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5일 월요일

군주인수君舟人水 – 임금은 배, 백성은 물

군주인수君舟人水 – 임금은 배, 백성은 물

군주인수(君舟人水) – 임금은 배, 백성은 물

임금 군(口/4) 배 주(舟/0) 사람 인(人/0) 물 수(水/0)

임금은 배(君舟)이고 백성은 배를 띄우는 물(人水)이라는 말은 예부터 지도자들이 즐겨 인용하는 말로 유명하다. 백성들이 임금을 잘 받들 수 있지만, 잘못 다스릴 때는 배를 엎을 수 있다며 명군들은 명심하고 경계를 한다. 똑 같은 뜻으로 이전에 소개한 載舟覆舟(재주복주)가 있다. 역시 배를 실어가기도 하고 뒤엎기도 하는 물을 백성에 비유했다. 戰國時代(전국시대) 때의 荀子(순자)에서 언급된 후 여러 곳에서 비슷하게 인용됐는데 풀어 써서 水可載舟 亦可覆舟(수가재주 역가복주) 혹은 水能載舟 亦能覆舟(수능재주 역능복주)라 하면 뜻이 더 명확하다.

唐(당)나라 2대 太宗(태종) 李世民(이세민)이 신하들과 문답을 주고받은 ‘貞觀政要(정관정요)’는 吳兢(오긍)이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여 제왕의 필독서로 꼽혔다. 태종은 隋(수)나라 말기의 혼란상을 바로잡고 중앙집권을 강화하여 중국 역사상 최고의 영주로 꼽힌다. 부친 高祖(고조) 李淵(이연)을 도와 각지의 반란군을 제압하고 수나라 수도 長安(장안)까지 점령하여 나라를 건립했다.

재위(626∼649) 23년간 공정한 정치를 펼쳐 貞觀之治(정관지치)라는 찬사도 받는다. 하지만 부친이 정권 창출에 큰 공이 있음에도 형 建成(건성)을 황태자로 삼자 왕자의 난을 일으켜 황궁의 북문인 玄武門(현무문)에서 형을 제거하고 양위를 받았다. 뛰어난 능력에도 힘겹게 왕위에 오른 태종은 그러나 건성의 측근이었던 魏徵(위징)을 간의대부로 삼는 등 고언을 받아들여 항상 백성을 생각하는 정치를 폈다.

성어가 나오는 부분을 보자. 하루는 태종이 신하들을 불러놓고 왕은 궁궐 깊은 곳에 있어 천하의 일을 다 알지 못하니 참된 눈과 귀가 되어 달라고 했다. 위징이 답하여 항상 깊은 연못을 지나고 살얼음 위를 걷는 것처럼 일을 처리하면 나라가 오래 이어진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어진다. ‘군주는 배요, 백성은 물이라. 물은 배를 띄울 수도 있고, 뒤집을 수도 있다는 옛말이 있습니다(君舟也 人水也 水能載舟 亦能覆舟/ 군주야 인수야 수능재주 역능복주).’ 政體(정체)편에 실려 있다. 民水(민수)가 人水(인수)로 된 것은 태종 이름이라 避諱(피휘)한 것이라 한다.

항상 소통을 강조하며 자신은 아랫사람의 의견을 잘 듣는다는 지도자라도 듣기 좋은 말만을 담게 된다. 반대되는 측의 쓴 소리라도 반영해야 진정한 소통이라 할 수 있다.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일이라도 1400년 전의 당태종이 가장 소통 잘한 군주로 남아 있으니 실천은 어려운 모양이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계란유골鷄卵有骨 - 달걀에도 뼈가 있다, 운수가 나쁜 사람은 뜻대로 되는 일이 없다.

계란유골鷄卵有骨 - 달걀에도 뼈가 있다, 운수가 나쁜 사람은 뜻대로 되는 일이 없다.

계란유골(鷄卵有骨) - 달걀에도 뼈가 있다, 운수가 나쁜 사람은 뜻대로 되는 일이 없다.

