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14일 목요일

상저옥배象著玉杯 - 상아 젓가락과 옥 술잔, 하찮은 낭비가 사치로 이어짐

상저옥배象著玉杯 - 상아 젓가락과 옥 술잔, 하찮은 낭비가 사치로 이어짐

상저옥배(象著玉杯) - 상아 젓가락과 옥 술잔, 하찮은 낭비가 사치로 이어짐

코끼리 상(豕/5) 나타날 저(艹/9) 구슬 옥(玉/0) 잔 배(木/4)

‘산호 기둥에 호박 주추다’란 말이 있다. 귀한 珊瑚(산호)로 기둥을 세우고 보석 琥珀(호박)으로 주춧돌을 세웠으니 호화의 극치다. 아름다운 비단 옷에 흰 쌀밥, 요즘은 크게 사치는 아닌데도 錦衣玉食(금의옥식)도 호화생활을 뜻했다.

唐(당)의 杜牧(두목)이 阿房宮(아방궁)의 秦始皇(진시황) 생활을 묘사한 것이 있다. ‘귀중한 정이 가마솥 같고, 금은 흙덩이에 진주는 조약돌 취급(鼎鐺玉石 金塊珠礫/ 정쟁옥석 금괴주력)’했으니 굴러다니는 것이 보석이었다. 鐺은 솥 쟁, 礫은 조약돌 력.

상아로 만든 젓가락(象著)과 옥으로 만든 술잔(玉杯)도 옛날에는 사치품이었다. 이것을 태연히 만들게 하고 사용한 사람이 중국 商(상)나라 紂王(주왕, 紂는 주임금 주)이라면 그럴 듯하다. 앞서 夏(하)나라 桀王(걸왕)과 함께 桀紂(걸주)로 불리는 폭군의 대명사다. 妲己(달기, 妲은 여자이름 달)라는 요녀에 빠져 酒池肉林(주지육림)에서 질탕하게 향락을 즐겼고, 간하는 충신들에겐 숯불로 달군 구리기둥을 건너가게 한 炮烙之刑(포락지형, 炮는 통째로구울 포)으로 죽였으니 악명으로 걸왕을 능가했다.

주왕이 상아로 젓가락을 만들게 하자 箕子(기자)가 걱정했다. 기자는 주왕의 숙부인데 학정에 남아나는 사람이 없는 중에 나라의 운명을 생각했다. ‘상아 젓가락을 쓰게 되면 토기를 버리고 무소뿔이나 옥으로 만든 그릇을 사용할 것이다(象箸必不加於土鉶 必將犀玉之杯/ 상저필불가어토형 필장서옥지배).’ 鉶은 국그릇 형. 다음은 거기에 맞게 진귀한 음식을 담으려 하고, 그 다음은 먹을 때의 복장, 그 다음은 호화스런 궁전을 생각할 것이다.

점차로 사치가 도를 넘을 것이기 때문에 상아 젓가락이 단초가 되어 국가의 재정을 고갈시키고 멸망에 이르게 된다고 생각했다. 과연 그 뒤 주왕의 사치와 포학이 지나쳐 나라는 망했다. ‘韓非子(한비자)’의 喩老(유로)편에 실려 있는 이야기다.

어려운 시기를 지나 조금 잘 살게 되면 지난 세월의 고생은 잊고 싶다. 그렇다고 물 쓰듯이 낭비에 집착하면 오래지 않아 옛날로 돌아간다. 상아 젓가락 하나를 보고 사치의 지름길임을 알아채는 지혜는 없더라도 작은 것의 의미는 생각하며 살아야겠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매륜남비埋輪攬轡 - 수레를 묻고 고삐를 당기다, 옳은 일을 위해 결연히 나서다.

매륜남비埋輪攬轡 - 수레를 묻고 고삐를 당기다, 옳은 일을 위해 결연히 나서다.

매륜남비(埋輪攬轡) - 수레를 묻고 고삐를 당기다, 옳은 일을 위해 결연히 나서다.

묻을 매(土/7) 바퀴 륜(車/8) 잡을 람(扌/21) 고삐 비(口/19)

고삐는 소나 말을 잘 부리기 위해 매단 줄이다. 농사를 짓거나 멀리 이동할 때 인간에 큰 도움을 주는 가축에게 가혹한 처사지만 코의 양쪽을 뚫은 코뚜레나 입에 물린 재갈 등을 끈으로 이어 방향이나 속도를 조절했다. 요즘은 대부분 농기계에 의지하게 되어 고삐는 보기 어렵게 됐어도 일상에서 비유적인 발은 많이 남았다.

