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6일 토요일

도유우불都兪吁咈 - 찬성과 반대를 나타내는 감탄사, 임금과 신하의 자유로운 정사심의

도유우불都兪吁咈 - 찬성과 반대를 나타내는 감탄사, 임금과 신하의 자유로운 정사심의

도유우불(都兪吁咈) - 찬성과 반대를 나타내는 감탄사, 임금과 신하의 자유로운 정사심의

도읍 도(阝/9) 인월도 유(入/7) 탄식할 우(口/3) 어길 불(口/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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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좀처럼 쓰임이 적고 뜻도 짐작하기 어려운 말인데도 좋은 뜻으로 국어사전에도 올라 있어 알아두는 것도 괜찮을 듯하다. 都兪吁咈(도유우불)이라 옛날 임금과 신하가 정사를 논할 때 찬성과 반대를 자유롭게 말할 수 있어 조화롭고 화목한 분위기를 말한다니 바람직한 정치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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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하나하나가 나타내는 의미가 있다. 도읍, 성곽을 뜻하는 都(도)는 아아! 하며 좋게 여기는 감탄사, 대답한다는 兪(유)는 옳다고 응하는 감탄사가 된다고 한다. 반면 탄식하는 吁(우)는 동의하지 않는 말, 어긴다는 咈(불)은 아니다! 하며 강하게 부정하는 감탄사로 사용됐다. 都兪(도유)는 찬성이고 吁咈(우불)은 반대를 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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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성, 반대의 의미를 이렇게 쓴 곳은 중국의 까마득한 옛 경전 ‘書經(서경)’에서다. 앞서도 나왔듯이 고대왕국의 역사를 기록하여 尙書(상서)라고도 불리는 四書三經(사서삼경) 중의 하나다. 虞書(우서)는 성군 堯舜(요순)의 치적을 말하는데 앞부분에 법리에 밝았던 皐陶(고요, 陶는 질그릇 도, 사람이름 요)와의 대화가 나오고 뒤이어 禹(우)와 益(익), 稷(직) 등의 문답이 등장한다.

伯益(백익)이라는 신하는 산과 못을 관장했고, 棄(기)라는 사람은 농사에 큰 공을 세웠기 때문에 관직명 직으로 통하게 됐단다. 임금과 신하가 자유롭게 의견을 말하고 마음을 합쳐서 서로 토론할 수 있었으니 요순시대가 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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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어가 나오는 문답 부분을 보자. 舜(순)임금께 禹(우)가 아뢴다. ‘아! 왕께서는 재위를 신중히 하셔야 합니다(都 帝愼乃在位/ 도 제신내재위)’ 하니 왕이 답한다. ‘그렇소(俞/ 유)!’ 다시 우가 왕의 뜻이 머문 곳을 편안히 하고 보필하는 신하들이 곧으면 백성들이 받들고 하늘도 치하할 것이라 하자 순이 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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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신하가 이웃이며 이웃이 신하이니라(吁 臣哉鄰哉 鄰哉臣哉/ 우 신재린재 린재신재).’ 다시 우가 말하기를 ‘옳습니다(俞/ 유)’고 한다. 정사를 토론할 때 어진 신하의 의견을 밝은 임금이 잘 받아들이는 모습이다. 임금의 말이라도 옳지 못하면 솔직하게 반대의 뜻까지 말하고 의견을 주고받아 고치면 나라가 잘 안 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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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고전에도 많이 검색된다. 太宗(태종) 실록에 실린 내용의 인용이다. 조정회의에서 대신들에게 시비득실을 전달하도록 한 것에 대한 기록이다. ‘옛날 당우시대 때의 옳고 그름을 토론하는 기상을 보는 듯하다(唐虞都兪吁咈之氣象/ 당우도유우불지기상).’ 이처럼 자유롭게 의견을 주고받는 분위기가 민주주의가 발달했다는 오늘 더 발전했을까.

상관의 비위에 그슬리는 말은 아예 꺼내지도 못하고, 내려오는 지시에는 무조건 복종하는 퇴보가 곳곳서 드러난다. 상대측 다른 이야기에는 벌떼 같이 저질 욕을 해대는 인터넷 댓글도 찬반토론의 싹을 자른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운을 부르는 풍수인테리어 기법

운을 부르는 풍수인테리어 기법

운을 부르는 풍수인테리어 기법

주방 풍수인테리어 기법 ⑫

주방 풍수인테리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불필요한 물건이나 사용하지 않는 물건은 정리하여야 한다.

