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11일 월요일

◇ 요즘 명함엔 과장님·부장님 없어요, 기업들 직급파괴

◇ 요즘 명함엔 과장님·부장님 없어요, 기업들 직급파괴

◇ 요즘 명함엔 과장님·부장님 없어요, 기업들 직급파괴

최근 SK이노베이션 직원들과 처음 인사하는 다른 회사 사람들은 당황하는 경우가 많다. 신입부터 부장까지 명함의 직급란에 모두 ‘PM’이라 적혀 있기 때문이다. SK이노베이션은 올해부터 기존 사원부터 부장까지 비(非)임원 네 직급을 ‘PM(Profession Manager)’으로 통일했다.

앞서 2019년엔 상무~부사장 임원 직급은 부사장으로 단일화했다. 회사에 PM-부사장-사장 세 직급만 남게 된 것이다. “명함만 받아선 누가 선임인지, 회사에서 위치가 어디쯤인지 알 수가 없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기업에 ‘직급 파괴’ 바람이 거세다. 예전엔 ‘ΟΟΟ님’ ‘ΟΟΟ 프로’처럼 호칭을 바꾸는 게 유행이었는데, 최근엔 ‘사원·대리·과장··· 상무·전무’로 이어지는 전통적 직급 체계를 없애고 있다. 한화그룹은 계열사별로 기존 직급을 단순화하는 방식의 새로운 인사 시스템을 만들고 있다. 새로 붙이는 이름도 제각각이다. GS칼텍스는 지난해 과장~부장을 ‘책임’이라는 단일 직급으로 했다. 현대차는 1년여 전 사원~대리를 합쳐 ‘매니저’라 부르고 있다. 포스코는 올해부터 임원 내 상무·전무 등의 직급을 완전히 폐지하고, 맡은 보직에 따라 ΟΟΟ 본부장 등으로 하기로 했다.

‘직급 파괴’는 연공서열 문화를 없애고, 인력 배치를 좀 더 유연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 대기업 인사(HR) 담당 임원은 “예전엔 과장급 아래에 차장급을 배치하는 게 껄끄러웠지만 이젠 자연스러워졌다”며 “직급이 아닌 성과에 따른 보상도 정착되고 있다”고 했다.

-조선일보-

노비에서 포도대장까지 4편

■ 노비에서 포도대장까지 4편

■ 노비에서 포도대장까지 4편

여러 야사를 보면 정충신 장군의 인간성도 알 수 있다. 어린 날 거둬주었던 권율을 아버지처럼 여겼으며, 학문으로 인도해준 이항복이 유배지에서 중풍에 걸렸을 때는 유배지에서 함께 생활하며 돌봐줄 정도였다. 또한 이괄의 난에서 공을 세우고도 당쟁을 일삼는 대신들 때문에 그를 챙겨준 ‘장만’ 장군을 끝까지 보필하며 따라다니기도 했다. 은혜를 기억하고 스스로 겸손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덕장(德璋)이라는 칭호까지 들을 정도로 인심을 얻었다.

그는 어렸을 적부터 재주가 뛰어나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아온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그에 관한 많은 설화가 전해진다. ‘계서야담’에는 출생에 관한 이야기가 전해지고, ‘청구야담’과 ‘해동야서’에는 이괄의 난 때의 활약상이, ‘동야휘집’에는 모든 설화가연대순으로 편집되어 전해지고 있다. 문집에 《만운집》, 저서에 이항복이 귀양갈 때 정충신이 수행하며 당시의 상황을 일기로 기록한《백사북천일록》, 《금남집》 등이 있다.

또 한편, 성품이 청렴하여 비리(非理)라는 것을 몰랐기에 가난을 벗어나질 않았다. 심지어 충무공 정충신장군이 유배를 떠났을 때는 가족들이 먹고 살기 힘들어했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져 온다. 그는 부를 축척하고 권력에 아부하는 자들과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전쟁에서는 지장(智將)으로 적진에서는 외교관으로 관리로서는 청렴함을 다했다. 정충신의 충언(忠言)대로 중립외교를 유지하고 북방의 군사를 신경 썼더라면 병자호란은 없었을 지도 모른다. 그는 운 좋게 신분상승을 이룬 인물이 아니고 노력과 성실을 바탕으로 한 유능함과 영특함으로 신분이 상승될 수 있다는 좋은 모범 사례가 되었다.