긴장을 누그러뜨리거나 조일 때 고삐를 늦춘다, 조인다로 표현한다. 고삐 풀린 망아지는 거칠거나 얽매이지 않은 망나니를 나타낸다. 나쁜 일을 아무리 남모르게 한다고 해도 계속하면 들키고 만다는 속담 ‘고삐가 길면 밟힌다’는 누구나 알 정도로 유명하다.

고삐를 뜻하는 한자 轡(비)가 어려운 편이라 사용된 성어도 적다. 앞의 속담을 한역한 轡長必踐(비장필천)과 함께 고삐를 잡는다는 攬轡(남비)가 그 중에 든다. 말을 타려면 고삐를 잡아야 하고, 이것은 관리에 임용되어 임지로 떠나는 것을 나타냈다. 중국 後漢(후한) 후기의 范滂(범방, 137~169, 滂은 비퍼부을 방)에서 유래한

攬轡澄淸(남비징청)은 관리가 되어 천하의 폐해를 바로잡으려는 큰 뜻을 말한다.

청렴하고 꼿꼿했던 선비 범방은 도적떼가 우글거리는 지역에 순찰 명을 받자 ‘수레에 올라 고삐를 잡고는 격정에 차 천하를 평정할 뜻을 밝혔다(登車攬轡 慨然有澄淸天下之志/ 등거남비 개연유징청천하지지)’고 ‘後漢書(후한서)’에 전한다.

수레바퀴를 묻는다(埋輪)는 말은 굳은 의지를 표현했다. 역시 후한 때 張綱(장강, 108~143)이란 관원의 고사에서 나왔다. 順帝(순제)의 왕후가 여동생인 점을 이용하여 횡포를 부린 梁冀(양기)는 나중에 왕까지 폐하고 옹립하는 등 무소불위의 세를 과시했다.

지방서도 관리들의 비리가 들끓자 순제가 8명의 사자에게 규찰의 명을 내렸다. 이중 가장 직위가 낮았던 장강은 승냥이와 늑대가 조정에서 날뛰는데 어디서 여우를 벌하겠는가 하며 ‘홀로 낙양 수도에 수레를 묻고(獨埋其車輪於洛陽都亭/ 독매기거륜어락양도정)’ 양기를 탄핵했다. 장강의 이런 목숨을 내건 거사에 조정은 발칵 뒤집혔고 후일 양기는 권세를 빼앗겨 자살한다.

수레바퀴를 묻고 말의 고삐를 잡는다는 후한 때의 두 관원의 이야기에서 온 이 성어는 나라를 위한 결연한 의지를 말해준다. 임지로 가면서 지역의 비리를 척결하겠다는 범방과, 명을 어기면서 더 큰 부정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분연히 일어선 장강은 어찌 보면 처음 행동이 상반된다.

대부분의 공직자가 국민과 국가를 위해서 노력하고 있는 중에서도 일부에서 비리가 잇따르는 것은 이들과 같은 뚜렷한 공직관의 부족에서 온다. 빈둥빈둥 세월만을 축내거나 부당함을 알면서도 상부 지시라며 이행하는 것이 바로 적폐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골경지신骨鯁之臣 - 직언하는 강직한 신하

골경지신骨鯁之臣 - 직언하는 강직한 신하

골경지신(骨鯁之臣) - 직언하는 강직한 신하

뼈 골(骨/0) 생선뼈 경(魚/7) 갈 지(丿/3) 신하 신(臣/0)

욕심이 없이 맑고 깨끗한 것이 淸廉(청렴)이다. 이것은 공직자의 기본 임무이며 모든 덕의 근원이라고 茶山(다산)은 牧民心書(목민심서)에서 강조했다. 마음이 꼿꼿하고 곧음이 剛直(강직)이다. 청렴한 사람에 자신이 올바르다고 믿는 것을 끝까지 주장하며 양보하지 않는 강직한 성품까지 지니면 錦上添花(금상첨화)겠다. 강직한 사람이라도 자칫 잘못 생각하면 쌓은 명예는 곤두박질친다. ‘사람이 욕심이 생기게 되면 강직이 사라진다(人有慾則無剛/ 인유욕즉무강)’고 朱子(주자)는 近思錄(근사록)에서 경계했다.

