어진 부분이 많다며 이어진다. ‘의심스러운 것은 의심이 나는 대로 전하였으니 그것이 신중할 것이다(疑則傳疑 蓋其愼也/ 의즉전의 개기신야).’

사마천의 사기는 오늘날 사용되는 고사성어의 25%가 여기서 유래했다고 할 정도로 두고두고 읽혔다. 기원전 91년께 초고가 완성됐다고 하니 2000년이 넘게 이어오면서 최고의 사서로 변하지 않는 가치를 지니는 것은 문장이 유려한데다 의심스런 부분을 함부로 재단하지 않은데도 있을 것이다. 한 분야의 권위자가 자기만 아는 원칙을 고집하다 뒤에 부작용이 드러나는데도 굽히지 않는 것을 종종 본다. 역사뿐만 아니라 이런 사람들이 사기에서 배워야 할 점이다. / 글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 봄이 와도 봄 같지 않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 봄이 와도 봄 같지 않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 봄이 와도 봄 같지 않다.

봄 춘(日/5) 올 래(人/6) 아닐 불(一/3) 닮을 사(亻/5) 봄 춘(日/5)

절기로는 봄이 왔어도(春來) 날씨가 계속 추워 봄 같지가 않을 때(不似春) 흔히 쓰는 성어다. 봄이 왔지만 날씨보다 마음이 아직 더 추워 봄을 느끼지 못하는 안타까운 심정을 나타내기도 하는 쓰임이 많은 말이다. 이 성어의 유래를 보면 더욱 안타까운 감정이 느껴지는데 중국 4대 미인인 王昭君(왕소군)이 관련돼 있기 때문이다. 4대 미인은 西施(서시), 초선(貂蟬), 楊貴妃(양귀비)와 함께 왕소군을 든다.

前漢(전한)의 元帝(원제)때 전국서 모집한 후궁들 중에 절세의 미인 왕소군도 끼어 있었다. 왕은 당시 걸핏하면 쳐내려오는 匈奴(흉노) 족을 달래기 위해 반반한 궁녀를 單于(선우, 족장을 높여 이를 땐 단이 아닌 선으로 읽음)에 시집보내기로 하고 궁중화가에게 후보들의 초상화를 그리게 했다.

대부분의 후궁들은 황제의 총애를 받기 위해 화공 毛延壽(모연수)에게 뇌물을 바치며 제 얼굴을 예쁘게 그려달라고 청탁하기 바빴다. 그러나 자신의 미모에 자신이 있었던 왕소군은 화공을 찾지 않아 가장 못나게 그려졌다. 황제는 가장 추한 후궁을 뽑아 오랑캐 땅으로 보내기로 결정했다. 나중에 왕소군이 떠나는 날 실물을 보게 된 원제는 뒤늦게 절색임을 알아보고 화가 나 화공을 참형하고 땅을 치고 후회했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이렇게 漢(한)나라를 떠난 왕소군의 사연은 ‘漢書(한서)’와 ‘後漢書(후한서)’ 등의 사서에는 간략하게 언급되었어도 ‘西京雜記(서경잡기)’ 등 많은 문학양식을 통해 이야기가 보태져 재창조됐고 후대의 李白(이백) 盧照隣(노조린) 등 시인들에게도 좋은 소재가 되어 많은 동정의 시를 남겼다. / 글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근주자적近朱者赤 - 붉은 색을 가까이하면 붉어진다, 주위 환경에 쉽게 물이 든다.

근주자적近朱者赤 - 붉은 색을 가까이하면 붉어진다, 주위 환경에 쉽게 물이 든다.

근주자적(近朱者赤) - 붉은 색을 가까이하면 붉어진다, 주위 환경에 쉽게 물이 든다.