정충신의 아버지 묘는 광주에 있으나, 그는 서산 땅에서 태어나지 않았어도 그의 아들들에게 유택(幽宅:무덤)을 서산으로 해줄 것을 친히 당부했다고 한다. 그에게 있어 서산은 태어난 곳보다 부모가 묻힌 곳보다 더 귀한 끌림이 있는 곳이었던 것 같다. 장군의 묘는 마힐산의 국사봉 중턱에 부인과 함께 나란히 안장되어 있다. 당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그는 평생을 몸과 마음을 다 하여 나라를 지키고자 했던 충성심으로 가득한 인물이었다. 그의 넋이 대요리 산기슭에서 아직도 이 나라를 걱정하며 있는 듯하다.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노비에서 포도대장까지 3편

■ 노비에서 포도대장까지 3편

■ 노비에서 포도대장까지 3편

정충신이 노비출신이었기에 대신들 중에는 그를 업신여기는 사람도 있었지만, 워낙 총명하여 중국어와 일본어도 능숙하여 명나라와 왜를 오가며 국제 정세를 판단하는 능력도 뛰어난 외교통이었다. 총애하던 권율의 사위가 되고 이항복과는 동서지간이 되었다. 권율의 세 사위는 신립, 이항복, 정충신이다. 권율장군의 인물 보는 안목은 참으로 뛰어난 것 같다.

청의 침략에 방비해야 한다는 정충신의 충고는 무시되고 다시 지방관직으로 밀려났다. 광해군 때는 그나마 후금(청)과의 관계에서 실리외교를 하자는 북인들이 집권하고 있었기에 충무공 정충신 장군의 중립외교관은 비판받지 않았지만, 인조반정으로 들어선 서인정권에서는 탄압이 이어진 것이다. 평안도병마절도사 겸 영변대도호부사가 되었지만, 병을 얻어 관직에서 물러나 요양을 떠났다. 결국 후금의 침략으로 1627년 ‘정묘호란’이 일어났다. 그는 늙은 나이에도 부원수로 임명되어 국가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전쟁은 끝났지만 중앙관리들은 여전히 정신을 못 차리고 정충신을 귀향 보내곤 했다. 청과 외교를 끊는 것은 전쟁을 자초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는 것이 이유이다.

청나라와의 소통 필요성을 주장하며 화의를 요청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당진에 유배되었고, 다시 장연으로 옮겨졌다. 유배에서 풀려난 이듬해 포도대장에 까지 올라 천민으로서는 최고의 성공을 이루어냈다. 뒤이어 경상도병마절도사에 임명되어 다시 지방으로 보내졌으나, 1636년 3월 그가 우려한 대로 조선의 조정에서는 청나라(후금)를 배척하는 주전론(主戰論)이 득세하여 청과 단교(斷交)하는 사신을 보냈고, 후일 병자호란이라는 큰 전란을 겪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여러 번의 역모사건에 억울하게 휘말릴 때마다 인조가 보호해 주긴 했으나, 충무공 정충신 장군의 외교술과 정보탐색 능력을 발휘할 기회는 더 이상 없었다. 정충신의 병이 심해지자 왕이 친히 의관(醫官)에게 명하여 치료에 만전을 기하게 하였으나 효험을 보지 못하고, 1636년 5월 사망하였다. 선조는 내시로 하여금 호상(護喪:장례를 주관)하게 하고 어복(御服)을 내려 수의(禭衣)로 하게 했으며, 관청에서 주도하여 장례를 후하게 치르도록 명하였다.

1685년(숙종 11년) 충무공(忠武公) 시호를 받았다. 충남 당진군 정미면에 거주하던 5세손 정세오(鄭世奧)가 사당을 지었다가 1897년 9세손 정세칠(鄭世七)이 현 위치인 서산시 지곡면 대요리로 옮겨지었다. 1969년에 진충사(振忠祠)로 개칭하여 지금까지 배향(配享:신주를 모심)하고 있다. 이곳에는 중요민속자료 36호로 지정된 유품 5점을 비롯해 그의 유품들을 전시관에 보관하고 있으며, 해마다 양력 4월 25일 유림들과 후손들이 모여 제사를 지내고 있다. 진충사는 1984년 5월 17일 충청남도 문화재 자료 제206호로 지정받았다.