닭 계(鳥/10) 알 란(卩/5) 있을 유(月/2) 뼈 골(骨/0)

사람에 따라 하는 일마다 술술 잘 풀리는 사람이 있고, 이것저것 손대는 일이 어긋나기만 하는 속칭 ‘꽝손’도 있다. 이것을 팔자로 알고 피하는 일이 매우 어렵다고 하는 속담이 아주 많다. 재미있는 몇 개만 보아도 ‘엎어져도 코가 깨지고 자빠져도 코가 깨진다’, ‘가루 팔러 가니 바람이 불고 소금 팔러 가니 이슬비 온다’, ‘집안이 망하려면 맏며느리가 수염이 난다’ 등이다. 지지리도 재수가 없던 사람이 모처럼 좋은 기회를 만났건만 그 일마저도 잘 안될 때 달걀(鷄卵)에도 뼈가 있다(有骨)고 한 이 성어도 마찬가지다.

속담을 한역한 것으로 旬五志(순오지)와 함께 잘 알려진 ‘松南雜識(송남잡지)‘에 전하는 내용이다. 조선 후기의 학자 趙在三(조재삼)이 엮은 일종의 백과사전인데 方言(방언)편에 실려 있다. 世宗(세종) 때의 명신 黃喜(황희)는 어진 인품으로 18년간 영의정을 지냈으면서도 청렴한 생활을 하다 보니 집에 비가 샐 정도로 가난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세종은 황희를 도와줄 방법이 없을까 곰곰이 생각하다가 묘안을 냈다. 어느 날 하루 새벽에 남대문을 열면서부터 저녁에 닫을 때까지 드나드는 모든 물건을 사서 정승에게 주라는 명을 내렸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 날은 온종일 비바람이 몰아쳐 물건을 사고파는 상인들이 얼씬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날이 어두워질 무렵에야 한 시골노인이 달걀 한 꾸러미를 들고 왔기에 그것을 얻어 집으로 왔다. 요기를 할까 하고 달걀을 삶았더니 모두 오래돼 곯은 것이어서 한 개도 먹을 수가 없었다. 한국고전신서편찬위원회의 ‘한국고사성어’에는 출전이 大東韻府群玉(대동운부군옥)이라 하고 정승도 알려진 사람이 아닌 것으로 되어 있다. 어쨌든 계란에 뼈가 있을 리는 없고 속이 물크러져 상한 곯은 것이 한자의 骨(골)과 음이 같아 이렇게 속담이 변했다고 본다.\xa0

일이 잘 안 풀리는 사람이 정해진 팔자가 그렇다며 어쩔 수 없다고 지레 포기하게 되면 처음 생각했던 일을 영원히 못하게 된다. 계속되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하여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위인전의 단골이다.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도 젊은이들의 용기를 꺾는다. 곯은 달걀만 계속 나오는 것이 아니라 노른자가 나온다는 믿음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장수선무長袖善舞 - 소매가 길면 춤을 잘 춘다.

장수선무長袖善舞 - 소매가 길면 춤을 잘 춘다.

장수선무(長袖善舞) - 소매가 길면 춤을 잘 춘다.

긴 장(長/0) 소매 수(衣/5) 착할 선(口/9) 춤출 무(舛/8)

긴 소매로 된 윗옷을 입고 추는 전통춤은 보기에 우아하다. 화사한 색상에 유려한 선으로 된 옷차림만으로 어깨춤이 절로 따른다. 특히 승무에서 남색 치마에 흰 저고리, 흰 장삼을 걸치고 추는 춤은 나비와 같다고 표현한 시인도 있다. 이처럼 ‘소매가 길면 춤을 잘 추고 돈이 많으면 장사를 잘 한다’는 우리 속담과 똑 같은 뜻이 이 성어다. 수단이나 밑천이 넉넉한 사람은 일을 하거나 성공하기가 쉽다는 말인데 ‘韓非子(한비자)’에 나오는 원전에서도 長袖善舞 多錢善賈(장수선무 다전선고)로 되어 있다. 善은 착하다는 뜻 외에 잘한다는 뜻, 賈는 성 가, 장사 고. 多財善賈(다재선고), 多錢善買(다전선매)로도 쓴다.

戰國時代(전국시대) 말기 法治主義(법치주의)를 주창한 韓非(한비)의 논저인 이 책의 五蠹(오두)편에 실렸다. 蠹는 좀벌레를 말하는데 ‘오두’는 五賊(오적)과 같이 나라를 갉아먹어 황폐하게 하는 사람들을 지칭했다. 공론만 일삼는 유가와 종횡가, 무력으로 질서를 해치는 유객, 권문귀족, 그리고 농민들의 이익을 빼앗는 상공인을 포함한다.

