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6일 토요일

여리박빙如履薄氷 - 살얼음 밟듯이 아슬아슬하다.

여리박빙如履薄氷 - 살얼음 밟듯이 아슬아슬하다.

여리박빙(如履薄氷) - 살얼음 밟듯이 아슬아슬하다.

같을 여(女/3) 밟을 리(尸/11) 엷을 박(艹/13) 얼음 빙(水/1)

사람은 살아가면서 원하지 않아도 위험과 맞닥뜨린다. 미리 알고 피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그래서 선조들은 위험에 대비해야 한다고 숱한 금언을 남겼다. 바람 앞으로 등잔을 갖다놓지 않아야겠고(風前燈火/ 풍전등화), 한 가닥의 머리칼로 무거운 물건을 매달아서는(一髮千鈞/ 일발천균) 단번에 떨어지니 피해야 한다.

‘세 살 난 아이 물가에 놓은 것 같다’는 속담은 바라보는 부모가 속이 타니 안전한 곳으로 데려갈 일이다. 마찬가지로 초겨울 살짝 언 살얼음(薄氷)을 겁 없이 밟는 것(如履)과 같다는 이 성어도 아슬아슬하고 위험한 일을 피하라고 비유적으로 말할 때 많이 사용된다. 줄여서 履氷(이빙)이라고도 한다.

앞서 매사가 두려워 겁을 먹고 벌벌 떨며 조심한다는 戰戰兢兢(전전긍긍)을 소개했는데 이 말도 함께 동양 최고의 시집이라 하는 ‘詩經(시경)’에서 유래한다. 小雅(소아)편 小旻(소민)의 마지막 6연에 나오는 내용을 다시 보자.

‘두려워 벌벌 떨며 삼가는데, 마치 깊은 연못을 건너는 듯하네, 마치 엷은 얼음 위를 걷는 듯하네(戰戰兢兢 如臨深淵 如履薄氷/ 전전긍긍 여림심연 여리박빙).’ 周(주)나라 말기의 학정에 살아가려면 깊은 연못가에 있는 것처럼, 살얼음을 밟는 것처럼 불안에 떨며 조심한다는 이야기다. 위험한 상황에 대비하여 피해야 한다는 말이 한꺼번에 3개가 연결되어 특이하다.\xa0

‘論語(논어)’ 泰伯(태백)편에는 공자의 문인 가운데 효행으로 으뜸가는 曾子(증자)가 병이 깊어지자 제자들을 불러 한 말에 그대로 인용했다. 자신의 손과 발이 손상된 곳이 없는지 펴 보이게 하면서 말한다. ‘시경에 두려워하고 삼가기를 못가에 서 있듯 하고, 얇은 얼음을 밟듯 하라 했는데 이제야 그런 걱정을 면하게 되었구나(詩云 戰戰兢兢 如臨深淵 如履薄氷 而今而後 吾知免夫/ 시운 전전긍긍 여림심연 여리박빙 이금이후 오지면부).’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신체를 훼손할까 두려워하던 근심에서 벗어났다고 그제야 안심하는 것이다. \xa0/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시과비중是寡非衆 - 옳은 일은 적고 그른 일은 많다, 세상사 자기중심으로 보면 안 된다.

시과비중是寡非衆 - 옳은 일은 적고 그른 일은 많다, 세상사 자기중심으로 보면 안 된다.

시과비중(是寡非衆) - 옳은 일은 적고 그른 일은 많다, 세상사 자기중심으로 보면 안 된다.