임금이나 권력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바르게 말하고 행동하는 강직한 신하를 생선가시에 비유한 성어는 ‘史記(사기)’에서 유래했다. 직언을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 마치 목구멍에 가시가 걸린 것 같은 정도니 얼마나 아픈 소리일까.

생선뼈 鯁(경)은 쉽사리 굴하거나 양보하거나 하지 않을 만큼 강한 것을 말하는 强鯁(강경)에 쓰인다. 刺客(자객)열전에 나오는 내용을 요약해 보자. 春秋時代(춘추시대) 吳(오)나라의 闔閭(합려)가 왕이 되기 전 공자 光(광)이었을 때 이야기다.

그는 부왕이 자기에게 왕위를 물려주지 않아 숙부들이 차례로 왕이 된 것에 불만이 많았다. 막내 숙부 季札(계찰)이 왕위를 사양하자 둘째 숙부 아들이 왕위를 이어 僚王(요왕)이 되었다. 공자 광은 伍子胥(오자서)가 소개한 자객 專諸(전제)를 후대하며 때를 엿보던 중 요왕이 楚(초)나라를 치러 간 사이 살해하자고 했다. 전제가 말했다.

‘지금 오나라는 밖으로 초나라에 고통을 당하고 있고, 안으로는 조정이 텅 비어 믿을 만한 신하가 없습니다(方今吳外困於楚 而內空無骨鯁之臣/ 방금오외곤어초 이내공무골경지신).’ 왕을 없앨 기회라는 말에 거사를 일으켜 성공하고 공자 광은 왕위에 올랐다.

여기서 인용된 곳이 많다. ‘漢書(한서)’ 杜周傳(두주전)에는 ‘조정에 강직한 신하가 없다(朝無骨鯁之臣/ 조무골경지신)’고 했고 韓愈(한유)의 ‘爭臣論(쟁신론)’에는 ‘사방의 사람들과 후대의 사람들로 하여금 조정에 직언하는 골경지신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해야 한다(使四方後代 知朝廷有直言骨鯁之臣/ 사사방후대 지조정유직언골경지신)’고 표현했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만사형통萬事亨通 - 모든 일이 뜻대로 이루어지다.

만사형통萬事亨通 - 모든 일이 뜻대로 이루어지다.

만사형통(萬事亨通) - 모든 일이 뜻대로 이루어지다.

일만 만(艹/9) 일 사(亅/7) 형통할 형(亠/5) 통할 통(辶/7)

모든 일이 뜻대로 생각대로 잘 되어 가는 것이 亨通(형통)이다. 亨(형)은 제사라는 뜻도 있어 조상신을 잘 모시면 일이 잘 풀린다는 뜻이 나왔다고 한다. 여기에 온갖 일, 여러 가지 일 萬事(만사)가 붙어 강조하며 바라는 대로 두루두루 잘 되어가는 것을 뜻했다.

일이 자기 뜻과 같이 萬事如意(만사여의)하다고 萬事太平(만사태평)으로 萬事無心(만사무심)하면 자칫 萬事瓦解(만사와해)되어 萬事休矣(만사휴의)로 헛수고가 된다. 인간의 길흉화복은 돌고 돈다는 의미의 ‘인간 만사는 새옹지마’라는 속담과 같이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어도 마음을 다잡지 않으면 실패하기 쉬우니 조심하라는 뜻도 담겼다.

‘그가 손대는 일마다 만사형통이다‘, ’새해에는 하시는 일마다 만사형통하시길‘. 이런 식으로 평소에 자주 써 익은 말이 정작 유래를 보면 쉽지 않다. 유교 三經(삼경)의 하나이자 占卜(점복)의 원전이라 하는 ’易經(역경)‘에 나온다. 하늘은 양, 땅은 음, 해는 양, 달은 음 등 천지만물은 음과 양으로 되어 있는데 그 위치나 생태에 따라 변화하는 것을 관찰하여 八卦(팔괘)와 六十四卦(육십사괘)를 만들었다고 한다. 亨(형)은 64괘중 첫 번째 乾卦(건괘)에 나오는 四德(사덕) 중 하나이다.