한비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군주가 나라 다스리는 방법을 달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즉 잘 다스려 강력하게 하는 것은 외교에 달린 것이 아니라 국내 정치에 달려 있는데 국내에서 법치로 다스리지 않고 국외에서 지모 쓰는 것을 일삼는다면 강대해 질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속담에 "긴 소매 자락은 춤추기에 좋고 많은 돈은 장사하기에 좋다(鄙諺曰 長袖善舞 多錢善賈/ 비언왈 장수선무 다전선고)"는 말이 있다. 이것은 밑천이 많아야 일을 잘하기가 쉬움을 말한 것이다.

나라가 잘 다스려지고 강대하면 계책을 세우기가 쉽고, 나라가 약하고 어지러우면 계획을 세우기가 어려운 것이다’고 덧붙인다. 鄙는 더러울 비, 鄙諺은 품위가 매우 낮은 말이나 속담을 뜻한다.

이런 정치적 측면은 줄었지만 同價紅裳(동가홍상)이란 말과 같이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고 능력과 함께 물질적인 것이 갖춰져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는 뜻으로 넓혀졌다. 그렇더라도 요즘은 소매가 긴 집안이 너무 길고, 대대로 긴 것이 탈이다. 부모 재산 정도에 따라 금수저, 흙수저로 젊은이들이 나눠진다며 아무리 노력해도 損富益貧(손부익빈)에서 언급한대로‘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은 사라졌다고 자조한다. 젊은이들에 긴 소매를 달아 줄 묘책은 없는가.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퇴불우인退不尤人 - 물러날 때 남에게 핑계를 대지 않는다, 떠날 때 깨끗이 하다.

퇴불우인退不尤人 - 물러날 때 남에게 핑계를 대지 않는다, 떠날 때 깨끗이 하다.

퇴불우인(退不尤人) - 물러날 때 남에게 핑계를 대지 않는다, 떠날 때 깨끗이 하다.

물러날 퇴(辶/6) 아닐 불(一/3) 더욱 우(尢/1) 사람 인(人/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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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에서 함께 생활하면서 일이 잘못 되었을 때 그 원인을 자신에게 돌리는 사람은 드물다. 남 탓을 하거나 심지어 애먼 사람에게 덮어씌우는 양심 불량자도 흔하다. 더욱 尤(우)는 점차 심해지는 尤甚(우심) 등에 쓰이는데 ‘허물, 원망‘의 뜻도 있어 尤人(우인)은 남 탓을 하는 사람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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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원망하고 누구를 탓하겠냐는 뜻의 誰怨孰尤(수원숙우)는 더 알려진 誰怨誰咎(수원수구)와 같다. 남을 원망하거나 탓할 것이 없다고 할 때 孔子(공자)는 한 발 더 나갔다. 자신을 알아주지 않아도 하늘을 원망하지 않고, 남을 허물하지 않는다며 不怨天 不尤人(불원천 불우인)이라 했으니 성인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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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슬길에서 물러날 때(退) 남에게 핑계를 대지 않고(不尤人) 깨끗이 떠난다는 이 성어는 조선 후기의 문신 成大中(성대중, 1732~1812)의 글에서 나왔다. 공을 이룬 뒤 스스로 물러선다는 老子(노자)의 이야기 功成身退(공성신퇴)를 연상시킨다. 朴趾源(박지원) 등 쟁쟁한 실학자들과 교유가 있었던 성대중은 평론과 명언, 야담을 모아 ‘靑城雜記(청성잡기)’란 책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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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2의 사실을 있는 그대로 딱 잘라 한 말이란 뜻의 質言(질언)에 성어가 실려 있다. ‘벼슬길에 나아갈 때는 남의 도움을 받지 말고, 벼슬길에서 물러날 때는 남을 탓하지 말라(進不藉人 退不尤人/ 진불차인 퇴불우인).’ 藉는 깔 자, 기댈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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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뒤에 있는 좋은 글도 한국고전DB에서 옮겨보자. 앞에는 ‘청렴하되 각박하지 말고, 화합하되 휩쓸리지 말며(淸而不刻 和而不蕩/ 청이불각 화이불탕), 엄격하되 잔혹하지 말고, 너그럽되 해이해지지 말라(嚴而不殘 寬而不弛/ 엄이부잔 관이불이)’, 뒷부분은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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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비밀을 살피지 말고, 남의 재주를 가리지 말며(不察人之隱 不蔽人之才/ 불찰인지은 불폐인지재), 남이 나에게 극진히 잘하기를 바라지 말고, 남이 나에게 충성을 다하기를 바라지 말라(不盡人之美 不竭人之忠/ 부진인지미 불갈인지충).’ 조선 후기 학자 金允植(김윤식)도 비슷하게 ‘나아가서는 영예를 구하지 않았고(進不求名/ 진불구명), 물러나서는 남을 탓하지 않았다(退不尤人/ 퇴불우인)’란 말을 문집에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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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좋은 말을 많이 배워 더 잘 아는 사람들이 지키는 것은 좀처럼 볼 수 없다. 나라를 위해 높은 자리에서 일할 지도자들이 비위가 하나하나 드러날 때마다 인정하고 물러나기는커녕 남 탓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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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지난번엔 법을 관장하는 장관까지 ‘몰랐던 일이다, 아랫사람이 했다, 불법이 아니다’ 하며 잘도 갖다 붙여 일반 국민들의 심화를 돋웠다. 이런 사람들일수록 남의 잘못은 시시콜콜 들춰내는데 선수다. 남 탓을 넘어 하늘 탓까지 할 사람들이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계포일낙季布一諾 - 계포의 승낙. 한 번 약속은 끝까지 지킴 

