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5일 화요일

◇코로나 불경기에도 명품은 잘 팔리더라

◇코로나 불경기에도 명품은 잘 팔리더라

◇코로나 불경기에도 명품은 잘 팔리더라

신종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소비 위축에도 불구하고 백화점의 명품 매출은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불황에도 명품은 팔린다’는 유통업계의 오랜 속설이 다시 한 번 입증되고 있는 셈이다.

업계에 따르면 주요 백화점의 봄 정기세일이 시작된 첫 주말 롯데와 현대, 신세계 3대 백화점의 명품 매출이 전년 같은 기간보다 일제히 늘었다. 코로나19 영향으로 이 기간 전체 매출은 모두 작년보다 크게 주저앉았지만, 명품 판매는 오히려 신장세를 기록하면서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이날 롯데백화점은 명품 브랜드들이 속한 해외패션 부문 매출이 지난해 봄 정기세일 첫 주 대비 4.7% 증가했다고 밝혔다. 특히 최상위급 브랜드가 포함된 해외의류 품목은 전년 대비 5.4% 신장했고, 고급 시계와 보석 브랜드들은 27.4%나 늘었다. 현대백화점은 명품 매출이 5.3% 늘었고, 특히 고급 보석 매출은 작년 정기세일 기간 대비 28.7%나 뛰었다. 신세계백화점 역시 명품 매출이 0.8% 증가했고, 그 중 고급 시계는 2.0% 올라갔다.

수백, 수 천만원대의 명품을 사려는 고객들은 대부분 온라인보다는 오프라인 매장에서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구매하려는 경향이 뚜렷하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 코로나19에 따른 불황 때문에 명품 소비를 미뤄왔던 고객층이 이번 백화점 봄 정기세일을 맞아 지갑을 열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롯데백화점 관계자는 “코로나19가 다소 진정세를 보임에 따라 올 하반기 결혼을 앞둔 고객들이 정기세일 중인 오프라인 백화점을 방문해 혼수용 가방이나 시계를 구입하는 수요가 늘어난 것도 매출 증가의 한 요인인 것 같다”고 설명했다. 올 봄 예정됐던 결혼을 잠시 미룬 고객들까지 혼수 구입에 나서면서 해당 수요가 집중된 영향도 적지 않다는 분석이다.

반면 정기세일이 시작됐음에도 백화점 전체 매출은 전년에 훨씬 못 미치는 수준이다. 롯데백화점의 전체 매출은 전년 대비 15.4% 하락했다. 세일기간 매출을 견인하는 여성패션 부문이 34.6%나 내려앉았다. 신세계백화점도 전체 매출이 15.4% 떨어졌고, 현대백화점 역시 12.6% 감소했다. 현대백화점의 여성패션 매출은 22.3% 내려갔다.

업계내에선 3대 백화점의 주별 매출 신장률이 3월 첫 주를 기점으로 일제히 플러스로 전환했고, 이달 봄 정기세일까지 더해지면서 움츠렸던 소비 심리가 되살아날 것이란 기대를 모았다. 실제 명품을 비롯한 일부 품목을 중심으로 소비가 늘었다. 하지만, 코로나19 이전과 비교하면 여전히 부족하다. 현종혁 롯데백화점 마케팅부문장은 “해외패션 구매 신장세를 확인한 만큼 앞으로 혼수 등 고객들의 수요를 고려한 특별 이벤트를 계속해서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한국일보-

◇코로나와 여성 리더십

◇코로나와 여성 리더십

◇코로나와 여성 리더십

대만 독일 뉴질랜드의 공통점은? 코로나19와 잘 싸우고 있는 나라들이라는 점이다. 또 하나는 리더가 여성이라는 사실.

관광대국 뉴질랜드의 저신다 아던 총리는 막대한 관광 수익을 포기하고 빗장을 걸어 잠근 뒤 한 달간 전국에 봉쇄령을 내렸다. 치명률은 0.8%.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사태 초기에 고위험군인 고령자를 격리시키고 검사를 맹렬히 한 덕분에 유럽에서는 상대적으로 낮은 치명률(2.5%)을 기록하고 있다. 노르딕 5개국 가운데 치명률이 9%인 스웨덴을 제외한 4개국의 방역 성적표는 양호한데 공교롭게도 이 나라들의 리더가 모두 여성이다.

