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13일 수요일

폭새용문曝鰓龍門 - 용문에서 아가미가 말라붙다, 어려운 환경에 처하다.

폭새용문曝鰓龍門 - 용문에서 아가미가 말라붙다, 어려운 환경에 처하다.

폭새용문(曝鰓龍門) - 용문에서 아가미가 말라붙다, 어려운 환경에 처하다.

쪼일 폭(日/15) 아가미 새(魚/9) 용 룡(龍/0) 문 문(門/0)

신령스런 동물 四靈(사령) 중에서도 으뜸인 龍(용)은 상상 속에서만 존재한다. 龍門(용문)이란 지명은 실재한다. 물론 전설을 입힌 지명이라도 중국 문명의 발상지인 황허黃河/ 황하 상류의 협곡 사이에 있다. 폭포의 물살이 어찌나 빠르던지 하류의 잉어들이 오르려고 무수히 도전하지만 대부분 휩쓸려 내동댕이쳐진다.

간혹 운 좋은 잉어가 天神(천신)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오르기만 하면 때맞춰 치는 우레에 꼬리를 태우고 용이 된다. 잉어가 용문을 올라 용이 된 것을 登龍門(등용문)이라 한다는 것은 소개한 바 있다. 용이 되려면 天佑神助(천우신조)가 있어야 하니 용 되기가 별 따기만큼 어렵다.

이렇게 용이 되기가 어려운 만큼 좁은 관문을 통과하여 立身(입신) 출세하거나 높은 자리에 올라 큰 뜻을 펼칠 수 있게 된 것에 비유했다. 중국에서 進士試(진사시)나 우리나라서도 科擧(과거) 같은 어려운 시험의 통과를 말하게 된 계기가 있다. 後漢(후한) 말 혼란한 시기에 날뛰던 환관을 가차 없이 처벌하여 주위의 신망을 받은 李膺(이응, 110~169)이란 선비가 있었다.

경찰청장 격의 자리에서 주변의 눈치를 보지 않고 바로잡았으니 이응을 ‘천하의 본보기’라 부를 정도였다. 太學(태학)의 젊은 관료들은 그를 경모하여 한 번이라도 만나 인정받는 것을 용문에 오르는 영광으로 여겼다는 것이다.

바다에서 큰 강에서 몰려든 잉어들이 모두들 용문에 올라 영광스런 자리에 오르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해 물살에 휩쓸리면 바위에 이마가 깨져 멍이 든다. 바로 龍門點額(용문점액)인데 큰 시험에 낙방한 것을 가리킨다. 같은 뜻으로 여러 불경에 등장하는 것이 잉어가 모래밭으로 튕겨 아가미가 말라(曝鰓) 용문에서 죽었다는 이 성어다.

목숨을 건 보살행을 거친 뒤라야 華嚴(화엄)의 경지에 오르는데 그렇지 못하면 ‘용문의 아래에서 물고기 아가미와 비늘이 말라가는(曝鰓鱗於龍門之下/ 폭새린어용문지하)’ 것과 같다고 했다. 唐(당)나라 清涼澄觀(청량징관)법사의 ‘華嚴經隨疏演義鈔(화엄경수소연의초)’에 나온다고 한다.

어려운 환경에서 이겨내고 출세한 것을 ‘개천에서 용 난다’고 비유했다. 언론사나 잡지사에서 시행하는 新春文藝(신춘문예)의 어마어마한 경쟁률을 뚫으면 문단이란 영예의 용문에 오른다. 이와 함께 선망 받는 인기 직업의 관문을 넘는 것은 용문 오르기보다 어렵다. 司試(사시)가 없어졌다 해서 고위 공무원의 문호가 넓어졌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젊은이들이 갈 만한 직업의 문이 나날이 줄어드는 만큼 하위직 공무원 시험에도 응시자들이 구름과 같이 몰린다. 용 되기는 포기하더라도 이마에 상처 입는 사람들을 줄일 묘안을 고민해야 한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취문성뢰聚蚊成雷 - 모기소리가 모이면 우레가 된다, 사실을 왜곡하여 남을 욕하다.

취문성뢰聚蚊成雷 - 모기소리가 모이면 우레가 된다, 사실을 왜곡하여 남을 욕하다.

취문성뢰(聚蚊成雷) - 모기소리가 모이면 우레가 된다, 사실을 왜곡하여 남을 욕하다.

모을 취(耳/8) 모기 문(虫/4) 이룰 성(戈/3) 우레 뢰(雨/5)

어릴 때부터 듣는 속담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는 무슨 일이나 그 시작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작은 물건도 많이 모으면 나중 크게 이룰 수 있다는 성어는 많고 또 긍정적이다. 티끌 모아 태산이 된다는 塵積爲山(진적위산), 塵合泰山(진합태산) 말고도 작은 물방울이 바위를 뚫거나(水滴石穿/ 수적석천) 연못을 이루기도 한다(水積成淵/ 수적성연)고 했다.