계포일낙季布一諾 - 계포의 승낙. 한 번 약속은 끝까지 지킴 

계포일낙(季布一諾) - 계포의 승낙. 한 번 약속은 끝까지 지킴\xa0

- 계절 계(子-5) 베 포(巾-2) 한 일(一-0) 허락할 낙(言-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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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속의 언약까지 굳게 지킨다는 季札(계찰)의 季札掛劍(계찰괘검)만큼, 季布(계포)라는 楚(초)나라 무장의 이름이 들어간 이 성어도 약속의 가치를 말해주는 말로 자주 인용된다. "장부의 한 말이 천금같이 무겁다"는 우리 속담도 있듯이 계포의 승낙을 받는 것이 일백 근의 황금을 얻는 것보다 낫다고 한 말에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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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포는 項羽(항우)와 劉邦(유방)이 천하를 두고 각축하는 楚漢(초한) 전쟁 때 양쪽에서 모두 귀한 대접을 받았다. 젊었을 때부터 의협심이 강했고 한번 약속을 하면 끝까지 지키는 사람으로 평이 났다. 처음 항우의 장수로 출전해 여러 차례 유방을 괴롭혔다. 항우가 패망하고 유방이 천하를 통일한 뒤 계포는 쫓기는 신세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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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금의 상금을 걸고 계포의 목을 노렸지만 사람들은 신망을 받았던 그를 숨겨줬다. 朱家(주가)라는 협객은 유방의 측근에 손을 써 계포를 사면되게 했을 뿐 아니라 더하여 벼슬을 얻게 했다. 적지에 있게 되었어도 그는 시비가 명확하고 성심을 흐리지 않아 존경을 한 몸에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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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당시 초나라 사람으로 曹丘(조구)라는 사람이 뛰어난 변설로 실력자와 어울리고 있었다. 왕의 외숙인 竇長君(두장군, 竇는 구멍 두)에게도 뻔질나게 드나들자 계포는 조구를 멀리하는 것이 좋다고 편지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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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을 듣고 조구가 도리어 소개장을 갖고 계포를 만나러 왔다. "초나라 사람들의 말에 황금 백 근을 얻는 것보다 계포의 승낙을 얻는 것이 더 낫다(得黃金百斤 不如得季布一諾/ 득황금백근 불여득계포일낙)는 말이 있습니다.\xa0나도 동향인데 돌아다니며 당신의 이름을 천하에 날리게 할 수 있는데 어찌 멀리 하십니까" 하고 말했다. 계포는 조구를 받아들이고 그 후 각국에 선전을 하여 더욱 명성을 높이게 됐다. "史記(사기)" 季布欒布(계포난포, 欒은 단란할 란) 열전에 나오는 이야기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은산철벽銀山鐵壁 - 어떠한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음, 꽉 막혀 있는 쇠고집 

은산철벽銀山鐵壁 - 어떠한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음, 꽉 막혀 있는 쇠고집 