대만의 차이잉원 총통은 1월 23일 중국이 발원지인 우한(武漢)을 봉쇄하자 다음 날 의료용 마스크 수출부터 금지하고 중국과의 모든 직항 노선을 끊었다. 15일까지 환자 수 393명에 사망자는 6명(치명률 1.5%). 지금은 마스크 수백만 장을 유럽 등에 수출 중이다.

‘마초적’ 리더들의 방역 성적은 저조한 편이다. 발원국인 중국의 시진핑 주석은 전문가의 경고를 무시하다가 전 세계를 위험에 빠뜨리고 리더십에도 치명상을 입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남의 말을 안 듣는 제왕적 리더십으로 좌충우돌하다가 미국을 세계 1위의 코로나 피해국으로 전락시켰다. ‘유럽의 트럼프’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바이러스 때문에 악수를 그만두진 않을 것”이라며 사태의 심각성을 무시하다가 말 그대로 죽다 살아났고 영국은 유럽의 새로운 화약고가 됐다(치명률 12.9%).

여성 리더가 선전하는 이유가 뭘까. 감염병 같은 위기 상황에서는 비전을 제시하는 남성적인 리더십보다 문제해결 중심의 여성적 리더십이 유리하다는 해석이 있다.

‘무티(엄마) 리더십’의 대명사인 메르켈은 카리스마에 의존하기보다 다양한 정치세력과 연정하며 최악의 금융위기를 포함한 국내외 난제들을 해결해왔다. 외유내강형 리더인 차이잉원도 정부 안팎의 전문가 집단과 협업하며 코로나에 대처하고 있다. 아던 총리는 지난해 크라이스트처치 모스크 테러에 단호하게 대응하면서도 히잡을 쓰고 아랍어로 인사하는 등 포용적 리더십으로 마초 리더들과 대조를 보인 바 있다.

-동아일보-

목불견첩目不見睫 - 눈으로 눈썹은 보지 못한다, 남의 허물은 잘 보다.

목불견첩目不見睫 - 눈으로 눈썹은 보지 못한다, 남의 허물은 잘 보다.

목불견첩(目不見睫) - 눈으로 눈썹은 보지 못한다, 남의 허물은 잘 보다.

눈 목(目/0) 아닐 불(一/3) 볼 견(見/0) 속눈썹 첩(目/8)

여간 수양이 된 사람 아니고는 자신의 허물을 알기 어렵다. 남의 흉은 일부러 찾지 않더라도 저절로 눈에 들어온다. ‘남의 흉 한가지면 제 흉은 열 가지‘인데도 눈에 보이는 것을 넘어 묻혀있는 남의 흠을 찾기까지 한다. 털을 불어 허물을 찾는 吹毛覓疵(취모멱자)다. ’자기 자신의 결점을 반성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남의 결점을 보고 있을 틈이 없다.‘ 탈무드에 있는 말이다. 자신의 결점은 알지 못하고 남의 잘못은 잘 본다는 비유로 눈으로는 자기의 눈썹을 보지 못한다는 이 성어를 쓴다. ’도끼가 제 자루 못 찍는다‘는 속담과 같다.

중국 法家(법가)의 확립자 韓非(한비)가 쓴 ‘韓非子(한비자)’는 秦始皇(진시황)에게 영향을 준 책으로 유명하다. 역사적인 고사들을 老子(노자)의 사상과 비교 설명한 喩老(유로)편에 이 성어가 실려 있다. 春秋時代(춘추시대) 楚(초)나라 莊王(장왕)이 越(월)나라를 정벌하려고 하자 신하인 杜子(두자)가 무슨 연유로 군사를 일으키는지 물었다. 월나라의 정치가 어지럽고 병력이 약화된 이때가 좋은 기회라고 답하자 두자가 간했다.