복잡하지만 조금 더 옮겨보면 하늘이 갖추고 있는 네 가지 덕이 사덕으로 바로 元亨利貞(원형이정)이다. 元(원)은 만물이 시작되는 때로 봄에 속하며 仁(인)으로 이루어지고, 亨(형)은 만물이 성장하는 때로 여름에 속하며 禮(예)로서 실천하는 것이라 했다. 利(이)는 만물이 완수되는 때로 義(의)로 행해지고, 貞(정)은 만물이 완성되어 智(지)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건괘는 왕성하고 정력적인 활동을 의미한다. 건은 굳세다(健)는 뜻으로 자연으로 보면 하늘이 움직이는 것이고, 사람으로 보면 운이 뻗어가는 것이며, 사업으로 보면 한창 전성기를 구가하는 시점이다. 형통하다는 말은 여기서 나와 어떤 일을 하든지 뜻대로 이루어져 조금도 어긋나지 않는 것을 뜻하게 됐다.

이전 정권 때 모든 일은 대통령의 형을 통해야 이루어진다며 원뜻을 비틀어 ‘萬事兄通(만사형통)’이란 말이 유행했다. 세상의 모든 일은 순리대로 돌아간다. 권력에 취해 인위적으로 억지를 부리니 사달이 난다. 비아냥거리는 성어가 재미는 있지만 씁쓸한 세태를 나타내기도 해 바람직하지는 않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원후취월猿猴取月 - 원숭이가 달을 잡다, 분수를 모르고 행동하다 화를 입다.

원후취월猿猴取月 - 원숭이가 달을 잡다, 분수를 모르고 행동하다 화를 입다.

원후취월(猿猴取月) - 원숭이가 달을 잡다, 분수를 모르고 행동하다 화를 입다.

원숭이 원(犭/10) 원숭이 후(犭/9) 가질 취(又/6) 달 월(月/0)

포유류 중에서 인간 다음으로 지능이 발달했다고 하는 원숭이는 그만큼 영리하다. 뿐만 아니라 새끼가 끌려가는 것을 뒤따르다 어미 원숭이의 창자가 끊어졌다는 母猿斷腸(모원단장)의 애틋함도 있다. 하지만 원숭이는 얄팍한 자기의 머리만 믿은 나머지 곧잘 속아 넘어간다. 똑같은 결과인데도 좋아라하는 朝三暮四(조삼모사)가 대표적이다.

원숭이(猿猴)가 물에 뜬 달을 잡으려한다(取月)는 이 성어도 재주만 믿고 분수에 맞지 않게 행동하다 화를 당하는 것을 뜻한다. 원숭이를 나타낸 글자는 사이가 나쁜 犬猿(견원)에서 보듯 猿(원)이 일반적이고 猴(후)는 작은 원숭이라 한다. 이외에도 猱狖(노유), 沐猴(목후), 獼猴(미후), 猢猻(호손) 등도 모두 원숭이를 가리킨다.

심오한 비유의 이 말은 불교의 경전 ‘摩訶僧祈律(마하승기율)’에서 유래했다. 비구와 비구니의 계율을 정했다는 이 경전은 5세기 초 東晉(동진)에서 華嚴經(화엄경)을 번역한 인도 승려 佛陀跋陀羅(불타발타라)와 파미르 고원을 넘어 인도로 간 중국 최초의 승려 法顯(법현)이 공동 번역한 것이라고 자료는 설명한다.

부처님이 여러 비구니에게 말씀하시는 내용이다. 옛날 伽尸(가시)라는 나라에 이름이 波羅奈(파라나)라는 성이 있었는데 성 안 한적한 곳에 원숭이 무리 오백 마리가 살았다. 한 수행자가 숲 속을 지나가고 있을 때 큰 나무 아래의 큰 우물에 달이 비치고 있었다.

원숭이 우두머리가 무리에게 달이 우물에 빠져 죽어가고 있는데 세상이 어두워지기 전에 꺼내줘야 한다고 말했다. 모두들 어떻게 꺼내야 하는지 의논했으나 묘책이 떠오르지 않아 물었다. 대장이 꺼내는 방법을 안다며 일러준다.

‘내가 나뭇가지를 잡고 너는 내 꼬리를 잡아(我捉樹枝 汝捉我尾/ 아착수지 여착아미), 계속 잇고 이어서 늘어뜨리면 꺼낼 수 있다(展轉相連 乃可出之/ 전전상련 내가출지).’ 어떻게 됐을까. 좋은 생각이라며 원숭이들은 서로의 꼬리를 잡고 길게 늘어뜨렸지만 물에 이르기도 전에 무게에 못 이겨 나뭇가지가 부러졌다. ‘원숭이들은 모두 물속으로 떨어지고 말았다(一切獼猴墮井水中/ 일체미후타정수중).’

