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0일 수요일

금준미주 천인혈金樽美酒 千人血 - 항아리의 좋은 술은 많은 사람의 피, 탐관오리들의 학정

금준미주 천인혈金樽美酒 千人血 - 항아리의 좋은 술은 많은 사람의 피, 탐관오리들의 학정

금준미주 천인혈(金樽美酒 千人血) - 항아리의 좋은 술은 많은 사람의 피, 탐관오리들의 학정

쇠 금(金/0) 술통 준(木/12) 아름다울 미(羊/3) 술 주(酉/3) 일천 천(十/1) 사람 인(人/0) 피 혈(血/0)

관직에 있는 공무원을 통칭하여 官吏(관리)라 했다. 세세히 구분하여 官(관)은 중앙의 높은 직위에 있는 사람, 吏(리)는 지방 관서에 속한 하급직 衙前(아전)을 가리켰다. 士農工商(사농공상)이라 하여 관직을 맡은 士(사)가 백성들의 위에 군림했던 지난 시절에는 관리들의 횡포도 심했던 모양이라 貪官汚吏(탐관오리)가 익은 말이 됐다. 고발하는 말이나 경계하는 성어도 많이 따른다.

가혹하게 세금을 쥐어짜거나 겁을 줘 백성들의 재물을 빼앗는 苛斂誅求(가렴주구),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무섭다는 苛政猛於虎(가정맹어호)등이 그것이다. 詩經(시경) 魏風(위풍)에 나오는 큰 쥐라는 뜻의 碩鼠(석서)도 도둑질하는 위정자다.

이런 딱딱한 가르침보다 더 잘 와 닿는 말이 금항아리의 맛있는 술(金樽美酒)은 많은 사람의 피(千人血)라는 표현이다. 관리들의 봉록은 물론 의식주 모든 것이 백성의 손에서 나왔다는 말이다. 이 무서운 비유는 판소리로 알려졌다가 소설로도 전해온 ‘春香傳(춘향전)’의 하이라이트에 나온다.

남원 기생의 딸 춘향과 百年佳約(백년가약)을 맺은 李夢龍이몽룡)이 장원급제한 뒤 어사가 되어 돌아왔을 때 卞(변) 사또가 베푸는 잔치자리에 출두하여 꾸짖는다. 짤막하니 전문을 보자.

‘아름다운 동이에 담긴 향기로운 술은 뭇사람의 피요(金樽美酒千人血/ 금준미주천인혈), 옥쟁반의 맛있는 안주는 만 백성의 기름이라(玉盤佳肴萬姓膏/ 옥반가효만성고), 촛불의 눈물 떨어질 때 백성 눈물 떨어지고(燭淚落時人淚落/ 촉루락시인루락), 노래 소리 높은 곳에 원망 소리 드높도다(歌聲高處怨聲高/ 가성고처원성고).’ 백성들을 쥐어짜는 탐관오리들을 준엄하게 꾸짖어 백성들의 스트레스를 시원하게 풀어줬음직하다.

비슷한 의미의 말이 ‘明心寶鑑(명심보감)’에도 있다. ‘관리들은 예물로 받은 비단으로 옷을 지어 입고, 창고에 쌓인 곡식으로 밥을 먹으니, 그대들의 봉록은 모두 백성들의 살과 기름이다(幣帛衣之 倉廩食之 爾俸爾祿 民膏民脂/ 폐백의지 창름식지 이봉이록 민고민지).’ 廩은 곳집 름, 爾는 너 이. 唐(당)나라 太宗(태종)이 말했다고 治政編(치정편)에 나온다.

모든 면에서 맑아진 오늘날에는 탐관오리들이 근절되었을까. 이전보다 규모는 작아졌을지라도 비리는 끊이지 않는다. 시급한 법안 처리를 미루기만 하는 국회는 원망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일자리 대책이나 청년실업, 육아 등 근본적인 대책은 없이 예산을 동원하여 세금 귀한 줄을 모른다. 출두할 어사도 없으니 그가 읊은 시 구절이라도 명심했으면 한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추인낙혼墜茵落溷 - 방석에 떨어지고 뒷간에 떨어지다, 운명에 따라 처지가 달라지다.

추인낙혼墜茵落溷 - 방석에 떨어지고 뒷간에 떨어지다, 운명에 따라 처지가 달라지다.

추인낙혼(墜茵落溷) - 방석에 떨어지고 뒷간에 떨어지다, 운명에 따라 처지가 달라지다.