은산철벽(銀山鐵壁) - 어떠한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음, 꽉 막혀 있는 쇠고집\xa0

은 은(金/6) 메 산(山/0) 쇠 철(金/13) 벽 벽(土/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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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으로 된 산(銀山)과 쇠로 만든 벽(鐵壁)이란 이 말을 먼저 떠올리는 뜻은 金城鐵壁(금성철벽)이다. 방어시설이 잘 되어 공격하기 어려운 성에서 빈틈이 없는 사물을 비유하는 이 성어와 달리 오묘한 의미를 지녔다. 먼저 오도 가도 못하고 앞뒤로 꽉 막혀 있는 상태, 주장이 너무 강하여 아무리 설득해도 굽히지 않는 쇠고집이란 뜻도 있지만 믿는 마음과 誓願(서원)이 두텁고 철저한 것을 비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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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과 철은 뚫기 어렵고 산과 벽은 오르기가 어려우니 어떠한 유혹이나 경계에도 흔들리지 않는 의지가 드러난다. 이런 점이 무엇보다 禪家(선가)에서 참선수행의 실마리로 삼는 話頭(화두)의 궁극적 의미와 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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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산은 실제 불교와 관계가 깊다. 중국 베이징시 창핑구昌平區/ 창평구에 위치한 높이 700m가 조금 넘는 산이라는데 겨울이 오면 흰 눈이 흩날려 이 이름을 얻었다. 또 산이 가파르고 암벽 색깔이 쇠와 같이 검다고 해서 철벽이 되었단다. 鐵壁銀山(철벽은산)이라고도 불리는 이 곳은 銀山塔林(은산탑림)이란 관광지로도 이름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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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세기 馬祖(마조)선사의 제자 隱峰(은봉)선사가 여기서 머무르며 설법을 했고 많은 스님들이 따랐는데 그들을 기리기 위한 탑들이 곳곳에 들어서 장관을 이루게 됐다고 한다. 얼음산은 오르기 어렵고 철벽은 뚫고 나가기 어려우므로 여기서 어떤 것도 기대지 않고 홀로 화두에 침잠하는 적소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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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수행자들의 어려운 화두 말고 사방이 꽉 막힌 절박한 상황, 이것을 뚫고나가는 굳은 의지를 나타내는 뜻으로 사용된 글이 많다. 고려 후기 문인 李穡(이색)이 좌선 승려에게 준 글 ‘버들개지 바람에 미치듯 함은 삼업의 죄요(柳絮風狂三業罪/ 유서풍광삼업죄), 은산 철벽이 우뚝 섬은 한 덩이 의심일세(銀山壁立一團疑/ 은산벽립일단의)’란 구절이 牧隱(목은)시고에 있다. 조선 중기 無住(무주)스님은 ‘혜 선사에게 보이다(示慧師/ 시혜사)’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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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바다 깊이 재는 것이 무엇이 어렵고 수미산을 어찌 오르지 못하리오(滄海何難測 須彌豈不攀/ 창해하난측 수미기불반), 조주 스님 무자 화두 이것만큼은 철벽에다 더하여 은산이로다(趙州無字話 鐵壁又銀山/ 조주무자화 철벽우은산).’ 조주는 날카로운 말 한 마디를 던져 학인들에게 깨우침을 준 唐(당)의 선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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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든 것을 잊고 탐구하는 자세는 바람직하다. 주위에서 어떤 유혹이 있더라도 흔들리지 않으면 깨달음으로 가는 길이다. 이처럼 수행하는 자세를 나타내는 은산이나 철벽이 부정적으로 쓰이는 경우가 많아 말을 더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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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목표를 향해 멋진 계획을 추진하는데 생각하지 못한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점점 그 폐해가 커지는데도 고집을 부려 오로지 처음 생각대로 밀고 나간다면 회복이 불가능하다. 이런 철벽은 소통을 막는 쇠고집밖에 안 된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염화미소拈華微笑 - 꽃을 집어 들고 웃음 짓다,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하다. 

염화미소拈華微笑 - 꽃을 집어 들고 웃음 짓다,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하다. 

