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5일 금요일

개과천선改過遷善 - 지난날의 잘못을 고쳐 착하게 되다.

개과천선改過遷善 - 지난날의 잘못을 고쳐 착하게 되다.

개과천선(改過遷善) - 지난날의 잘못을 고쳐 착하게 되다.

고칠 개(攵/3) 지날 과(辶/9) 옮길 천(辶/12) 착할 선(口/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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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알게 모르게 과오를 저지른다. 그렇지만 자신은 잘못이 없이 완전하고, 남의 잘못은 針小棒大(침소봉대)하여 미주알고주알 나무란다. 남의 눈 티끌은 보여도 제 눈 들보는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모두의 손가락질을 받는 잘못을 저질렀을 때도 그것을 인정하기는 어렵다고 負荊請罪(부형청죄)의 소중함을 얘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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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오를 인정하는 것을 넘어 고치기까지 한다면 새롭게 태어나는 것이나 다름없다. 桀王(걸왕)을 내치고 商(상)을 건국한 湯王(탕왕)은 과실이 있으면 즉시 고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改過不吝/ 개과불린)고 했고, 孔子(공자)도 잘못은 아무 거리낌 없이 고쳐야 한다(過則勿憚改/ 과즉물탄개)고 가르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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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날의 과오를 고쳐(改過) 착한 사람이 된다(遷善)는 성어는 글자대로는 아니지만 여러 곳에서 비슷한 용례가 확인된다. 먼저 周易(주역) 하경 42괘인 風雷益(풍뢰익)에 나오는 ‘바람과 우레로 이루어진 것이 익괘의 상이니, 군자는 선함을 보면 곧 실행에 옮기고 잘못이 있으면 즉시 고쳐야 한다(風雷益 君子以見善則遷 有過則改/ 풍뢰익 군자이견선즉천 유과즉개)’라는 말이 가장 오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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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당)나라 재상을 지낸 문장가 陸贄(육지, 754~805)라는 사람은 임금에 상주한 글들이 좋은 평가를 받는다. 그의 글귀 중에 ‘지혜로운 사람은 허물을 고쳐 착하게 되지만, 어리석은 사람은 허물을 부끄럽게 여겨 잘못된 길로 나아간다(智者改過而遷善 愚者恥過而遂非/ 지자개과이천선 우자치과이수비)’는 것은 오늘날 쓰이는 뜻과 유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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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에 직접 출처는 아니라도 예화에 많이 등장하는 사람이 晉(진)나라 周處(주처)다. 그는 태수의 아들로 태어나 재주도 뛰어났지만 10세 때 부친이 세상을 떠난 뒤로는 제멋대로 커 골칫덩이였다. 영특하고 힘이 좋아도 남을 괴롭히는 데만 사용해 마을 사람들은 그를 호랑이, 교룡과 함께 三害(삼해)라 부르며 멀리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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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처가 자라면서 차차 철이 들어 사람들이 왜 자신을 멀리 하는지 물어보니 삼해 때문이라 했다. 이에 주처는 믿음을 되찾아야겠다고 결심하고 악전고투 끝에 맹호와 교룡을 처치했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미심쩍어 완전히 마음을 열어주지 않자 잘못을 고치고 새 사람이 되겠다며 길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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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吳(동오)지역의 대학자 陸機(육기), 陸雲(육운) 형제를 찾아 지금까지 자신이 겪었던 얘기를 하며 도움을 청했다. 육운이 충고한다. ‘옛사람들은 아침에 허물을 들었으면 저녁에 뉘우치는 것을 귀하게 여겼네(古人貴朝聞夕改/ 고인귀조문석개).’ 주처는 앞날이 밝다는 말을 듣고 이후 10여 년 동안 학문과 덕을 익혀 마침내 대학자가 되었다. 唐太宗(당태종)이 房玄齡(방현령) 등을 시켜 펴낸 ‘晉書(진서)’에 실려 전하는 이야기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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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나무 일까요?

무슨 나무 일까요?

무슨 나무 일까요?

일리만기日理萬機 - 하루에 처리할 일이 일만 가지, 사소한 일도 직접 처리하다.

일리만기日理萬機 - 하루에 처리할 일이 일만 가지, 사소한 일도 직접 처리하다.

일리만기(日理萬機) - 하루에 처리할 일이 일만 가지, 사소한 일도 직접 처리하다.