아무리 능숙하게 잘 하는 사람이라도 실수할 때가 있다. ‘나무 잘 타는 잔나비 나무에서 떨어진다’는 속담이 말해주는 바다. 모두들 우수하다고 자부하는 집단에서도 어리석은 계책을 내는 수가 있으니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라’고 한 것이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뛰어난 머리를 믿은 나머지 결과의 잘못은 좀처럼 인정하지 않고 변명만 한다.

다른 의견을 듣지 않는다면 ‘아무리 똑똑한 원숭이라도 우리 속에 가둬 두면 돼지와 같아진다(置猿於柙中 則與豚同/ 치원어합중 즉여돈동)’는 韓非子(한비자)의 말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柙은 우리 합.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배중사영杯中蛇影 - 술잔 위에 비친 뱀의 그림자. 지나친 근심

배중사영杯中蛇影 - 술잔 위에 비친 뱀의 그림자. 지나친 근심

배중사영(杯中蛇影) - 술잔 위에 비친 뱀의 그림자. 지나친 근심

잔 배(木/4) 가운데 중(丨/3) 긴뱀 사(虫/5) 그림자 영(彡/12)

편안한 친구와 마주 앉아 술을 마시는데 술잔 속(杯中)에 뱀의 그림자(蛇影)가 어른거린다. 이 친구가 술에 무엇을 탔을까 의심하니 술맛이 싹 달아난다. 믿을 만한 친구인데 그럴 리가 없다며 억지로 마셨지만 속이 영 안 좋다. 이와 같이 아무 것도 아닌 일에 의심을 품고 지나치게 근심을 하거나 자기 스스로 걱정을 사서 하는 경우에 이 성어를 쓴다. 하늘이 무너질까 걱정하여 늘 안절부절 지낸 杞(기)나라 사람 杞人憂天(기인우천)과 꼭 같은 말이다.

중국 三國時代(삼국시대, 220년~280년) 이후 세워진 晉(진)나라에 樂廣(악광)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집이 가난하여 독학을 했어도 영리하고 신중해서 주위의 칭찬이 자자했다. 장성한 뒤 벼슬자리에 천거되어 河南(하남) 지역의 태수로 있을 때의 일이다.

친한 벗을 불러 술자리를 가진 적이 있었는데 자주 들르던 친구가 그 이후 연락이 두절되었다. 이상하게 생각하여 악광이 편지로 연유를 물었더니 답신이 왔다. 지난 번 술을 마실 때 권한 술잔에 조그만 뱀 한 마리가 보였다고 했다. 억지로 마셨더니 이후 병이 나 지금까지 누워 있다는 것이다.

술은 관가의 자기 방이었는데 곰곰 생각해보니 친구의 뒤편 벽에 뱀이 그려진 활이 걸려 있었다. 악광이 다시 친구를 불러 그 자리에서 술을 따르며 또 뱀이 보이느냐고 물었다. 전과 똑 같이 보인다고 대답하자 악광이 뒷벽을 가리키며 박장대소했다.

‘그건 저 활에 그려져 있는 뱀의 그림자(杯中蛇影)일세.’ 친구는 그 말을 듣고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달았다. 그리고선 병이 씻은 듯이 나았다고 했다. ‘晉書(진서)’ 악광전에 실려 있는 이야기다. 後漢(후한) 말 학자 應劭(응소, 劭는 아름다울 소)가 쓴 ‘風俗通義(풍속통의)’에는 등장인물이 應郴(응침, 郴은 고을이름 침)과 杜宣(두선)으로 다를 뿐 내용은 같이 나온다.

거짓은 더 큰 거짓이 필요하고 의심은 의심을 낳는다. 국가나 정당이나 이해집단을 막론하고 협상을 할 때 상대방의 안을 너무 이것저것 따지며 의심을 한다면 한이 없다. 선의로 받아들일 것은 받고 줄 것은 줘야 앞으로의 거래가 원활하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2024년 3월 13일 수요일

무망재거毋忘在莒 - 거나라 때의 고난을 잊지 말라, 항상 어려웠을 때를 기억하라.

무망재거毋忘在莒 - 거나라 때의 고난을 잊지 말라, 항상 어려웠을 때를 기억하라.

무망재거(毋忘在莒) - 거나라 때의 고난을 잊지 말라, 항상 어려웠을 때를 기억하라.