‘신은 어리석지만 사람의 지혜라는 것이 눈과 같아서, 능히 백 걸음 밖을 내다볼 수는 있으나 가까이 있는 자기 눈썹은 보지 못합니다(臣愚患之智如目也 能見百步之外而 不能自見其睫/ 신우환지지여목야 능견백보지외이 불능자견기첩).’ 그러면서 초나라도 秦(진)과 晉(진)에 패배하여 수백 리의 영토를 잃었고, 莊蹻(장교, 蹻는 발돋움할 교)라는 도적이 날뛰고 있어도 막지 못하고 있는데 나라를 수습하는 것이 더 급하다고 했다. 그런데도 월나라를 정벌하려 하니 이것이야말로 지혜가 눈썹을 보지 못하는 눈과 다를 바가 없다(此智之如目也/ 차지지여목야)고 간곡히 말했다. 장왕은 월나라를 공격하려는 계획을 포기했다. 그래서 노자는 ‘자기 자신을 잘 보는 것을 밝음(自見之謂明/ 자견지위명)’이라 했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아유구용阿諛苟容 - 남에게 아첨하여 구차스럽게 얼굴을 꾸미다.

아유구용阿諛苟容 - 남에게 아첨하여 구차스럽게 얼굴을 꾸미다.

아유구용(阿諛苟容) - 남에게 아첨하여 구차스럽게 얼굴을 꾸미다.

언덕 아(阝/5) 아첨할 유(言/9) 구차할 구(艹/5) 얼굴 용(宀/7)

돈이나 권세 앞에, 또는 남의 환심을 사기 위해 알랑거리는 阿諂(아첨)은 누구나 배격한다. 윗자리에 있는 사람은 아부하는 사람을 싫어하고 불이익을 준다고 내세우고는 비위나 맞추는 부하를 좋아한다. 아랫사람도 알랑거리는 것과는 담을 쌓았다고 큰소리치지만 은연중에 상사가 듣기 좋은 말만 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인간은 아첨하는 동물’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자신도 모르게 힘 앞에 무력해지기 때문이다. 이런 것을 나타내는 말이 많은 것도 아첨을 조심하라는 말이겠다. 상관의 수염을 불어주고 변까지 맛본다는 拂鬚嘗糞(불수상분), 그름과 치질을 핥아준다는 吮癰舐痔(연옹지치), 말똥 위에서 무릎으로 긴다는 膝行馬矢(슬행마시) 등 여럿이다.

남에게 잘 보이려고(阿諛) 구차스럽게 얼굴을 꾸미는(苟容) 일도 孟子(맹자)가 아첨으로 여겨 가치를 두지 않았다. 滕文公(등문공) 하편에 실린 내용이다. 뛰어난 언변으로 제후들을 설득하는 변설가 景春(경춘)이란 사람이 맹자에게 公孫衍(공손연)이나 張儀(장의) 같은 종횡가가 진정한 대장부가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그들이 한번 성을 내면 제후들이 두려워하고, 가만히 있으면 천하가 조용하기 때문이라 했다. 그러나 맹자는 남자가 관례를 할 때나 여자가 시집을 갈 때 부모가 훈계를 한다면서 말을 잇는다. 반드시 공경하고 삼가서 뜻을 어기는 일이 없도록 ‘순종하는 것을 올바르다고 여기는 것은 아녀자의 도리(以順爲正者 妾婦之道也/ 이순위정자 첩부지도야)’라며 일축했다.

두 종횡가는 제후의 뜻을 따르기만 할 뿐 진정으로 보필하지 못했으므로 대장부가 될 수 없고 아녀자의 도에 불과하다고 했다. 朱熹(주희)의 ‘孟子集註(맹자집주)’에는 이들 두 사람을 ‘군주에 아첨하여 구차하게 꾸몄으니 권세를 절취한 것(蓋言二子阿諛苟容,竊取權勢/ 개언이자아유구용 절취권세)’이라 혹평했다.

‘史記(사기)’에는 趙(조)나라의 명장 廉頗(염파)가 자신의 식객들이 벼슬에서 물러나니 빠져나갔다가 권세를 찾으니 몰려들어 아부하는 것을 阿諛苟容이라 한탄했다고 나온다.

좋은 자리도 오래 가지 못하고 그것에 따라 몰려드는 아첨배들도 자기에 이득이 없어졌다 하면 언제든 빠져나갈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들이다. 꾸준히 자기 일만 하는 사람이 빛을 늦게 볼지는 몰라도 믿음을 주는 사람이다. 높은 자리의 상관이 진정 조직을 위한다면 어떤 사람을 두어야 할지는 답이 나와 있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세이공청洗耳恭聽 – 귀를 씻고 남의 말을 경청하다.