사용하지 않는 물건이 주방에 많이 있으면 좋은 기(氣)를 차단하기 때문에 정리하는 것이 좋으며, 꽃이나 식물은 자연의 좋은 기운을 주므로 주방에 놓아두면 기(氣)가 상승한다.\xa0

주방은 금전 및 가족의 건강에 많은 영향을 받는 공간으로, 주방이 어지럽거나 정리가 되어 있지 않는다면, 가족이 건강에 문제가 생기거나 금전 운이 상승하지 않으므로, 항상 깨끗하게 정리 정돈하여야 한다.

식기는 많이 끄집어 내놓지 말고, 그때그때 사용한 식기는 설거지 한 후 바로 물기를 닦아 엎어두지 않아야 한다.

일부 가정에서는 먼지 탈까 봐 행주로 덮어두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경우 금전 운을 방해하는 원인이 된다.

주방의 식기는 좋은 운기가 들어온 운을 담을 수 있도록 반듯이 그릇은 바로 놓아두어야 가정에 재물 운이나 가족의 건강에 도움을 준다.

♣ IFSA 국제풍수협회 선정 2018 대한민국 최고 풍수인테리어 전문가 / 문의 : 010-2432-5522

삼심양합三心兩合 - 세 가지 마음가짐과 합쳐야할 두 가지, 독서할 때 바람직한 태도

삼심양합三心兩合 - 세 가지 마음가짐과 합쳐야할 두 가지, 독서할 때 바람직한 태도

삼심양합(三心兩合) - 세 가지 마음가짐과 합쳐야할 두 가지, 독서할 때 바람직한 태도

석 삼(一/2) 마음 심(心/0) 두 량(入/6) 합할 합(口/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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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이로운 점이나 독서로 얻게 되는 격언, 성어는 무척 많다. 책을 많이 소장하거나 환경을 이겨내며 잡념을 잊고 공부에 열중하는 선인들을 나타낸 것도 부지기수다. 五車之書(오거지서), 汗牛充棟(한우충동) 등은 많은 책의 소장, 懸頭刺股(현두자고), 螢窓雪案(형창설안) 등은 각고의 노력을 말한 하나의 보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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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열심히 책을 가까이 하고 공부하는 것은 후일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고 굳게 믿기 때문이다. 가장 직접적인 이익을 말한 것이 ‘글 속에 천 종의 녹이 있고, 책 가운데 황금의 집이 나온다(書中自有千鍾粟 書中自有黃金屋/ 서중자유천종속 서중자유황금옥)’는 勸學文(권학문)이고 책을 펼치기만 해도 이익이 있다는 開卷有益(개권유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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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눈에 보이는 이득 말고 책은 마음의 양식이라는 말을 실천하며 수양에 더 중점을 두는 말도 다수다. 인간의 뇌는 정보에 따라 반응하고 좋은 정보는 독서에 의한 것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독서할 때 세 가지 마음가짐(三心)과 다른 것과 합쳐야 할 두 가지(兩合)란 이 성어도 마음을 단련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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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사람이 건넨 네 글자’(정민 지음)에 소개된 내용을 보자. 중국 淸(청)나라 말기의 혁명가 쉬시린徐錫麟/ 서석린, 1873~1907의 독서법이란다. 그는 일찍 독일, 일본 등지로 유학하여 혁명사상을 흡수, 청나라를 타도하려 무장 봉기했다가 실패하고 처형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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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가지 마음은 먼저 모든 잡념을 배제하고 마음을 오롯이 모아 독서에 몰두하는 전심(全心), 꼼꼼히 놓치지 않고 세밀히 보며 중요 구절이나 대목은 표시하고 이해 안 되는 부분은 물어 깨우치는 세심(細心), 기복 없는 꾸준한 마음 즉 항심(恒心)이다. 두 가지 합칠 것은 고요함으로 몸을 닦고 검소함으로 덕을 길러야 하는 ‘독서와 수신양덕’, 우겨 넣기만 하지 말고 신체 단련을 통하여 공부로 긴장한 심신을 이완하라는 ‘독서와 신체단련’을 가리킨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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諸葛亮(제갈량)의 誡子書(계자서)에 군자의 행동을 말한 ‘마음을 고요히 하여 몸을 닦고, 검소하게 덕을 쌓아야 한다(靜以修身 儉以養德/ 정이수신 검이양덕)’란 구절을 좌우명으로 했다니 잘 들어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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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앞선 사람의 좋은 말도 보자. 唐(당)의 시인 韓愈(한유)가 아들에게 독서를 권하며 쓴 시 구절이다. ‘사람이 사람답게 되는 것은 뱃속에 들어있는 시와 글들에 달려 있단다(人之能爲人 由腹有詩書/ 인지능위인 유복유시서).’ 宋(송)의 朱子(주자)는 讀書三到(독서삼도)라 하여 책을 읽을 때 입으로 다른 말을 하지 않는 口到(구도), 눈으로 다른 것을 보지 않는 眼到(안도), 마음을 하나로 가다듬고 집중하여 깊이 새기는 심도(心到)를 들었다. 어느 것이나 공부하는 태도, 옳은 사람이 되기 위한 독서를 강조했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벽창우碧昌牛 - 벽동과 창성지방의 소, 고집이 세고 우둔한 사람