옳을 시(日/5) 적을 과(宀/11) 아닐 비(非/0) 무리 중(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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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옳고 바른 일만 행해진다면 시끄러울 일이 없다. 하지만 세상에 사리에 맞고 바른 일만 있는 것이 아니고 그것을 따질 수 없는 것이 있을 수 있고, 존재 자체로 의미를 가지는 것이 있다. ‘참새가 기니 짧으니 한다’는 속담은 비슷비슷한 가운데 굳이 크고 작음이나 잘잘못을 가리려 할 때 쓰는 말이다. 누가 옳고 그른지 알기 어려운 것을 말할 때는 熟是熟非(숙시숙비)이고 바로 ‘까마귀의 암수를 누가 알랴’라는 誰知烏之雌雄(수지오지자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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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明末(명말)의 洪自誠(홍자성)이 쓴 교훈집 ‘菜根譚(채근담)’에는 이런 말이 있다. ‘꾀꼬리 울음을 들으면 기뻐하고, 개구리 울음을 들으면 싫어한다. 꽃을 보면 가꾸려 하고, 풀을 보면 뽑으려 한다(聽鶯啼則喜 聞蛙鳴則厭 見花則思培之 遇草則欲去之(청앵제즉희 문와명즉염 견화즉사배지 우초즉욕거지).’ 듣기 좋고 시끄럽다거나 아름답고 보기 싫다는 것은 사람들이 기호에 따라 구분한 것이지, 천지자연의 본성으로 본다면 좋고 싫거나 옳고 그른 것이 있을 수가 없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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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대학자 眉叟(미수) 許穆(허목, 1595~1682)이 남긴 ‘於是齋記(어시재기)’에는 여기에 관한 명쾌한 말이 나온다. 潭陽(담양)의 관리 任侯(임후)가 어시재란 작은 집을 짓고 기문과 편액을 청하며 ‘사람들의 행동을 보면 옳은 것은 적고, 그른 것은 많습니다(於是者寡 於非者蓋衆/ 어시자과 어비자개중)’란 글을 보낸다. 허목은 좋은 글이라 하고 명을 짓는다. ‘옳은 것과 그른 것은 명철한 사람이면 가려낼 수 있다네(有是非 明者擇之/ 유시비 명자택지), 옳은 데 처하기가 어려운 게 아니라 확고하게 지키기가 어려운 법이라네(處是非難 確於是爲難/ 처시비난 확어시위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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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치가 이런데도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사에는 자기가 하는 일은 모두 옳고 자기 생각이 항상 바르다고 본다. 그렇지만 옳은 방향으로 일을 했는데 결과로는 모든 사람에게 다 옳은 일은 적고 그른 일이 많기 때문에 세상이 시끄럽다. 물론 나쁜 방향인 줄 알면서도 밀고 나간 것은 아닐지라도 나중에 자세히 따져보면 옳은 것보다 그른 것이 많을 수 있다. 정책 하나하나가 국민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치므로 입안 시행하는 당국자는 특히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오유선생烏有先生 -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사람

오유선생烏有先生 -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사람

오유선생(烏有先生) -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사람

까마귀 오(灬/6) 있을 유(月/2) 먼저 선(儿/4) 날 생(生/0)

까마귀 烏(오) 글자는 새 鳥(조)와 비슷하지만 한 획이 빠져 조류에 끼워주지 않고 불 灬(화) 부수에 넣는다. 왜 그럴까. 몸체가 온통 검은 까마귀는 눈까지 까매 보이지 않으므로 점을 뺀 글자로 했다고 한다. 그래서 까마귀라는 뜻 외에 烏骨鷄(오골계)에서 보듯 ‘검다’는 것을 뜻하고 ‘탄식하다, 왜, 어찌’ 라는 의미를 포함한다. 烏有(오유)는 ‘어찌 있겠느냐’는 뜻으로, 있던 사물이 없게 되는 것을 이른다. 나아가 점잖게 선생을 붙이면 상식적으로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사람이 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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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前漢(전한)의 문인 司馬相如(사마상여, 기원전 179~117)는 가장 아름답고 뛰어난 賦(부)의 대표적 작가로 일컬어진다. 그는 戰國時代(전국시대) 趙(조)나라 재상 藺相如(인상여, 藺은 골풀 린)를 흠모하여 이름을 따랐다고 했다. 또 卓文君(탁문군)과의 사랑으로 家徒四壁(가도사벽)의 가난을 이겨낸 이야기는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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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적인 것보다 빼어난 문장으로 직접 서술하는 산문인 부는 한대에 특히 성행했다고 한다. 대표작 ‘子虛賦(자허부)’와 그에 이은 후편 ‘上林賦(상림부)’에 등장하는 사람이 바로 앞의 오유, 子虛(자허), 亡是公(망시공)선생이다. 이름만 봐도 자허(헛것), 어찌 있으리오(오유), 이런 것이 없다(망시공) 등 가공인물을 등장시켜 풍자하는 내용이다.