날 일(日/0) 다스릴 리(玉/7) 일만 만(艹/9) 틀 기(木/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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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만 가지의 베틀이란 뜻을 가진 萬機(만기)는 임금이 보는 여러 가지 정무, 많은 기밀이라 사전에 풀이한다. 機(기)가 베틀에서 機微(기미), 천기나 기밀, 문서라는 뜻으로 확장되었다는데 많이 익은 말이 임금이 모든 정사를 친히 보살핀다는 萬機親覽(만기친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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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에서 올리는 모든 문사를 친히 읽고 판단하여 행한다는 이 성어는 유능한 군주일 때는 나라가 융성할 수 있었어도 재능이 없으면서 일일이 간섭한다면 잘 돌아갈 수가 없다. 이 장단점보다 하루에 다스려 처리할 일(日理)이 만 가지나 된다(萬機)는 말이 처음 ‘書經(서경)‘에서 사용되었다니 먼저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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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의 주요 경전 四書三經(사서삼경)에 드는 서경은 중국 고대왕국의 기록인데 숭상해야 하는 책이라며 尙書(상서)로도 불린다. 성군 堯舜(요순)의 치적이 실린 虞書(우서)에 후일 夏(하)나라의 시조가 되는 禹(우)와 皐陶(고요)의 대화 중에 성어가 등장한다. 질그릇 陶(도)는 사람이름일 때는 ‘요‘로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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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는 舜(순)임금 시절의 명신으로 법리에 통달하여 형벌을 제정하고 감옥을 만들었다는 사람이다. 순임금 앞에서 나라를 다스리는데 필요한 덕과 자신의 정치 이념을 말하는 중에 임금은 하늘의 뜻과 질서에 따라 백성들을 예와 법으로 다스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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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분을 보자. ‘안일과 욕심으로 나라를 다스리려 하지 말고, 삼가 조심하여 두려워해야 합니다(無敎逸欲有邦 兢兢業業/ 무교일욕유방 긍긍업업),, 하루 이틀 일이 틀어지기 시작하면 만 가지 일이 그르쳐지니, 모든 관리에 일을 저버리지 않게 해야 합니다(一日二日萬幾 無曠庶官/ 일일이일만기 무광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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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쓰인 萬幾(만기)는 비롯하다, 시작하다의 뜻으로 여러 가지 일의 발단을 뜻하다가 지금은 萬機(만기)로 굳어졌다. 고대의 임금이 일상적으로 처리하는 자질구레한 일도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고 자칫하면 틀어진다니 무척 피곤했을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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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을 직접 처리해야 직성이 풀리는 이런 스타일의 대표가 秦始皇(진시황)이다. 하루에 검토할 문서를 저울에 달아 미달하면 만들어 올리도록 했다니 이렇게 무리하고 건강이 좋을 수가 없었다. 끼니를 거르며 일에 파묻혀 食少事煩(식소사번)한 諸葛亮(제갈량)도 수명이 길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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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世宗大王(세종대왕)이나 正祖(정조)도 널리 의견을 구해 업적을 많이 남겼다. 이러한 예들은 능력이 특출하면서도 부지런하여 역사에 남았지만 그렇지 못할 때가 문제다. 아랫사람이 능히 처리할 일도 보고하라며 일일이 간섭하면 쉽게 될 일도 그르친다. 작은 조직이나 큰 사회에도 이런 사람은 꼭 있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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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청즉명兼聽則明 - 여러 의견을 들으면 현명해진다.

겸청즉명兼聽則明 - 여러 의견을 들으면 현명해진다.

겸청즉명(兼聽則明) - 여러 의견을 들으면 현명해진다.