잘 알려진 愚公移山(우공이산)이나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드는 磨斧爲針(마부위침회)도 있다. 반면 무섭거나 부정적인 것도 있다. 깃털이 쌓여 배를 가라앉히는 積羽沈舟(적우침주)와 같이 모기소리가 많이 모이면(聚蚊) 우레가 된다(成雷)는 이 성어는 소인배가 사실을 왜곡하여 열심히 남을 욕함을 이르는 말이다.

史記(사기)에 버금가는 後漢(후한) 초기 역사가 班固(반고)의 대작 ‘漢書(한서)’에서 이 성어가 유래했다. 前漢(전한)의 6대 景帝(경제)의 아들들이 봉해진 임지에서 올라오자 왕이 주연을 베풀었다. 그 때 中山王(중산왕) 勝(승)이 음악소리를 듣고서는 눈물을 흘리기에 황제가 의아해서 연유를 물었다.

중산왕은 자기를 참소하는 말에 답답해하며 해명한다. ‘뭇 사람의 입김에 산이 떠내려가고, 모기소리가 모여 우레가 된다고 합니다. 패거리를 지으면 범을 사로잡고, 사나이 열 명이 합심하면 쇠공이를 휘게 할 수 있습니다(衆喣漂山 聚蚊成雷 朋黨執虎 十夫橈椎/ 중후표산 취문성뢰 붕당집호 십부요추).’ 喣는 불 후, 漂는 떠다닐 표, 橈는 꺾어질 요, 椎는 쇠몽치 추.

여러 사람의 험담에 文王(문왕)이 구금된 바 있고 孔子(공자)도 陳蔡(진채)에서 곤욕을 치렀다며 다시 강조한다. ‘뭇 사람의 입은 쇠도 녹이고, 헐뜯는 말이 쌓이면 뼈도 삭으며, 가벼운 것이라도 수레 축대를 무너뜨리고, 새의 깃털이 무거운 몸을 날게 할 수 있습니다(衆口鑠金 積毀銷骨 叢輕折軸 羽翮飛肉/ 중구삭금 적훼소골 총경절축 우핵비육).’ 鑠은 녹일 삭, 銷는 쇠녹일 소, 翮은 깃촉 핵. 임금의 아들과 후손을 기록한 景十三王傳(경십삼왕전)에 실려 있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지란지교芝蘭之交 - 지초와 난초의 교제, 벗 사이의 맑고도 높은 사귐

지란지교芝蘭之交 - 지초와 난초의 교제, 벗 사이의 맑고도 높은 사귐

지란지교(芝蘭之交) - 지초와 난초의 교제, 벗 사이의 맑고도 높은 사귐

지초 지(艹/4) 난초 란(艹/16) 갈 지(丿/3) 사귈 교(亠/4)

친구 사이의 友情(우정)을 예찬한 말은 東西古今(동서고금)을 통해 부지기수다. ‘인생에서 우정이 없으면 태양을 없애는 것과 같다’거나 ‘우정은 기쁨을 배가하고 슬픔을 반감한다’가 대표적이다. 반면 우정의 대부분은 보이기 위한 것이라든가 어떤 목적을 위해서 시작된 우정은 그것이 이루어지면 끝난다고 꼬집은 말도 있다. 이해관계가 개입된 우정은 진정한 것이 아니란 교훈이다.

우정을 나타내는 성어도 많고 소개도 많이 했다. 약용과 염료로도 사용하고 향기가 좋은 식물 芝草(지초)와 蘭草(난초) 같은 우정이라면 남에게도 느껴질 만큼 맑고도 고귀한 사귐을 말한다. 孔子(공자)가 예를 든 우정인데 ‘明心寶鑑(명심보감)’ 교우편에 인용돼 잘 알려져 있다.

공자와 제자들이 주고받은 논의를 魏(위)나라 王肅(왕숙)이 편찬한 ‘孔子家語(공자가어)’에 그 내용이 실려 있다. 잘 모르는 사람을 위해서는 그 친구를 봐야 한다면서 공자가 주위 환경의 중요함을 강조하는 六本篇(육본편)에서다.

내용을 보자. ‘선한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은 향기로운 지초와 난초가 있는 방 안에 들어간 것과 같다(與善人居 如入芝蘭之室/ 여선인거 여입지란지실), 오래 되면 그 냄새를 맡지 못하니 이는 곧 그 향기와 동화됐기 때문이다(久而不聞其香 卽與之化矣/ 구이부문기향 즉여지화의).’ 그러면서 악한 사람과 있으면 상한 생선의 악취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동화되니 군자는 반드시 자기가 거처하고 사귀는데 삼가야 한다는 것이다.