세이공청洗耳恭聽 – 귀를 씻고 남의 말을 경청하다.

세이공청(洗耳恭聽) – 귀를 씻고 남의 말을 경청하다.

씻을 세(氵/6) 귀 이(耳/0) 공손할 공(心/6) 들을 청(耳/16)

세상을 피해 산야에 묻혀 사는 隱者(은자)라 하면 대뜸 중국의 許由(허유)와 巢父(소보)를 먼저 떠올린다. 하지만 친구 사이라는 이들은 실제 인물이라기보다는 堯(요) 임금 때 살았다는 전설에만 나온다. 아비 父(부)는 어른 경칭일 땐 보. 許繇(허요, 繇는 성할 요)라고도 하는 허유는 임금 자리를 맡아달라는 소리에 귀가 더럽혀졌다며 귀를 씻었다(洗耳). 속세를 떠나 나무에서 살았다는 소보는 그런 귀를 씻은 강물을 자신의 소에게 먹일 수 없다고 하여 상류로 끌고 갔던 사람이다. 이렇게 하면 귀를 씻는다는 말이 세상과 완전 담을 쌓은 고집불통을 연상하나 여기에 공손히 듣는다(恭聽)란 말과 결합하려 쓰이면서 귀를 씻고 남의 말을 경청한다는 뜻으로 변했다.

西晉(서진)의 학자 皇甫謐(황보밀, 215~282, 謐은 고요할 밀)은 벼슬을 하지 않고 숨어 사는 학덕이 높은 선비들을 모아 ‘高士傳(고사전)’을 저술했다. 두 은자가 등장하는 내용을 보자. 沛澤(패택)이란 곳에서 살던 허유는 사람됨이 의리를 지키고 행동이 바르며 부정한 음식은 입에 대지도 않는 사람이었다. 성군 요임금이 이런 훌륭한 사람에게 왕위를 물려주려고 찾아가자 정치에 뜻이 없던 허유는 箕山(기산)이란 곳으로 숨었다. 요임금은 처음 허유가 겸손해서 그러는 줄 알고 다시 사람을 보내 九州(구주)의 장이라도 맡으라고 했다.

이 말을 듣고 허유는 한층 역겨워하면서 산 아래의 潁水(영수)라는 강가에 내려가 귀를 씻었다(由不欲聞之 洗耳於潁水之濱 /유불욕문지 세이어영수지빈). 濱은 물가 빈. 이 고장에 은거생활을 하던 친구 소보가 송아지를 끌고 와 물을 먹이려다 마침 이 모습을 보고 연유를 물었다. 허유의 이야기를 들은 소보는 쓸데없이 떠다니며 명예를 낚으려는 행동은 옳지 않다고 나무랐다. 강물에 귀를 씻었으니 송아지의 입이 더러워지겠다며 상류로 끌고 가서 물을 먹였다.

귀를 씻는다는 말이 경청하는 뜻으로 바뀐 것은 元(원)나라 이후 잡극에서 사용됐다. 작가 關漢卿(관한경)이 關羽(관우)에 대해 쓴 ‘單刀會(단도회)’에선 ‘군후께서는 말씀하십시오. 소관은 귀를 씻고 경청하겠습니다(請君侯試說一遍 下官洗耳恭聽/ 청군후시설일편 하관세이공청)’란 대사가 등장한다고 했다.

듣기 싫은 이야기를 듣고서 바로 의견을 내친다면 그 조직은 발전할 수 없다. 여러 사람의 의견을 두루 들으면 현명해진다는 兼聽則明(겸청즉명)이란 말도 있다. 특히 정치권에서 반대 측의 좋은 방안도 받아들여야 진정한 화합을 이루는 것임은 말할 필요가 없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인열폐식因噎廢食 - 목이 멘다고 식사를 끊다, 조그만 것을 두려워하여 큰일을 그만 두다.

인열폐식因噎廢食 - 목이 멘다고 식사를 끊다, 조그만 것을 두려워하여 큰일을 그만 두다.

인열폐식(因噎廢食) - 목이 멘다고 식사를 끊다, 조그만 것을 두려워하여 큰일을 그만 두다.