겸할 겸(八/8) 들을 청(耳/16) 곧 즉(卩/7) 밝을 명(日/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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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되라고 충고해주는 말을 따르는 것은 어렵다. 분명 옳은 말인데도 귀에 그슬린다. 良藥苦口(양약고구)를 소개할 때 대구로 쓴 忠言逆耳(충언역이) 그대로다. 더군다나 여러 번 되풀이되면 ‘듣기 좋은 꽃노래도 한두 번’이라며 외면한다. 보통 사람도 이러한데 지엄한 황제는 더욱 신하의 간언을 지겨워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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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사람의 의견을 들으면(兼聽) 자연스럽게 판단을 할 수 있어 현명해진다(則明)는 이 말은 魏徵(위징)의 충언이었다. 唐(당)나라 太宗(태종)은 지겹도록 들은 말을 저버리지 않고 잘 지켜 貞觀(정관)의 治(치)를 이룰 수 있었다. 이 말 바로 뒤에 따르는 偏信則暗(편신즉암)과 같이 쓰기도 한다. 일부에 치우쳐 믿으면 어리석어진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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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징(580∼643)이라 하면 당 초기의 공신이자 학자로 재상을 지냈지만 간의대부로서 왕에 직간을 한 것으로 더 유명하다. 처음 高祖(고조)의 맏아들인 李建成(이건성)의 측근이었다가 아우 世民(세민)이 세력다툼에서 이기자 부름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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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이 된 세민이 그의 능력을 눈여겨보고 사면한 뒤 발탁한 것이다. 위징은 이런 줄을 잘못 선 출신상의 약점에도 불구하고 조금도 굴하지 않고 면전에서 강직하게 건의를 했다. 태종이 얼굴을 붉히거나 화를 내어도 위축되지 않고 쓴 소리를 쏟아내 주위의 신하들이 조마조마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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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이 제위에 오른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위징에게 왕이 어떻게 해야 밝아지고 어떻게 하면 어리석어지는지 물었다. ‘군주가 현명해지는 것은 여러 방면의 의견을 두루 듣기 때문이며, 아둔해지는 것은 한 쪽으로 치우쳐 몇 사람만의 의견을 믿기 때문입니다(兼聽則明 偏信則暗/ 겸청즉명 편신즉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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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징은 이어서 옛날 堯舜(요순)이 훌륭하게 된 것은 귀가 밝았기에 간신을 구별했고, 秦(진)의 胡亥(호해)나 隋(수)나라 煬帝(양제, 煬은 녹일 양)는 각각 趙高(조고)와 虞世基(우세기)만 믿다가 나라를 그르쳤다고 덧붙였다. 司馬光(사마광)이 편찬한 ‘資治通鑑(자치통감)’에 실린 내용이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명계양지冥契陽贄 - 보이지 않게 덕을 쌓으면 드러나게 보답한다.

명계양지冥契陽贄 - 보이지 않게 덕을 쌓으면 드러나게 보답한다.

명계양지(冥契陽贄) - 보이지 않게 덕을 쌓으면 드러나게 보답한다.

어두울 명(冖/8) 맺을 계(大/6) 볕 양(阝/9) 잡을 지(手/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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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살아가면서 악을 멀리 하고 덕을 많이 쌓으라는 것은 당장 빛을 보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 손이 모르게 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좋은 평판을 얻기 위한 선행을 경계한다. 어려운 이웃을 받는 사람도 모르게 살짝 돕는 많은 의인과 선인들은 누가 보든 안 보든 체질화되어 있다. 그런데 아무런 보답을 바란 것이 아니지만 언제인가는 복이 따른다는 의미의 성어가 많으니 덕을 더욱 기린 데서 나왔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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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행을 쌓으면 경사가 따르는 積善餘慶(적선여경), 착하고 옳은 일을 하면 자손까지 복이 미친다는 善善及孫(선선급손)에 드러내지 않고 덕을 쌓으면 복이 저절로 온다는 陰德陽報(음덕양보) 등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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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어려운 말로 같은 뜻을 가진 것이 안으로 감춰진 좋은 인연(冥契)이 겉으로 드러나게 보답을 한다(陽贄)는 이 성어다. 맺을 契(계)는 약속 외에 교분, 정을 말하고 폐백 贄(지)는 예물 또는 선물이다. 약간 생소한 이 말이 알려진 것은 한학자 정민 교수가 성어 모음집 ‘옛 사람이 건넨 네 글자’에 소개하고서 부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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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학자 沈梓(심재, 1624~1693)의 ‘松泉筆譚(송천필담)’에 실려 있다고 했다. 이 책은 당시의 학문과 정치, 경제를 비롯하여 미담과 가화를 정리한 수양서라 수신과 제가에 필요한 연구의 지침서가 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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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어의 부분을 요약해 보자. 과거 급제의 어려움을 토로한 내용이다. 과거에 응시했던 한 수험생이 좋은 글은 뽑히지 않고 뽑힌 글은 좋지도 않더라고 낙방을 변명하며 투덜댔다. 듣던 사람이 그렇지 않다며 시험관이란 두 눈을 갖춘 자라 글이 좋고 나쁜지를 한 번만 봐도 알아차릴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합격한 사람 중에는 조상이 덕을 지녀 후세에 보답을 받는 사람도 있고, 그 자신이 덕을 쌓아 저승에 미리 기록되는 경우도 있다고 설득한다. 그래서 선비 된 사람은 마땅히 글을 닦아 겉으로 드러나는 보답 陽贄(양지)로 삼고, 마음을 닦아 후세에 덕을 쌓는 冥契(명계)로 삼아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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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 합격하면 양반이 되는 길이 열리지만 모든 것을 여기에 걸어 패가망신하는 사람도 당연히 나타난다. 시험 때마다 壯元(장원)하는 행운아도 있고 몇 년을 도전해도 실패하는 浪人(낭인)도 있다. 떨어질 때는 자신의 실력부족을 인정하지 않고 남 탓, 제도 탓을 하기 마련이다. 이럴 때 불운을 투덜대지 말고 평시에 음덕을 쌓으라는 가르침이다.