- 4편에 계속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노비에서 포도대장까지 2편

■ 노비에서 포도대장까지 2편

■ 노비에서 포도대장까지 2편

정충신이 나중에 임금의 총애까지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전쟁에 공을 세웠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가 평소에 자신에게도 기회가 오리라는 희망을 잃지 않고 자기 개발에 끊임없이 노력했기 때문이다. 오늘날 많은 이들이 부모와 세상을 원망하고 한탄하지만, 정충신과 같이 언제나 노력하고 성실하게 자신의 능력을 갈고 닦는 자에게는 기회가 찾아왔을 때 놓치지 않고 반드시 잡을 수 있는 법이다. 그러므로 정충신의 사례는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귀감이 되는 일이라 할 수 있다.

1608년 조산보만호에 임명되어 무관으로 활동했고, 1614년(광해군 6년) 8월 27일 위성원종공신 2등(衛聖原從功臣二等)에 책록되었다. 1618년에는 인목대비 폐모론(廢母論)에 반대하다가 북청으로 유배를 가는 스승인 이항복과 함께 북청으로 동행하였다. 1619년 명나라의 요청으로 도원수 강홍립이 출병하였으나 후금에 대패하는 일이 일어나자 여진족의 정황에 밝았던 그가 다시 등용되었다. 워낙 외교술까지 좋았기 때문에 무신이면서도 북방민족과의 외교까지 맡아 일했다.

1621년(광해군 13년) 만포첨사로 국경을 수비했으며, 이 때 왕명을 받고 여진족 진에 들어가 여러 추장을 만나기도 하면서 외교가로서의 면모를 발휘하기도 하였다. 후금에 사신으로 다녀온 후 후금의 침략에 대비하면서 한편으로 조선의 정치적 중립을 주장하였다. 이후 안주목사 겸 방어사가 되었을 때 1623년 인조반정이 일어났으나 직접 가담하지는 않았다. 1624년 이괄의 난이 일어났다. 평안도 병마절도사 이괄은 12000명의 대병력으로 밀고 내려와서 한양까지 점령해 버렸다. 원래 이괄과 남이홍 정충신은 친한 사이였지만 임무에 강직한 정충신과 남이흥은 한양까지 이괄을 추격했다. 도원수 장만(張晩)의 휘하에서 전부대장(前部大將)으로 활약하며 겨우 2천명의 병사로 이괄을 계략에 빠트린 후 황주와 서울 안현에서 싸워 이겨서 진무공신(振武功臣) 1등으로 ‘금남군(錦南君)’에 봉하여졌다. 광주광역시의 옛 전남도청 앞에서 유동 4거리 가는 길인 ‘금남로’는 그의 이름을 딴 것이다. 반란군에게 한양까지 빼앗겼던 인조는 되돌아와서 이들을 치하했다. 이괄의 난을 진압하는 데 앞장선 공으로 충청남도 서산 일대의 토지를 사패지(賜牌地:나라에서 하사받은 땅)로 받게 되었는데, 그의 후손이 서산에 뿌리를 내리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 3편에 계속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노비에서 포도대장까지 1편

■ 노비에서 포도대장까지 1편

■ 노비에서 포도대장까지 1편

‘충무공’ 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누구냐고 물으면, 대부분 이순신장군을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충무공’이라는 시호(諡號:사후 추증)를 받은 사람은 이순신 외에 권율, 김시민, 남이장군 그리고 정충신 등이 있다. 충무공 정충신장군은 한마디로 노비에서 포도대장에 까지 오르는 인생역전을 이룬 인물로, 강직하고 청렴하며 인간적인 사람이었다고 한다.