楚(초)의 사신으로 齊(제)나라에 간 자허가 자국의 성대한 수렵의 모습을 자랑하자, 오유선생은 지지 않고 땅의 광활함을 내세우고, 이를 지켜본 망시공은 모두 잘못됐다고 꾸짖는다. 천자제후의 호화로운 수렵을 꼬집고 군주에 근검절약을 깨우치는 깊은 뜻을 포함했다. ‘史記(사기)’와 ‘漢書(한서)’에 두루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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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서도 사람이 사라지거나 소식이 없을 때 자주 사용했다. 고려 말기 문신 牧隱(목은) 李穡(이색, 1328~1396)의 ‘午睡(오수)‘라는 시에는 잠을 깨운 아이들을 혼내려 하였더니 사라졌다며 노래한다. ’아이놈들이 모여들어 서로 떠들면서(童稚聚相喧/ 동치취상훤), 악다구니하는 소리 홀연히 귀에 들려(聲急忽觸耳/ 성급홀촉이), 잠을 깨고 불러다가 혼내려 하였더니(覺來欲相質/ 각래욕상질), 모조리 오유선생이요 무시공일세(烏有與亡是/ 오유여망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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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상식에 어긋나는 사람을 종종 본다. 높은 사람일수록 이전의 잘못을 까마득히 잊고 떵떵거린다. 모두 존재하지 않아야 할 오유들이다. 이들은 건망증이 심하다는 까마귀 고기를 먹은 오유선생임에 틀림없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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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초손 겸수익滿招損 謙受益 - 가득하면 손해가 오고 겸손하면 이익을 얻는다.

만초손 겸수익滿招損 謙受益 - 가득하면 손해가 오고 겸손하면 이익을 얻는다.

만초손 겸수익(滿招損 謙受益) - 가득하면 손해가 오고 겸손하면 이익을 얻는다.

찰 만(氵/11) 부를 초(扌/5) 덜 손(扌/10) 겸할 겸(八/5) 받을 수(又/6) 더할 익(皿/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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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이든지 가득 차면 이지러지기 마련이고 좌우를 잘 살펴 행동하면 득이 돌아온다. 사람에게도 똑 같이 해당된다. 가득한데도 욕심을 부려 거만한 행동을 보인다면 인간관계에서 손해를 보지만 자신을 낮추고 겸손하다면 이익을 얻게 된다. 덕을 말하는데도 손해와 이익을 따지는 것이 얕은 비유일지 모르지만 넘보지 않고 만족함을 안다면 그보다 더한 행복이 없다고 많은 선인들이 가르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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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득하면 손실을 초래하고(滿招損) 겸손하면 이익을 얻는다(謙受益)는 이 성어는 가장 역사가 깊다. 중국 고대 문화의 원류를 담고 있다는 ‘書經(서경)’에 나오기 때문이다. 본래는 書(서)라고 하다 漢(한)나라 이후에는 尙書(상서)라고도 한 책이다. 유교에서 三經(삼경)이나 五經(오경)에 물론 빠지지 않는 이 책은 夏殷周(하은주) 시대의 정치문서를 편집한 것으로 한자 문화권에서 국가통치의 규범이 됐다고도 한다. 堯舜(요순) 임금의 뒤를 이어 현군 禹(우) 임금이 등장하는 虞書(우서) 大禹謨(대우모) 편에서 이 말이 유래했다. 임금과 신하가 국정을 논의한 것을 적은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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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임금이 나라를 다스릴 때 남부지역에 살던 苗族(묘족)이 잘 다스려지지 않자 우에게 정벌하도록 임무를 내렸다. 우는 제후들과 함께 정복하러 나가면서 묘족의 우두머리가 몽매하고 무도하니 수적으로 우세한 우리가 쉽게 승리를 거둬 공을 이룰 것이라고 큰소리쳤다. 하지만 출병한지 한 달이 지났는데도 묘족의 반항은 거셀 뿐 진압은 하세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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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함께 간 益(익)이란 사람이 간언했다. ‘자만하는 자는 손해를 부르고 겸손한 자가 이익을 받는다는 것은 하늘의 도리입니다(滿招損 謙受益 時乃天道/ 만초손 겸수익 시내천도)’라며 철군하도록 했다. 우는 간언에 따라 철수한 뒤 덕과 교육으로 70일 만에 묘족들을 감화시켰다. 治水(치수)를 해결한 우임금도 초기엔 자만했음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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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성어는 ‘明心寶鑑(명심보감)’에도 비슷한 명언들과 함께 실려 있다. 그 중 ‘넉넉함을 알고 만족하면 평생 욕되지 않고, 족함을 모르면 부귀에도 근심만 따른다(知足常足 終身不辱 知止常止 終身無恥/ 지족상족 종신불욕 지지상지 종신무치)’도 있다. 현재에 만족하고 스스로를 낮추면 다른 사람의 존중은 따라온다. 높은 지위에 오르고 많은 부를 축적한 사람일수록 절제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심광체반心廣體胖 - 마음이 너그러우면 몸도 편안해진다.