前漢(전한)의 劉向(유향)이 이전의 지혜와 고사를 모아 편찬한 ‘說苑(설원)’에도 공자의 언급을 앞부분부터 인용한다. ‘자식에 대해 잘 모른다면 사귀는 친구를 보고, 임금에 대해 모른다면 그가 부리는 신하를 보라(不知其子 視其所友 不知其君 視其所使/ 부지기자 시기소우 부지기군 시기소사).’ 雜言(잡언)편에 나오는 이 구절은 아들을 잘 아는 사람은 아버지일지라도 친구는 다른 부분도 알고 있다는 이야기겠다.

명심보감에 家語(가어)에 나온다며 더 좋은 말이 이어진다. ‘학문을 좋아하는 사람과 동행하면 마치 안개 속을 가는 것과 같아서, 비록 옷은 젖지 않더라도 때때로 윤택함이 있다(與好學人同行 如霧中行 雖不濕衣 時時有潤/ 여호학인동행 여무중행 수부습의 시시유윤).’

어릴 때 竹馬(죽마)를 같이 타고 놀던 옛 친구도 자신의 이익이 있을 때만 찾았는데 오늘날은 더 삭막하다. 동료는 자기보다 능력이 있을 때 앞길을 막는 존재로 알고, 학우는 성적이 좋으면 자기의 경쟁 상대에서 거꾸러뜨려야 하는 존재다. 사회생활을 하며 발이 넓다고 자랑하는 사람도 항상 명심하면 좋을 말이 역시 명심보감에 있다.

‘서로 술이나 음식을 함께 할 때에는 형이니 동생이니 하는 친구는 많으나, 급하고 어려운 일을 당하였을 때에 도와줄 친구는 하나도 없다(酒食兄弟千個有 急難之朋一個無/ 주식형제천개유 급난지붕일개무).’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신체발부 수지부모身體髮膚 受之父母 - 몸 전체 머리털, 살갗은 부모로부터 받았다.

신체발부 수지부모身體髮膚 受之父母 - 몸 전체 머리털, 살갗은 부모로부터 받았다.

신체발부 수지부모(身體髮膚 受之父母) - 몸 전체 머리털, 살갗은 부모로부터 받았다.

몸 신(身/0) 몸 체(骨/13) 터럭 발(髟/5) 살갗 부(肉/11)

받을 수(又/6) 갈 지(丿/3) 아비 부(父/0) 어미 모(毋/1)

우리의 몸은 물론 터럭 하나, 피부까지(身體髮膚) 부모로부터 물려받았다(受之父母)는 유명한 구절이다. 옛날 학동들은 孝(효)의 첫걸음이라며 줄줄 외웠다던 ‘孝經(효경)’에 실려 있다. 효경은 五經(오경)에는 들어가지 않더라도 漢(한)나라 이후 七經(칠경)의 하나로 숭상되어 온 책이다.

가정에서 지켜야 할 효도를 중심으로 宗中(종중) 규약이나 천자, 제후 등 윗사람에게 지켜야 할 덕목을 실었다. 효도는 인간의 도리라며 예부터 중시한 유교에 영향을 끼쳤고 조선에서는 宣祖(선조)때 孝經諺解(효경언해)까지 발간하며 널리 알렸다.

효경의 저자는 曾子(증자, 기원전 506~436)로 알려져 있다. 그는 이름이 曾參(증삼)으로 孔子(공자)의 제자이다. 東洋五聖(동양오성)에 들어갈 정도로 공자의 도를 계승했고 유교사상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그 자신이 이름난 효자로 중국 二十四孝(이십사효)에도 이름을 올렸는데 효경은 공자에게서 전해 받은 효도의 내용을 훗날 제자들이 정리하여 완성했다고 한다. 제일 첫머리의 開宗明義(개종명의) 장에 나오는 내용을 보자.

공자가 어느 때 제자 증자에게 선왕이 지극한 덕으로 천하의 백성들을 따르게 하였는데 어떻게 했는지 물었다. 증자는 불민해서 알 수 없다고 공손히 말했다. 공자는 효란 덕의 근본이며 가르침이 비롯되는 곳이라며 말을 잇는다. ‘사람의 신체와 터럭과 살갗은 모두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것이다.

이것을 손상시키지 않는 것이 효의 시작이고(身體髮膚 受之父母 不敢毀傷 孝之始也/ 신체발부 수지부모 불감훼상 효지시야), 몸을 세워 도를 행하고 후세에 이름을 날림으로써 부모의 은공을 드러나게 하는 것이 효의 끝이다(立身行道 揚名於後世 以顯父母 孝之終也/ 입신행도 양명어후세 이현부모 효지종야).’