정충신(鄭忠信:1576년~1636년)의 자는 가행(可行), 호는 만운(晚雲), 본관은 금성 정씨(錦城)이다. 고려의 명장 정지(鄭地)의 후손인 아버지 정윤은 광주 향청(鄕廳)의 좌수(座首)였는데, 어느 날 밤, 무등산 청룡과 북악의 백호가 품에 안기는 꿈을 꾸고 집안의 식비(食婢)와 동침하여 낳은 아들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어머니 영천 이씨가 노비 신분이라 어머니의 신분에 따라 노비가 되는 노비종모법(奴婢從母法)때문에 노비 신분이 되었다. 충신(忠信)이라는 이름은 그의 9대 할아버지인 경렬공 정지(鄭地)장군과 같은 훌륭한 충신(忠臣)이 되라는 뜻에서 그를 아끼던 이항복이 지어준 이름이라 한다. 정충신은 17세 때 임진왜란 중 광주목사 권율의 휘하에 들어가게 되었다. 권율이 의주로 피신해 있는 선조에게 올릴 장계를 전달할 사람을 모집했으나 왜군이 득실거리는 전장을 뚫고 위험한 임무에 응하는 사람이 없었다. 17세의 어린 정충신이 자청(自請)해 나서고는 왜군으로 점령당한 지역을 단신으로 뚫고 선조가 머물고 있던 행재소(行在所)에 무사히 도착하여 임무를 완수하였다. 선조는 그 공으로 정충신을 노비에서 면천시켜주었다. 이 후에도 나이는 어렸지만 민첩하고 영리하여 권율의 신임을 받으며, 적지(敵地)를 정찰하는 연락책으로 활동하였다.

병조판서 이항복(李恒福)이 총명한 그를 아들같이 사랑하며 사서(四書)를 가르쳤는데, 행재소에서 실시하는 무과에 응시하여 병과로 합격하여 무관의 길을 걷게 되었다. 신분이 상승되고 단번에 출세를 한 사람은 교만해지고 초심을 잃는 경우가 많은데, 정충신은 항상 겸손했고, 키는 작지만 씩씩했고 덕장(德璋)이라는 칭송을 들었으며, 민간에 많은 전설을 남겼다. 천문·지리·복서·의술 등 다방면에 해박하고, 청렴하기로도 이름이 높았다.

- 2편에 계속

◇ 다문화 시대의 ‘개인 맞춤형’ 군대

◇ 다문화 시대의 ‘개인 맞춤형’ 군대

◇ 다문화 시대의 ‘개인 맞춤형’ 군대

미군은 일찍부터 장병들에게 특정 종교를 위한 급식을 제공하고 있다. 할랄(무슬림)·코셔(유대교인) 인증 전투식량(MRE)까지 갖추고 있다. 한국군에도 미군처럼 무슬림 식단이 도입된다고 한다. 국방부는 올해부터 무슬림(이슬람교도) 병사에게도 종교를 고려한 맞춤형 음식을 제공할 방침이라고 한다.

무슬림 병사가 맞춤형 식단을 선택할 경우 자연스럽게 자신의 종교가 드러나게 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군에 복무 중인 병사 가운데 자신이 무슬림이라고 공개적으로 밝힌 사례는 1건인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군 내에도 다문화가정 출신 입영자를 중심으로 무슬림 병사가 상당수 있으나 이를 밝히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혹시나 있을지 모를 차별을 의식한 게 아닌가 싶다. 국방부는 다문화가정 출신 장병 현황을 개인정보 보호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파악하지 않고 있다. ‘국방부 부대관리 훈령’ 제122조에도 “다문화 장병은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국민으로서 별도의 관리 대상이 아니며 다른 장병과 동등하게 대우받아야 한다”고 돼 있다. 다문화가정 자녀 동반입대병 제도를 2019년 말 폐지한 것도 신청자가 다문화가정 출신임을 밝혀야 한다는 점에서 차별 요소가 있다고 병무청이 판단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이 다문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한국군도 다문화 물결에 예외일 수 없다. 국가수호에 있어서 ‘민족’이라는 협소한 개념이 ‘국민’이라는 공통의식으로 대체된 지 오래다. 다문화 시대를 반영해 장병 임관(입영) 선서문에서 충성 대상은 ‘민족’이 아닌 ‘국민’이다. 군 내에는 이미 병사뿐만이 아니라 다문화가정 출신 군 간부도 상당수가 근무하고 있다.