심광체반心廣體胖 - 마음이 너그러우면 몸도 편안해진다.

심광체반(心廣體胖) - 마음이 너그러우면 몸도 편안해진다.

마음 심(心/0) 넓을 광(广/12) 몸 체(骨/13) 살찔 반(肉/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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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과 몸의 관계를 나타내는 말 중에 ‘마음에 없으면 보이지도 않는다’, ‘범에게 열두 번 물려 가도 정신을 놓지 말라’는 속담이 있다. 아무리 위급한 상황에 처했더라도 정신을 차려야 몸을 추스를 수가 있다는 이야기다. 서양의 격언이 떠오른다.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A healthy mind in a healthy body)’란 로마 시인 유베날리스(Decimus Junius Juvenalis)의 시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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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우선하여 몸이 건강해야 마음이 건강해진다는 뜻으로 사용되는데, 이 말도 처음에는 검투사들의 육체미에 홀린 젊은이들에게 육체만 신경 쓰지 말고 정신을 위한 공부도 열심히 하라는 충고에서 나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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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의 이 말과 통하는 성어가 ‘大學(대학)’에서 유래한 마음이 너그러우면(心廣) 몸이 편해 살이 찐다(體胖)는 이 말이다. 心寬體胖(심관체반)이라고도 한다. 특히 비만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사람들에게는 기겁할 말이지만 마음이 편안하고 관대해야 몸이 항상 윤기가 흐르고 혈색이 좋아 보인다고 이해하면 좋다. 군자는 홀로 있을 때 더욱 언행을 조심한다는 愼獨(신독) 부분 다음에 孔子(공자)의 제자 曾子(증자)가 한 이야기에서 비롯됐다. 자신의 뜻을 성실히 한다는 전6장의 誠意(성의)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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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자가 말한다. ‘부유함이 집을 윤택하게 하듯이 덕은 자신을 윤택하게 하니, 마음이 넓어지고 몸이 빛난다. 그러니 군자는 반드시 자신의 뜻을 성실히 해야 한다(富潤屋 德潤身 心廣體胖 故君子必誠其意/ 부윤옥 덕윤신 심광체반 고군자필성기의).’ 이 이야기의 앞부분에 소인배는 한가할 때 좋지 못한 일을 한다는 小人閑居爲不善(소인한거위불선)이나 수많은 사람이 보고 있다는 十目所視(십목소시) 등의 성어가 등장하여 유명하다. 마음에 부끄러움이 없으면 너그러워져 몸이 항상 상쾌하고 편안하게 되는데 덕이 몸을 윤택하게 만든다고 해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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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 마셔도 살이 붙는다고 걱정하는 사람이 있다. 국민 상당수가 굶주리던 饑饉(기근)이 옛 이야기가 되고 음식물 쓰레기가 산을 이룬다고 하는데 비만의 걱정도 겹쳤다. 이런 사람에게도 음식 하나하나에 신경을 쓰기 보다는 남의 이목보다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는 편이 더 낫다는 뜻을 전하는 것이 아닐까. 내면의 세계를 떳떳하게 넓혀 나가면 그 경지가 밖으로 드러나 몸이 편안해지고 항상 혈색이 좋아진다고 보면 좋겠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군자삼락君子三樂 - 군자의 세 가지 즐거움

