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일 월요일

◇ 빨리 늙고 있다는 신호 5가지

◇ 빨리 늙고 있다는 신호 5가지

◇ 빨리 늙고 있다는 신호 5가지

▶ 주름살로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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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2021년 한 해가 30일 남짓 남았다. 한 살 나이를 또 먹는다는 생각에 거울을 보면 괜히 주름살이 더 깊어진 것만 같고 머리숱은 줄어든 것만 같다. 노화는 중년이나 노년에만 해당되지 않는다. 이미 나이 앞자리가 3으로 시작하는 순간 노화는 시작된다고 보면 된다. 나이 상관없이 노화가 시작됐다는 몸의 신호를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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❶ 나도 모르게 피부를 벅벅 긁는다

조금 전에 로션을 발랐는데, 피부는 메마른 장작 같다. 건조함은 기본, 가렵기까지 하다면 노화의 증상일 수 있다. 피부의 탄력 섬유가 감소하면 피부가 가려워진다. 특히 등이 가려울 수 있는데 지방층이 얇은 부위이기 때문. 괜히 어르신들이 등을 긁은 게 아니다. 샤워한 후에 피부 보습제를 온 몸에 꼼꼼히 바르자.

❷ 가르마가 넓어지고 있다

머리숱만큼은 자신하던 사람도 30대 후반부터는 정수리에 신경이 쓰인다. 이는 일반적으로 30대 후반부터 체내 단백질 합성 기능이 저하돼 특히 정수리 부근의 머리숱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

조사에 따르면, 20~30대 사이에서도 탈모가 늘어나고 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이른 사춘기다. 남성형 탈모가 사춘기 발생 10년 후부터 시작되는데, 사춘기 시작 시기가 앞당겨지면서 탈모 시기도 빨라졌다는 것. 또한 기름진 육류나 튀김 섭취량이 늘면서 남성호르몬 DHT가 증가해 탈모가 유발됐다는 주장도 있다. 특히 부모님 쪽 한 분이라도 탈모가 있었다면 조기부터 머리숱 관리를 시작하는 것이 좋다.

❸ 걷는 속도가 확연히 느려졌다

나이가 들수록 보폭은 짧아지고느리게 걷는다. 연구에 따르면, 걷는 속도가 노화 정도를 반영한다. 느리게 걸을수록 몸이 빨리 노화하고 얼굴도 더 늙어 보인다는 것. 게다가 보폭이 짧으면 낙상 위험도 커진다. 이는 다리 근육이 퇴화돼 보폭이 짧아지고 속도가 떨어지는 것이다. 오히려 신경 써서 보폭을 넓히고 빠르게 걷는 것이 좋다.

❹ 스마트폰을 점점 멀리서 본다

눈은 다른 신체보다 노화가 빨리 진행된다. 눈이 시리고 뻑뻑해지는 안구건조증 증상과 함께 평소처럼 스마트폰을 가까이 보면 눈앞이 흐릿해지고 스마트폰 쥔 손을 쭉 뻗으면 오히려 또렷하게 보인다면 노안을 의심할 수 있다. 40대 중반이 되면 독서거리의 물체가 잘 안보이게 되는데, 20~30대 초반에서도 노안 증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장시간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것이 원인이다. 평소 1시간 동안 TV나 스마트폰을 봤다면 최소 5~10분간 멀리 있는 곳을 보고 하루 한 번 눈 주변 마사지, 녹색 채소 섭취, 1년에 1회 눈 건강검진 등을 병행하는 것이 좋다.

❺ 계단 오를 때 나도 모르게 "끙끙" 거린다

아직 30대 후반인데도 계단 오르는 것을 힘들어하는 사람이 있다. 그렇다면 노화가 시작됐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좋다. 노화는 주름살이 아닌, 근육 감소로 시작된다. 평소 건강에 자신이 있는 사람이라도 30대 후반부터는 근육이 자연스럽게 줄어들기 마련. 평소 근력 강화에 신경쓰지 않았다면 40세부터 매년 근육이 1%씩 감소하기도 한다.

문제는 근육 감소는 삶의 질과 관련이 있다는 데 있다. 근육이 빠지는 것을 당연한 노화 과정으로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근육량이 줄지 않도록 미리 준비해야 한다. 근육 감소를 방치하면 근육의 대사조절 기능이 방해돼 당뇨병, 고지혈증, 비만 같은 합병증이 유발될 수 있고 근육의 혈당 흡수와 사용 능력이 저하돼 당뇨가 생길 수 있다.

기초대사량이 감소해 복부에 내장지방이 쌓이고, 고혈압 위험도 높아져 심혈관질환 위험도 커진다. 한 연구에 따르면, 근육 감소가 있는 남성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사망률이 1.5배 높았다.