증삼과 효경이 들어가는 재미있는 성어도 있다. 曾參殺人(증삼살인)은 거짓말도 여러 사람이 말하면 참말이 된다는 三人成虎(삼인성호)와 같고, 孔子門前 賣孝經(공자문전 매효경)은 자신의 실력은 헤아리지 않고 엉뚱하게 덤빈다는 의미의 班門弄斧(반문농부)와 같다.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몸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것을 곧이곧대로 수혈이나 장기 기증까지 하지 말라는 말은 물론 아니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러면서도 더 중요한 몸 전체를 대수롭지 않게 버리는 자살이 많은 것은 이해할 수 없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보원이덕報怨以德 - 원한을 덕으로 갚다.

보원이덕報怨以德 - 원한을 덕으로 갚다.

보원이덕(報怨以德) - 원한을 덕으로 갚다.

갚을 보(土/9) 원망할 원(心/5) 써 이(人/3) 큰 덕(彳/11)

사람은 태어나 생활을 하면서 은혜를 입고 산다. 부모와 스승의 은혜는 특히 크다. 세상에는 온갖 인종의 사람도 많아 남의 도움을 받고서도 그 은혜를 잊거나 도리어 해를 끼치기도 한다. 은혜를 원수로 갚는 恩反爲仇(은반위구)다. 그래서 ‘머리 검은 짐승은 남의 공을 모른다’라는 속담이 생겼다.

반면 남에게 해를 입었을 때는 조그만 것이라도 잊지 않고 언젠가는 갚으려 한다. 하지만 원한을 원한으로 갚으면 다시 원한을 사게 되어 끝없이 되풀이된다. 선인들은 순리로 이것을 풀어야 후환이 없다고 가르치며 ‘원수는 順(순)으로 풀라’고 했고, 예수님은 ‘원수를 사랑하라’고까지 했다.

여기에 더한 것이 원수를 갚을 때(報怨) 원한으로 하지 않고 덕을 베푼다(以德)는 이 성어다. 원수를 갚는 것이 끝없이 순환된다고 해서 원한을 은덕으로 갚는다는 것은 보통 사람들에겐 쉽지 않은 일인데 無爲(무위)의 老子(노자) 답게 ‘道德經(도덕경)’에서 깨우친다. 63장의 恩始章(은시장)에 나오는 말이다.

‘하는 것이 없음을 실천하고, 일이 없음을 일삼으며, 맛이 없음을 맛보고, 작은 것을 크게 여기며 많은 것은 적게 여기니, 원수를 덕으로 갚는다(爲無爲 事無事 味無味 大小多少 報怨以德/ 위무위 사무사 미무미 대소다소 보원이덕).’ 말을 돌려 어렵지만 자연에 순응하는 무위의 도를 지키면 천하의 어려운 일도 작은 것에서 시작되니 하지 못할 것이 없다는 이야기다.

부모를 죽인 원수는 같은 하늘 아래 살 수 없다고 不共戴天之讐(불공대천지수)라 했다. 禮記(예기)에 나온 대로 孔子(공자)도 형제와 친구의 원수는 갚되 바른 도로 갚아야 한다는 뜻으로 가르쳤다. 어떤 사람이 ‘은덕으로써 원한을 갚으면 어떻겠습니까(以德報怨 何如/ 이덕보원 하여)?’라고 물었을 때 말한 답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은혜를 갚겠는가? 원한은 그릇된 것을 바로잡는 마음으로 갚고, 은혜로써 은혜를 갚아야 한다(何以報德 以直報怨 以德報德/ 하이보덕 이직보원 이덕보덕).’ 이 구절은 ‘論語(논어)’ 憲問(헌문)편에 실려 있다.

까마귀가 어미에게 먹이를 물어다주는 反哺之孝(반포지효)나 주인이 위험에 빠지자 길러준 개가 구했다는 獒樹(오수, 獒는 큰개 오)의 전설은 유명하다. ‘사람은 구하면 앙분을 하고 짐승은 구하면 은혜를 한다’는 속담은 우리를 부끄럽게 한다. 보통 사람들보다 지도급 인사들이 더하다.