앞길이 그리 탄탄하게 열리지 않아 당장 오늘이 답답한 현대인들에겐 실감이 나지 않을 이야기라도 하늘이 복으로 보답한다니 믿어야겠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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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천우인怨天尤人 - 하늘을 원망하고 다른 사람을 탓하다.

원천우인怨天尤人 - 하늘을 원망하고 다른 사람을 탓하다.

원천우인(怨天尤人) - 하늘을 원망하고 다른 사람을 탓하다.

원망할 원(心/5) 하늘 천(大/1) 더욱 우(尢/1) 사람 인(人/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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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모든 면에서 완전할 수가 없는 만큼 저마다 실수를 저지른다. 하지만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는 데는 인색하다. ‘잘 되면 제 탓, 못되면 조상 탓’이란 속담이 알려졌듯 잘못은 모두 남이 저지른 것으로 돌린다. 눈앞에 있는 자기의 속눈썹은 보이지 않는 법이라고 目不見睫(목불견첩)이라 했다. ‘너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고 성서(마태복음 7;3)에서 깨우쳐도 귓전으로 흘려듣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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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원망하고(怨天) 다른 사람을 탓한다(尤人)는 이 성어 또한 큰 낭패나 좌절에 대해 자기 잘못은 모른다는 뜻이다. 더욱 尤(우)에는 허물, 탓한다는 의미도 있다. 천명을 깨달아 즐기며 순응한다는 樂天知命(낙천지명)은 반대의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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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論語(논어)’의 憲問(헌문) 편에 등장한다. 성인 孔子(공자)가 남 탓을 한 것이 아니고 하지 않았다는 반대의 뜻으로 사용했다.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 없다고 공자가 탄식할 때 제자 子貢(자공)이 어찌하여 그런 말씀을 하는지 여쭈었다. ‘하늘을 원망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탓하지 않으며, 일상적인 일을 배워 심오한 이치에까지 도달했으니, 나를 아는 이는 아마 저 하늘이 아닐까(不怨天 不尤人 下學而上達 知我者 其天乎/ 불원천 불우인 하학이상달 지아자 기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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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주는 사람이 없다고 한 것은 공자가 천하를 주유하면서 뜻을 펼치려 할 때 어떤 나라서도 등용을 하지 않았던 것을 말한다. 심지어 공자가 楚(초)나라에 초빙됐을 때 陳(진)과 蔡(채)나라의 대부들이 자신들의 비위가 노출될까 두려워 국경을 막는 바람에 제자와 함께 굶주렸던 陳蔡之厄(진채지액)을 당할 때도 하늘을 원망하지 않았다. 끊임없이 천하를 주유한 것은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고 천하를 위한 것이었으니 그 마음을 하늘은 알았어도 사람들이 미처 몰랐을 뿐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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戰國時代(전국시대) 말기 성악설을 주장했던 荀卿(순경)도 ‘자기를 아는 사람은 남을 원망하지 않고, 운명을 아는 사람은 하늘을 원망하지 않는다(自知者不怨人 知命者不怨天/ 자지자불원인 지명자불원천)’고 말했다. ‘荀子(순자)’ 榮辱(영욕)편에 실려 있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공경혜의恭敬惠義 - 공손하고 경건하며 은혜롭고 의롭다, 군자가 갖춰야 할 네 가지 덕목