국방부가 밝히고 있는 ‘다문화 장병’의 범주는 외국인 귀화자, 북한이탈주민 가정 출신 장병, 국외 영주권자 입영 장병, 결혼이민자 등이다. 1991년생까지는 인종, 피부색으로 외관상 명백한 혼혈인은 5급 제2국민역으로 군복무가 면제됐다.

그러다 한국 국적이면 모두가 병역의무를 지도록 2010년 병역법이 개정된 이후 다문화가정 자녀들의 군 입대가 속속 늘기 시작했다. 관련 연구에 따르면 지난해 다문화가정 출신 징병검사 대상이 3000여명 수준이었고, 2028년에는 다문화가정 출신 현역병 수가 1만2000명을 넘어설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북한이탈주민 가정 출신도 다문화 장병 범주에 포함돼 있다. 대한민국 병역법을 보면 탈북 주민 가족이 한국에 정착한 후 태어난 자녀는 군 입대 대상이다. 탈북 청소년은 병역의무가 면제되지만, 본인이 원할 경우 군 입대가 가능하다. 앞으로는 탈북 청소년이라 하더라도 입영 연령이 되면 의무적으로 군복무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 지금은 해당자가 한 해 200명 안팎이지만 갈수록 늘어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출산율 저하로 다문화가정 출신 병사들은 귀중한 병력 자원이다. 대신 군은 다문화가정 출신이 이슬람교를 포함한 소수종교를 믿는 경우에도 종교활동 등의 여건을 보장해줘야 한다. 요새는 다문화가정이 아니더라도 종교를 다양하게 선택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미군에는 개신교, 천주교, 불교는 물론 유대교와 이슬람교, 힌두교 군종도 있다. 국내 개신교계에서 이단으로 분류하고 있는 모르몬교 군종도 포함된다. 한국군에는 군종장교를 둘 수 있는 종교가 개신교와 천주교, 불교, 원불교 등 4개뿐이다. 한국군에서는 신자나 신도가 일정 비율 이하면 군종장교를 둘 수 없지만, 외국군의 경우에는 종교나 종파 비율을 크게 따지지 않는 편이다.

과거에는 다문화가정 출신 장병에게 차별화된 관심과 교육을 실시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봤다. 이 때문에 군의 다문화 장병에 대한 관리의 핵심도 이들을 차별대우하지 않겠다는 데 모아졌다. 그러나 이제는 이들의 전투력 향상을 위한 여건 조성을 위해 ‘맞춤형’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그것이 굳이 다문화 장병들만 대상은 아닐 것이다.

-경향신문-

◇ 남인순, 의원 뱃지가 당신의 트로피가 아니다

◇ 남인순, 의원 뱃지가 당신의 트로피가 아니다

◇ 남인순, 의원 뱃지가 당신의 트로피가 아니다

우리를 즉각 자유케 하는 건 진리보다 권력이다. 그래서 약자들은 약자의 대표를 국회로 보낸다. 노동자는 노동자를, 흑인은 흑인을, 여성은 여성을. 남인순의 ‘더불어민주당 3선 국회의원 배지’는 여성의 정치 참여를 지지한 모두의 것이다. 여성 운동 오래 한 대가로 받은 개인 공로상이 아니다. 과거 여성들의 분투, 미래 여성들의 열망이 법제도로써 쟁취한 것이다.

남 의원은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끈끈한 동지였다. 지난해 박 전 시장이 비서 성추행 혐의로 고소당한 것을 시장 젠더특보 임모씨에게 유출한 사람으로 검찰은 남 의원을 지목했다. 그는 피소 사실을 몰랐으므로 유출할 수 없었다고 기자들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 부인했다. “박 시장 관련 불미스러운 얘기가 도는데 무슨 일인가”라고 물었을뿐이니 죄가 없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그 질문으로 남 의원은 이미 무고하지 않다. 1분에서 2분. 피소 사실이든, 돌아다닌 소문이든, 남 의원이 여성단체에서 전해 듣고 임씨에게 전화하는 데 걸린 시간이다. 남 의원은 고민하지 않았다. 자신의 말이 임씨를 거쳐 박 전 시장 귀에 들어가면 피해자가 얼마나 위험해질 것인가에 무신경했다.