인할 인(囗/3) 목멜 열(口/12) 폐할 폐(广/12) 밥 식(食/0)

흔히 쓰는 트라우마(Trauma)란 말은 외상후 스트레스장애(PTSD; 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가 정식 이름이라 한다. 천재지변이나 전쟁, 신체적 폭행 등을 당했을 때 나타나는 정신적 장애를 가리킨다. ‘불에 놀란 놈이 부지깽이만 보아도 놀란다’는 우리 속담처럼 한 번 크게 혼난 뒤에는 모든 일에 지나치게 겁을 내거나 섣불리 나서지 못한다. 성어로도 제법 많은데 활에 상처 입은 새는 굽은 나무만 보아도 놀란다는 傷弓之鳥(상궁지조), 뜨거운 국에 혼이 난 사람은 시원한 냉채도 후후 불어서 마신다는 懲羹吹虀(징갱취제, 羹은 국 갱, 虀는 냉채 제)는 앞서 소개했다. 더운 吳(오)나라 소는 달을 보고도 해인 줄 알고 헐떡인다는 吳牛喘月(오우천월)도 재미있는 비유다.

밥을 먹다가 목이 막혀(因噎) 혼난 적이 있다고 해서 아예 식사를 끊는다(廢食)면 이보다 더하다. 조그만 장애를 걱정하여 중대한 일을 그만둔다는 어리석은 행위를 비유한 말이다. 똑 같은 말로 見噎廢食(견열폐식)이라고도 하고 급히 먹는 밥이 체한다는 뜻으로는 忙食噎喉(망식열후)로 쓴다. 一字千金(일자천금)으로 유명한 呂不韋(여불위)의 ‘呂氏春秋(여씨춘추)’에 이 비유가 사용됐다. 秦始皇(진시황)의 생부라고 하는 여불위가 학자들을 모아 편찬하여 呂覽(여람)이라고도 하는데 오자 한 글자라도 찾으면 천금을 주기로 했다는 그 책이다.

군대의 존폐에 관한 내용이 나오는 孟秋紀(맹추기)의 蕩兵(탕병)편 내용을 보자. ‘음식을 먹다가 음식물이 목구멍에 걸려 죽은 사람이 있다고 해서 세상의 모든 음식물을 없애려고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夫有以噎死者 欲禁天下之食悖/ 부유이열사자 욕금천하지식패).’ 비유를 한 가지 더 들면서 군대 이야기가 나온다. 배를 타고 가다 물에 빠져 죽은 사람이 있다고 천하의 배를 금지하는 것이 어리석고, 군대를 동원하여 전쟁을 하다 나라를 잃게 된 사람이 있다고 군대 자체를 없앤다면 어리석은 일이다. 군대는 마치 물과 불을 이용하는 것과 같아 잘 다루면 복을 가져 오고 잘못 다루면 재앙을 가져 오는 것과 같다고 했다.

악독한 범죄를 소탕한다고 저지른 사람마다 사형을 시킨다면 히틀러의 인종 말살과 같다. 그래서 경중을 따라 뉘우칠 기회를 주고 사회에 복귀시킨다. 정의에 합당하고 원칙에 맞는 일이라고 예외도 없이 밀어 붙이다가 조그만 일이 어긋나 전체의 불만을 사는 일이 있다.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글까’하며 밀어 붙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빈대 잡다 초가삼간 다 태우면 헛일이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일반천금一飯千金 - 밥 한 그릇에 천금으로 갚다, 후한 보답

일반천금一飯千金 - 밥 한 그릇에 천금으로 갚다, 후한 보답

일반천금(一飯千金) - 밥 한 그릇에 천금으로 갚다, 후한 보답

한 일(一/0) 밥 반(食/4) 일천 천(十/1) 쇠 금(金/0)

남에게 은혜를 입고서 그것을 잊지 않으려 白骨難忘(백골난망)하고 또 그것을 갚기 위해 結草報恩(결초보은)하는 사람은 드문 모양이다. 은혜를 곧잘 잊는 말이 많고 심지어 해를 끼치는 일도 많다. ‘사람은 구하면 앙분을 하고 짐승은 구하면 은혜를 한다’는 말은 은혜를 원수로 갚는 짐승보다 못한 인간을 꼬집었다. 怏憤(앙분)은 분하게 여겨 앙갚음 한다는 말이다. 성어로도 물고기를 잡은 뒤 통발의 고마움을 잊는다는 得魚忘筌(득어망전)은 해를 끼치지는 않지만, 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를 삶는다는 兎死狗烹(토사구팽)이 은혜를 원수로 갚는 비유다.