떨어질 추(土/12) 자리 인(艹/6) 떨어질 락(艹/9) 어지러울 혼(氵/10)

運(운)에 관한 격언이 있다. ‘행운과 불운은 칼과 같다.‘ 운이 좋아 칼자루를 쥐면 쓸모가 있게 되고, 칼날을 쥐게 되면 상처를 입는다. 또 한 가지만 계속되지 않으니 절망할 것도 없다. 뜻밖에 행운을 만나면 ’홍두깨에 꽃이 피기‘도 하고 운수가 나빠 ’도둑을 맞으려면 개도 안 짖는‘ 경우도 맞닥뜨린다.

낙엽이 떨어졌을 때 책장에 고이 간수되는 것도 있고, 떨어지자 말자 쓰레기통에 처박히기도 한다. 좋은 자리에 떨어지고(墜茵) 냄새나는 뒷간에 떨어지기도 한다(落溷)고 어려운 글자로 썼지만 이것도 꽃잎의 운수를 말했다. 墜溷飄茵(추혼표인), 墮溷飄茵(타혼표인)으로 순서를 달리 해도 뜻은 같다.

꽃잎이 제 의지대로 앉을 수 없으니 바람 부는 대로 깨끗한 방석이나 변소에도 떨어진다는 것은 운명에 따라 처지가 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사람에게는 좋은 때를 만나거나 그렇지 못할 때가 있음을 비유한다.

중국 南北朝(남북조)시대 梁(양)나라에서 활동한 꼿꼿한 선비 范縝(범진, 縝은 고울 진)의 일화에서 성어가 유래했다. 그는 어렵게 공부하여 경전과 학술에 능통했고, 어려서부터 귀신을 믿지 않은 무신론자로 당시 성행하던 불교를 반대했다. 독실한 신도였던 竟陵王(경릉왕) 蕭子良(소자량)이란 왕자와 논쟁하면서 이 이야기로 반박한다.

소자량이 범진에게 인과를 믿지 않는데 세상에는 왜 부자와 빈자가 있게 되는지 물었다. 범진은 사람의 삶이란 것이 나무에 핀 꽃에 비유할 수 있다며 이야기를 이어간다.

한 가지의 같은 꼭지에서 피었던 꽃이 바람에 따라서 ‘주렴에 스치면 방석에 떨어지고 울타리에 걸리면 뒷간에 떨어집니다(自有拂簾幌墜於茵席之上 自有關籬牆落於糞溷之側/ 자유불렴황추어인석지상 자유관리장락어분혼지측)’고 했다. 방석에 떨어지면 왕자의 처지이고 자신은 뒷간에 떨어진 것과 같다는 논지였다. 南朝(남조) 네 왕조의 역사를 唐(당)나라 李延壽(이연수)가 쓴 ‘南史(남사)’의 열전에 수록돼 있다.

낙화가 떨어진다고 하니 연상되는 시조가 있다. 광풍에 배꽃이 떨어져 이리저리 날리다 거미줄에 걸렸는데 ‘저 거미 낙화인줄 모르고 나비 잡듯 하누나’하는 李鼎輔(이정보)의 작품, 간밤에 부는 바람에 뜰 가득 복사꽃이 떨어졌는데 아이가 쓸려 하자 ‘낙화인들 꽃이 아니랴 쓸어 무삼하리오’라고 한 鮮于浹(선우협)의 시조다.

바람에 처지가 바뀐 꽃잎이라도 모두 같은 꽃이라고 한 것에는 운명을 개척할 수 있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그래서 가야 할 때를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아름답다고 했나보다(이형기).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춘한노건春寒老健 - 봄철의 추위와 노인의 건강, 오래 가지 못하거나 믿을 수 없음의 비유 