궁금하면 불쑥 질문할 수 있는 건 대단한 권력이다. 남 의원이 함부로 건 전화 한 통은 피해자를 해쳤다. 성추행 사건은 은밀히 해결될 가능성을 잃었고, 피해자는 일상을 잃었다. 가해자 사망으로 인한 공소권 없음은 영원히 사과받을 수 없음, 끝내 단죄할 길 없음으로 귀결됐다.

위력에 의한 성폭력 고발은 일생을 거는 일이다. 그걸 “불미스러운 얘기”라고 공연히 부름으로써 남 의원은 자신의 걱정이 여전히 누구를 향해 있는가를, 스스로를 누구와 동일시하는가를 들키고 말았다. 다급할 때 튀어나오는 게 본심이라던가. 약속한 많은 것을 남 의원은 배반했다.

“남인순이 그랬을 리 없다”고 아무도 그를 두둔하지 않는다. 그는 이미 그럴 수 있는 사람으로 보였던 것이다. 여성들의 연대가 틈을 보이자 어김없이 어른거리는 것은 차별과 혐오다. “너희가 고작 그 수준이지.” “너희 따위가 감히 정치를.”

가장 수구적인 세력이 가장 노골적으로 남 의원을 조롱한다. 그를 제물 삼아 여성 운동을 신나게 후려갈긴다. 남인순이 상징하는 ‘가치’를 무너뜨리려는 것이다. 박 전 시장의 성추행을 묵인하고 피해자를 헐뜯은 성폭력 공범들은 어느새 안전해졌다. 민주당이 서울시장 보궐선거 무공천 약속을 뒤집은 사실도 지워졌다.

이 모든 퇴행과 참혹에 남 의원은 거리를 둔 채 침묵하고 있다. 11일 의정활동보고서를 내고 “새해에도 살림정치, 민생정치를 펼치겠다”고 SNS에 쓴 걸 보면, 탄탄하다는 지역구부터 챙기자고 작심한 것 같다. 끔찍하게 무책임하다. 다시 말하건대, 남 의원의 정치적 성취는 온전히 그의 것이 아니다. 성취가 훼손당하게 내버려 둘 자유가 없다.

한때의 지지자들이, 무엇보다 피해자가 남 의원을 용서할지 알 수 없다. 그러나 그는 여태 제대로 사과하지 않음으로써 두 번 배반했다. 차마 그의 이름을 박박 지우지 못하는 사람들을 이중의 고통에 빠뜨렸다. 정말로 괴물이 되고 싶지 않다면, 남 의원은 나와서 사죄부터 하라. 이마에 피가 흐를 때까지 고개를 숙이라. 그리고 가능하다면, 모든 것을 부디 바로잡으시라.

-한국일보-

사자신중충獅子身中蟲 - 사자 몸 안의 벌레, 조직에 해가 되는 사람

사자신중충獅子身中蟲 - 사자 몸 안의 벌레, 조직에 해가 되는 사람

사자신중충(獅子身中蟲) - 사자 몸 안의 벌레, 조직에 해가 되는 사람

사자 사(犭/10) 아들 자(子/0) 몸 신(身/0) 가운데 중(丨/3) 벌레 충(虫/12)

아시아 지역의 호랑이와 함께 百獸(백수)의 왕이라 불리는 사자에겐 대적할 짐승이 없다. 아프리카 초원을 시속 80km 까지 달릴 수 있다니 육상 선수가 따로 없고 힘도 장사라 한 번 울부짖어 獅子吼(사자후)를 내뿜을 때는 산천초목이 벌벌 떤다. 살아있을 때의 위세 때문에 죽은 시체에도 다른 짐승들이 감히 접근을 못한다.

그렇다고 불멸은 아니니 다만 몸이 썩어 속에 생긴 벌레가 그 시체를 먹어 치움으로써 사라진다. 이같이 사자의 몸에 생긴 벌레가 끄떡하지도 않을 큰 덩치를 멸하게 할 수 있다는 이 성어는 불경에서 나왔다. 불제자이면서 불법을 해치는 사람을 가리키다 자기편에 해를 끼치는 사람이나 내부에서 재앙을 불러일으키는 사람을 뜻하게 됐다.