정의를 위한다며 무리를 지어 싸우다, 조그만 이익이 생기면 어제의 동료들을 헐뜯는다. 조선의 黨爭(당쟁)이 그랬고 오늘의 정치인들도 이념 따라 원수같이 싸운다. 덕으로 갚기가 어렵다고 해도 원수로 갚는 以怨報怨(이원보원)으로는 편할 날이 없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교언여황巧言如簧 - 교묘하게 꾸며 듣기 좋은 말

교언여황巧言如簧 - 교묘하게 꾸며 듣기 좋은 말

교언여황(巧言如簧) - 교묘하게 꾸며 듣기 좋은 말

공교할 교(工/2) 말씀 언(言/0) 같을 여(女/3) 생황 황(竹/12)

말은 적어도 탈이고 많아도 탈이다. 침묵은 금이고 웅변이라며 말이 없는 것을 예찬한다. 그러나 미련한 자도 잠잠하면 지혜로운 자로 여기는 줄 안다고 비꼼을 당하니 좋은 것도 아니다. 속으로 육두 벼슬을 하고 있어도 말 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르니 필요할 때는 해야 한다. 이것이 지나쳐 할 말 안할 말 늘어놓을 때는 ‘말이 많으면 쓸 말이 적다’는 소리 들으니 어렵긴 어렵다.

때와 장소를 가려 핵심을 찌르며 말을 잘 하는 사람을 옛날 중국의 변설가 이름을 따 蘇秦(소진) 張儀(장의)라며 부러워한다. 웅변을 잘 하는 사람은 말이 폭포수에서 떨어지는 것 같다며 口若懸河(구약현하)라고 칭찬한다.

아무리 듣기 좋은 말이라도 내용이 없거나 윗사람에게 귀에 쏙 들어갈 말만 한다면 누구나 욕을 한다. 그래도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은 귀에 거슬리는 옳은 소리하는 부하는 멀리 하고 살살거리는 자를 가까이한다. 까마득한 중국의 시 모음집 ‘詩經(시경)’에서 부터 교묘하게 꾸민 말(巧言)은 관악기 笙簧(생황) 소리와 같이(如簧) 듣기 좋다는 말이 나온다. 궁중 제사나 잔치 때 사용되던 음악이라는 小雅(소아)편의 節南山之什(절남산지십, 什은 열사람 십) 10편중에서 巧言(교언)에 들어 있다. 참언으로 쫓겨난 벼슬아치가 소인들에 휘둘리는 임금을 풍자하고 자신의 처지를 읊은 내용으로 왕은 폭군 幽王(유왕)이란 해석이다.

모두 여섯 장 가운데 다섯 번째 장의 뒷부분만 보자. ‘허황한 큰 소리를 되는대로 지껄이고, 생황소리 같은 교묘한 말은 낯 두꺼운 사람이 마구 지껄이지(蛇蛇碩言 出自口矣 巧言如簧 顔之厚矣/ 이이석언 출자구의 교언여황 안지후의).’ 뱀 蛇(사)는 자랑할 訑(이)와 같다. 말 잘 꾸미는 자가 낯도 두껍다고 顔厚(안후)란 말과 같이 나오는 것이 흥미롭다. 巧舌如簧(교설여황)이라 해도 같다.

孔子(공자)도 듣기 좋게 꾸민 말에 대해 말을 남겼다. ‘論語(논어)’ 學而(학이)편의 3장에 나오는 ‘듣기 좋게만 말하고 얼굴 표정을 잘 꾸미는 사람에게는 어진 사람이 드물다(巧言令色 鮮矣仁/ 교언영색 선의인)’가 그것이다. 말이건 표정이건 잘 꾸미면 아첨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뜻이다.

실속 없는 사람이 더 떠든다고 ‘속이 빈 깡통이 소리만 요란하다’는 말을 한다. 그런데 말도 잘 하고 내용도 알차게 잘 하는 사람들이 남을 위해 일을 하겠다고 나서는 경우가 있다. 크고 작은 각종 선거 때 후보자들의 말만 들으면 더 이상 할 일이 없고, 벌써 살기 좋은 나라가 됐을 법하다. 하지만 돌아서면 나몰라 이고, 내용이 좋은 만큼 실천이 되는 일이 적다. 公約(공약)을 찬찬히 뜯어보고 空約(공약)이 된 말이 무엇인지 책임을 물어야 허황된 말이 나오지 않는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건상유족褰裳濡足 - 바지를 걷어 올리고 발을 적시다, 노력이 있어야 일을 이룬다.

건상유족褰裳濡足 - 바지를 걷어 올리고 발을 적시다, 노력이 있어야 일을 이룬다.

건상유족(褰裳濡足) - 바지를 걷어 올리고 발을 적시다, 노력이 있어야 일을 이룬다.