춘한노건春寒老健 - 봄철의 추위와 노인의 건강, 오래 가지 못하거나 믿을 수 없음의 비유 

춘한노건(春寒老健) - 봄철의 추위와 노인의 건강, 오래 가지 못하거나 믿을 수 없음의 비유\xa0

봄 춘(日/5) 찰 한(宀/9) 늙을 로(老/0) 굳셀 건(亻/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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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샘추위란 것이 있다. 이른 봄 각종 꽃이 필 시기에 기세 떨치던 겨울이 시샘하여 추워지는 날씨다. 강풍 폭설로 천지를 꽁꽁 얼게 했던 겨울도 계절의 변화에는 못 이기는 법이라 마지막 심술을 부려도 며칠 가지 못한다. 오래 가지 못하는 봄추위(春寒)다. ‘가을 더위와 노인의 건강’이란 속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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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샘추위와 마찬가지로 무더운 여름도 가을 되면 기가 꺾이고, 노인의 건강(老健)은 자랑해도 오래 가지 못한다는 비유다. 김삿갓의 시는 이에 더해 욕이 된다고 했다. ‘오복 중에 壽(수)가 제일이라 누가 말했나, 오래 살면 욕이 많다는 요임금 말이 귀신같구나(五福誰云一曰壽 堯言多辱知如神/ 오복수운일왈수 요언다욕지여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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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가지 못한다는 비유로 봄의 추위와 노인의 건강을 꼽은 이 성어는 속담을 한역한 ‘旬五志(순오지)’에 처음 실렸다. 조선 중기의 문신 洪萬宗(홍만종, 1643~1725)이 병상에서 누워 지내다 민가에 떠돌던 정리하여 보름 만에 완성했다는 책으로 일명 十五志(십오지)로도 불린다. 봄 시샘추위와 팔팔하던 노인의 건강은 오래 가지 못해 믿을 수 없다는 뜻이다. 春花老骨(춘화노골)이라 해도 같다. 조선 후기의 학자 趙在三(조재삼, 1808~1866)이 엮은 백과사전류 저서 ‘松南雜識(송남잡지)‘에도 등장하는데 여기에는 가을 더위도 포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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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 지리부터 초목, 조류까지 다양한 주제 중에서 方言類(방언류) 편에 설명한다. ‘봄추위, 가을더위, 노인의 건강 세 가지는 모두 오래 가지 못하는 것인데(春寒秋熟老健 三者 不久長之物/ 춘한추숙노건 삼자 불구장지물), 본래 구양수가 한 말로 지금의 健(건)은 骨(골)자가 와전된 것이다(本歐陽之語 今健字訛骨/ 본구양지어 금건자와골).’ 이 책의 편찬이 발전적으로 계승했다는 李睟光(이수광, 睟는 바로볼 수)의 ‘芝峯類說(지봉유설)’에는 春寒秋熱老健(춘한추열노건)으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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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철 추위와 가을 더위는 기후 변화로 여름과 겨울이 일찍 와 더욱 짧아지는 경향이다. 하지만 백세시대도 멀지 않은 장수사회에선 오래 가지 못한다는 비유의 노인 건강은 제외해야 할듯하다. 의학의 발달과 건강에의 관심이 높은 현대에서 無病長壽(무병장수)하며 壽福康寧(수복강녕)을 누리는 사람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전번 널리 불렸던 가요 ‘백세인생’에서 자기를 오라고 저 세상에서 불러도 못 가는 핑계를 대는데 150세까지 올라가기도 했다. 장수가 좋다고 해도 건강과 복지, 삶의 가치가 뒤따라야 함은 물론이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비필충천飛必沖天 - 날게 되면 하늘을 꿰뚫다, 침묵하다 놀라운 큰일을 하다.날 비飛/0 반

비필충천飛必沖天 - 날게 되면 하늘을 꿰뚫다, 침묵하다 놀라운 큰일을 하다.날 비飛/0 반드시 필心/1 화할 충氵/4 하늘 천大/1

비필충천(飛必沖天) - 날게 되면 하늘을 꿰뚫다, 침묵하다 놀라운 큰일을 하다.날 비(飛/0) 반드시 필(心/1) 화할 충(氵/4) 하늘 천(大/1)

어떤 일이 순조롭게 잘 진행되고 있는데 더욱 힘을 내도록 격려할 때 달리는 말에 채찍질한다고 한다. 속담성어로 走馬加鞭(주마가편)이다. 그런데 재주는 있는듯해도 도통 열성을 보이지 않으면 보는 사람이 답답하다. 어떤 큰일을 하는데 준비태세가 영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 ‘개구리 움츠리는 뜻은 멀리 뛰자는 뜻이다‘란 비유가 있다.

똑같은 의미로 웅크리고 있다가 날게 되면 반드시 하늘을 꿰뚫는다는 이 성어다. 평소에 침묵하던 사람이 한 번 기지개를 켜면 모두 놀라게 할 큰일을 한다는 뜻이다. 一鳴驚人(일명경인)이란 말과 유래가 같다.

이 말은 여러 곳에서 이름만 약간 달리해서 전하는 유명한 고사가 있다. 먼저 ‘史記(사기)’ 楚世家(초세가)의 내용을 요약해 보자. 春秋時代(춘추시대) 초기 五霸(오패)의 한 사람인 楚(초)나라 莊王(장왕)이 즉위하고 3년 동안 국정을 돌보지 않고 주색에 빠졌다. 그러면서 신하들에게 간하는 자는 사형에 처할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다.