평소 걷기 같은 유산소운동뿐만 아니라 스쿼트, 팔굽혀펴기 등 근력운동으로 근육을 지켜야 한다. 특히 인체에서 근육이 가장 많은 부위가 하체이므로 하체 근력운동을 필수로 하는 것이 좋다. 근력운동과 함께 단백질 및 비타민D 섭취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

유지자 사경성有志者 事竟成 - 뜻이 있는 사람은 결국 큰일을 이룬다.

유지자 사경성有志者 事竟成 - 뜻이 있는 사람은 결국 큰일을 이룬다.

유지자 사경성(有志者 事竟成) - 뜻이 있는 사람은 결국 큰일을 이룬다.

있을 유(月/2) 뜻 지(心/3) 놈 자(耂/5) 일 사(亅/7) 마침내 경(立/6) 이룰 성(戈/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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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하겠다고 뜻을 굳히면 강인한 의지로 실천해야 한다. 큰 기러기와 고니의 뜻 鴻鵠之志(홍곡지지)나 배를 삼킬만한 큰 물고기 呑舟之魚(탄주지어)의 포부를 가진 사람은 주위의 흔들림에 상관없이 밀고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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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유명격언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Where there"s a will, there"s a way)’와 같이 전도가 양양해진다. 이런 사람들은 諸葛亮(제갈량)이 소나기로 火攻(화공)을 실패하고 탄식했다는 ‘계략을 꾸미는 것은 사람이지만 그 일이 이루게 하는 것은 하늘(謀事在人 成事在天/ 모사재인 성사재천)’이란 말을 싫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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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을 가지고 있는 사람(有志者)은 마침내 성공한다(事竟成)는 이 말은 范曄(범엽)이 쓴 ’後漢書(후한서)‘가 출전이다. 줄여서 有志事竟成(유지사경성), 有志竟成(유지경성)이라 해도 같다. 중국 前漢(전한)말기 외척 王莽(왕망, 莽은 풀 망)이 나라를 찬탈하고 新(신)나라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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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통이 아닌데다 급격한 개혁으로 민심이 돌아서 곳곳에서 왕망을 타도하려는 세력들이 나타났다. 왕족의 핏줄인 劉秀(유수)가 한 왕조의 재건을 기치로 내걸자 많은 인물들이 모여들었다. 유수의 휘하에 耿弇(경엄, 弇은 사람이름 엄)이란 장수도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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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엄은 어려서부터 병서를 읽고 무예를 익혔기에 단번에 두각을 드러내 유수가 光武帝(광무제)로 즉위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경엄은 각 지역의 세력들을 타도하는 웅대한 계획을 세워 건의했으나 유수는 실현 가능한지 의구심이 있었다. 마지막으로 山東(산동)지역의 막강한 張步(장보)군과 싸울 때는 많은 사상자를 내고 경엄도 화살을 맞아 중상을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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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전고투 끝에 적진을 함락하자 유수가 이전의 계책을 말할 때는 어렵게만 생각되던 것을 끝내 이룩해냈다면서 노고를 치하했다. ‘뜻을 가진 사람이 결국 일을 성공시키는구려(有志者事竟成也/ 유지자사경성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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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환경을 이기고 뜻을 세워 노력하여 목적을 달성한 사람의 전기가 立志傳(입지전)이다. 이전에 흔했던 개천에서 용 난 사람들의 이야기다. 오늘날엔 빈부의 격차가 너무 크고 단계적으로 신분 상승하기도 어려워 젊은이들이 절망한다. 어떻게 하면 골고루 소득이 높아져 잘 살게 되고 큰 뜻을 이룬 입지전적인 사람이 많이 나올 수 있을지 위정자들은 고민해야 한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경사불민敬謝不敏 - 자신의 어리석음을 정중하게 사과하다.

경사불민敬謝不敏 - 자신의 어리석음을 정중하게 사과하다.

경사불민(敬謝不敏) - 자신의 어리석음을 정중하게 사과하다.