염화미소(拈華微笑) - 꽃을 집어 들고 웃음 짓다,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하다.\xa0

집을 념, 점(扌/5) 빛날 화(艹/8) 작을 미(彳/10) 웃음 소(竹/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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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일을 가르치거나 전달하려할 때 받아들이는 사람이 먼저 알아챈다면 그 이상 수월할 수가 없다. 이해가 빨라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이해하는 제자가 기특하다. 부처님이 불교의 진수를 전하기 위해 제자들에게 여러 가지 방법으로 설법했다. 三處傳心(삼처전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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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세 가지 중에서 靈山會上擧拈花(영산회상거염화)가 말을 통하지 않고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하는 일을 뜻하는 拈華微笑의 유래가 됐다. ‘大梵天王問佛決疑經(대범천왕문불결의경)’에 전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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釋迦牟尼(석가모니)가 인도 고대의 마가다국에 있던 靈鷲山(영축산, 鷲는 독수리 취로 읽지만 불교선 축으로 읽음. 양산 영축산도 영취산, 취서산으로 읽히다 2001년 영축산으로 통일)에서 제자들을 모아놓고 설법을 하고 있을 때 하늘에서 꽃비가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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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이 그중 연꽃송이 하나를 들어 보이자 모두들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하고 있을 때 마하가섭(摩訶迦葉, 訶는 꾸짖을 가 또는 하, 葉은 잎 엽이지만 고을이름 섭도 됨)만이 뜻을 알아채고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이에 부처님은 자신의 가르침이 문자나 교리로가 아닌 마음에서 마음으로 제자에게 전해졌음을 깨닫게 되었다. 敎外別傳(교외별전)이고 以心傳心(이심전심)이란 말도 여기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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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는 ‘내가 체득한 불가사의한 진리 正法眼藏(정법안장)과 현묘한 깨달음으로 말이나 문자로써 표현할 수 없는 경지의 불법 涅槃妙心(열반묘심)을 가섭에게 전한다’고 선포하였다. 이뿐만 아니다. 다자탑 앞에서 설법할 때 가섭에게 자리를 반 비워 준 일, 쌍림에서 열반에 드실 때 가섭이 오자 관에서 발을 밖으로 내민 일 등도 뜻을 이어받게 한 일이라 한다. 이로써 가섭은 10대제자 중에서도 上首第子(상수제자)로 치며 부처님 이후의 법통을 말할 때 개조가 되었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일반천금一飯千金 - 밥 한 그릇에 천금으로 갚다, 후한 보답 

일반천금一飯千金 - 밥 한 그릇에 천금으로 갚다, 후한 보답 

일반천금(一飯千金) - 밥 한 그릇에 천금으로 갚다, 후한 보답\xa0

한 일(一/0) 밥 반(食/4) 일천 천(十/1) 쇠 금(金/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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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에게 은혜를 입고서 그것을 잊지 않으려 白骨難忘(백골난망)하고 또 그것을 갚기 위해 結草報恩(결초보은)하는 사람은 드문 모양이다. 은혜를 곧잘 잊는 말이 많고 심지어 해를 끼치는 일도 많다. ‘사람은 구하면 앙분을 하고 짐승은 구하면 은혜를 한다’는 말은 은혜를 원수로 갚는 짐승보다 못한 인간을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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怏憤(앙분)은 분하게 여겨 앙갚음 한다는 말이다. 성어로도 물고기를 잡은 뒤 통발의 고마움을 잊는다는 得魚忘筌(득어망전)은 해를 끼치지는 않지만, 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를 삶는다는 兎死狗烹(토사구팽)이 은혜를 원수로 갚는 비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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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그만 호의에도 크게 보답한 예가 밥 한 그릇(一飯)을 대접받고 훗날 천금으로 갚았다(千金)는 이 성어다. 一飯之恩(일반지은), 漂母之惠(표모지혜)라고도 하는 이 말은 韓信(한신)에서 유래했다. 秦(진) 말기 淮陰(회음)이란 지역에서 무위도식하던 한신은 당시의 촌장 집에서 눈칫밥을 먹다 자신이 생각해도 한심했던지 그 집에서 떠났다. 그래 봤자 특별한 재주도 없던 그는 성 밖의 淮水(회수)에서 낚시로 세월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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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가에서 빨래를 하던 한 아낙이 굶주린 한신을 보고 며칠간 밥을 먹여주었다. ‘한신이 감지덕지하여 후일 꼭 보답하겠다(信喜 謂漂母曰 吾必有以重報母/ 신희 위표모왈 오필유이중보모)’고 하자 아낙네는 주제를 알고 그런 소리는 하지도 말라고 무안을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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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신은 처음 項羽(항우)의 수하로 있다가 자신의 계책을 알아주는 劉邦(유방)의 밑으로 가서 대장군으로 활약, 漢(한)나라를 세우는데 큰 공을 세운다. 후일 고향 회음에 봉국을 얻어 楚王(초왕)에 봉해진 한신은 자신에게 밥을 주었던 빨래터 아낙네를 찾아 천금을 주었고, 눈칫밥이나마 주던 촌장 집 여주인에겐 백금을 내렸다(後信爲楚王 召所從食漂母 賜千金 及下鄕南昌亭長 賜百錢/ 후신위초왕 소소종식표모 사천김 급하향남창정장 사백전). ‘史記(사기)’ 淮陰侯(회음후) 열전에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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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은혜를 기억하는 사람만이 큰 보답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도 한신과 달리 ‘물에 빠진 놈 건져 놓으니까 내 봇짐 내라 한다’는 말대로 남에게 은혜를 입고서도 그 고마움을 모르고 생트집을 잡는 예를 자주 본다. 수하에 있을 때 온갖 권세를 휘두르다 끈 떨어지자 돌아서서 총을 겨눈다. 옛말이 그르지 않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세이공청洗耳恭聽 – 귀를 씻고 남의 말을 경청하다. 