보다 못한 충신 伍擧(오거)가 죽음을 무릅쓰고 왕을 찾아 수수께끼를 냈다. ‘언덕 위에 새가 한 마리 있는데 삼년동안 날지도 않고 울지도 않습니다(三年不飛又不鳴/ 삼년불비우불명).’ 무슨 새일까 물으니 왕이 답한다. ‘삼년이나 날지 않았으니 한 번 날면 하늘까지 차고 오를 것이요, 삼년동안 울지 않았으니 한 번 울면 세상 사람들을 놀라게 할 것이오(此鳥不飛卽已 一飛沖天 不鳴卽已 一鳴驚人/ 차조불비즉이 일비충천 불명즉이 일명경인).’

그 후로도 몇 달이 지나도록 난행이 그치지 않아 이번엔 대부 蘇從(소종)이 또 죽음을 각오하고 직간했다. 그러자 이후부터 사람이 달라진 듯 국정에 전념했다. 장왕이 방탕을 가장하여 충신과 간신을 선별하기 위해 쓴 계책이었다. 오거와 소종에게 중책을 맡기며 수백 명의 간신을 쳐내고, 나라를 바로잡아 부강한 나라를 만들었다.\xa0비슷한 이야기로 滑稽(골계) 열전에는 齊(제)의 威王(위왕)에 淳于髡(순우곤, 髡은 머리깎을 곤)이 간한 것으로 나오고, ‘呂氏春秋(여씨춘추)’ 審應覽(심응람)편과 ‘韓非子(한비자)’의 喩老(유로)편에도 실려 있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척확지굴 이구신야尺蠖之屈 以求信也 - 자벌레가 몸을 굽히는 것은 다시 펴기 위해서이다.

척확지굴 이구신야尺蠖之屈 以求信也 - 자벌레가 몸을 굽히는 것은 다시 펴기 위해서이다.

척확지굴 이구신야(尺蠖之屈 以求信也) - 자벌레가 몸을 굽히는 것은 다시 펴기 위해서이다.

자 척(尸/1) 자벌레 확(虫/14) 갈 지(丿/3) 굽힐 굴(尸/5) 써 이(人/3) 구할 구(水/2) 믿을 신(亻/7) 이끼 야(乙/2)

자벌레는 작은 나뭇가지와 같은 모양으로 붙어사는 자벌레나방의 애벌레다. 한자로 尺蠖(척확), 또는 더 어렵게 蚇蠖(척확)이라고도 한다. 배의 다리가 퇴화하여 기어갈 때 꼬리를 가슴 가까이 붙여 움츠렸다가 떼었다 한다. 미물이라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는 굼벵이가 지붕에서 떨어질 때 매미 될 셈이 있어 떨어진다고 하는데 자벌레는 어떨까. 자벌레가 앞으로 움직일 때 굽혔다가 펴는 것이 자로 재는 것 같다고 이름이 붙여졌는데 더 깊은 의미를 부여한다. 자벌레가 한 자의 몸을 굽히는 것은 다음에 더 나아가기 위한 것으로 봤다.

유교 三經(삼경)의 하나인 ‘易經(역경)’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천지만물과 자연현상의 원리를 설명하고 풀이한 책이다. 周易(주역)이라 하듯이 周(주)나라부터 내려온 길흉의 지혜와 우주론적 철학이라니 쉬울 리가 없다. 그래서 八卦(팔괘)와 六爻(육효)를 文王(문왕)과 周公(주공)이 설명했다는 것이 繫辭(계사)인데 자벌레의 교훈은 하편에 실려 있다.

부분을 인용해 보자. ‘자벌레가 몸을 구부리는 것은 다시 펴서 더욱 나아가기 위해서이고, 용이나 뱀이 몸을 숨기는 것은 몸을 잘 보존하기 위해서다(尺蠖之屈 以求信也 龍蛇之蟄 以存身也/ 척확지굴 이구신야 용사지칩 이존신야).’ 믿을 信(신)은 펼 伸(신)의 뜻, 蟄은 숨을 칩.