벽창우碧昌牛 - 벽동과 창성지방의 소, 고집이 세고 우둔한 사람

벽창우(碧昌牛) - 벽동과 창성지방의 소, 고집이 세고 우둔한 사람

푸를 벽(石/9) 창성할 창(日/4) 소 우(牛/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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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도 융통성이 없이 자기주장만 내세우는 사람이 있다. 所信(소신)이 있다고 칭찬하는 사람보다는 固執不通(고집불통)이라고 대부분 돌아선다. 고집도 종류가 많아 생고집, 땅고집, 왕고집, 옹고집, 외고집 등이 있고, 목을 굽힐 줄 모른다 하여 목곧이란 말도 있다. ‘바보와 죽은 사람만이 결코 자기의 의견을 바꾸지 않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고집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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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속담에서도 마찬가지다. 고집이 세어 융통성이 없으면 ‘꼿꼿하기는 서서 똥 누겠다’며 조금도 굽히지 않는 사람을 비웃었다. ‘항우는 고집으로 망하고 조조는 꾀로 망한다’고 하여 잔꾀 부리는 사람과 함께 고집을 경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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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은 대로 하고야 마는 사람을 소나 닭에 비유한 ‘쇠고집과 닭고집이다’란 속담도 덧붙는다. 새벽을 알리는 부지런한 닭이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고 닭고집이 생겼어도 소와 비교는 안 된다. 묵묵히 인간을 위해 일만 해 온 소가 힘이 셀뿐만 아니라 우직하게 앞만 보고 가니 쇠고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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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고집이라면 바로 떠오르는 말이 碧昌牛(벽창우)다. 평안북도 압록강변의 水豊湖(수풍호)가 있는 곳이 碧潼(벽동, 潼은 물이름 동)군이고 인접한 昌城(창성)군의 앞 글자만 따서 그 지역의 소를 가리켰다. 생선 明太(명태)가 처음 잡았다는 함경도 明川(명천) 지방의 太(태)씨란 이름에서 유래한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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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두 지역에서 나는 소들은 대체로 몸집도 크고 힘이 셌다. 또 대부분 말을 잘 안 듣고 제 고집대로 움직였다고 한다. 소가 부리는 사람의 명령에 따라 앞으로 가고 멈춰서기도 하는데 남도의 사람들이 이 지역의 소를 탐내어 자기 고장으로 몰고 가려 해도 말을 알아듣지 못해 이런 말이 나왔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래서 고집불통의 소를 나타내던 벽창우가 우둔하여 말이 도무지 통하지 않는 무뚝뚝한 사람을 지칭하게 됐다. 변형되어 벽창호라고도 하는데 물론 벽에 창문 모양을 내고 벽을 쳐서 막은 부분을 말하는 壁窓戶(벽창호)와 다르지만 벽으로 가로막혔다는 의미는 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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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리와 명분을 앞세워 목이 달아나도 굽히지 않은 선비들을 우리는 많이 우러러왔다. 지켜야 할 것은 지켜야 한다. 그런데 처음 좋은 계획이 사정이 바뀌거나 결과가 아주 좋지 않게 나왔을 때도 변명만 앞세우며 조금씩 달리 바꾼다면 쇠고집이 된다. 뜻이 굳은 것이 좋기는 하지만 너무 굳기만 하고 휘어야 할 때 휠 줄을 모르면 부러지는 법이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창해일속滄海一粟 - 큰 바닷속의 좁쌀 한 알, 매우 하찮고 작은 것