말 무(毋/0) 잊을 망(心/3) 있을 재(土/3) 모시풀 거(艹/13)

젊은 시절의 고생은 성인이 된 이후 성공 여부에 큰 영향을 끼친다. ‘초년고생은 은을 주어도 안 바꾼다’는 말이 있다. 사서 고생을 할리야 없겠지만 어쩔 수 없어 한 고생이라도 성공한 뒤 돌아보면 큰 도움이 됐음을 알게 된다. 그래서 ‘초년고생은 만년 복’이라며 초심을 잃지 않으려 노력한다.

중국 春秋時代(춘추시대) 조그만 제후국이 있었던 莒(거)땅에서 어려운 생활을 했던 때를 잊지 말라(毋忘)고 한 이 성어도 같은 의미다. 고생 끝에 낙이 왔다고 그 시절을 잊으면 다시 화가 닥칠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비유다. 이전에 나왔던 勿忘在莒(물망재거)와 같은 말인데 두 군데서 유래를 찾는다.

春秋五霸(춘추오패)가 되기 전의 齊(제)나라 공자 小白(소백)은 왕권다툼을 피해 鮑叔牙(포숙아, 鮑는 절인물고기 포)와 함께 周(주)나라 제후국인 莒(거)나라에 있었다. 管仲(관중)이 섬겼던 공자 糾(규)보다 한 발 빨리 왕위에 올라 桓公(환공)이 된 소백은 능력 위주로 현신을 모아 부강한 나라로 만들었다.

관중은 환공을 해치려 했음에도 管鮑之交(관포지교)로 알려진 포숙아의 추천으로 기용됐고, 마부 출신의 甯戚(영척, 甯은 차라리 영)도 중용됐다. 환공이 어느 때 술자리를 갖고 포숙아에게 축하의 말을 청했다. ‘왕께서는 거 땅에서 나올 때를 잊지 않아야 합니다(使公毋忘出奔在於莒也/ 사공무망출분재어거야).’ 고생했을 때를 기억하라는 조언은 ‘呂氏春秋(여씨춘추)’의 直諫(직간)편에 실려 있다.

세월이 흐른 뒤 戰國時代(전국시대) 제나라 湣王(민왕, 緡은 돈꿰미 민)때 북쪽의 강국 燕(연)나라의 침입을 받았다. 원한이 있었던 연나라는 명장 樂毅(악의)를 영입하여 제나라 곳곳을 유린하며 연전연승했다. 겨우 남은 2개의 성 중에서 莒城(거성)에 피신했던 민왕이 피살되는 등 풍전등화였을 때 백성들이 받든 장군 田單(전단)이 유언비어를 퍼뜨려 악의를 쫓아내는데 성공했다.

이어 소 1000 마리의 꼬리에 기름 적신 갈대를 매달고 불을 붙인 채 적진을 휘저은 火牛計(화우계)로 완전히 연나라 군대를 내쫓았다. 은신하던 왕자를 찾아내 ‘거 땅에서 찾아내 襄王(양왕)으로 맞아들이고(迎襄王於莒/ 영양왕어거)’ 사직을 지켰다. 망하기 직전의 제나라를 거성이 지킨 셈이다. ‘史記(사기)’ 전단 열전에 나온다.

중국에 인접한 臺灣(대만) 영토 진먼다오金門島/ 금문도에는 중공군의 야습과 집중 포격을 막아낸 곳곳에 이 성어가 새겨져 있다고 한다. 대만은 대륙의 온갖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어려움을 잘 이겨냈기 때문에 오늘의 번영을 이어가고 있다. 형편이 조금 나아지면 고생했을 때는 까맣게 잊고 흥청망청하다 전 국민이 어려움에 빠진 남미의 여러 나라와는 대조적이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선견지명先見之明 - 어떤 일이 일어나기 전에 미리 아는 지혜

선견지명先見之明 - 어떤 일이 일어나기 전에 미리 아는 지혜

선견지명(先見之明) - 어떤 일이 일어나기 전에 미리 아는 지혜

먼저 선(儿/4) 볼 견(見/0) 갈 지(丿/3) 밝을 명(日/4)

사람이 자신의 운명을 알 수 있다면 행복할까. 모두들 그에 대비하느라 현재의 삶을 소홀히 하기 쉬워 큰 복은 아닐 듯싶다. 인간이 자신의 미래를 알아버리면 항상 끝없는 기쁨과 공포가 뒤섞여 한 순간도 평화스러울 때가 없어진다는 서양 격언이 있다.그래서 지혜가 깊은 전지전능한 신도 미래의 일을 모르도록 캄캄한 밤으로 덮었다고 했다. 앞날을 알지 못하므로 설사 오늘 모든 것을 잃더라도 아직 미래가 남아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으니 역시 모르는 것이 낫겠다.