자벌레의 굽히고 펴는 행동은 더 멀리 나아가기 위해서이니 필요에 의해서 하는 것이 당연하다. 더 이어지는 설명을 보면 이렇다. ‘사물의 이치를 치밀하게 생각하여 신묘한 경지에 들어서는 것은 세상에 널리 쓰게 하기 위함이요, 쓰는 것을 이롭게 하여 몸을 편안하게 하는 것은 덕을 숭상하기 위해서이다(精義入神 以致用也 利用安身 以崇德也/ 정의입신 이치용야 이용안신 이숭덕야).’ 사람에게도 자벌레의 屈伸(굴신)을 본받아야 하는 것은 굽히는 것을 잘 참아야 미래의 성공을 가져 오고, 사회서 필요한 일을 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주어진 일을 처리할 때 독일 병정같이 무조건 앞으로만 가는 사람이 잘 눈에 띄고 칭찬 받는다. 그러다 앞에 의도하지 않던 장애가 나타나면 쉽게 꺾이고 결국 일을 망친다. 두 걸음 전진을 위해 일보 후퇴라는 작전상 후퇴도 할 수 있어야 더 먼 길을 갈 수 있다. 종종 비유되는 조선 丙子胡亂(병자호란)때 崔鳴吉(최명길)의 主和論(주화론)이 거센 비판을 받았다가 결국 나라를 보존했다는 평가를 받은 것과 마찬가지다. 곧게만 가다가는 부러진다. 미래의 발전을 위해서는 자벌레의 굴신이 필요할 때가 있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명불허전名不虛傳 - 이름이 헛되이 전해진 것이 아니다.이름 명口/3 아닐 불一/3 빌 허虍

명불허전名不虛傳 - 이름이 헛되이 전해진 것이 아니다.이름 명口/3 아닐 불一/3 빌 허虍/6 전할 전亻/11

명불허전(名不虛傳) - 이름이 헛되이 전해진 것이 아니다.이름 명(口/3) 아닐 불(一/3) 빌 허(虍/6) 전할 전(亻/11)

이름 名(명)이란 글자는 저녁 夕(석)자 아래에 말하는 입 口(구)를 받쳐 어두운 밤에는 사람이 보이지 않아 입으로 이름을 부른다는 뜻에서 나왔다. 구분하기 위해 나온 이름은 자연의 것이 아니지만 이름을 붙여주지 않았으면 아무 의미도 지니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김춘수 시인은 ‘꽃’에서 자신에게 무의미한 존재였던 것이 이름을 불러 주자 꽃과 같이 의미 있는 존재로 다가왔다고 노래했다. 존재의 이유인 이름을 그래서 더럽히지 않아야 한다고 豹死留皮 人死留名(표사유피 인사유명/ 표범은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이란 좋은 말도 남았다.

보람 있는 일을 남겨 立身揚名(입신양명)하는 것이 효라 생각한 선인들은 더구나 惡名(악명)이나 汚名(오명)이 남을까 두려워했다. 이름이 널리 퍼졌을 때 그러한 명성이나 명예가 헛되이 전해진 것이 아니라는 이 말은 모두 이름날 만한 까닭이 있음을 가리킨다. 司馬遷(사마천)이 ‘史記(사기)’에서 몇 가지 예를 들었다. 戰國時代(전국시대) 각 제후국에서 세력을 떨친 戰國四公子(전국사공자) 중에서 孟嘗君(맹상군)이 잘 알려졌다.

그는 인재들을 후하게 대접하여 식객이 3000명이나 됐고 하찮은 재주를 가진 사람들도 내치지 않아 鷄鳴狗盜(계명구도)의 성어까지 남겼다. 사마천이 열전 후기에서 ‘세상에 전하기를 맹상군이 객을 좋아하고 스스로 즐거워하였다고 하니 그 이름이 헛된 것이 아니었다(世之傳孟嘗君好客自喜 名不虛矣/ 세지전맹상군호객자희 명불허의)’고 좋게 평했다.

떠돌이 건달이지만 신의를 지키고 남을 위했던 협객들을 특별히 모은 游俠(유협)열전에도 언급한다. 漢(한)나라 이후 유명했던 朱家(주가) 劇孟(극맹) 郭解(곽해) 등의 협객들은 때로 법에 저촉되기도 했지만 남을 위하고 품성이 깨끗했다면서 ‘그들의 명성은 결코 거짓으로 이뤄진 것도 아니고, 선비들이 이유 없이 그들을 따랐을 리 것도 없다(名不虛立 士不虛附/ 명불허립 사불허부)’고 칭찬했다.

실력에 걸맞은 이름을 떨치는 사람들이 각계에 포진하고 있겠지만 예로 칸 국제영화제서의 켄 로치 감독을 들 수 있다. 80세의 영국 노장인 그는 빈곤층의 사회보장제도와 고용문제를 비판한 작품 ‘아이, 대니얼 블레이크’로 최고영예인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2006년에도 대상을 수상한 바 있고, 지금까지 13차례나 칸영화제에 초청됐다니 그 이력을 알만하다. 단지 노장으로서의 예우가 아니라 노동 계층의 현실을 통찰한 영화의 업적을 인정한 것이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신구개하信口開河 - 입에서 나오는 대로 말하다.