공경 경(攵/9) 사례할 사(言/10) 아닐 불(一/3) 민첩할 민(攵/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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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은 소중하다. 집으로 찾아 온 사람이거나 무슨 예식을 축하하고, 공연 등에 값을 치른 고객 모두 귀하게 대접해야 마땅하다. ‘손님을 후대하는 사람은 신을 잘 섬기는 사람이다’, ‘손님을 환영하는 집은 망하지 않는다’ 등의 외국 격언도 소중함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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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의 경우도 보자. ‘손은 갈수록 좋고 비는 올수록 좋다’는 속담이나 ‘손님은 물고기와 같아서 사흘이 지나면 냄새가 난다’란 서양 격언은 잘 처신해야 환영 받는다는 것을 말해 준다. 주인 입장에선 손님을 편안히 모셔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고 느낀다면 자신의 어리석음과 둔함(不敏)을 정중하게 사과하라(敬謝)고 가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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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손님과 주인이 경우에 따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예화가 ‘春秋左氏傳(춘추좌씨전)’에 실려 있어 흥미롭다. 鄭(정)나라의 명신 子産(자산)이 簡公(간공)을 호종하여 晉(진)나라를 방문했을 때다. 마침 平公(평공)은 이웃 魯(노)나라의 襄公(양공)의 장례를 이유로 만나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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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에 孔子(공자)의 나라가 되는 노나라나 진에 비해 소국인 정나라가 홀대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자산은 객관의 담을 부수고 거마를 안으로 들여놓았다. 진나라의 대부 士文伯(사문백)이 찾아 와 문책하니 자산은 예물을 가지고 왔는데 도둑은 설치고 만나주지도 않아 답장을 부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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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자산이 항의한다. 이전 文公(문공) 때엔 사절이 도착하면 온갖 편의를 다 해줬다는데 지금은 도대체 무슨 짓이냐고 몰아붙였다. 그때는 ‘손님이 마치 자기 집에 온 것처럼 포근하게 느꼈으니(賓至如歸/ 빈지여귀), 재난 같은 것은 없고 도적을 걱정하지 않았다(無寧災患 不畏寇盜/ 무녕재환 불외구도)’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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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문백이 돌아가 경대부인 趙文子(조문자)에게 보고하니 불찰을 깨달았다. ‘하인들이나 살 집에 제후들을 맞이하고 있었으니(隸人之垣 以贏諸侯/ 예인지원 이영제후)’ 자신의 죄라 하고 ‘사문백을 보내 자신의 어리석음을 사과하게 했다(使士文伯 謝不敏焉/ 사사문백 사불민언).’ 垣은 담 원, 남을 贏은 맞이하다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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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이 가득 차 북적이는 것이 좋은 영업장이나 사업소는 물론 있다. 개인 집에 귀한 손님이 와도 오래 지나면 빨리가기를 원한다는데 장사하는 곳도 용무를 빨리 마치면 환영 받는다. 손님을 잘 맞아야 하지만 손님도 손님 나름이다. 이런 손님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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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이 도리어 주인 노릇을 한다는 客反爲主(객반위주)는 ‘손님이 왕’이란 말을 믿고 거들먹거리는 덜된 인간이기 쉽다. 대금을 지불했다고 이것저것 부당하게 시킨다면 사람의 가치를, 존엄성을 무시하는 일이다. 감정 노동자가 힘겨워 할수록 옥스퍼드영어사전(OED)에 올랐다는 갑질(Gapjil)이 우리를 욕되게 할 것이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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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가근시晏家近市 - 재상 안영의 집이 번잡한 시장 근처에 있다.

안가근시晏家近市 - 재상 안영의 집이 번잡한 시장 근처에 있다.

안가근시(晏家近市) - 재상 안영의 집이 번잡한 시장 근처에 있다.

늦을 안(日/6) 집 가(宀/7) 가까울 근(辶/4) 저자 시(巾/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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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대 재상 중에서 晏嬰(안영, 嬰은 어린아이 영)은 管仲(관중)과 함께 첫째, 둘째를 다툴 만큼 후대에까지 존경을 받는다. 둘 다 春秋時代(춘추시대) 齊(제)나라의 재상으로 100년 이상 앞선 관중이 桓公(환공)을 첫 覇者(패자)로 올리는 데 출중한 능력을 발휘했다면 안영은 세 임금을 모시며 나라를 바르게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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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중이 목적을 향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직진한 데 비해 안영은 몸소 검소하게 생활하며 작은 몸집에도 권력자에 굴하지 않고 바른 말을 하는 거인으로 晏子(안자)라며 존경받을 정도였다. 안영에 따르는 여러 고사 중에서 재상 신분임에도 그가 사는 집(晏家)은 초라하고 시장 가까이 번잡한 데 있었다(近市)는 이야기부터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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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영이 모신 제나라 세 군주는 靈公(영공) 莊公(장공) 景公(경공)이다. 경공은 사냥을 좋아하고 세금을 무겁게 매겨 사치에 빠지고 혹형을 일삼아 어지러웠다. 장공의 횡사 후 은거하던 안영을 다시 불러들인 뒤 차츰 안정을 찾게 됐다. 경공은 백성들의 신망을 받는 안영의 집이 초라하고 비좁으며 시장과 가까워 불편하다는 것을 알고 바꿔 주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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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영은 임금의 신하였던 부친에게서 물려받아 분에 넘치게 살고 있다며 사양한다. ‘게다가 소신은 시장 가까이에 살아 조석으로 필요한 물건을 살 수 있으니(且小人近市 朝夕得所救/ 차소인근시 조석득소구), 그것은 소인의 이익입니다(小人之利也/ 소인지리야).’\xa0‘春秋左氏傳(춘추좌씨전)’에 전하는 내용이다. 높은 자리에 있는 안영은 검소한 삶이 생활화되어 있어 불편을 득이라 본 것이다. 안영의 재치 넘치는 간언으로 혹형을 폐지하는 이야기가 이어진다. 경공이 시장 가까이 살고 있으니 물건의 비싸고 싼 것을 아는지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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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안다며 ‘의족은 비싸고 보통 신발은 쌉니다(踊貴屨賤/ 용귀구천)’고 답했다. 뛸 踊(용)은 옛날 다리를 잘린 사람이 대신해 신던 의족, 屨는 신 구. 당시 경공은 형벌을 남용하고 있어 죄인의 발꿈치를 베는 刖刑(월형, 刖은 발꿈치벨 월)이 가혹하다는 진언이었다. 경공은 이 말을 듣고 처형을 완화한 것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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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세가 높을수록, 돈이 많을수록 더 높이 더 넓게 호화주택을 가지려는 요즘 사람들에겐 전혀 상상이 되지 않는다. 안자의 상상이 안 되는 검소한 생활과 젠 체하며 앞으로 나서지 않는 태도를 말하는 성어를 더 보면 명성을 실감한다. 晏嬰狐裘(안영호구)와 晏御揚揚(안어양양)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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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자는 재상이 된 뒤에도 한 벌의 여우갖옷을 30년이나 계속 입어 검소함으로 칭송을 받았다. 또한 안자의 수레를 끄는 마부가 키 크고 늘씬했던 모양인데 재상보다 제가 잘나 모두 엎드리는 줄 알고 거들먹거리다 부인의 이혼 요구를 받은 뒤 고쳤다는 이야기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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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구폐요跖狗吠堯 - 도척의 개가 요임금을 보고 짖다, 주인에게 충성을 다하다.