가까울 근(辶/4) 붉을 주(木/2) 놈 자(耂/5) 붉을 적(赤/0)

환경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분에 심어 놓으면 못된 풀도 화초라 한다’는 속담은 못난 사람도 그럴듯한 지위만 얻으면 잘난 사람이 된다는 뜻이다. 환경은 힘이 세다. 강남에서 잘 자라던 귤이 강북으로 옮겨져 환경이 바뀌면 보잘것없는 탱자가 된다. 南橘北枳(남귤북지)다. 유교의 亞聖(아성)인 孟子(맹자)도 어머니의 교육환경을 바꾼 孟母三遷(맹모삼천)이 없었으면 평범하게 자랐을 것이다.

이처럼 환경의 중요성을 말하는 무수한 가르침 중에서 일상에 더 가깝게 인용되는 말이 있다. 검은 먹을 가까이 하면 자신도 검어진다는 近墨者黑(근묵자흑)으로 이는 앞서 소개한 바 있다.

붉은 색을 가까이 하면(近朱) 자신도 붉어진다(者赤)는 말이 이 성어와 함께 항상 붙어 다닌다. 그래서 합쳐 近朱近墨(근주근묵)이라고도 하는데 사실은 이 말이 먼저 등장한다. 붉을 朱(주)는 진한 붉은 색의 수은으로 된 광물 朱沙(주사)를 말하는데 印朱(인주)의 원료다. 이 두 쌍둥이가 처음 등장하는 곳이 중국 西晉(서진) 때의 학자이자 문인이었던 傅玄(부현, 217~278)이란 사람의 ‘太子少傅箴(태자소부잠)’이란 책이다. 그곳에 나오는 내용을 보자.

대체로 쇠와 나무는 일정한 모양이 없어 틀에 따라 둥글게도 될 수 있고 각이 지게도 된다면서 설명한다. ‘붉은 색을 가까이 하는 사람은 붉은 물이 들고, 먹을 가까이 하는 사람은 검은 물이 든다(近朱者赤 近墨者黑/ 근주자적 근묵자흑).’ 그러면서 소리가 고르면 음향도 맑게 울리고 형상이 단정하면 그림자도 곧다(聲和則響淸 形正則影直/ 성화즉향청 형정즉영직)고 했다. 약간 달리 사용된 말도 있다. ‘먹을 가까이하면 반드시 검어지고, 주사를 가까이하면 반드시 붉어진다(近朱必赤 近墨必緇(근주필적 근묵필치)’고 했는데 緇는 ‘검을 치’로 같은 뜻이다.

이 말만큼 환경의 중요성을 말하는 말이 삼밭 가운데 자라는 쑥 蓬生麻中(봉생마중)이란 성어도 있다. 不扶自直(불부자직)이 뒤따르는데 죽죽 곧은 삼밭에 구불구불 자라는 쑥이 있다면 붙들어주지 않아도 저절로 곧게 된다는 의미다. 환경이 인간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환경을 만드는 것이라고 큰소리치는 사람도 있지만 말썽만 부리는 이웃과 함께 산다면 삶이 지옥이다. 자녀가 불량학생과 어울리지 말라고 항상 당부하는 부모의 심정도 나쁜 길로 물들지 않도록 하려는 뜻이다. / 글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일일삼추一日三秋 - 하루가 삼 년 같다, 몹시 애태우며 기다림

일일삼추一日三秋 - 하루가 삼 년 같다, 몹시 애태우며 기다림

일일삼추(一日三秋) - 하루가 삼 년 같다, 몹시 애태우며 기다림

한 일(一/0) 날 일(日/0) 석 삼(一/2) 가을 추(禾/4)

시간은 대체로 귀하고 그래서 빨리 지나간다는 옛말이 많다. 시간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고 화살처럼 날아가 일생도 문틈으로 지나가는 흰 망아지와 같다는 白駒過隙(백구과극)이란 말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소용없는 百年河淸(백년하청)은 제외하고, 무엇을 기대하거나 보고 싶은 연인을 기다릴 때는 반대로 시간이 흐르지 않는다.