조그만 호의에도 크게 보답한 예가 밥 한 그릇(一飯)을 대접받고 훗날 천금으로 갚았다(千金)는 이 성어다. 一飯之恩(일반지은), 漂母之惠(표모지혜)라고도 하는 이 말은 韓信(한신)에서 유래했다. 秦(진) 말기 淮陰(회음)이란 지역에서 무위도식하던 한신은 당시의 촌장 집에서 눈칫밥을 먹다 자신이 생각해도 한심했던지 그 집에서 떠났다. 그래 봤자 특별한 재주도 없던 그는 성 밖의 淮水(회수)에서 낚시로 세월을 보냈다. 강가에서 빨래를 하던 한 아낙이 굶주린 한신을 보고 며칠간 밥을 먹여주었다. ‘한신이 감지덕지하여 후일 꼭 보답하겠다(信喜 謂漂母曰 吾必有以重報母/ 신희 위표모왈 오필유이중보모)’고 하자 아낙네는 주제를 알고 그런 소리는 하지도 말라고 무안을 줬다.

한신은 처음 項羽(항우)의 수하로 있다가 자신의 계책을 알아주는 劉邦(유방)의 밑으로 가서 대장군으로 활약, 漢(한)나라를 세우는데 큰 공을 세운다. 후일 고향 회음에 봉국을 얻어 楚王(초왕)에 봉해진 한신은 자신에게 밥을 주었던 빨래터 아낙네를 찾아 천금을 주었고, 눈칫밥이나마 주던 촌장 집 여주인에겐 백금을 내렸다(後信爲楚王 召所從食漂母 賜千金 及下鄕南昌亭長 賜百錢/ 후신위초왕 소소종식표모 사천김 급하향남창정장 사백전). ‘史記(사기)’ 淮陰侯(회음후) 열전에 실려 있다.

작은 은혜를 기억하는 사람만이 큰 보답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도 한신과 달리 ‘물에 빠진 놈 건져 놓으니까 내 봇짐 내라 한다’는 말대로 남에게 은혜를 입고서도 그 고마움을 모르고 생트집을 잡는 예를 자주 본다. 크게는 온갖 구실로 모든 물자를 받아놓고 도발을 일삼았던 북의 소행이 있다. 수하에 있을 때 온갖 권세를 휘두르다 끈 떨어지자 돌아서서 총을 겨눈다. 옛말이 그르지 않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소훼난파巢毁卵破 – 새집이 부서지면 알도 깨진다.

소훼난파巢毁卵破 – 새집이 부서지면 알도 깨진다.

소훼난파(巢毁卵破) – 새집이 부서지면 알도 깨진다.

새집 소(巛/8) 헐 훼(殳/9) 알 란(卩/5) 깨뜨릴 파(石/5)

보호해 주던 울타리가 없어지면 그 안에서의 생활이 당연히 평안할 수가 없다. 마찬가지로 처마 끝의 새 보금자리가 훼손된다면(巢毁) 그 안에 있던 알도 안전 할 수 없이 깨진다(卵破). 국가나 사회에 불행이 닥치면 그 보호 아래서 생활하던 구성원들도 그것을 피할 수 없다. 그런데 이럴 때 모두의 운명으로 감수하거나, 힘을 합쳐 그 난관을 이겨나가는 경우가 있는 반면 자기 살 길을 찾아 뿔뿔이 흩어지는 各自圖生(각자도생)이 있겠다. 이 경우는 나무가 쓰러지면 그곳서 깃들여 살던 새가 날아간다는 樹倒鳥飛(수도조비), 원숭이도 흩어진다는 樹倒猢猻散(수도호손산)이란 말이 따로 있다.