군자삼락君子三樂 - 군자의 세 가지 즐거움

군자삼락(君子三樂) - 군자의 세 가지 즐거움

임금 군(口/4) 아들 자(子/0) 석 삼(一/2) 즐길 락(木/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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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높은 벼슬자리에 있던 사람을 君子(군자)라 했다. 행실이 점잖고 덕과 학식이 높은 사람을 통칭하기도 했는데 아득히 중국 周(주)나라 때부터 많이 써 왔다고 한다. 유가의 성전이라 할 孔子(공자)의 論語(논어)에는 편마다 군자를 등장시켜 仁(인)과 道(도)를 설명한다. 이런 군자에 三(삼)이란 숫자와 연관시켜 성어도 숱하게 남겼는데 君子三戒(군자삼계), 君子三言(군자삼언), 君子三畏(군자삼외), 君子三患(군자삼환)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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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의 사상을 계승 발전시킨 孟子(맹자, 기원전 372~289)는 군자에 세 가지 즐거움(三樂)이 있다고 했다. 왕이 되어 천하를 다스리는 것은 포함되지 않는다면서 盡心(진심) 상편에 올린 내용을 옮겨보자. ‘부모가 모두 건강하게 살아 계시며 형제들이 아무런 탈이 없는 것이 첫 번째 즐거움이요(父母俱存 兄弟無故 一樂也/ 부모구존 형제무고 일락야), 우러러 봐도 하늘에 부끄럽지 않고 굽어봐도 사람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것이 두 번째 즐거움이며(仰不愧於天 俯不怍於人 二樂也/ 앙불괴어천 부부작어인 이락야), 천하의 우수한 인재를 얻어서 그들을 교육하는 것이 세 번째 즐거움이다(得天下英才而敎育之 三樂也/ 득천하영재이교육지 삼락야).’ 愧는 부끄러울 괴, 怍은 부끄러워할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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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는 나라를 다스리는 세속적인 권력과 영예는 들어있지 않고 자신과 부모형제를 중심으로 한 일상의 즐거움을 우선적으로 꼽고 마지막으로 남을 가르치는 영재교육을 꼽았다. 이에 반해 공자는 좋아하면 유익한 것 세 가지(益者三樂/ 익자삼요)와 해로운 것 세 가지(損者三樂/ 손자삼요)를 季氏(계씨)편에 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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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악에 맞게 행동하고, 남의 좋은 점 말하기, 현명한 친구가 많아짐을 좋아하는 것(樂節禮樂 樂道人之善 樂多賢友/ 요절예악 요도인지선 요다현우)’이 유익한 세 가지다. ‘교만 방자하고, 절제 없이 놀기, 주색에 빠져 연회를 좋아하면(樂驕樂 樂佚遊 樂宴樂/ 요교락 요일유 요연락)’ 해로운 세 가지다. 佚은 편안 일. 樂이 ‘즐길 락’과 ‘노래 악’, ‘좋아할 요’로 번갈아 사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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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진 것이 많을수록, 높은 자리에 오를수록 더 많이, 더 높이 오르려고 아등바등한다. 그렇게 하면 즐거움이 더 늘어날리 없는데도 욕심은 끝이 없다. 천하를 다스리는 것도 삼락에 포함시키지 않은 맹자의 지혜를 본받을 일이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정위지풍鄭衛之風 - 정나라와 위나라의 노래, 노골적인 문장이나 음란한 노래