사람을 기다리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라는 百難之中 待人難(백난지중 대인난)이란 말이 있으니 말이다. 하루를 보내는 것(一日)이 세 해의 가을(三秋)을 지내는 것과 같다는 표현이 이 어려움을 실감나게 드러냈다. 一日如三秋(일일여삼추)나 더 짧은 15분 정도의 一刻如三秋(일각여삼추)라고도 한다.

春秋時代(춘추시대)의 민요를 모은 ‘詩經(시경)’에 이 말이 처음 등장한다. 나라 일로 멀리 타국에 간 남편을 기다리는 아낙의 마음을 노래한 ‘王風(왕풍)’ 采葛(채갈)편에서다. 풍채 采(채)는 캔다는 採(채)의 뜻도 있다. 임을 기다리는 것은 하루가 마치 三秋(삼추)와 같이 세월이 더디 간다며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한다. 삼추는 孟秋(맹추, 음력 7월), 仲秋(중추, 8월) 季秋(계추, 9월)의 석 달을 말한다고 하고, 가을이 세 번이므로 9개월을 가리킨다고도 한다. 곡식은 1년에 가을에 한 번 익으므로 삼추는 3년이라고 해석한다. 어쨌든 기다리는 세월은 길게만 느껴지는 것에는 차이가 없다.

전문은 짤막하다. ‘칡 캐러가세, 하루를 못 보면 석 달이나 된 듯(彼采葛兮 一日不見 如三月兮/ 피채갈혜 일일불견 여삼월혜), 쑥 캐러가세, 하루를 못 보면 아홉 달이나 된 듯(彼采蕭兮 一日不見 如三秋兮/ 피채소혜 일일불견 여삼추혜), 약쑥 캐러가세, 하루를 못 보면 삼년이나 된 듯(彼采艾兮 一日不見 如三歲兮/ 피채애혜 일일불견 여삼세혜).’ 兮는 어조사 혜, 蕭는 맑은대쑥 소, 艾는 약쑥 애.

처음 남녀 간에 헤어져 있을 때 썼던 표현이 오늘날에는 사람이나 사물이 도착하기를 애타게 기다리는 심정을 나타내는 말로 확대됐다. 사람을 기다릴 때 시간은 상대적이다. 약속한 사람이 오지 않을 때 기다리는 시간은 더디 가고, 약속했던 상대는 시간을 지키려고 해도 다른 일로 해서 빨리 지나가게 마련이다. 애태우는 사람을 위해 계획을 잘 세워 시간을 지키도록 하는 것이 최선이다. / 글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음식남녀飮食男女 - 음식과 남녀관계, 식욕과 성욕

음식남녀飮食男女 - 음식과 남녀관계, 식욕과 성욕

음식남녀(飮食男女) - 음식과 남녀관계, 식욕과 성욕

마실 음(食/4) 밥 식(食/0) 사내 남(田/2) 계집 녀(女/0)

마시고 먹는 飮食(음식)과 남자와 여자 男女(남녀)를 합친 이 말은 성어로 보다 제법 오래됐어도 영화로 더 친숙할 듯하다. 대만 출신의 감독 리안(李安/ 이안)이 미국 할리우드로 건너가 연출한 영화는 제명도 그대로 번역한 ‘Eat Drink Man Woman’이었다. 1995년도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후보에도 올랐던 이 영화는 중국 전통 요리사 출신의 아버지와 장성한 세 딸과의 결혼관, 가족관 등 세대 간의 갈등을 다뤄 화제를 모았다. 같은 이름의 드라마가 나오고, 유명 맛집의 이름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이처럼 친숙한 이름의 이 성어가 인간의 본성을 나타내는 말이라 하니 의외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지만 불교에서 말하는 五慾(오욕)은 재욕, 색욕, 식욕, 명예욕, 수면욕의 다섯 가지다. 이 중 재물과 명예에 대한 욕심은 다른 것이 이뤄진 연후에 따르는데 비해 수면과 함께 마시고 먹는 식욕은 인간의 생존을 위한 것이고, 남녀 간의 본능인 색욕은 종족 보존을 위한 근원적인 욕망이다. 식욕을 말하는 음식과 색욕의 근원인 남녀를 합친 이 성어가 인간의 본성을 뜻한 것은 아주 오래된 ‘禮記(예기)’에서 비롯됐다.