척구폐요跖狗吠堯 - 도척의 개가 요임금을 보고 짖다, 주인에게 충성을 다하다.

척구폐요(跖狗吠堯) - 도척의 개가 요임금을 보고 짖다, 주인에게 충성을 다하다.

발바닥 척(足/5) 개 구(犬/5) 짖을 폐(口/4) 요임금 요(土/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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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악독한 사람을 한 사람 들라면 盜跖(도척, 跖은 발바닥 척)이 꼽힌다. 春秋時代(춘추시대) 무리 9000명을 이끌고 이 나라 저 나라 다니며 살인과 노략질을 일삼은 불한당이었다. 그의 형 柳下惠(유하혜)는 孔子(공자)의 친구이면서 인격자로 망나니 동생을 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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싫어하는 사람이 잘못되는 것을 통쾌히 여긴다는 ‘도척의 개 범 물어 간 것 같다’는 속담까지 생겼다. 전설상이긴 하지만 중국의 堯(요)임금은 백성들을 덕으로 다스려 성군으로 알려져 있다. 이 극단적인 두 사람을 대비하면서 중간에 개를 등장시켜 재미있는 성어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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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의 도둑 도척이 기르는 개(跖狗)가 성천자인 요임금을 보고 짖는다(吠堯)는 뜻이다. 개는 사람과 가장 가까운 동물로 가축에서 伴侶(반려)로 승격했지만 어진 사람이라도 처음 보면 짖을 수밖에 없다. 개를 나무랄 수 없듯이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모시는 주인에게 충실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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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서 악한 자의 무리에 섞여서 어진 사람을 미워한다거나 자칫 잘못된 길로 들어서면 착한 자를 도리어 해치게 된다는 것도 뜻하게 됐다. 포악한 桀王(걸왕)의 개가 요임금을 향해 짖는다는 桀犬吠堯(걸견폐요)와 똑 같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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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高祖(한고조)는 項羽(항우)를 물리치고 천하통일 했으나 자신을 도왔던 공신들을 끝까지 믿지 못했다. 대장군 韓信(한신)이 반란을 일으킨다고 잡아들이고 그를 부추긴 모사 蒯通(괴통, 蒯는 기름새 괴)을 문초했다. 한신에게 천하를 삼분하라고 했다며 삶아 죽이려 했다. 괴통이 억울하다며 변호에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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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척의 개라도 요임금을 보고 짖는 것은 나쁜 사람이라 짖는 것이 아닙니다. 개는 주인 아닌 사람을 만나면 짖기 때문입니다(跖之狗吠堯 堯非不仁 狗因吠非其主/ 척지구폐요 요비불인 구인폐비기주).’ 괴통에게는 한고조가 아니라 한신이 주인이었기 때문이라 했다. 한고조는 그의 입장을 이해하고 풀어 주었다. ‘史記(사기)’ 淮陰侯(회음후) 열전에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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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임금을 보고 주인이 아니라고 짖어댄 개를 나무랄 수 없다. 조직을 위해 몸을 바쳐 충성을 다하는 사람은 의리 있다고 칭찬 받는다. 다만 주인이 도척이라는 것을 알고서도 계속 선한 사람들을 보고 짖는다면 짐승은 용서받을지 몰라도 사람은 판단력 부족이다. 조직적인 범죄가 적발됐을 때 우두머리는 물론 중벌을 받지만 도왔던 부하들의 죄도 작지 않음은 물론이다. 잘못 가는 리더를 바로잡는 것도 조직원의 임무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호매호골狐埋狐搰 - 여우가 묻은 것을 여우가 다시 파다, 의심이 많으면 성공하지 못한다.