우리나라 불교 계율의 기초를 이루는 大乘戒(대승계)의 제1경 ‘梵網經(범망경)’에 실렸다고 한다. 어부가 그물로 고기를 잡아 올리듯 모든 견해를 끌어올린다는 데서 붙인 이름으로 인도의 승려 鳩摩羅什(구마라습)이 번역했다고 전해진다. 그 부분을 옮겨 보자. ‘사자는 몸속의 벌레가 저절로 생겨 몸을 파먹어 없어지지 밖에 있던 벌레에 의해 먹히지 않는 것과 같이, 불제자가 스스로 부처님의 법을 파괴할 것이니 외부의 힘이나 마귀가 파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如獅子身中蟲 自食獅子肉 非餘外蟲 如是佛者自破佛法 非外道天魔能破壞/ 여사자신중충 자식사자육 비여외충 여시불자자파불법 비외도천마능파괴).’ 불도를 타락시키는 것은 이교도나 악마와 같은 외부 세력이 아니라 석가의 올바른 가르침을 망각하고 딴 짓을 하는 불제자들이므로 이를 경계하라는 가르침이다.

내부의 불자가 불도를 타락시키듯이 조직이나 단체 내부서도 치명적인 해를 끼치는 사람은 사자 몸속의 벌레 같은 배신자가 된다. 개인의 경우에는 시련이 닥쳤을 때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지 못하고 自暴自棄(자포자기)하는 것이 이에 해당한다. / 글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기린아麒麟兒 - 지혜와 재주가 뛰어난 사람

기린아麒麟兒 - 지혜와 재주가 뛰어난 사람

기린아(麒麟兒) - 지혜와 재주가 뛰어난 사람

기린 기(鹿/8) 기린 린(鹿/12) 아이 아(儿/6)

麒麟(기린)은 키가 6m에 달하는 동물로 지상의 포유류 중에서 가장 크다. 특히 목이 길어 제대로 가눌 수 있을까 싶어도 긴 다리로 시속 50km를 달릴 수 있다고 한다. 아프리카 초원이나 동물원에서 인기 끄는 기린과 글자는 같아도 더 신령스런 동물이 있다. 중국에서 상상 속의 기린을 묘사한 모양을 보자. 전체의 외형은 사슴과 비슷한데 용의 머리, 사슴의 뿔, 사자의 눈, 호랑이의 등, 곰의 허리, 뱀의 비늘, 말의 발굽, 소의 꼬리를 가졌으니 百獸(백수)의 靈長(영장)이었다. 이 기린은 성군이 나서 왕도를 행하면 나타난다고 하여 더욱 신성시했다.

전설상의 네 가지 동물 四靈(사령) 중에서 용, 봉황, 거북과 함께 기린을 가장 먼저 꼽는다고 하는 이야기가 五經(오경)의 하나인 ‘禮記(예기)’에 나온다. 禮運(예운)편에 ‘무엇을 사령이라 하는가, 기린과 봉황, 거북과 용을 네 가지 신령스러운 것이라 한다(何謂四靈 麟鳳龜龍 謂之四靈/ 하위사령 인봉구룡 위지사령)’고 했다. 이처럼 신령스런 동물로 인식되었기 때문에 기린은 민간에서 아들을 점지해주는 것으로 믿었고, 그렇게 태어난 아들은 슬기와 재주가 남달라 麒麟兒(기린아)라고 불렸다.

孔子(공자)가 태어나기 전 기린이 玉書(옥서)를 집 마당에 토했다는 이야기에서 나왔다는데 비상한 재주를 가진 젊은이를 唐(당)나라 詩聖(시성) 杜甫(두보)의 시에서 노래한 것이 있다. ‘서경의 두 아들을 노래함(徐卿二子歌/ 서경이자가)’의 앞부분이다. ‘서경의 두 아들 날 때부터 뛰어나, 길몽에 감응하여 서로 좇고 따랐네(徐卿二子生絶奇 感應吉夢相追隨/ 서경이자생절기 감응길몽상추수). 공자와 부처님이 몸소 안아 보내시니, 두 사람 모두 천하의 기린아일세(孔子釋氏親抱送 竝是天上麒麟兒/ 공자석씨친포송 병시천상기린아).’