신구개하信口開河 - 입에서 나오는 대로 말하다.

신구개하(信口開河) - 입에서 나오는 대로 말하다.

믿을 신(亻/7) 입 구(口/0) 열 개(門/4) 물 하(氵/5)

말을 조심하라는 경구는 동서고금 수없이 많다. 이 난에서도 馮道(풍도)의 ‘舌詩(설시)’에서 딴 口禍之門(구화지문)이나 혀를 놀려서 하는 말은 그 빠른 마차도 미치지 못한다는 駟不及舌(사불급설) 등을 소개했다. 생각 없이 입에서 나오는 대로 말한다는 信口開河도 워낙 그런 일이 많아서인지 경계의 말로 종종 쓰인다.

여기서 믿을 信은 신임, 소식이라는 뜻 외에 하는 대로, 내키는 대로라는 뜻이 있다. 開河는 물길을 열 듯 마음대로 지껄이는 것을 말한다. 이 성어는 원래 信口開合(신구개합)이 바른 표기였는데 중국어에서 合과 河를 모두 ‘허’로 읽어 변했다고 한다. \xa0

元(원)나라 때의 희곡에서 이 말을 자주 찾아볼 수 있다. 중국의 잡극 창시자라 하는 關漢卿(관한경)의 ‘魯齋郞(노재랑)’에 ‘입에서 나오는 대로 지껄여 쓸데없는 잔소리를 늘어놓지 말라(你休只管信口開合/ 니휴지관신구개합)’라는 대사가 나온다. 你는 너 니. 淸(청) 말기에 王季烈(왕계열)이 편찬한 ‘孤本元明雜劇(고본원명잡극)’의 漁樵閑話(어초한화, 樵는 나무할 초)에는 산속에 사는 야인은 영욕이 없어 마음대로 즐기고 ‘단적으로 입에서 나오는 대로 말하고 하고 싶은 대로 방탕하게 산다(端的是信口開河 隨心放蕩/ 단적시신구개하 수심방탕)’고 되어 있다.

사실이나 진상을 따져보지도 않고 함부로 말하거나 남의 말이나 글 등을 무책임하게 비평하는 信口雌黃(신구자황)이라는 말도 있다. 雌黃은 옛날 글을 정정할 때 쓰던 지우개인데 잘못이 드러나면 ‘아니면 말고’식 대처하는 것을 뜻한다. 雌는 암컷 자.

말로 살아가는 정치권에서 말로써 말이 많은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수시로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 말이나 정도가 지나친 막말로 소란한 것을 넘어 정치혐오를 가져오니 탈이다. 국회의원들은 의도적으로 말해 지명도를 높이는 데는 성공했을지 모르지만 어려운 경제에 주눅 든 일반 국민은 말싸움으로 지새는 정치권으로 더 피곤하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여고금슬如鼓琴瑟 - 거문고와 비파 합주와 같이 부부가 화합하다.

여고금슬如鼓琴瑟 - 거문고와 비파 합주와 같이 부부가 화합하다.

여고금슬(如鼓琴瑟) - 거문고와 비파 합주와 같이 부부가 화합하다.

같을 여(女/3) 북 고(鼓/0) 거문고 금(玉/8) 큰거문고 슬(玉/9)

모르던 남녀 두 사람이 만나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사이가 되는 부부는 그래서 二姓之合(이성지합)으로 二身同體(이신동체)가 된다.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란 속담은 서로 싸워도 금방 화해하는 사이라 夫婦之訾 如刀割水(부부지자 여도할수, 訾는 헐뜯을 자)로 한역되기도 했다.

부부는 3주간 서로 연구하여 3개월간 사랑하고, 3년간 싸움을 한 뒤 30년간은 참고 견딘다는 말이 있다. 사랑이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서로 상대방을 이해하고 맞지 않는 것도 맞춰가는 것이 부부생활이다. 그래도 미워하고 헤어지는 부부도 나타나는 법이라 예부터 화합을 바라는 성어가 많이 내려왔다.

그 중에서도 가장 오래된 말이 琴瑟(금슬)일 것이다. 서기전 11세기에서 6세기까지 중국 고대 周(주)나라의 노래를 모은 ‘詩經(시경)’에 등장한다. 琴(금)은 거문고, 瑟(슬)은 큰 거문고를 말하는데 비파를 가리키기도 한단다. 제일 첫 머리가 國風(국풍)이고 周南 關雎(주남 관저, 雎는 물수리 저)에 이것을 썼다. ‘올망졸망 마름풀을 이리 뜯고 저리 뜯고, 아리따운 아가씨를 금슬 좋게 사귀려네(參差荇菜 左右采之 窈窕淑女 琴瑟友之/ 삼치행채 좌우채지 요조숙녀 금슬우지).’ 差는 다를 차 또는 어긋날 치, 荇은 마름풀 행. 얌전하고 정숙한 窈窕淑女(요조숙녀)가 다섯 번이나 반복된다.