호매호골狐埋狐搰 - 여우가 묻은 것을 여우가 다시 파다, 의심이 많으면 성공하지 못한다.

호매호골(狐埋狐搰) - 여우가 묻은 것을 여우가 다시 파다, 의심이 많으면 성공하지 못한다.

여우 호(犭/5) 묻을 매(土/7) 여우 호(犭/5) 팔 골(扌/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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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는 영리하고 꾀가 많은 동물로 알려져 있는데 정작 성어로 나타나는 이미지는 부정적이다. 힘이 없으면서도 배경을 믿고 거들먹거리는 狐假虎威(호가호위)는 호랑이의 위세를 빌려 군림하는 여우다. 관의 위세를 이용한 교활한 무리는 城狐社鼠(성호사서)다.\xa0서양에서도 여우는 백발이 될지 모르나 결코 선량해지지 않는다는 말이 있어 교화는 불가능하다고 여겼다. 여우는 의심의 대명사로 떠올린다.

남을 믿지 못하고 이것저것 재보다 좋은 기회를 날리는 狐疑不決(호의불결)이다. 이보다 더한 것이 여우는 자신이 물건을 묻고도(狐埋) 잘 있는지 남이 가져갔는지 자기가 파 본다(狐搰)는 이 성어다.\xa0중국 春秋時代(춘추시대)에 이웃한 吳越(오월) 두 나라는 吳越同舟(오월동주), 吳越之爭(오월지쟁)이란 말이 남았을 정도로 사이가 적대적이었다. 서로 죽고 죽이고 원수를 갚기 위해 온갖 수모를 견디며 복수의 칼날을 벼루는 臥薪嘗膽(와신상담)도 오왕 夫差(부차)와 월왕 句踐(구천)의 이야기에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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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나라가 서로 일진일퇴하던 중 오왕 부차가 압도할 때에 일어난 일에서 성어가 유래했다. 구천은 월나라를 멸하려는 오나라 공격에 맞서 싸우려 하자 대부 文種(문종)이 아직 때가 아니니 화해 사절을 보내야 한다고 종용했다.\xa0春秋左氏傳(춘추좌씨전)을 쓴 左丘明(좌구명)의 역사서 ‘國語(국어)’에 상세히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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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천이 문종의 의견을 받아들여 오왕 부차에게 사절 諸稽郢(제계영, 郢은 초나라서울 영)을 보냈다. 찾아간 사신이 월나라는 작은 속국인데 대군을 보내 토벌하려 하는 것은 심히 부당하다며 봄가을에 공물을 보낼 터이니 제재를 거두어 달라고 부차에게 조아렸다. 그러면서 속담의 말을 덧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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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는 의심이 많아서 일단 묻었다가 다시 파본다고 했는데(狐埋之而狐搰之/ 호매지이호골지), 그래서 성공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是以無成功/ 시이무성공).’ 오왕이 월나라를 속국으로 한다고 널리 알리고 난 뒤 다시 멸망시키려 한다면 사방의 제후들이 어찌 믿고 섬기겠느냐고 항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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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의 의심을 가졌던 부차의 후일 어떻게 됐을까. 사절의 예물과 사죄로 흐뭇해진 부차가 침략을 멈춘 사이 구천은 미녀 西施(서시)를 바치며 안심을 시키고 국력을 기른 뒤 되레 오나라의 항복을 받아냈다. 묻은 것을 다시 파내는 것은 여우의 불신이라 한 뒤 구천은 그것을 역이용한 것이다.\xa0

믿고 일을 맡겼으면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이리저리 재어보는 것은 사전에 치밀히 해야지 못 미더워 도중에 의심하면 끝이 없다. 이면의 깊은 계략을 탐지하지 못한 부차는 자결로 끝을 맺었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위급 존망지추危急 存亡之秋 - 사느냐 죽느냐 하는 위급한 시기