걷어올릴 건(衣/10) 치마 상(衣/8) 젖을 유(氵/14) 발 족(足/0)

일을 이루려면 저절로 되는 것이 없다. 아무리 사소해도 차근차근 준비해야 나중에 성취를 맛본다. 지천으로 넘쳐도 노력이 들지 않으면 헛일이라는 깨우침의 말은 많다. ‘부뚜막의 소금도 집어넣어야 짜다’는 속담은 竈上鹽 執入後鹹(조상염 집입후함, 竈는 부엌 조, 鹹은 짤 함)으로 번역되어 손쉬운 일이라도 힘을 들여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옥이 아무리 많아도 갈고 다듬지 않으면 그릇이 될 수 없다는 玉不琢 不成器(옥불탁 불성기)는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란 말과 같이 잘 알려져 있다. 여기에 조금 어려운 말이지만 아랫도리옷을 걷지 않고(蹇裳) 발을 적실 수 없다(濡足)는 성어가 더 있다. 걷어올릴 褰(건)이 절 蹇(건)으로 된 곳도 있으나 옷 衣(의)가 들어가야 옳겠다.

중국 戰國時代(전국시대) 楚(초)나라 불운의 정치가 屈原(굴원)의 작품이 많이 실린 ‘楚辭(초사)’부터 시작하여 곳곳에 성어가 사용되고 있다. 九章(구장)편의 思美人(사미인) 부분에 연꽃을 꺾어 와 사랑하는 여인의 환심을 사고 싶은데 발을 적시기 싫다고 토로한다. ‘연꽃으로 중매를 삼고 싶지만(因芙蓉而爲媒兮/ 인부용이위매혜), 옷을 걷어 올리고 발 적시기 꺼려지네(憚褰裳而濡足/ 탄건상이유족).’ 조그만 고생도 하지 않고 미인을 얻을 수는 물론 없다. 굴원은 모함으로 쫓겨난 심정을 허리를 구부리며 권세가에 빌붙기 싫다고 나타낸 셈이다.

後漢(후한) 초기 崔駰(최인)은 박학하고 경전에 정통하여 문장을 잘 지었다. 范曄(범엽)의 ‘後漢書(후한서)’엔 그의 이런 말이 있다. ‘일이 생기면 바지를 걷어 발을 적시고, 관이 걸려 있어도 돌아보지 않는다(與其有事 則褰裳濡足 冠掛不顧/ 여기유사 즉건상유족 관괘불고)’며 물에 빠진 사람을 보고서도 건지지 않는다면 어진 사람이 될 수 없다고 했다. 점잖게 뒷짐만 지고서는 다급한 사람을 구할 수 없고 옷을 버릴 수고를 감수해야 된다는 이야기다.

호랑이 새끼를 잡기 위해서는 물론 호랑이굴에 들어가는 모험을 해야 한다. 이런 큰 성취가 아니라도 노력이 조금은 들어가야 작은 일이 이뤄진다. 물고기가 떼를 지어 노닐어도 그물을 먼저 짜지 않고서는 잡지 못하고 입맛만 다신다. 이루는 방법은 훤하게 꿰뚫고 있으면서 자신은 손가락 까딱하지 않고 남에게만 시킨다면 아무도 협조하지 않는다. 또 있다. 멋진 일을 시작하고서 잘못된 점이 드러나면 다시 할 수도 있어야 한다. 큰맘 먹고 발에 물을 적셨다고 엉뚱한 길로 계속 나간다면 깊은 물에서 빠져 나올 수 없는 불행이 닥친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십벌지목十伐之木 - 열 번 찍어 베는 나무, 꾸준히 노력하면 성취한다.

십벌지목十伐之木 - 열 번 찍어 베는 나무, 꾸준히 노력하면 성취한다.

십벌지목(十伐之木) - 열 번 찍어 베는 나무, 꾸준히 노력하면 성취한다.

열 십(十/0) 칠 벌(亻/4) 갈 지(丿/3) 나무 목(木/0)

중도에서 일을 작파하지 말고 꾸준히 계속하면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 속담과 성어가 많다. ‘열 번 갈아서 안 드는 도끼가 없다’란 속담은 磨斧作鍼(마부작침)과 통한다. 백절불굴의 강인한 정신과 기상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열 번 쓰러지면 열 번 일어난다’는 속담도 있다. 깃털이 쌓여 배를 가라앉힌다는 積羽沈舟(적우침주), 물방울이 계속 떨어져 바위를 뚫는 水滴石穿(수적석천) 외 같은 성어는 수두룩하다. 이 모든 속담보다 더 자주 사용돼 귀에 익은 말이 ‘열 번 찍어 아니 넘어가는 나무 없다’를 옮긴 이 성어일 것이다. 정확히 풀어 十斫木無不顚(십작목무부전)이라고도 한다.