거문고와 비파(琴瑟)를 두드리는 것과 같다(如鼓)고 표현한 부부의 화합이 함께 쓰인 부분은 잔치 때 불렸다는 小雅(소아)의 常棣(상체, 棣는 산앵두나무 체)에서다. ‘처자식의 정과 뜻이 잘 맞음이 금슬을 타는 듯하네. 형제 사이도 잘 맞아 화락하고 또한 즐겁도다(妻子好合 如鼓瑟琴 兄弟歸翕 和樂且湛/ 처자호합 여고슬금 형제귀흡 화락차담).’ 翕은 모을 흡, 湛은 즐길 담. 시경 원문은 이 부분에서만 차례가 바뀌어 如鼓瑟琴(여고슬금)으로 나오는데 孔子(공자)가 인용한 中庸(중용)에서나 우리 고전 예문도 모두 같이 따랐다.

금슬이나 슬금이나 이 두 악기가 함께 소리를 내면 화음이 기가 막히게 아름답다고 하여 부부의 화합을 나타내는 것은 마찬가지다. 이 때는 변하여 ‘금실’로 표기하지만 성어는 금슬상화(琴瑟相和), 琴瑟之樂(금슬지락), 和如琴瑟(화여금슬) 등으로 사용된다. 이렇게 부부애를 강조해도 거문고와 비파 소리를 듣는 것이 드물어서인지 오래 같이 산 부부가 돌아서는 黃昏離婚(황혼이혼)이 늘어난다고 한다. 여러 사정이 겹쳐 젊은이의 결혼도 기피하는 추세다. 금슬의 화음이 곳곳에 퍼져야겠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반포보은反哺報恩 - 자식이 부모에 은혜를 갚다, 까마귀의 효성

반포보은反哺報恩 - 자식이 부모에 은혜를 갚다, 까마귀의 효성

반포보은(反哺報恩) - 자식이 부모에 은혜를 갚다, 까마귀의 효성

돌이킬 반(又/2) 먹일 포(口/7) 갚을 보(土/9) 은혜 은(心/6)

‘어버이 살았을 제 섬길 일 다 하여라.’ 조선 가사문학의 거봉 鄭澈(정철)은 부모가 살아계실 때 효도를 하지 않으면 평생 후회한다고 했다. 자식이 봉양하려 하면 이미 부모가 가고 없다고 한탄하는 것이 風樹之嘆(풍수지탄)이다. 중국에선 二十四孝(이십사효)의 이름난 효자를 기리며 성어도 많이 따른다. 인간의 첫 번째 도리로 여긴 우리나라서도 못지않다. 어머니의 음식을 먹어치우는 아이를 묻었다는 孫順埋兒(손순매아)나 각 지역에서 허벅지 살이나 손가락의 피를 바쳤다는 割股療親(할고료친), 斷指注血(단지주혈)의 효자 이야기가 전한다.

특이하게도 효자 이야기에 인간 아닌 까마귀가 들어가는 성어가 있다. 까마귀는 검은 색에 울음소리도 불길하다 하여 凶鳥(흉조)로 쳤다. 하지만 한쪽에는 三足烏(삼족오)라 하여 태양 속에서 산다는 세 발 가진 까마귀를 숭상했고, 새끼가 어미를 먹여 살린다고 慈烏(자오) 또는 孝鳥(효조)라 했다. 새끼가 자라서 어미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는 것(反哺)을 길러준 은혜를 갚는 것(報恩)이라고 봤다. 反哺之孝(반포지효)는 중국 晉(진)나라 李密(이밀)의 명문 ‘陳情表(진정표)’에 등장하는데 여기서는 우리나라 출전만 보자.

‘歌曲源流(가곡원류)’는 靑丘永言(청구영언), 海東歌謠(해동가요)와 함께 3대 歌集(가집)에 들어간다. 조선 후기 제자 安玟英(안민영)과 함께 이 책을 편찬한 朴孝寬(박효관)은 그때까지의 가곡을 총정리하고 가인의 귀감이 될 歌論(가론)을 확립했다는 평을 듣는다. 시조 13수가 전하는 중에 한 수를 보자. ‘그 누가 가마귀를 검고 흉하다 했는가/ 반포보은이 이 아니 아름다운가/ 사람이 저 새만 못함을 못내 슬퍼하노라.’