五經(오경)의 하나인 예기는 예의 근본정신에 대한 이론과 실제를 다뤄 大學(대학)과 中庸(중용)이 四書(사서)로 독립되기 전에는 여기에 포함됐다. 모두 49편 중 제도와 관례의 변화를 언급한 禮運(예운)편에 孔子(공자)가 한 말로 나온다. 인간에겐 喜怒愛懼愛惡欲(희로애구애오욕)의 七情(칠정)이 있다면서 이어진다.

‘음식과 남녀의 관계에는 사람이면 누구나 크게 탐하고, 죽음과 고난은 누구나 크게 싫어한다(飲食男女 人之大欲存焉 死亡貧苦 人之大惡存焉/ 음식남녀 인지대욕존언 사망빈고 인지대오존언).’ 孟子(맹자)에도 ‘식욕과 색욕이 인간의 본성이다(食色性也/ 식색성야)‘란 말이 실려 있다.

인간의 본성이라고 모두 본능이 시키는 대로 살아간다면 난장판 사회가 될 수밖에 없다. 힘이 있다고 재물이 많다고 욕심대로 살아가려다 끊임없는 싸움이 일어난다. 짐승과 다른 것이 인간은 절제를 안다는 것이다. 절제를 잘 하는 자가 가장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기본을 무시하고 욕심이 더 큰 욕심을 불러 결말이 비참해지는 것을 수시로 본다. 모든 방면에 본보기가 돼야 할 지도층에서 추문이 잊을만하면 잇따르니 더 문제다. / 글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호접지몽胡蝶之夢 - 나비에 관한 꿈, 物我一體물아일체의 경지, 인생의 덧없음

호접지몽胡蝶之夢 - 나비에 관한 꿈, 物我一體물아일체의 경지, 인생의 덧없음

호접지몽(胡蝶之夢) - 나비에 관한 꿈, 物我一體(물아일체)의 경지, 인생의 덧없음

되 호(肉/5) 나비 접(虫/9) 갈 지(丿/3) 꿈 몽(夕/11)

두 쌍의 커다란 날개를 휘저으며 바쁘게 꽃 사이로 드나드는 조그만 곤충, 나비는 예로부터 많이 민요로 불렸고 시인묵객들이 다투어 묘사했다. ‘예쁜 것도 찾고 향기로운 것도 찾으며, 한가한 것 같기도 하고 바쁜 것도 같네(尋艶復尋香 似閒還似忙/ 심염부심향 사한환사망)’라고 노래한 唐(당)의 시인 鄭谷(정곡)도 그 중 하나다.

이런 작품 외에 잘 알려진 것이 나비효과다. 기상관측 때 처음 이야기됐다고 하는데 브라질에 있는 나비의 날갯짓이 미국 텍사스에 토네이도를 발생시킬 수도 있다는 과학이론이다. 작은 변화가 결과적으로 엄청남 변화를 몰고 왔을 때 자주 인용된다.

성어 중에서는 나비의 꿈인 莊子(장자) 이야기가 유명하다. 장자는 이름이 周(주)로 史記(사기) 老子韓非(노자한비) 열전에 소개되어 있다. 孟子(맹자)와 비슷한 시대의 사람으로 벼슬길에 들지 않고 은거하면서 저술에 전념했다. 학문은 老子(노자)를 근원으로 物我(물아)가 동등하여, 자연 그대로 살아가는 無爲自然(무위자연)을 주창했고 재미있는 우화를 많이 등장시켰다. 호랑나비인 蝴蝶(호접)으로도 쓸 수 있는 이 말은 ‘장자’ 齊物論(제물론)에 나온다. 부분을 인용해 보자.