정위지풍鄭衛之風 - 정나라와 위나라의 노래, 노골적인 문장이나 음란한 노래

정위지풍(鄭衛之風) - 정나라와 위나라의 노래, 노골적인 문장이나 음란한 노래

나라 정(阝/12) 지킬 위(行/9) 갈 지(丿/3) 바람 풍(風/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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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春秋時代(춘추시대, 기원전 770년~403년)는 고대 周(주) 왕조가 洛陽(낙양)으로 옮긴 東周(동주)부터 戰國時代(전국시대, 기원전 403년~221년) 이전까지 100여개 제후국이 있었다고 한다. 많게는 1800개국이란 곳도 있는데 그 많은 나라 중에 이름이 남은 五覇(오패) 말고 鄭(정), 衛(위)나라가 오명으로 오르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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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나라의 노래가 남녀의 애정을 노골적으로 묘사한 것이 ‘詩經(시경)’에 많이 실려 있다는 이야기에서 나왔다. 약 3000년 전부터 전해지는 시를 모은 가장 오래된 이 시집은 孔子(공자)가 五經(오경)으로 중시하면서 더욱 많이 연구하고 읽힌 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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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경에는 風(풍) 雅(아) 頌(송) 등으로 구분돼 있고 열다섯 나라의 민요들이 실린 國風(국풍)에 鄭風(정풍)과 衛風(위풍)이 나온다. 오래된 시집인데도 신화적인 내용은 드물고 사회의 현실을 비판한 것이 많아 악랄한 위정자를 비꼬고 전장에 나간 남편을 그리워하는 심정을 읊었다. 그런 중에 남녀가 자유로이 만나는 연애시가 유난히 많은 곳이 정풍과 위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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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눈을 피하여 만나는 남녀 간의 사랑을 그린 노래 將中子(장중자), 남자에 버림받은 여자의 안타까운 심정 遵大路(준대로), 우연히 만난 남녀의 사랑 野有蔓草(야유만초), 봄철에 불어난 강물 가로 난초를 꺾어 모르는 남녀끼리 구경 가자고 유혹한다는 溱洧(진유, 溱은 많을 진, 洧는 물이름 유) 등이 정풍에 나오는 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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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풍에는 상대적으로 적으나 남자의 유혹에 넘어가 아내가 되었다가 버림받은 여인 氓(맹), 남녀 간에 서로 선물을 주고받으며 부르는 노래 木瓜(모과) 등이 나온다. 이러한 시가 다른 것에 비해 더욱 음란하다고 판단하기에는 무리라고 판단하는 학자도 있는데 음풍의 대명사가 된 것은 공자 이후라고 대체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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衛靈公(위령공) 편에서 정나라의 음악은 음란하니 몰아내야 한다고까지 했다. 정위의 노래를 이야기한 것은 아니라도 즐거움이 방종으로 치닫지 않아야 한다는 樂而不淫(낙이불음)이나 슬프더라도 도를 넘어 마음을 상하게 할 정도는 안 된다는 哀而不傷(애이불상)을 강조한 것도 같은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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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고전에서도 음탕한 망국의 노래를 정위의 노래라고 인용한 부분이 다수 있다. 근엄한 도학자의 눈으로 보면 도의에 어긋나는 것일 수 있지만 정풍은 너무 심한 낙인이 되어 음란한 남녀의 노래나 시의 대명사가 된 것은 아닐까. 희로애락을 모두 줄 수 있는 음악이 극히 퇴폐적이 아니라면 민간에서 즐기는 것을 억지로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 제공 : 안병화(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견강부회牽强附會 - 말을 억지로 끌어 붙여 자기에게 유리하게 하다.

견강부회牽强附會 - 말을 억지로 끌어 붙여 자기에게 유리하게 하다.

견강부회(牽强附會) - 말을 억지로 끌어 붙여 자기에게 유리하게 하다.

이끌 견(牛/7) 강할 강(弓/9) 붙을 부(阝/5) 모일 회(曰/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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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치에 맞지 않는 것을 억지로 끌고 가는 것이 牽强(견강)이다. 이끌 牽(견)에는 소 牛(우)가 들어 있고 생략된 실 糸(사)가 들어 있어 코뚜레를 의미한다. 아무리 순종적인 소일지라도 강제로 잡아 끌어간다면 저항한다. 附會(부회)는 퍼즐조각을 맞추는 것처럼 맞추어 붙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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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토당토않은 말이나 주장을 억지로 맞다고 우기는 사람에겐 다른 사람의 의견에 귀를 기울일 리 없다. 자기에게만 이롭게 생각하거나 행동하는 사람들은 我田引水(아전인수)라 손가락질하고, 자기주장만 옳다고 고집부리면 漱石枕流(수석침류)가 되고, 위세를 빌어 일을 끌고 가면 指鹿爲馬(지록위마)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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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두루 들어맞는 이 성어는 줄여서 附會(부회)라고도 하는데 사자성어가 합쳐져 부르게 된 것은 역사가 얼마 되지 않았다. 어원 이야기 등 자료에 의하면 牽强(견강)은 唐宋(당송) 때부터 있었고 附會(부회)나 牽附(견부)라는 말도 사용됐다고 하나 같이 쓴 것은 1900년대 淸(청)나라 말기 소설가 曾朴(증박, 1872~1935)의 작품 ‘孽海花(얼해화, 孽은 서자 얼)’에 처음 쓴 것이라 한다. 당시는 阿片戰爭(아편전쟁) 이후 열강의 침탈에 위기를 느껴 비판의식을 가진 풍자 작품들이 많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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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阿Q正傳(아큐정전)’을 쓴 중국의 사상가 겸 문학가 魯迅(노신)은 이를 꾸짖는 소설이란 뜻의 譴責小說(견책소설)이라 칭했고 ‘얼해화’는 여기에 해당되는 작품이다. 얼해는 ‘숱한 죄업’, ‘죄악의 세계’ 등의 뜻으로, 작가는 ‘노예들의 낙원이 위치한 바다’로 설정하여 낙후된 중국의 현실을 반영하겠다는 창작 의도를 밝힌 바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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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잡지에 연재되고서 마지막 회인 35회 까지 27년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는데 성어가 나오는 곳은 11회다. ‘후학들이 억지로 갖다 붙이고 온갖 계책을 다 쓰는 것은 분명하지 않게 배워 모르기 때문이다(後儒牽強附會 費盡心思 不知都是古今學不分明的緣故/ 후유견강부회 비진심사 부지도시고금학불분명적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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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아는 것이라 했다. 어설프게 아는 것을 떠벌리는 것보다 배워가며 하는 것이 일을 해 나가기 훨씬 쉽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가에서나 사회에서나 잘 모르면서 억지로 끌기만 하고, 잘못을 하고도 인정하기는커녕 변명만 늘어놓는 높은 사람은 없을까. / 제공 : 안병화(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빈계사신牝鷄司晨 - 암탉이 울어 새벽을 알리다.