운명까지는 아니더라도 사물이 앞으로 전개되는 양상을 알 수 있다면 일을 해결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어떤 일이 일어나기 전에 미리 내다보고(先見) 그에 대한 지혜(之明)를 발휘하는 것은 큰 능력이다. 이 성어는 중국 三國時代(삼국시대) 曹操(조조)의 휘하 모사로 유명한 楊修(양수)의 일화에서 비롯된다.

양수는 폭넓은 지식과 깊이 있는 독서로 항상 조조의 의중을 읽어내는 데에 탁월했다. 그에 관한 성어로 닭의 갈비라는 뜻의 鷄肋(계륵)이 유명한데 그다지 큰 소용은 없으나 버리기에는 아까운 점령지의 철수란 조조의 뜻을 알아챘다.

이런 양수의 재기에 조조는 크게 평가하면서도 깊은 신임은 주지 않았다. 양수가 원래 官渡(관도) 전투에서 조조에 패한 袁紹(원소)의 생질이었기 때문이다. 이후에도 여러 번 의중을 미리 알아챈 양수를 조조는 후환이 두려워 죽여 버렸다. 양수의 부친 楊彪(양표)는 아들을 잃고 비통해하다 조조가 야윈 이유를 묻자 대답했다.

‘저는 부끄럽게도 김일제와 같이 앞을 내다보지 못해 어미소가 송아지를 핥아주는 마음뿐입니다(愧無日磾先見之明 猶懷老牛舐犢之愛/ 괴무일제선견지명 유회로우지독지애).’

金日磾(김일제, 磾는 )는 武帝(무제)때 匈奴(흉노) 출신으로 자신의 아들이 황제에 무례하다며 죽였다. 그와 같이 못해 아들을 죽게 했다는 것이다. 范曄(범엽)이 쓴 ’後漢書(후한서)‘에 실려 있는 내용이다.

미래의 일을 지각할 수 있는 예지력은 큰 능력이다. 보통 삶들의 상상을 넘어서는 너무 앞서 나간 능력은 질시와 방해를 받을 수 있다. 양수의 앞을 내다본 재주도 결국 화를 입었다. 그 능력을 조화롭게 펼칠 수 있도록 주위를 설득하는 것도 큰 재주이다. 독불장군은 없는 법이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담화일현曇花一現 - 우담바라 꽃이 한 번 피다, 매우 드물고 신령스런 일

담화일현曇花一現 - 우담바라 꽃이 한 번 피다, 매우 드물고 신령스런 일

담화일현(曇花一現) - 우담바라 꽃이 한 번 피다, 매우 드물고 신령스런 일

흐릴 담(日/12) 꽃 화(艹/4) 한 일(一/0) 나타날 현(玉/7)

우담바라라는 꽃이 있다. 불교도들은 모두 믿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실재한다고 믿고 싶은 꽃이다. 여러 불경에 단편적으로 등장하여 설명이 조금씩 다르다. 먼저 다양한 표기가 특징이다. 산스크리트어 우둠바라(udumbara)의 음역으로 優曇婆羅(우담바라)가 많이 쓰이고 優曇波羅(우담파라), 優曇跋羅(우담발라), 優曇鉢華(우담발화), 優曇跋羅華(우담발라화), 줄여서 優曇華(우담화) 등으로도 사용된다.

뜻으로 풀이하여 祥瑞雲異(상서운이)하다고 靈瑞(영서), 瑞應(서응), 靈瑞花(영서화), 空起花(공기화)라고도 표기한다. 상상 속에 있다고 하는 이 꽃과 달리 실제로 있는 우담화 역시 인도가 원산지고 열매는 코끼리의 사료라는 높이 3m 정도의 뽕나무과 낙엽교목이다.