공경혜의恭敬惠義 - 공손하고 경건하며 은혜롭고 의롭다, 군자가 갖춰야 할 네 가지 덕목

공경혜의(恭敬惠義) - 공손하고 경건하며 은혜롭고 의롭다, 군자가 갖춰야 할 네 가지 덕목

공손할 공(心/6) 공경 경(攵/9) 은혜 혜(心/8) 옳을 의(羊/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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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처신이나 몸가짐이 공손하고 윗사람을 섬길 때 예의바르게 받든다(恭敬). 아랫사람을 다룰 때는 더 많은 혜택을 베풀고 일을 시킬 때도 명분이 옳다고 한다(惠義)면 이보다 더 훌륭한 인물은 없을 것이다. 작은 조직에서도 크게 떠받들어질 이런 사람이 나라를 다스리는 위정자의 자리에 있다면 그 국민은 복 받았을 것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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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예법의 기준을 설정한 성인 孔子(공자)에게서 이러한 극찬을 받은 사람이 있으니 바로 중국 春秋時代(춘추시대) 鄭(정)나라의 명신 子産(자산)이다. 공자보다 한 세대 앞의 인물로 공자가 흠모하여 사상적 선구가 되었다고 평가받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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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산은 정나라 국군이었던 穆公(목공)의 손자로 이름은 僑(교)이며 公孫僑(공손교)라고도 불린다. 정나라는 공자의 나라 魯(노)와 함께 강대국 晉(진)과 楚(초)의 위세에 눌린 소국이었다. 자산은 기원전 543년 내란을 진압한 뒤 재상이 되어 정치와 경제 개혁을 시행하고, 강국 사이에서 뛰어난 학식과 언변으로 외교적 성과를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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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최초의 成文法(성문법)을 완성하고 농지를 정리하여 국가재정을 강화하며 귀족정치를 배격했다. 정나라를 탄탄한 반석에 올리는데 기여한 그를 백성들은 존경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러한 자산에 대해 공자가 ‘論語(논어)’ 公冶長(공야장)편에서 높이 평가한 부분에 성어가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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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산에게는 군자의 네 가지 도를 다 갖추고 있다며 말한다. ‘그의 행위와 태도는 공손했고, 윗사람을 섬길 때는 항상 삼가 겸손했다(其行己也恭 其事上也敬/ 기행기야공 기사상야경). 백성을 보살필 때에는 은혜로웠고, 백성을 부릴 때에도 도리에 맞게 했다(其養民也惠 其使民也義/ 기양민야혜 기사민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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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자의 도리에 자신의 완성을 恭敬(공경)에서 찾고, 백성을 다스리는 데는 惠義(혜의)에 뒀다. 자산이 모두에 해당되니 훌륭할 수밖에 없겠다. 憲問(헌문)편에도 공자에게 어떤 사람이 자산에 대해 묻자 ‘그는 은혜를 베풀 줄 아는 사람이다(惠人也/ 혜인야)’고 말한 부분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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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가 칭찬일색인 자산에 대해 孟子(맹자)는 비판적이라 이채롭다. 자산이 타는 수레에 사람들을 태워 꽁꽁 언 강 위를 건너게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꼬집었다. 얼기 전에 다리를 완성했으면 백성들이 강을 건너는데 수고하지 않아도 될 일인데 자산이 은혜롭기는 하지만 정사는 모자랐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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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는 자산의 인품을 보아 훌륭하다고 했고 맹자는 정사의 꼼꼼하지 못함을 지적했다. 오늘날 국민들을 위해 나라를 다스리려는 정치인들은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까. 자산과 같은 마음가짐을 갖고 세세하게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해야 할 텐데 신뢰감이 떨어지기만 하니 갈수록 난망이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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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적우아用敵于我 - 나를 위해 적을 이용하다, 적의 적은 나에게 도움