‘장주가 나비된 꿈을 꾼 것인지, 아니면 나비가 장주가 된 꿈을 꾼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분명히 구분이 있을 것이니, 이를 일러 만물의 변화라고 하는 것이다(不知周之夢爲胡蝶與 胡蝶之夢爲周與 周與胡蝶 則必有分矣 此之謂物化/ 부지주지몽위호접여 호접지몽위주여 주여호접 즉필유분의 차지위물화).’ 장자가 꿈에 나비가 되어 훨훨 날아다니다가 깬 뒤, 자기가 꿈에 호랑나비가 되었던 것인지 호랑나비가 꿈에 장자가 되었는지 모르겠다고 한 데서 彼我(피아)의 구별이 안 되는 것, 또는 물아일체의 경지를 비유하는 말로 사용됐다. 나아가 오늘날에는 인생의 덧없음을 비유하는 말로도 쓰인다.

한 가지 작은 계기가 큰 사건으로 확대되는 것은 검은 유착에서도 볼 수 있었다. 나비효과나 장자의 나비와는 관련이 없어도 작은 사건에서 번지는 것이나, 작은 욕심에서 비롯돼 평생 공적이 와르르 무너지는 것을 보면 덧없기도 하다. / 글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금미지취金迷紙醉 - 금종이에 미혹되다, 지극히 사치스러운 생활

금미지취金迷紙醉 - 금종이에 미혹되다, 지극히 사치스러운 생활

금미지취(金迷紙醉) - 금종이에 미혹되다, 지극히 사치스러운 생활

쇠 금(金/0) 미혹할 미(辶/6) 종이 지(糸/4) 취할 취(酉/8)

사람이 최소한의 의식주만 해결되면 만족하라며 절제와 검소를 강조한 말이 많다. 하지만 욕심은 끝이 없는 법이라 호화 사치를 표현하는 성어도 수두룩하다. 비단 옷과 흰 쌀밥도 사치였던 錦衣玉食(금의옥식)은 옛날 어려웠을 때라 해도, 금을 흙덩이로 진주를 자갈같이 여긴 金塊珠礫(금괴주력)의 秦始皇(진시황)이나 숯 대신 밀랍으로 땔감을 대신한 以蠟代薪(이랍대신)의 晉(진)나라 거부 石崇(석숭)에 이르면 사치의 극이다. 이들의 호화생활은 과장에 의한 사치도 있었겠지만 방 안의 기물들을 모두 금종이로 바른 孟斧(맹부)는 실생활이었다.

唐(당)나라 말엽의 명의였던 맹부는 악성 종기인 毒瘡(독창)의 치료에 특히 뛰어났다. 널리 소문이 나자 궁중에도 불려가 당시 19대 황제 昭宗(소종, 재위 888~903)의 진료도 맡게 됐다. 차츰 황궁에서 진료하며 지내는 시간과 횟수가 많아지자 궁내의 장식이나 기물의 배치에도 관심을 갖게 되고 나름의 안목을 기르게 됐다. 北宋(북송)에서 대신을 지냈던 陶谷(도곡, 903~970)이 천문과 지리, 초목 등 각종 사물에 대한 유래를 수록한 ‘淸異錄(청이록)’을 남겼는데 여기에 금종이에 취해 정신이 혼미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훗날 맹부는 왕실을 나와 四川(사천)으로 옮겨 생활하게 되었다. 그는 궁중에서 생활했던 환경을 생각하며 자신의 거처도 똑같이 꾸미고 싶었다. 사방 벽에 황금 칠을 하고 기물마다 금종이로 포장했다. 창문을 통하여 햇빛이 비칠 때면 방안은 온통 금빛으로 가득하여 눈을 뜰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어느 날 한 친구가 그를 찾아왔다가 돌아가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이 방에서 잠시 쉬었는데 그만 금종이에 정신을 빼앗겨 취해 버렸네(此室暫憩 令人金迷紙醉/ 차실잠게 영인금미지취).’ 순서를 바꿔 紙醉金迷(지취금미)로도 쓴다.