1908년 개화기에 安國善(안국선)은 신소설 ‘禽獸會議錄(금수회의록)’의 제일 첫머리에 까마귀를 등장시킨다. ‘먹을 것을 물고 돌아와서 어버이를 기르며 효성을 극진히 하여 망극한 은혜를 갚는’ 자신들에 비해 만물 으뜸이라 하는 인간들은 하는 행실이 비리 투성이라 질타한다.

오늘날 효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라 강요할 필요도 없고, 부모와 함께 하는 가정도 드물어 점차 퇴색되는 실정이다. 그래서는 아니겠지만 재산문제 등으로 부모를 학대하는 일도 종종 벌어진다. 효의 실천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어버이들은 자식이 마음을 편하게 해 주고 수시로 안부를 묻는다면 효를 실천하는 것으로 만족한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노갑이을怒甲移乙 - 갑에 당한 노여움을 을에게 화풀이하다.

노갑이을怒甲移乙 - 갑에 당한 노여움을 을에게 화풀이하다.

노갑이을(怒甲移乙) - 갑에 당한 노여움을 을에게 화풀이하다.

성낼 노(心/5) 갑옷 갑(田/0) 옮길 이(禾/6) 새 을(乙/0)

남에게 업신여김을 당했거나 손해를 입었을 때 태연할 사람은 드물다. ‘노하더라도 죄를 짓지 말라’, ‘분노하는 자에게 분노로써 갚지 말라’라는 좋은 말은 성인의 가르침만으로 존재할 때가 많다. 더하여 예수님은 오른쪽 뺨을 때리면 왼쪽 뺨도 대주라며 사랑을 강조했지만 보통 사람들은 당한 이상으로 갚아야 속이 후련하다. 그런데 해를 끼친 상대방이 지위가 높거나 가까이 할 수 없을 때는 자기 속만 끓일 수도 없어 엉뚱한 곳에 화풀이를 한다. 갑에 당한 노여움(怒甲)을 을에게 화풀이 한다(移乙)는 뜻과 같은 우리 속담이 유달리 많은 것은 백성들의 억울함이 그만큼 많았기 때문일 듯하다.

굳이 비슷한 뜻의 쓰임새를 찾는다면 중국 春秋左氏傳(춘추좌씨전)의 昭公(소공) 19년 조를 든다. 楚(초)나라의 子瑕(자하)라는 사람이 엉뚱한 보복을 삼가라고 하면서 제후에게 말하는 데서 나왔다. ‘그에게 무슨 죄가 있습니까, 속담에 집에서 화를 내고 시장가서 화풀이한다고 한 것은 우리 초나라를 두고 한 말입니다(彼何罪 諺所謂室於怒 市於色者 楚之謂矣/ 피하죄 언소위실어노 시어색자 초지위의).’ 여기에서 室於怒 市於色(실어노 시어색), 줄여서 室怒市色(실노시색)이라 쓰기도 한다.

여기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우리 속담은 풍부하다. ‘다리 밑에서 원을 꾸짖는다’는 직접 말을 못하고 잘 들리지 않는 곳에서 욕이나 불평을 늘어놓는다는 뜻이다. 맞서서는 아무 소리도 못하면서 돌아서서 큰소리치는 소심한 사람을 비웃기도 한다. 旬五志(순오지) 번역으로 橋下叱倅(교하질쉬)다. 倅는 버금, 원 쉬.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눈 흘긴다’는 鐘樓批頰 沙平反目(종로비협 사평반목)으로 쓰이는데 ‘서울서 매 맞고 시골에서 주먹질 한다’, ‘영에서 뺨 맞고 집에 와서 계집 찬다’, ‘시어미 미워서 개 배때기 찬다’ 등 무궁무진하게 변용된다.\xa0

화를 정당하게 푸는 것은 정신건강에도 이롭다. 화를 낼 줄 모르는 것은 바보이고 화를 내지 않는 것은 현명한 사람이란 서양 격언이 있다. 화가 났을 때 정당하게 풀 수 있으면 좋으련만 엉뚱하게 약자에게 화풀이하거나 심지어 살인까지 저지르는 끔찍한 일이 종종 일어난다. 큰 죄인은 요리조리 법망을 빠져 나가고 올챙이만 걸린다. 지은 행위에 걸맞게 벌을 가하지 않는다면 일반 사람들까지 화가 나는 분노사회가 된다. \xa0/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