세이공청洗耳恭聽 – 귀를 씻고 남의 말을 경청하다. 

세이공청(洗耳恭聽) – 귀를 씻고 남의 말을 경청하다.\xa0

씻을 세(氵/6) 귀 이(耳/0) 공손할 공(心/6) 들을 청(耳/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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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피해 산야에 묻혀 사는 隱者(은자)라 하면 대뜸 중국의 許由(허유)와 巢父(소보)를 먼저 떠올린다. 하지만 친구 사이라는 이들은 실제 인물이라기보다는 堯(요) 임금 때 살았다는 전설에만 나온다. 아비 父(부)는 어른 경칭일 땐 보. 許繇(허요, 繇는 성할 요)라고도 하는 허유는 임금 자리를 맡아달라는 소리에 귀가 더럽혀졌다며 귀를 씻었다(洗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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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세를 떠나 나무에서 살았다는 소보는 그런 귀를 씻은 강물을 자신의 소에게 먹일 수 없다고 하여 상류로 끌고 갔던 사람이다. 이렇게 하면 귀를 씻는다는 말이 세상과 완전 담을 쌓은 고집불통을 연상하나 여기에 공손히 듣는다(恭聽)란 말과 결합하려 쓰이면서 귀를 씻고 남의 말을 경청한다는 뜻으로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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西晉(서진)의 학자 皇甫謐(황보밀, 215~282, 謐은 고요할 밀)은 벼슬을 하지 않고 숨어 사는 학덕이 높은 선비들을 모아 ‘高士傳(고사전)’을 저술했다. 두 은자가 등장하는 내용을 보자. 沛澤(패택)이란 곳에서 살던 허유는 사람됨이 의리를 지키고 행동이 바르며 부정한 음식은 입에 대지도 않는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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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군 요임금이 이런 훌륭한 사람에게 왕위를 물려주려고 찾아가자 정치에 뜻이 없던 허유는 箕山(기산)이란 곳으로 숨었다. 요임금은 처음 허유가 겸손해서 그러는 줄 알고 다시 사람을 보내 九州(구주)의 장이라도 맡으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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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을 듣고 허유는 한층 역겨워하면서 산 아래의 潁水(영수)라는 강가에 내려가 귀를 씻었다(由不欲聞之 洗耳於潁水之濱 /유불욕문지 세이어영수지빈). 濱은 물가 빈. 이 고장에 은거생활을 하던 친구 소보가 송아지를 끌고 와 물을 먹이려다 마침 이 모습을 보고 연유를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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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유의 이야기를 들은 소보는 쓸데없이 떠다니며 명예를 낚으려는 행동은 옳지 않다고 나무랐다. 강물에 귀를 씻었으니 송아지의 입이 더러워지겠다며 상류로 끌고 가서 물을 먹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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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를 씻는다는 말이 경청하는 뜻으로 바뀐 것은 元(원)나라 이후 잡극에서 사용됐다. 작가 關漢卿(관한경)이 關羽(관우)에 대해 쓴 ‘單刀會(단도회)’에선 ‘군후께서는 말씀하십시오. 소관은 귀를 씻고 경청하겠습니다(請君侯試說一遍 下官洗耳恭聽/ 청군후시설일편 하관세이공청)’란 대사가 등장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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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기 싫은 이야기를 듣고서 바로 의견을 내친다면 그 조직은 발전할 수 없다. 여러 사람의 의견을 두루 들으면 현명해진다는 兼聽則明(겸청즉명)이란 말도 있다. 특히 정치권에서 반대 측의 좋은 방안도 받아들여야 진정한 화합을 이루는 것임은 말할 필요가 없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조여청사 모성설朝如靑絲 暮成雪 - 아침에 검은 실 같던 머리칼이 저녁에는 눈같이 희다. 