위급 존망지추危急 存亡之秋 - 사느냐 죽느냐 하는 위급한 시기

위급 존망지추(危急 存亡之秋) - 사느냐 죽느냐 하는 위급한 시기

위태할 위(卩/4) 급할 급(心/5) 있을 존(子/3) 망할 망(亠/1) 갈 지(丿/3) 가을 추(禾/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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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더 나은 발전을 위해 위기를 즐긴다는 사람이 있다. 호랑이굴에 들어가 새끼 호랑이를 잡는 사람들이다. 눈 먼 말 타고 벼랑을 가듯이 일부러 위험에 빠지는 것을 바라는 사람은 적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살아가다 보면 뜻하지 않게 위기를 맞을 때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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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큼 슬기롭게 조심조심 헤쳐 나가는 지혜를 가르치는 성어가 수두룩하다. 이 난에 소개했던 것만 해도 如履薄氷(여리박빙), 危在旦夕(위재단석), 一髮千鈞(일발천균), 風前燈火(풍전등화)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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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급하기(危急)가 사느냐 죽느냐하는 것이 걸린 시기(存亡之秋)란 이 성어도 그만큼 급박하다. 여기서 가을 秋(추)는 시기, 때라는 의미다. 중국 三國時代(삼국시대) 蜀漢(촉한)의 재상 諸葛亮(제갈량)의 유명한 ‘出師表(출사표)’에 등장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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魏蜀吳(위촉오) 삼국이 세력다툼을 할 때 촉의 劉備(유비)가 三顧草廬(삼고초려)했던 제갈량은 그에 보답하듯 신묘한 전략으로 기반을 잡는데 전력을 다했다. 그러다 유비가 죽으면서 부탁한 아들 劉禪(유선)을 보필하며 제갈량이 위나라를 토벌하러 떠날 때 올린 글이 출사표란 것은 잘 알려진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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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를 일으키며 임금께 올리는 글’이 출사표다. 국가의 장래를 생각하며 유선에게 올리는 간곡한 당부의 말이 담겼다. 중국 3대 명문에 들어가는 출사표를 읽고 눈물을 흘리지 않는 사람은 충신이 아니라는 말까지 전해진다. 앞부분에 나오는 내용을 보자. ‘선제께선 창업이 아직 절반도 이루어지기 전에 중도에서 붕어하셨습니다(先帝創業未半 而中道崩殂/ 선제창업미반 이중도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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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천하는 셋으로 나뉘고 익주는 곤궁에 빠져 있으니 이는 그야말로 존망이 걸린 위급한 시기입니다(今天下三分 益州疲弊 此誠危急存亡之秋也/ 금천하삼분 익주피폐 차성위급존망지추야).’ 殂는 죽을 조, 益州(익주)는 촉나라가 있었던 四川(사천)성 일대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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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심을 다해 출사표를 올리고 출정한 제갈량은 그러나 보급이 충분한 위나라가 수비에 치중함으로써 대승을 거두지 못하고 진중에서 병사했다. 요즘 큰 경기에 임하거나 선거에 출마할 때 ‘출사표를 던지다’란 표현이 흔한데 제갈량이 유선에게 올렸듯 던지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되겠다. 미래의 희망을 품고 나설 때 이뤄줄 사람에게 정성을 다해 큰 뜻을 밝혀야 함은 물론이다. /\xa0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화발다풍우花發多風雨 - 꽃이 필 때는 비바람이 많다, 고난을 이겨내야 화락이 온다.

화발다풍우花發多風雨 - 꽃이 필 때는 비바람이 많다, 고난을 이겨내야 화락이 온다.

화발다풍우(花發多風雨) - 꽃이 필 때는 비바람이 많다, 고난을 이겨내야 화락이 온다.