창해일속滄海一粟 - 큰 바닷속의 좁쌀 한 알, 매우 하찮고 작은 것

창해일속(滄海一粟) - 큰 바닷속의 좁쌀 한 알, 매우 하찮고 작은 것

큰바다 창(氵/10) 바다 해(氵/7) 한 일(一/0) 조 속(米/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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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속의 좁쌀알 같다’란 과장된 비유의 속담이 있다. 넓고 넓은 바닷속에 뜬 조그만 좁쌀 알 만하다면 그 존재가 어떻겠는가. 아주 많거나 넓은 것 가운데 있지만 무시해도 좋을 만큼 매우 작고 하찮은 경우를 이른다. 똑 같은 뜻의 넓고 큰 바다(滄海)에 떠 있는 좁쌀 한 알(一粟)이란 이 성어다. 중국을 대표하는 탁월한 문장가로 北宋(북송) 때의 제1의 시인 蘇東坡(소동파, 1037~1101)가 처음 이 말을 썼을 때는 대자연 속 존재하는 인간의 미미함을 가리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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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이 軾(식)인 동파는 부친 蘇洵(소순), 동생 蘇轍(소철)과 함께 모두 唐宋八大家(당송팔대가)에 들 정도로 문명을 떨쳤다. 대표작이 유명한 赤壁賦(적벽부)다. 적벽은 원래 三國時代(삼국시대) 吳(오)나라의 周瑜(주유)가 蜀(촉)나라와 연합하여 曹操(조조)의 백만대군을 화공으로 격파했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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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의 적벽은 소동파가 도성에서 쫓겨나 黃州(황주)란 곳으로 좌천되었을 때 자주 들러 울분을 토했던 명승지였다. 동파도 물론 이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영웅들의 활약상을 생각하면서 전편과 후편의 적벽부를 지었다. ‘전적벽부’에 달밤에 놀이하는 광경을 묘사하고 동료와 인생에 대해 논쟁하던 모습을 기술하면서 이 성어의 비유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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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도 없이 고요한 달빛 아래 일렁이는 물결의 모습은 선경과도 같아 영웅들이 활약했던 적벽대전을 떠올렸다. 주유와 조조가 일전을 벌일 때 배는 천리에 이어지고 깃발은 하늘을 가렸을 텐데, 그 영웅들은 모두 어디에 있는가 한탄하며 자신들의 처지를 비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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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뭇잎같은 조각배를 타고 술잔을 들어서 서로 권하니, 우리의 인생은 영원한 천지 속의 하루살이 같이 덧없는 생명이요, 저 드넓은 바다에 뿌려진 한 알의 좁쌀과도 같은 미미한 존재일 뿐이요(駕一葉之扁舟 舉匏樽以相屬 寄蜉蝣與天地 渺滄海之一粟/ 가일엽지편주 거포준이상속 기부유여천지 묘창해지일속).’ 匏는 박 포, 樽은 술통 준, 蜉는 하루살이 부, 蝣는 하루살이 유, 渺는 아득할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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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성어와 함께 아주 많은 수 가운데서 매우 적은 수를 말하는 九牛一毛(구우일모)나 쌀 창고 속의 쌀 한 톨을 가리킨 太倉稊米(태창제미)도 같은 뜻이다. 어느 것이나 보잘 것 없는 존재를 말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존재할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 단지 세상 넓은 것을 알고 자신의 위치를 알면 더욱 빛을 발하는 존재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염일방일拈一放一 - 하나를 얻으려면 하나를 놓아라, 사람의 욕심을 경계하는 말