호화의 극을 다하면 쇠락이 오는 법이다. 진시황과 석숭은 비참한 말로를 맞았다. 손에 닿는 모든 것을 황금으로 변하게 하는 힘을 갖게 된 그리스 신화의 미다스(Midas)왕도 나중에는 눈앞의 음식을 보면서 굶주렸다. 사치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리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어도 항상 모자라 쩔쩔 매는 생활을 하지만, 절약하여 검소한 생활을 하는 사람은 언제나 여유 있게 살아간다.

菜根譚(채근담)의 가르침 ‘奢者富而不足 何如儉者 貧而有餘(사자부이부족 하여검자 빈이유여)’는 흥청망청 낭비하는 사람들이 명심할 말이다. / 글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이유극강以柔克剛 - 부드러운 것으로 굳센 것을 이기다.

이유극강以柔克剛 - 부드러운 것으로 굳센 것을 이기다.

이유극강(以柔克剛) - 부드러운 것으로 굳센 것을 이기다.

써 이(人/3) 부드러울 유(木/5) 이길 극(儿/5) 굳셀 강(刂/8)

물은 부드럽다. 물은 항상 낮은 곳에 임한다. 하지만 물은 다스리지 못하면 배를 뒤집고 홍수로 휩쓸기도 한다. 물을 부드러움의 상징으로 세상에서 가장 강한 것이라고 깨우친 사람은 老子(노자)다. 지극히 선한 것은 물과 같다고 한 上善若水(상선약수)가 그것이다. 노자는 병석의 스승 常摐(상창, 摐은 칠 창)에게서 혀는 부드러워 남아있고 치아는 단단해서 빠져 없어진다는 齒亡舌存(치망설존)의 교훈을 이어 받았다. ‘道德經(도덕경)’ 곳곳에서 부드러운 것이 약하지 않고 결국은 강한 것을 이겨낸다고 강조했다.

노자가 남긴 무위의 處世訓(처세훈)인 이 책 8장 易性章(역성장)에서 물은 모든 사람이 싫어하는 낮은 곳에 머물기에 가장 도에 가깝다고 했다. 36장 微明章(미명장)에서 부드러운 것으로 강한 것을 이겨낸다는 것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부드럽고 약한 것이 억세고 강한 것을 이긴다(柔弱勝剛强/ 유약승강강). 물고기가 깊은 곳에서 벗어날 수 없듯이 나라를 다스리는 심오한 도리를 함부로 내보여서는 안 된다(魚不可脫於淵 國之利器不可以示人/ 어불가탈어연 국지리기불가이시인).’ 이것을 권도로 해석하는 일면, 나라를 다스리는 道(도)로 풀기도 한다.

78장 任信章(임신장)의 내용은 더 명확하다. ‘천하에 유약하기로는 물보다 더한 것이 없다(天下莫柔弱於水/ 천하막유약어수). 그러나 굳고 강한 것을 꺾는 데는 물보다 더 나은 것이 없다(而攻堅强者莫之能勝/ 이공견강자막지능승). 아무 것도 물의 본성을 대체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以無以易之/ 이무이역지).’ 그러면서 다시 강조한다. ‘약한 것이 강한 것을 이기고, 부드러운 것이 억센 것을 이긴다(弱之勝强 柔之勝剛/ 약지승강 유지승강). 천하에 모르는 사람이 없지만 실천하는 사람이 없다(天下莫不知 莫能行/ 천하막부지 막능행).’

부드러움이 강한 것을 이기듯이 약자가 강자를 이긴다. 억지로 힘으로 복속시키면 겉으로 순종하지만 나중에는 뒤집어진다. 물고기가 물을 떠나 살 수 없듯 사람은 도를 떠나 살 수 없다. 나라를 다스리는 것도 도를 지키지 않고는 오래 가지 못하는 것은 독재가 뒤집힌 각국의 예를 보면 알 수 있다. 작은 조직을 이끌든 큰 나라를 다스리든 물의 부드러움이 강하고 굳셈을 이겨낸다는 점을 깨달아야겠다. / 글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