꽃 화(艹/4) 필 발(癶/7) 많을 다(夕/3) 바람 풍(風/0) 비 우(雨/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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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은 침묵의 언어를 가지고 사랑을 말하고 꿈을 말하며 인간의 마음을 아름답게 해 준다는 멋진 표현이 있다. 계절에 따라 아름답게 피는 꽃에 사람마다 마음을 정화하기 위해 봄꽃놀이, 단풍놀이를 즐긴다. 꽃이 피기 위해 수많은 나날을 보낸 뒤 활짝 핀 모습은 오래도록 간직하면 좋으련만 그렇지 못한 것이 자연의 이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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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꽃도 한 때’, ‘열흘 붉은 꽃이 없다’란 말과 똑같은 花無十日紅(화무십일홍)이 잘 나타낸다. 때가 지나면 반드시 쇠한다는 이 말과 비슷한 어감의 꽃이 활짝 피면(花發) 비바람이 많은 법(多風雨)이란 성어도 좋다. 꽃이 아름다움을 뽐내는 것은 필연적으로 따르는 바람의 시샘을 이겨낸 결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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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만개했던 중국 唐(당)나라 후기의 시인 于武陵(우무릉)의 ‘勸酒(권주)’에서 나온 한 구절이다. 그는 초기 진사 시험에 낙방한 뒤 각지를 방랑하며 五律(오율)에 뛰어난 시를 남겨 ‘全唐詩(전당시)’에 실려 있다. 이 책은 淸(청)나라 康熙帝(강희제)의 명으로 시인 2200명의 작품 4만8900편의 시를 900권에 모았다는 방대한 규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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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으로 편집된 우무릉의 잘 알려진 시 전문을 보자. ‘그대에게 금빛 술잔 권하니, 가득 채운 술 사양 마시게(勸君金屈卮 / 권군금굴치 만작불수사), 꽃 피면 비바람 많은 법이고, 세상살이 이별로 가득 차 있네(花發多風雨 人生足離別/ 화발다풍우 인생족리별).’ 卮는 잔 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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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꽃은 비바람의 고난을 잘 이겨낸 결과인 만큼 사삼의 인생살이도 좌절과 시련은 늘 따라다닌다는 의미를 지닌다. 우무릉의 시를 연상하는 우리의 좋은 시도 있다. 조선 宣祖(선조)때의 宋翰弼(송한필)의 ‘偶吟(우음)’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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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 비에 꽃이 피더니, 오늘 아침 바람에 꽃이 지네(花開昨夜雨 花落今朝風/ 화개작야우 화락금조풍). 슬프다 봄의 한 가지 일도, 바람과 비에 왔다가는구나(可憐一春事 往來風雨中/ 가련일춘사 왕래풍우중).’ 세상사 마음대로 되지 않는 스스로의 인생을 서글퍼하는 심정을 노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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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醴泉(예천)의 선비로 알려져 있는 조선 후기의 崔成原(최성원)도 같은 심정이다. ‘세상에는 부귀를 오로지 누리는 일이 없고, 비바람은 꽃 필 때에 많다네(世無專富貴 風雨多花時/ 세무전부귀 풍우다화시), 어제까지 붉은 꽃이 나무에 가득했는데, 오늘 아침에는 절반이나 빈 가지로구나(日昨紅滿樹 朝來半空枝/ 일작홍만수 조래반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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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내 꽃을 피우기 위해 애태우던 꽃이 필 때는 꽃샘바람이 따른다. 활짝 핀 후에도 비바람을 이겨내듯이 사람의 한 평생도 喜怒哀樂(희로애락)이 없을 수 없다. 나에게만 고난이 따른다고 한탄만 한다면 꽃피는 시절은 오지 않는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연리지連理枝 - 두 나무의 가지가 맞닿아 하나 된 나무, 화목한 부부나 남녀 사이

연리지連理枝 - 두 나무의 가지가 맞닿아 하나 된 나무, 화목한 부부나 남녀 사이

연리지(連理枝) - 두 나무의 가지가 맞닿아 하나 된 나무, 화목한 부부나 남녀 사이

이을 련(辶/7) 다스릴 리(玉/7) 가지 지(木/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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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나무가 뿌리는 각각이지만 가지가 서로 맞닿아 결이 통한 것이 連理枝(연리지)다. 이는 종종 볼 수 있다. 比翼鳥(비익조)라는 새는 암컷과 수컷의 눈과 날개가 하나씩이어서 짝을 짓지 못하면 날지 못한다. 실제는 물론 없고 전설상의 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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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각각이 화목한 부부나 떨어지지 않는 남녀 사이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합쳐서 比翼連理(비익연리)라고도 한다. 부부는 二身同體(이신동체)라고 한 말과 잘 들어맞는 말이기도 하다. 살다보면 싸우는 일이 있어도 ‘내외간 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는 말대로 지나고 나면 합쳐진다. 역시 화합을 말할 때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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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가 잇닿은 나무가 짙은 부부애를 비유하는 말이 되기 전에는 효성이 지극한 것을 가리켰다고 한다. 중국 後漢(후한)때 蔡邕(채옹, 132~192)이란 학자는 문장에 뛰어난 문인이기도 했다. 성품이 독실하고 효성이 지극하여 병을 앓는 노모를 간병하기 위해 삼년 동안 옷 한 번 갈아입지 않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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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친이 돌아가시자 초막을 지어 온갖 예를 다했다. 그 후 채옹의 초막 앞에 ‘두 그루의 나무가 나서 점점 가지가 붙어 한 그루가 되었는데 원근의 사람들이 기이해하며(又木生連理 遠近奇之/ 우목생연리 원근기지)’ 효성이 낳은 기적이라 했다. 范曄(범엽)이 편찬한 ‘후한서(後漢書)’에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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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간의 지극한 사랑을 뜻하는 말로 널리 쓰이게 된 것은 唐(당)나라의 대시인 白居易(백거이, 772~846)의 ‘長恨歌(장한가)’부터다. 이 시는 玄宗(현종)과 楊貴妃(양귀비)의 사랑을 읊은 120구의 장시다. 마지막 두 구절에 이 말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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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 있을 때는 나래 붙은 비익의 새가 되고, 땅에선 가지 붙은 연리나무 되자고 했네(在天願作比翼鳥 在地願爲連理枝/ 재천원작비익조 재지원위연리지), 높은 하늘 넓은 땅 다할 때가 있겠으나, 이 슬픔만은 면면히 끊일 날 없으리라(天長地久有時盡 此恨綿綿無絶期/ 천장지구유시진 차한면면무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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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가 결혼하면 백년을 함께 늙으며 같이 죽는다고 百年偕老(백년해로)라 하며 모두 이상으로 여겼다. 너무 오래 같이 사는 것이 이젠 지겨운지 50대 이상 중장년층이 각자의 삶을 사는 卒婚(졸혼)도 서슴지 않고, 가장 소중한 것이 자기 자신이란 조사가 있었다. 그래도 나이 들수록 더 소중히 여겨진다는 부부인데, 참고 사는 것만이 미덕이란 것은 옛말이 되어 가는 것인지 씁쓸하다. /\xa0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가장주서家獐注書 - 개고기 요리를 바쳐 얻은 벼슬자리