염일방일拈一放一 - 하나를 얻으려면 하나를 놓아라, 사람의 욕심을 경계하는 말

염일방일(拈一放一) - 하나를 얻으려면 하나를 놓아라, 사람의 욕심을 경계하는 말

집을 념(扌/5) 한 일(一/0) 놓을 방(攵/4) 한 일(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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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심이 없는 사람은 드물겠지만 지나치면 탈이 난다. ‘토끼 둘을 잡으려다가 하나도 못 잡는다’는 속담대로 욕심을 부려 한꺼번에 차지하려다 모두 놓치는 경우가 많다. 하나를 얻었을 때 만족할 줄 모르면 나중에는 둘 다 잃는 兩敗俱傷(양패구상)이 된다. 이럴 때 선승들은 마음을 텅 빈 허공처럼 유지하라고 放下着(방하착)을 내세우는데 욕심에 찌든 세속의 대중들이 잘 될 리가 없다. 많이 양보하여 하나를 잡으려면(拈一) 다른 하나를 놓아야 한다(放一)는 가르침에도 둘 다 가지려는 욕심을 내려놓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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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拈(념)은 拈華微笑(염화미소)라 할 때의 글자와 같고 어려운 본자를 써서 搛一放一(염일방일)로 써도 마찬가지다. 이 성어를 이야기할 때마다 등장하는 유명한 고사가 있다. 중국 北宋(북송)때의 대학자이자 정치가였던 司馬光(사마광, 1019~1086)이 어렸을 때 뛰어난 재치로 독에 빠진 아이를 구한 破甕救兒(파옹구아) 일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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破甕救友(파옹구우), 擊甕救兒(격옹구아)라고도 한다. 司馬溫公(사마온공)이라 불리는 사마광은 어릴 때부터 총명하여 배우기를 좋아했고 대작 역사서 資治通鑑(자치통감)을 남겼다. 王安石(왕안석)이 시행한 新法(신법)을 재상이 된 후 폐기한 사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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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宋(남송)의 승려 惠洪(혜홍)이 지은 ‘冷齋夜話(냉재야화)’에 실린 내용이다. 사마광이 일곱 살 때 친구들과 놀다가 한 아이가 뜰에 있던 큰 물독에 빠졌다. ‘겁이 난 아이들은 달아나버리고 어린 사마광이 큰 돌을 가져와 독을 깨뜨리니 물이 구멍으로 쏟아져 나와 죽지 않고 살아났다(群兒皆棄去 公則以石擊甕 水因穴而迸 兒得不死/ 군아개기거 공즉이석격옹 수인혈이병 아득불사).’ 迸은 내뿜을 병. 元(원)나라 때 托克托(탁극탁)이 쓴 ‘宋史(송사)’에도 비슷하게 나온다. 二十四史(이십사사)의 정사에 들어가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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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은 꼬마가 해 낸 일을 왜 생각 못했을까. 사다리를 가져오라, 밧줄을 구해오라 서두르기만 했지 값이 많이 나가는 독을 깨는 것은 언감생심이었다. 일을 처리해야 할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이해득실만 따지고 하나를 없앨 생각은 꿈에도 못하는 것은 실생활에도 흔하다. 모정치인이 세월호 참사 때 같은 내용을 페이스북에 올린 적이 있다. 이것저것 따지다 정작 생명을 잃는다며 돌로 깨부숴야 할 것은 무엇인가 물었다. 정작 자신이 시행한 정책을 성공시키기 위해 버릴 것은 버렸는지 생각할 일이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2024년 4월 5일 금요일

물부충생物腐蟲生 - 만물이 썩으면 벌레가 생긴다.

물부충생物腐蟲生 - 만물이 썩으면 벌레가 생긴다.

물부충생(物腐蟲生) - 만물이 썩으면 벌레가 생긴다.