용적우아用敵于我 - 나를 위해 적을 이용하다, 적의 적은 나에게 도움

용적우아(用敵于我) - 나를 위해 적을 이용하다, 적의 적은 나에게 도움

쓸 용(用/0) 대적할 적(攵/11) 어조사 우(二/1) 나 아(戈/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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敵(적)은 자기에게 해를 끼치거나 싸움을 걸어오는 존재이니 내 편이 될 수 없다. 또 글자가 근거지가 되는 나무뿌리, 밑동을 나타내는 啇(적)을 치는 攵(복)으로 되어 있으니 서로 으르렁대며 싸우는 상대인 원수가 된다. 하지만 의외로 적에 대해 긍정적인 격언이 많다. ‘적이 없는 자는 친구도 있을 수 없다’, ‘자기 자신보다 질이 나쁜 적은 없다’ 등이다. 친구는 자기를 감싸주지만 적은 약점이 있으면 있는 그대로 현실을 일깨워주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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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의 적은 我軍(아군)’이란 말이 있다. 甲(갑)과 乙(을)이 대립관계인데 丙(병) 또한 을과 원수진 사이라면 갑과 병은 공통의 적을 상대하기 위해 동맹하게 된다. 을을 제거하고 난 뒤의 일은 차후문제이고 우선은 나 살고보자는 식의 동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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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해 적을 이용한다(用敵)는 이 성어도 마찬가지다. 중국 戰國時代(전국시대) 싸움과 전쟁으로 지고 새는 살벌한 권력투쟁 속에 살아남는 방법을 가르치는 적 이용법이다. 前漢(전한) 시대 학자 劉向(유향)이 전략가들의 일화를 모은 책 ‘戰國策(전국책)’ 韓策(한책에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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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시대 韓(한)나라 襄王(양왕)에게는 아들 咎(구)와 幾瑟(기슬)이 권력을 두고 대립하고 있었다. 태자 구를 돕던 재상 公叔(공숙)은 기슬이 추방되자 후환을 없애려고 자객을 보내 암살하려 했다. 한 측근이 충고했다. ‘지금 태자께서 공을 중히 여기는 것은, 기슬이 두렵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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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기슬을 죽이게 되면 태자는 근심이 없어지게 되고, 그러면 틀림없이 공을 가볍게 봅니다(太子之重公也 畏幾瑟也 今幾瑟死 太子無患 必輕公/ 태자지중공야 외기슬야 금기슬사 태자무환 필경공).’ 태자의 근심거리로 놓아두게 되면 공숙을 중히 여길 것이란 이야기다. 암살계획을 취소한 공숙은 釐王(이왕, 釐는 다스릴 리)이 된 태자에 의해 계속 중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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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의견을 달리 하더라도 받아들일 부분이 있는 법이다. 경쟁을 하다 한 쪽이 승리하게 되면 상대방의 싹부터 자르려고 덤비는데 어리석은 일이다. 꿋꿋이 반대하는 상대가 아무리 고약하더라도 일부러 기를 살리고 계책을 활용한다면 발전의 길이 탄탄하다. 사생결단으로 싸우는 여야의 정당들이 더욱 필요하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이모취인以貌取人 - 얼굴만 보고 사람을 쓰다

이모취인以貌取人 - 얼굴만 보고 사람을 쓰다

이모취인(以貌取人) - 얼굴만 보고 사람을 쓰다

써 이(人/3) 모양 모(豸/7) 가질 취(又/6) 사람 인(人/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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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事(인사)가 萬事(만사)라는 말을 흔히 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예를 표한다는 인사는 물론 아니다. 한자는 똑 같지만 사람을 어떤 자리에 임용하는 일을 가리킨다. 작은 단체나 직장에서도 適材適所(적재적소)가 중요한 일인데 나라를 다스리는 일은 결국 用人(용인)에 달렸다고 할 수 있다.