우담바라 꽃의 설명도 다양하여 신비감을 높인다. 3000년에 한 번씩 피어나는 꽃으로 인도 신화 속의 지혜의 왕 轉輪聖王(전륜성왕)이 세상을 다스리게 되면 감복해서 함께 등장한다고 했다. 과거칠불 중의 다섯 번째인 俱那含牟尼佛(구나함모니불)이 꽃이 핀 나무 아래서 성불했다고 전한다. 또 隱花(은화)식물인 이 꽃이 피면 상서로운 일이 생길 징조라고 한 곳도 있다.

어떻든 드물고 신령스러운 것을 나타낼 때 이 꽃에 비유하고 久遠(구원)의 뜻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우담바라 꽃(曇花)이 딱 한 번 나타났다(一現)고 한 성어는 여기서 나왔다.

꽃이 한 번 피기까지 3000년의 세월이 흐르고 피었다가도 금방 지는 이 꽃은 아름다운 사물이나 경치는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것이 순간적이라 보기 어렵고, 좋은 사람을 만나고 좋은 말을 듣는 것 또한 때가 있는 것이라고 빗대 하는 말이 됐다. 불경 가운데 가장 존귀하다고 여긴다는 ‘妙法蓮華經(묘법연화경)’에서는 부처님의 묘법을 칭했다.

설명을 옮겨 보자. ‘신기한 묘법은 모든 부처님께서 때가 이르러서야 말씀하시니, 마치 우담바라가 때가 되면 딱 한 번 피는 것과 같으니라(妙法 諸佛如來 時乃說之 如優曇鉢花 時一現耳/ 묘법 제불여래 시내설지 여우담발화 시일현이).’ 그렇게 귀한 말씀이니 믿어야 허망하지 않다는 뜻이다.

특정한 대나무나 영력이 강한 곳에서 피어난다는 신령스런 우담바라가 실제 나타났다고 종종 화제를 모으기도 한다. 단골로 등장하는 곳이 경기도 의왕시 淸溪寺(청계사), 경주 祇林寺(기림사), 사천 多率寺(다솔사) 등지다.

이 꽃을 유니콘이나 용처럼 불교 세계관의 환상 속에서만 존재한다고 믿는 사람들에겐 작은 물방울과 같은 풀잠자리의 알일 뿐이다. 하지만 고해와 같은 생활을 이어가는 중생들에겐 삼천년의 기적이 아니라 삼년 만에라도 조금 나은 일이 닥쳐오기를 기다린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삼읍일사三揖一辭 - 세 번 읍하고 한 번 사양하다.

삼읍일사三揖一辭 - 세 번 읍하고 한 번 사양하다.

삼읍일사(三揖一辭) - 세 번 읍하고 한 번 사양하다.

석 삼(一/2) 읍할 읍(扌/9) 한 일(一/0) 말씀 사(辛/12)

사람이 어떤 자리에 나아갈 때와 물러갈 때를 잘 알아 처신한다면 모두의 우러름을 받는다. 조금이라도 나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거나 후진에게 물려줄 때가 지났는데도 버티고 있다면 손가락질을 받는다.

이럴 때 적합한 시가 시인 이형기 선생의 ‘落花(낙화)’다. 부분을 인용해 보면.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揖(읍)한다는 것은 두 손을 맞잡아 얼굴 앞으로 들어 올리고 허리를 앞으로 공손히 구부리는 예의 하나이다. 군자가 벼슬길에 나설 때 세 번 읍했으니(三揖) 세 번 사양하여 신중하게 나아가고, 물러날 때는 한 번 사양하고(一辭) 지체 없이 떠난다는 뜻이다. 이 말은 고대 유가의 五經(오경) 중의 하나인 ‘禮記(예기)’의 表記(표기)편에 실려 전한다.

예기는 孔子(공자)와 그 제자들부터 漢(한) 시대까지 여러 사람을 거쳐 예의 이론과 실제를 논하는 내용을 엮은 책인데 특히 四書(사서) 중의 大學(대학)과 中庸(중용)이 이 가운데 한 편으로 실렸다가 독립된 것으로 유명하다. 공자의 말씀을 옮겨보자. ‘임금을 섬기는데 나아가서 벼슬하는 것은 어렵고 벼슬에서 사퇴하기는 쉬운 것은 곧 지위에 순서가 있어서다.

나아가기를 쉽게 하고 물러나기를 어렵게 하면 어지러워진다. 그러므로 군자는 3번 읍하고서 나아가며, 한번 사양하고서 물러남으로써 어지러움을 멀리하는 것이다(君子三揖而進 一辭而退 以遠亂也/ 군자삼읍이진 일사이퇴 이원란야).’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