빈계사신牝鷄司晨 - 암탉이 울어 새벽을 알리다.

빈계사신(牝鷄司晨) - 암탉이 울어 새벽을 알리다.

암컷 빈(牛/2) 닭 계(鳥/10) 맡을 사(口/2) 새벽 신(日/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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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리 알려진 속담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집안의 여자들을 주눅 들게 하는 남정네의 전유물이었다. 날이 샜다고 울어야 할 수탉이 제 구실을 하지도 못하면서 암탉이 우는 것도 막았다. 가정에서 부인이 남편을 제쳐놓고 떠들고 간섭하면 집안일이 잘 안된다고 나무라는 것이다. 男尊女卑(남존여비)가 뚜렷했던 옛날이라도 무작정 여성을 비하한 것이 아닌 것은 여기서 가리킨 암탉이 중국 역사상 가장 잔인하고 음란한 독부 妲己(달기, 妲은 여자이름 달)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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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夏殷周(하은주)의 3왕조 중에 商(상)이라고도 하는 은나라의 마지막 왕이 폭군으로 유명한 紂王(주왕, 紂는 주임금 주)이다. 초기 군사를 잘 이끌어 많은 전쟁에서 승리한 주왕에 전리품으로 바쳐진 달기는 요염을 앞세워 완전히 왕을 요리했다. 달기의 환심을 사기 위해 주왕은 가혹하게 세금을 거둬 酒池肉林(주지육림)에서 질탕하게 향락을 즐겼고, 간하는 충신들에겐 숯불로 달군 구리기둥에 기름을 발라 맨발로 건너가게 한 炮烙之刑(포락지형, 炮는 통째로구울 포)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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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들의 원망이 하늘을 찌르자 周(주)의 武王(무왕)이 제후들과 함께 군사를 일으켜 주왕 토벌에 나섰다. 은나라의 牧野(목야)라는 곳에서 도탄에 빠뜨린 주왕의 죄상을 열거하며 분투할 것을 당부하는 말을 남긴 것이 牧誓(목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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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사람이 말하기를 암탉은 새벽에 울지 않으니 암탉이 새벽에 울면 집안이 망하는 법이다(古人有言曰 牝鷄無晨 牝鷄之晨 惟家之索/ 고인유언왈 빈계무신 빈계지신 유가지삭). 지금 주왕은 계집의 말만 듣고 백성을 학대하며 나라를 어지럽히고 있다.’ 무왕은 사기가 떨어진 70만 군사를 패주시키고 주왕도 자살하자 주나라를 건국하게 된다. 고대 중국의 기록 ‘書經(서경)’ 목서편에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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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암탉 운운의 속담은 사어가 될 정도로 각계에서 여성들의 활약이 눈부시다. 우선 주민등록 여자인구가 남자를 추월한 女超(여초)사회에 진입했고 여성 공무원 수는 절반을 넘어섰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도유우불都兪吁咈 - 찬성과 반대를 나타내는 감탄사, 임금과 신하의 자유로운 정사심의