조여청사 모성설朝如靑絲 暮成雪 - 아침에 검은 실 같던 머리칼이 저녁에는 눈같이 희다. 

조여청사 모성설(朝如靑絲 暮成雪) - 아침에 검은 실 같던 머리칼이 저녁에는 눈같이 희다.\xa0

아침 조(月/8) 같을 여(女/3) 푸를 청(靑/0) 실 사(糸/6) 저물 모(日/11) 이룰 성(戈/3) 눈 설(雨/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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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고 병든 몸은 눈 먼 새도 안 앉는다’는 우리 속담이 있다. 사람이 늙고 병들면 누구 한 사람 찾아주지 않아 쓸쓸하다. 그런데도 노인은 젊은 사람들의 청춘의 즐거움을 방해하려는 폭군이라고 폭언하는 세상이다. 누구 한 사람 늙는 것이 좋아 늙은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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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은 젊은 시절 가족을 위해, 국가를 위해 애쓰다 보니 어느 새 꼬부라져 있는 사실을 발견한다. 세월이 흐르는 물과 같이 빨리 지나간다고 光陰如流(광음여류)라 하고, 그래서 흰 망아지가 빨리 지나가는 모습을 문틈으로 보고 사람의 일생을 잠시라고 여기는 白駒過隙(백구과극, 隙은 틈 극)이라 부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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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의 검푸르고 윤기 흐르던 머리카락(朝如靑絲)이 저녁이면 흰 눈이 덮인 듯 하얗다(暮成雪)는 이 성어도 마찬가지다. 詩仙(시선) 李白(이백, 701~762)의 시구에서 나왔다. 세월이 무심하게 빨리 흘러 어느 덧 인생 말년이 가까웠음을 한탄하는 말이다. 나아가 세상인심이나 습속이 급속도로 변하여 무상함을 비유할 때도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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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당)나라의 詩聖(시성) 杜甫(두보)와 함께 李杜(이두)로 일컬어지는 이백은 술을 좋아하고 술에 관한 시가 많기로도 유명하다. 술잔을 들고 달에게 물어보는 把酒問月(파주문월)이나 이 성어가 나오는 ‘將進酒(장진주)’ 등이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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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을 드리려 한다’는 뜻의 이 시는 오랜 친구 둘과 함께 술을 마시면서 짧은 인생을 사는 동안 마음껏 즐기자는 내용이다. 앞부분 내용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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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황하물이 하늘로부터 흘러내리는 것을 보지 못하는가(君不見 黃河之水天上來/ 군불견 황하지수천상래), 여울져 바다에 이르면 다시돌아오지 못하는 것을(奔流到海不復回/ 분류도해불복회), 또 보지 못했는가 고대광실 밝은 거울에서 흰 머리 슬퍼함을(又不見 高堂明鏡悲白髮/ 우불견 고당명경비백발), 아침에는 검푸른 실 같더니 저녁에는 눈이 덮였네(朝如靑絲暮成雪/ 조여청사모성설).’ 짧은 삶을 마음껏 즐기자고 하면서도 인생의 숙명에 대한 걱정도 해학적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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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기 나는 검푸른 머리카락이 어느새 눈발이 날리듯이 세월은 짧다. 떵떵거리는 자리에서 거들먹거리는 사람도 어느 순간에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신세가 된다. 열흘 붉은 꽃이 없고 보름달도 이지러지게 마련이다. 인생이 이렇게 흘러가니 조그만 부나 권세에 집착하다 낭떠러지로 떨어지지 않도록 조심할 일이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