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가 세계 10위권에서 어깨를 견줄 수 있게 된 것은 교육열에 의해 각계서 뛰어난 인재가 배출됐기 때문이다. ‘기린은 잠자고 스라소니가 춤춘다’는 속담이 있다. 뛰어난 사람은 조용한데 무능한 소인들이 날뛴다는 것을 비유했다. 자기보다 앞서 이끌어가는 사람을 질투하여 어떻게 해서든 다리를 걸어서는 더 이상 발전을 기대하지 못한다. 기린을 더 키워내고 존중해주는 풍토가 중요하다. / 글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봉생마중蓬生麻中 - 삼밭의 쑥은 바르게 자란다.

봉생마중蓬生麻中 - 삼밭의 쑥은 바르게 자란다.

봉생마중(蓬生麻中) - 삼밭의 쑥은 바르게 자란다.

쑥 봉(艹/11) 날 생(生/0) 삼 마(麻/0) 가운데 중(丨/3)

친구를 사귈 때나 이웃의 중요성을 말 할 때 환경을 강조한 말은 많다. 요즘의 이웃이야 아파트 생활이 많아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잘 모르게 되었지만 공자의 가르침부터 보자. 마을의 풍속이 질서를 지키며 화목하다는 것은 아름다운 것이며(里仁爲美/ 리인위미) 이러한 마을을 잘 골라서 거처하지 않는다면 지혜롭지 못하다고 했다. 중국 宋季雅(송계아)라는 사람이 집값의 열배나 주고 이웃을 산 百萬買宅 千萬買隣(백만매택 천만매린)과 똑 같다. 앞서 소개한 近墨者黑(근묵자흑)은 사귀는 친구에 의해 바른 길로도, 나쁜 길로도 갈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쳤다.

삼밭 가운데(麻中) 자라는 쑥(蓬生)이라는 이 성어는 따라붙는 대구 不扶自直(불부자직)과 같이 쓰면 뜻이 명확해진다. 죽죽 곧은 삼밭에 있으면 원래 구불구불 자라는 쑥이 붙들어주지 않아도 곧게 된다는 의미로 역시 환경이 미치는 영향을 뜻한다. 중국 戰國時代(전국시대) 말기의 사상가로 性惡說(성악설)을 주창한 荀子(순자)의 저작 ‘순자’에 처음 실렸다.

첫 부분 勸學(권학) 편의 내용을 요약해보자. 남쪽 지방에 사는 蒙鳩(몽구)라는 새가 깃털로 둥지를 만들어 갈대 잎에 매달아 두었는데 바람에 가지가 부러져 알이 깨지고 말았다. 또 서쪽 지방에 자라는 射干(사간)이란 나무는 길이가 겨우 네 치밖에 되지 않지만 산꼭대기에 있다 보니 산 아래 백 길의 연못을 내려다본다.

몽구 새는 둥지가 튼튼해도 매어놓은 갈대가 흔들리기 때문에 알을 깨뜨렸고, 사간 나무는 줄기가 짧아도 서 있는 자리가 높기 때문에 멀리 볼 수 있다. 이런 예를 들고 말한다. ‘쑥이 삼밭에서 자라게 되면 떠받쳐주지 않아도 곧게 자라며, 흰 모래가 진흙 속에 있으면 모두 검게 된다(蓬生麻中 不扶而直 白沙在涅 與之俱黑/ 봉생마중 불부이직 백사재열 여지구흑)’. 涅은 개흙, 열반 열.

朱子(주자)의 小學(소학)과 기타 경전 중에서 알기 쉬운 내용들을 추린 아동용 四字小學(사자소학)에서는 朋友(붕우)편에 약간 다른 표현으로 나온다. ‘쑥이 삼 가운데서 자라나면 붙들어주지 않아도 저절로 곧아지고, 흰 모래가 진흙에 있으면 물들이지 않아도 저절로 더러워진다(蓬生麻中 不扶自直 白沙在泥 不染自汚/ 봉생마중 불부자직 백사재니 불염자오).’ / 글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