가장주서家獐注書 - 개고기 요리를 바쳐 얻은 벼슬자리

가장주서(家獐注書) - 개고기 요리를 바쳐 얻은 벼슬자리

집 가(宀/7) 노루 장(犭/11) 부을 주(氵/5) 글 서(曰/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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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나 재물을 주고 벼슬을 사는 賣官賣職(매관매직)은 다양한 말이 남아있는 만큼 예부터 성했던 모양이다. ‘돈만 있으면 귀신도 부릴 수 있다’고 錢可通神(전가통신)이라 했으니 ‘개도 멍僉知(첨지)’라며 누구나 벼슬을 사고팔 수 있다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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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선 포도주 한 섬을 보내 지방관 벼슬을 땄다는 一斛凉州(일곡양주, 斛은 휘 곡)나 빚을 내어 장수가 되고 시장판이 된 관아라는 債帥市曹(채수시조)란 말이 있다. 우리나라선 큰 재물이 아니라도 특산 기호품으로 벼슬을 따낸 예화가 많다. 조선 중기 더덕을 바쳐 沙蔘宰相(사삼재상)으로 불린 韓孝純(한효순)이나 희귀한 채소를 상납한 雜菜判書(잡채판서)의 李冲(이충)이 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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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개고기 요리를 권력자에 입맛에 맞게 한 덕에 벼락출세한 中宗(중종) 때의 李彭壽(이팽수)가 더해진다. 왕실과 민간 모두 널리 먹었다는 개장국은 집에서 기르는 노루(家獐)라 했는데 임금의 사돈인 권신 金安老(김안로)가 무척 즐겼다. 어릴 때 같은 동네서 자란 이팽수가 국가제사 관장의 奉常寺(봉상시)에 말단으로 있으면서 맛좋은 개고기 요리를 자주 상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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틈만 나면 이팽수의 개고기 요리를 일품이라며 칭찬하던 김안로가 어느 때 그를 임금 비서실인 承政院(승정원)의 注書(주서)라는 정7품으로 발탁했다. 주위의 추천도 없었는데 벼락출세하자 면전에서 반대는 못하고 사신이 말한 것이 ‘中宗實錄(중종실록)’에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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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팽수가 개고기를 좋아한 김안로에게 크고 살진 개를 골라 구미를 맞췄으므로 매번 입이 마르도록 칭찬을 받았다며 이어진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청반에 올랐으므로(一日忽置淸班/ 일일홀치청반) 당시 사람들은 그를 개고기 주서라고 불렀다(時人謂之家獐注書/ 시인위지가장주서).’ 淸班(청반)은 학식과 문벌이 높은 사람에게 시키던 앞날이 보장되는 벼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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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에 따르는 이야기도 쓴웃음을 짓게 한다. 이팽수의 출세를 보고 역시 봉상시의 陳復昌(진복창)이 매일같이 김안로에게 개고기 구이를 갖다 바쳤고 개 요리는 자신이 제일이라 떠들고 다녔다. 하지만 고관의 입맛에 안 맞았는지 벼슬은 오르지 않고 비웃음만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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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면 죄를 없게도 하고 죽음도 면할 수 있다고 믿는 有錢無罪 無錢有罪(유전무죄 무전유죄)의 세상은 옳을 수가 없다. 예전의 벼슬자리는 專制(전제)의 절대자와 간신이 쥐락펴락했으니 그렇다고 해도 오늘날은 어떨까. 공직이나 대기업 등은 公採(공채)가 확립돼 있으나 그렇지 않은 정무적인 자리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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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파적 충성에 좌우되는 현대판 獵官制(엽관제)는 낙하산 인사에서 시퍼렇게 살아 있다. 능력을 감안하지 않은 인사도 수시로 나타난다. 개고기 주사를 떳떳하게 욕할 수도 없는 세상이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