물건 물(牛/4) 썩을 부(肉/8) 벌레 충(虫/12) 날 생(生/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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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생물은 반드시 죽어 썩는다. 생명이 없는 무생물이라도 영원히 그 모습을 유지하지는 못한다. 유기물이 미생물의 작용에 의해 분해되는 것이 부패다. 고약한 냄새를 동반한다. 만물이 썩으면(物腐) 벌레가 생겨난다(蟲生)는 이 말은 재앙이 생기는 것에는 반드시 내부에 그 원인이 있다는 것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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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의 침입을 부르는 것도 내부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인간을 부패하게 하는 세균은 권력과 돈과 그리고 명성’(이어령)이라고 했다. 유한한 인간이 이러한 것들에 의해 부패를 재촉하고 생명도 단축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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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어가 먼저 등장하는 곳은 ‘荀子(순자)’의 勸學(권학)편이다. 性惡說(성악설)을 주장했던 중국 戰國時代(전국시대)의 유학자 순자의 사상을 모은 책이다. 그 부분을 뽑아 보자. ‘모든 사물의 발단에는 반드시 그 원인이 있고, 영예와 치욕이 오는 것도 반드시 사람의 덕에 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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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가 썩으면 벌레가 나오고, 물고기가 마르면 좀이 생기며, 게을러서 사람의 도리를 잊게 되면 재앙이 생기게 된다(物類之起 必有所始 榮辱之來 必象其德 肉腐出蟲 魚枯生蠹 怠慢忘身 禍災乃作/ 물류지기 필유소시 영욕지래 필상기덕 육부출충 어고생두 태만망신 화재내작).’ 蠹는 좀 두. 고기가 부패한 뒤 벌레가 생긴다고 肉腐生蟲(육부생충)이라 한 곳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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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모든 생물로 넓혀져 널리 사용된 것은 宋(송)나라의 문인이자 唐宋八大家(당송팔대가)의 한 사람 蘇軾(소식, 1037~1101)이 쓴 ‘范增論(범증론)’에서다. 범증은 秦(진)나라 말기 군사를 일으킨 項羽(항우)가 亞父(아부)라 칭할 정도로 믿었던 모사였다. 비록 실패했지만 鴻門之宴(홍문지연)에서 항우에게 劉邦(유방)을 죽이라고 한 그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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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협을 느낀 유방은 陳平(진평)의 계책대로 항우와 범증의 사이를 이간질하는데 성공했고 그로써 漢(한)을 세우게 된다. 소식은 이 사실을 언급하고 평한다. ‘사물은 반드시 먼저 썩은 뒤에 벌레가 생기고, 사람은 반드시 먼저 의심하고 난 뒤에 모함이 먹혀든다(物必先腐也 而後蟲生之 人必先疑也 而後讒入之/ 물필선부야 이후충생지 인필선의야 이후참입지).’ 讒은 참소할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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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정권이나 마찬가지이지만 지도층의 낯부끄러운 행위가 많이 있었고, 대통령은 말할 것도 없고, 현직 부장판사가 거액의 금품을 받아 구속됨으로써 현직 검사장과 검사장 출신 변호사 등 ‘법조 3륜’이 모두 부패의 치욕을 기록한적도 있었다. 청와대선 비리와 위법이 확인된 관료를 감싸고, 장관 인사청문회에서 부끄러운 행위로 만신창이가 되어도 아랑곳 않는다. 이 모두 냄새가 진동하는데 당사자만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조화적신厝火積薪 - 불을 장작 쌓은 곳에 두다, 위험이나 재난이 숨어 있다는 비유