도유우불都兪吁咈 - 찬성과 반대를 나타내는 감탄사, 임금과 신하의 자유로운 정사심의

도유우불(都兪吁咈) - 찬성과 반대를 나타내는 감탄사, 임금과 신하의 자유로운 정사심의

도읍 도(阝/9) 인월도 유(入/7) 탄식할 우(口/3) 어길 불(口/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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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좀처럼 쓰임이 적고 뜻도 짐작하기 어려운 말인데도 좋은 뜻으로 국어사전에도 올라 있어 알아두는 것도 괜찮을 듯하다. 都兪吁咈(도유우불)이라 옛날 임금과 신하가 정사를 논할 때 찬성과 반대를 자유롭게 말할 수 있어 조화롭고 화목한 분위기를 말한다니 바람직한 정치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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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하나하나가 나타내는 의미가 있다. 도읍, 성곽을 뜻하는 都(도)는 아아! 하며 좋게 여기는 감탄사, 대답한다는 兪(유)는 옳다고 응하는 감탄사가 된다고 한다. 반면 탄식하는 吁(우)는 동의하지 않는 말, 어긴다는 咈(불)은 아니다! 하며 강하게 부정하는 감탄사로 사용됐다. 都兪(도유)는 찬성이고 吁咈(우불)은 반대를 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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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성, 반대의 의미를 이렇게 쓴 곳은 중국의 까마득한 옛 경전 ‘書經(서경)’에서다. 앞서도 나왔듯이 고대왕국의 역사를 기록하여 尙書(상서)라고도 불리는 四書三經(사서삼경) 중의 하나다. 虞書(우서)는 성군 堯舜(요순)의 치적을 말하는데 앞부분에 법리에 밝았던 皐陶(고요, 陶는 질그릇 도, 사람이름 요)와의 대화가 나오고 뒤이어 禹(우)와 益(익), 稷(직) 등의 문답이 등장한다.

伯益(백익)이라는 신하는 산과 못을 관장했고, 棄(기)라는 사람은 농사에 큰 공을 세웠기 때문에 관직명 직으로 통하게 됐단다. 임금과 신하가 자유롭게 의견을 말하고 마음을 합쳐서 서로 토론할 수 있었으니 요순시대가 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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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어가 나오는 문답 부분을 보자. 舜(순)임금께 禹(우)가 아뢴다. ‘아! 왕께서는 재위를 신중히 하셔야 합니다(都 帝愼乃在位/ 도 제신내재위)’ 하니 왕이 답한다. ‘그렇소(俞/ 유)!’ 다시 우가 왕의 뜻이 머문 곳을 편안히 하고 보필하는 신하들이 곧으면 백성들이 받들고 하늘도 치하할 것이라 하자 순이 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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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신하가 이웃이며 이웃이 신하이니라(吁 臣哉鄰哉 鄰哉臣哉/ 우 신재린재 린재신재).’ 다시 우가 말하기를 ‘옳습니다(俞/ 유)’고 한다. 정사를 토론할 때 어진 신하의 의견을 밝은 임금이 잘 받아들이는 모습이다. 임금의 말이라도 옳지 못하면 솔직하게 반대의 뜻까지 말하고 의견을 주고받아 고치면 나라가 잘 안 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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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고전에도 많이 검색된다. 太宗(태종) 실록에 실린 내용의 인용이다. 조정회의에서 대신들에게 시비득실을 전달하도록 한 것에 대한 기록이다. ‘옛날 당우시대 때의 옳고 그름을 토론하는 기상을 보는 듯하다(唐虞都兪吁咈之氣象/ 당우도유우불지기상).’ 이처럼 자유롭게 의견을 주고받는 분위기가 민주주의가 발달했다는 오늘 더 발전했을까.

상관의 비위에 그슬리는 말은 아예 꺼내지도 못하고, 내려오는 지시에는 무조건 복종하는 퇴보가 곳곳서 드러난다. 상대측 다른 이야기에는 벌떼 같이 저질 욕을 해대는 인터넷 댓글도 찬반토론의 싹을 자른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