이 말은 어떤 어려운 일이라도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노력하면 기어이 이룬다는 뜻으로 보통 쓴다. 여기서 뜻이 넓혀져 아무리 뜻이 굳은 사람이라도 여러 번 권하거나 꾀고 달래면 결국은 마음이 변한다는 뜻도 된다. 정신을 집중하면 어떤 일도 이룰 수 있는 강인함이 앞의 뜻이라면 후자는 아무리 굳은 의지라도 흔들릴 수 있다는 지조의 나약함을 가리킨다. 속담성어라 언제부터 번역돼 어디부터 사용되었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다만 같은 뜻을 연상하는 두 가지 이야기를 옮겨보자.

중국 戰國時代(전국시대) 魏(위)나라가 趙(조)에 져서 태자와 함께 龐恭(방공)이란 사람이 인질로 가게 됐다. 방공은 왕에게 말했다. 어떤 사람이 시장에 호랑이가 나타났다고 하면 믿겠느냐고 하니 믿지 않는다고 했다. 두 사람이 말해도 믿지 않겠다고 말한 왕은 세 사람이 나타났다면 믿겠다고 했다. 방공이 말했다. ‘시장에 호랑이가 나타나지 않을 것은 분명한데도 세 사람이 말하자 나타난 것으로 됐습니다(夫市之無虎也明矣 然而三人言而成虎/ 부시지무호야명의 연이삼인언이성호).’ 자신에 대해 근거 없는 말이 떠돌아도 믿지 말라고 한 뜻이지만 왕은 그 뜻을 지키지 못했다. ‘韓非子(한비자)’에 나오는 三人成虎(삼인성호)의 유래다. ‘戰國策(전국책)’에도 같은 이야기가 있다.

孝經(효경)을 지었다는 효자 曾參(증삼)이 살인을 했다고 한 사람이 그 어머니에게 알렸다. 동명이인이 저지른 일을 잘못 전한 것이다. 태연하던 어머니도 두 번째 사람이 사람을 죽였다고 전하고, 이어 또 다른 사람이 아들 범행을 알리자 흔들렸다. 이렇게 되니 아들을 믿던 어머니도 두려움에 혼비백산 도망하고 말았다. 曾參殺人(증삼살인)의 유래다. 역시 ‘전국책’에 실려 있다.

미인을 얻기 위해서는 용기가 앞서야 한다며 열 번 찍어야 한다고 호사가들은 말한다. 이런 노력은 가상한 일이지만 무턱대고 찍어서는 나무만 상한다. 도끼날을 잘 갈고 자루도 튼튼히 하는 등 만반의 준비가 앞서야 한다. 신의를 주지 않고 자신에 유리한 말만 퍼뜨린다면 세 사람이 와서 법이 나타났다고 해도, 나무를 열 번 찍어도 흔들리지 않는다. 어디에서나 믿음이 앞서야 한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금선탈각金蟬脫殼 - 금빛 매미는 허물을 벗어야 만들어진다.

금선탈각金蟬脫殼 - 금빛 매미는 허물을 벗어야 만들어진다.

금선탈각(金蟬脫殼) - 금빛 매미는 허물을 벗어야 만들어진다.

쇠 금(金/0) 매미 선(虫/12) 벗을 탈(肉/7) 껍질 각(殳/8)

매미에 대한 성어를 이야기해 보자. 매미가 성충으로 살아있는 기간은 일주일에서 길어봐야 한 달이라 한다. 그래서 莊子(장자)는 여름에 나와 가을에 죽는 매미는 일 년의 길이를 알 리 없다고, 일부밖에 모르면서 아는 체하는 사람을 꼬집었다. 당연히 겨울의 눈을 모르니 蟬不知雪(선부지설)이라며 좁은 견문을 나타냈다. 하지만 짧은 지상의 매미가 되기 위해 6년에서 17년이라는 기간을 지하에서 애벌레로 지낸다는 사실은 그 기나긴 인내와 인고의 생활에 고개 숙일 수밖에 없다. 거기에다 애벌레가 성충이 되어 금빛 날개를 가진 화려한 모습으로 탈바꿈하는데서 과거를 잊고 새 출발하는 교훈을 주기도 한다.

금빛 매미(金蟬)는 자신의 껍질을 과감하게 벗어던짐(脫殼)으로써 만들어진다는 이 성어는 식견의 좁음이나 과감한 변화 등을 뜻하는 것과는 달리 ‘三十六計(삼십육계)’에서 나왔다. 이 책을 병법서의 고전 孫子兵法(손자병법)과 혼동하는 사람이 있는데 정확한 권수와 작자, 편찬 시기 등은 알 수 없는 별개의 책이다. 대개 5세기까지의 故事(고사)를 17세기 明末(명말)에서 淸初(청초)에 수집하여 ‘三十六計秘本兵法(삼십육계비본병법)’으로 묶은 것이라고 알려져 있고 속임수에 강조점을 둔 것이 특징이다.