조화적신厝火積薪 - 불을 장작 쌓은 곳에 두다, 위험이나 재난이 숨어 있다는 비유

조화적신(厝火積薪) - 불을 장작 쌓은 곳에 두다, 위험이나 재난이 숨어 있다는 비유

둘 조(厂/8) 불 화(火/0) 쌓을 적(禾/11) 섶 신(艹/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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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은 취사나 난방에도 가스나 유류를 쓰는 것이 일상화됐다. 통나무를 쪼갠 長斫(장작)이나 땔나무를 통틀어 말하는 섶이란 말은 생소할 것이다. 그래도 ‘섶을 지고 불로 들어가려 한다’란 속담은 앞뒤 잘 가려 위험한 일에 뛰어들지 않도록 주의시킬 때 많이 쓴다. 섶을 뜻하는 한자 薪(신)이 들어가는 성어는 상당히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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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담과 비슷한 抱薪救火(포신구화)는 섶을 안고 불을 끄려다 더 큰 화를 부르는 경우이고, 원수를 잊지 않기 위해 섶에서 자고 쓴 쓸개를 핥는 臥薪嘗膽(와신상담)은 너무나 잘 알려져 있다. 이외에도 재앙을 미리 방지하는 曲突徙薪(곡돌사신), 자식에 땔나무 캐오는 법을 가르친다는 敎子採薪(교자채신) 등 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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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한 가지 더 불을 놓아둘 때(厝火) 장작더미나 섶 쌓은 곳이라면(積薪) 바로 활활 탈 것이다. 따로 둘 때는 멀쩡해도 바로 불이 붙으니 매우 큰 위험이나 재난이 숨어있다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둔다는 뜻의 厝는 措와 같아 措火積薪(조화적신), 또는 뒤집어 積薪措火(적신조화)로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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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성어는 중국 西漢(서한)의 5대 文帝(문제) 때 비운의 문장가 賈誼(가의, 기원전 200~168)가 쓴 ‘治安策(치안책)’에서 처음 사용됐다. 가의는 어려서부터 재능이 뛰어나 불과 20세에 박사가 되고, 이어 황제의 고문이 됐다. 그러나 파격적 승진은 중신들의 시기를 받았고, 왕족 제후들의 권한도 커 곳곳서 모반이 일어나는 등 나라가 어지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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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의는 황제에게 올리는 글에서 천하가 태평하다고 여기고 있는데 그렇지 않다면서 이어간다. ‘지금의 형세는 마치 불을 땔감을 쌓아두는 곳의 아래에 두고 그 위에서 잠을 자며(夫抱火厝之積薪之下 而寢其上/ 부포화조지적신지하 이침기상), 불이 아직 일어나지 않아 안전하다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火未及燃 因謂之安/ 화미급연 인위지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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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이 건의를 받아들여 제후국을 분할하고 세력을 약화시키는 등 황제의 권한을 강화했다. 가의는 자신이 가르치던 왕자가 말에서 떨어져 죽자 관직을 사퇴하고 얼마 안 있어 죽었다. 가의는 新書(신서)와 秦(진)의 쇠망한 원인을 밝힌 過秦論(과진론)을 남겼고, 이 내용은 ‘漢書(한서)’의 가의전에도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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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신의 건의를 잘 받아들여 세금을 감면하고 가혹한 형벌을 폐지하는 등 국력을 향상시켰다. 아들 景帝(경제)도 잘 이어받아 文景之治(문경지치)라 불렸다. 굴뚝 옆에 쌓아 둔 장작이 불이 붙어도 안에서는 잘 모른다. 위험은 주위에서 먼저 알아채기 마련이다. 한문제가 아니라 문제는 그것을 알려줘도 괜찮다며 태평을 부릴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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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예를 들면 우리나라의 가계 빚과 나라의 부채가 급속도로 늘어 가는데도 외국에 비해서는 안심할 수준이라면서 고칠 생각이 없다. 집행하는 당국자는 느끼지 못하는 사이 외국서 신호를 보내고 다음 세대 어깨만 무거워간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역지사지易地思之 - 처지를 바꾸어서 생각하다.

역지사지易地思之 - 처지를 바꾸어서 생각하다.

역지사지(易地思之) - 처지를 바꾸어서 생각하다.

바꿀 역, 쉬울 이(日/4) 따 지(土/3) 생각 사(心/5) 갈 지(丿/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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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의 모든 葛藤(갈등)은 자기주장만이 옳다고 주장하는 데서 비롯된다. 칡과 등나무는 서로 다른 방향으로 가지를 감아 올라간다. 똑 같은 곳을 가는데 서로가 얽히기만 한다.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데 상대방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아랑곳 않고 내 주장만 강조하면 평행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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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란 말처럼 자기중심적 사고다. ‘너도 옳고 나도 옳은’ 조선 초기 黃喜(황희) 정승의 자세가 언뜻 주관이 없어 보이지만 다른 사람의 입장을 충분히 배려할 줄 아는 자세다. 만일 모두가 상대방과 처지를 바꾸어서(易地) 생각해 본다면(思之) 대부분의 오해는 사라지고 살만한 세상이 될 것이다.