말은 쉬워도 마땅한 자리에 적합한 인물을 고르는 것은 정말 어려운 모양이다. 모든 것에 완벽했을 孔子(공자)도 선입견으로 사람을 잘못 판단했다고 후회하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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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의 중요성을 말한 이 성어는 공자가 제자를 평하는 이야기에서 유래했다. 공자의 제자 子羽(자우)는 얼굴이 매우 못 생겼던 모양이다. 처음 가르침을 받으러 왔을 때 공자가 재능이 모자라는 사람으로 생각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자우는 이후 학문과 덕행을 닦는데 힘쓰고 공사가 분명하게 일을 처리해 따르는 제자가 300명이나 됐다고 한다. 宰予(재여)라는 제자는 언변이 좋았다. 하지만 그는 낮잠을 자다가 공자에 혼나기도 하고 삼년상이 길다고 주장했다가 꾸중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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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성이 게을러 ‘썩은 나무는 조각을 할 수 없다(朽木不可雕/ 후목불가조)’고 까지 지적했을 정도다. 뒷날 공자는 이렇게 탄식했다. ‘나는 말로 사람을 골랐다가 재여에 실수했고, 외모로 사람을 보았다가 자우에게 실수했다(吾以言取人 失之宰予 以貌取人 失之子羽/ 오이언취인 실지재여 이모취인 실지자우).’ ‘史記(사기)’의 仲尼弟子(중니제자)열전에 실려 있다. ‘論語(논어)’에도 ‘군자는 말을 보고 사람을 등용하지 않는다(君子 不以言擧人/ 군자 불이언거인)’란 구절이 衛靈公(위령공)편에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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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에 외모지상주의(lookism) 열풍이 거세다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특히 청소년의 관심이 심각하다고 한다. 한 조사에는 성형수술을 희망하는 여대생이 무려 80%에 달했다고 했다. 겉보기로 사람을 평가하는 사회를 떠나 내면의 아름다움이나 실력을 볼 수 있어야 단체나 국가나 발전한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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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이투령掩耳偸鈴 - 귀 막고 방울 훔치다, 얕은꾀를 써서 남을 속이려하다.

엄이투령掩耳偸鈴 - 귀 막고 방울 훔치다, 얕은꾀를 써서 남을 속이려하다.

엄이투령(掩耳偸鈴) - 귀 막고 방울 훔치다, 얕은꾀를 써서 남을 속이려하다.

가릴 엄(扌/8) 귀 이(耳/0) 훔칠 투(亻/9) 방울 령(金/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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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랑잎으로 눈 가리고 아웅한다’는 말이 있다. 아무리 어리석어도 어린애에게도 통하지 않을 얕은 수로 속아 넘어가지 않는다. 자기 눈에만 보이지 않으면 남도 모를 줄 안다. 참새를 잡으러 가는데 제 눈을 가리면 참새도 보지 못할 테니 쉽게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閉目捕雀(폐목포작)과 같다. 남편 출타 중에 간부를 들여 재미를 보고선 시누이의 눈만 가리면 된다고 생각한 手遮妹目(수차매목)의 아낙네와 같이 어리석은 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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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귀를 막고(掩耳) 방울을 훔친다(偸鈴)는 이 성어도 좀스러운 꾀로 곧 드러날 짓을 하는 어리석음을 말한다. 呂不韋(여불위)가 3000여 명이나 되는 빈객들의 학식을 모아 편찬하여 완벽을 자부했던 ‘呂氏春秋(여씨춘추)’에 실려 전한다. 이 책의 마지막 六論(육론)의 不苟論(불구론)에서 꽉 막힌 군주의 생각을 뚫어 이치에 순응하도록 도와준다는 子知篇(자지편)에 들어 있다. 이야기의 내용을 간단히 옮겨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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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春秋時代(춘추시대)때 晉(진)나라에서 세력을 떨쳤던 范氏(범씨) 가문이 趙簡子(조간자)가 이끄는 군대에 의해 쫓겨났다. 한 사람이 텅 빈 범씨 집에 들어가 가보로 여기던 종을 훔치려 했다. 종이 너무 커서 도저히 옮길 수가 없자 망치로 깨뜨리니 뎅그렁 큰 소리가 났다. ‘다른 사람이 소리를 듣고 와서 빼앗아 갈까봐 두려워 재빨리 자기의 귀를 막았다(恐人聞之而奪己也,遽揜其耳/ 공인문지이탈기야 거엄기이).’ 제 귀를 막으면 남도 듣지 못할 거라 생각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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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종을 훔치는 掩耳盜鐘(엄이도종)이었다가 방울로 掩耳盜鈴(엄이도령)으로도 쓰게 됐지만 뜻도 많이 바뀌었다. 임금이 바른 말을 하는 신하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자신의 실정을 지적하는 간언이 듣기 싫다고 귀만 막으면 들리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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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의 소리를 하늘의 소리로 들은 임금은 堯舜(요순)처럼 성군으로 추앙받는다. 우리나라서도 조선 太宗(태종)때의 申聞鼓(신문고)부터 오늘날의 請願(청원) 등의 제도가 많다. 제도보다 활용에 힘써야 편안하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