혼란 상태에서의 전략인 混戰計(혼전계)의 제21계로 나오는 이 말은 매미가 허물을 벗듯이 감쪽같이 몸을 빼 도망하는 것을 뜻했다. 은밀히 퇴각할 때 사용하는 전법으로 진지의 원형을 보존하고 군대가 여전히 주둔하고 있는 것처럼 하면 적이 감히 공격하지 못한다. 그런 후에 주력부대를 은밀히 이동시켜 탈출하는 위장전술이다. 劉邦(유방)이 項羽(항우)에게 滎陽(형양, 滎은 실개천 형)에서 포위되었을 때 紀信(기신)이란 장수를 유방으로 변장시키고 탈출한 것이나 南宋(남송)이 金(금)에 침략 당했을 때 명장 畢再遇(필재우)가 연일 북소리를 울리면서 퇴각한 것을 좋은 예로 들고 있다.

본뜻에서도 말하듯 곤경에 처했을 때 벗어나려는 속임수는 살아나기 위한 몸부림이다. 왕년의 강대함만 믿고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하지 않으면 도태할 수밖에 없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지자막여부知子莫如父 - 아들의 됨됨이는 아버지만큼 알 수가 없다.

지자막여부知子莫如父 - 아들의 됨됨이는 아버지만큼 알 수가 없다.

지자막여부(知子莫如父) - 아들의 됨됨이는 아버지만큼 알 수가 없다.

알 지(矢/3) 아들 자(子/0) 없을 막(艹/7) 같을 여(女/3) 아비 부(父/0)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란 말이 있다. 한 사람의 아버지가 백 사람 선생보다 낫다는 말도 있다. 여러 면에서 자식은 아버지를 보고 자라고 닮을 경우가 많다는 뜻이다. 자식에 대해 속속들이 다 알 수는 없어 孔子(공자)는 그럴 때는 아들이 사귀는 친구를 보라(不知其子 視其所友/ 부지기자 시기소우)고 했다. 이것은 사소한 취미나 자라서의 애정관계 등 부모가 놓칠 수 있는 분야의 일이겠다. 어려서부터 아버지를 우러러 닮기를 바라는 아들이 많은 만큼 아무래도 자식의 됨됨이를 가장 잘 아는 사람(知子)은 그 아버지 이상일 수는 없다(莫如父)는 것이 이 성어다.

중국 역사상 가장 뛰어난 재상으로 꼽는 管仲(관중)은 春秋時代(춘추시대) 齊(제)나라의 桓公(환공)을 가장 먼저 五覇(오패)의 자리에 올렸다. 管鮑之交(관포지교)로 알려진 鮑叔牙(포숙아, 鮑는 절인물고기 포)의 절대적 지원에 의해 환공에게 발탁되어 부국강병책으로 기반을 다졌던 것이 주효했다. 관중이 늙고 병이 들어 은퇴했을 때 환공이 찾아 와 문병하면서 앞으로 국사를 누구한테 맡기면 좋을지 자문했다. 이 부분서 성어가 나오는데 ‘韓非子(한비자)’의 十過(십과)편에 실려 있다. 군주가 나라를 다스리면서 범하지 말아야 할 열 가지 허물을 이야기한 중에서 여덟 번째의 내용을 보자.

관중은 자신이 늙어 묻지 않는 것이 옳다며 사양하다 말한다. ‘신하를 잘 아는 데는 왕보다 나은 사람이 없으며, 자식에 대해 잘 아는 것은 그 아비만한 이가 없다고 하오니(知臣莫若君 知子莫若父/ 지신막약군 지자막약부)’ 환공의 의견을 먼저 물었다. 가장 잘 아는 포숙아를 내세우자 지나치게 곧아서 안 된다고 하고 신의가 두터운 隰朋(습붕)을 천거했다. 관중이 세상을 뜬 후 환공은 마음을 바꿔 내시 豎刁(수조, 刁는 조두 조)를 재상에 임명했다. 수조는 간신들과 결탁하여 반란을 일으켰고 환공은 비참하게 유폐되어 굶어 죽고 말았다.

관중이 자신을 추천한 포숙아까지 제외하며 추천한 인물을 환공이 물리친 결과는 비참했다. 인물을 잘 안 사람은 관중이었다. 아버지가 아들을 전체적으로 알 듯, 그리고 친구가 나머지 부분을 알 듯 됨됨이나 능력은 곳곳에서 알 수가 있다. 오늘의 복잡한 사회에서 일꾼을 찾으려면 여러 곳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 나라의 큰일을 맡길 때는 더욱 신중해야 할 텐데 청문회 때마다 추문이 덕지덕지 묻은 사람을 일부러 고르듯 내세운다. 자기 편 사람만 자리에 앉히려하니 허물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