‘孟子(맹자)’의 離婁編(이루편) 하에서 비롯됐다. 夏(하)나라의 시조 禹(우)는 堯(요) 임금 치세 때 홍수를 잘 막아 왕위를 선양받았다. 后稷(후직)은 중국에서 농업의 신으로 숭배 받는다. 이들은 자기의 일을 완성하기 위해 자기 집을 세 번 지나치면서도 들르지 않았다(三過其門而不入/ 삼과기문이불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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顔回(안회)는 孔子(공자)의 제자로 다른 사람들은 견디지 못할 정도의 가난한 생활을 하면서도 安貧樂道(안빈낙도)의 태도를 지켰다. 이 세 사람은 모두 공자에게 어질다는 평을 들었다. 그래서 맹자는 ‘우와 후직, 안회는 모두 같은 길을 가는 사람으로, 서로의 처지가 바뀌었더라도 똑 같이 행동했을 것(禹稷顔子 易地則皆然/ 우직안자 역지즉개연)’이라 표현했다. 여기서 처지가 바뀐다는 것은 태평성대와 어지러운 세상을 살아가는 삶의 태도라는 뜻이었지만 오늘날 뜻이 확장됐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요동지시遼東之豕 - 요동지방의 돼지, 식견이 좁아 제 편하게 해석하다.

요동지시遼東之豕 - 요동지방의 돼지, 식견이 좁아 제 편하게 해석하다.

요동지시(遼東之豕) - 요동지방의 돼지, 식견이 좁아 제 편하게 해석하다.

멀 료(辶/12) 동녘 동(木/4) 갈 지(丿/3) 돼지 시(豕/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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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이 없거나 식견이 좁아 세상 돌아가는 일을 잘 알지 못하고 제 편한 대로 해석하고 받아들인다. 이런 사람을 경계하는 속담이 ‘우물 안 개구리’다. 번역한 듯이 같은 井底之蛙(정저지와)와 비슷한 뜻을 가진 성어가 숱하다. 앞서 자주 사용되는 것을 제외하고도 여름 한철을 사는 매미는 겨울의 눈을 알 수 없다는 蟬不知雪(선부지설), 남쪽 지방 越(월)나라의 개는 본적이 없는 눈만 오면 이상하게 여겨 짖는다는 越犬吠雪(월견폐설), 술독 속에 갇힌 초파리 甕裏醯鷄(옹리혜계, 醯는 식혜 혜)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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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遼東(요동)지역은 한반도와 인접한 遼寧省(요녕성)의 남부로 본토에서 보면 변두리다. 이 곳에서 한 농부가 기르던 돼지가 하얀 머리의 새끼를 낳았던 모양이다. 귀한 것이라 자랑하려다 이웃 지방에서는 모두 하얀 돼지만 우글거렸다. 이 말은 견문이 좁고 오만하기도 해서 남이 보기에는 대단찮은 물건을 대단히 귀하게 여기거나 하찮은 공을 내세우는 것을 비유한다. 後漢(후한) 건국 직후 대장군 朱浮(주부)가 한 말로써 ‘後漢書(후한서)’ 주부전에 실려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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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武帝(광무제)가 즉위한 뒤에도 천하는 전란의 여파로 뒤숭숭했다. 목사인 주부가 천하를 안정시키기 위해 창고를 열어 백성들을 구휼하려는 것을 지역 태수인 彭寵(팽총)이 반대하고 나섰다. 건국에 공을 보탠 팽총이 논공행상에 불만을 품고 군량을 확보하여 반란을 계획했던 것이다. 주부가 편지를 보냈다. ‘요동의 어떤 돼지가 머리가 흰 돼지를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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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이 왕에게 바치려고 하동에 갔다가 그곳 돼지가 모두 하얀 것을 보고 부끄러워 돌아왔다(往時遼東有豕 生子白頭 異而獻之 行至河東 見羣豕皆白 懷慙而還/ 왕시요동유시 생자백두 이이헌지 행지하동 견군시개백 회참이환).’ 慙은 부끄러울 참. 팽총이 공이 크다고 자부하는 것도 별것 아니니 자중하라는 충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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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충고를 듣고도 팽총은 군사를 일으켜 燕王(연왕)이라 칭했다 토벌되고 말았다. 이런 사람이 오늘이라고 없을까. 지도자를 받들어 선거라는 큰 전쟁에 이기도록 힘을 보탰다. 이제는 자기 세상이 왔다며 눈에 보이는 것 없이 설치는 사람이 많다. 위에서 보면 그 정도의 노력을 한 사람은 부지기수다. 자리를 기다리다 지치면 욕을 하고 돌아선다. 자신이 모자란다는 것은 모른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