엎어진 새집 밑에는 온전한 알이 없다는 覆巢無完卵(복소무완란)와 똑 같은 뜻의 이 성어는 중국 後漢(후한) 말기의 학자 孔融(공융, 153~208)과 그 자녀 이야기에서 나왔다. 孔子(공자)의 20세손이자 문필에 능하여 建安七子(건안칠자)의 한 사람으로 일컬어지는 공융은 마지막 14대 獻帝(헌제) 때 北海(북해)에서 벼슬을 하며 학교를 세우고 유학을 가르쳤다. 당시 세력을 떨치고 있던 曹操(조조)가 일찍이 황제의 자리를 노리고 있는 야심을 간파하고 공융이 여러 번 견제하며 멀리했다. 조조도 이런 공융에게 반감을 품고 벼르고 있었다.

뒷날 조조가 劉備(유비)와 孫權(손권)을 정벌하기 위해 50만 대군을 일으키자 공융이 이를 반대하며 불평을 늘어놓았다. 이것을 듣게 된 조조가 화가 나 조정을 비방했다는 죄목으로 그를 체포하여 사형에 처하도록 했다. 공융이 잡혀가던 날 9세와 7세 된 자녀가 태연히 바둑을 두고 있었다. 사람들은 아이들이 아직 어려 큰 일이 닥칠 것을 모르고 있다고 생각하고 빨리 피신하라고 일렀다. 하지만 자녀들은 조금도 겁내지 않고 ‘새 둥지가 뒤집히는 판인데 어찌 알이 깨지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安有巢毁而卵不破乎/ 안유소훼이란불파호)’라며 바둑을 계속했다고 한다. 조조는 공융과 함께 자녀도 둘 수 없다고 생각하고 모두 처형했다. ‘後漢書(후한서)’ 공융전에 실려 전한다.

나라나 작은 집단이나 불행이 닥치지 않도록 모두 합심해야 한다. 공융의 자녀도 이렇게 지켜주던 부친과 함께 운명을 같이 하는데 보호막이 걷혀지면 제 살길을 찾아 흩어지는 경우를 자주 본다. 특히 정치이념으로 뭉친 정치권에서 상황이 변하면 제 이익을 찾아 離合集散(이합집산)하는 꼴불견은 최근에도 본 바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임심조서林深鳥棲 - 숲이 우거져야 새가 깃든다, 덕을 쌓아야 사람이 모인다.

임심조서林深鳥棲 - 숲이 우거져야 새가 깃든다, 덕을 쌓아야 사람이 모인다.

임심조서(林深鳥棲) - 숲이 우거져야 새가 깃든다, 덕을 쌓아야 사람이 모인다.

수풀 림(木/4) 깊을 심(氵/8) 새 조(鳥/0) 깃들일 서(木/8)

자기에게 덕망이 있어야 사람들이 따르게 된다. ‘물이 깊어야 고기가 모인다’는 말이나 ‘숲이 깊어야 도깨비가 나온다’는 속담대로다. 숲이 우거져야(林深) 새가 깃든다(鳥棲)는 이 성어도 마찬가지다. 사람이 덕을 쌓으면 저절로 만물이 모이고 일이 순조롭다는 뜻이다. 孔子(공자)가 말한 ‘공손하면 업신여김을 받지 않고, 너그러우면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얻는다(恭則不侮 寬則得衆/ 공즉불모 관즉득중)’이란 가르침도 사람과의 관계를 강조한 것이다. 다만 물이 너무 맑으면 큰 고기가 살지 않는다는 水淸無大魚(수청무대어)는 지나치게 엄격하면 오히려 멀리 하게 되니 조화를 갖춰야 한다는 말이겠다.

唐(당)나라 2대 太宗(태종)이 되는 李世民(이세민)은 隋(수)나라 말기 혼란한 틈을 타 부친 李淵(이연)을 도와 군사를 일으키고 통일을 실현시켰다. 자신의 공이 큼에도 왕위를 둘러싸고 왕자의 난을 일으킨 끝에 형과 동생을 황궁의 북문인 玄武門(현무문)에서 살해한 끝에 즉위했다. 피비린내 나는 쟁탈전으로 올랐지만 태종은 명신들의 의견을 받아들이고 백성을 위하며 공정한 정치를 펼쳐 그의 치세는 貞觀之治(정관지치, 626∼649)라 칭송받는다. 태종이 신하들과 주고받은 내용을 6대 玄宗(현종)때 吳兢(오긍)이 정리한 ‘貞觀政要(정관정요)’는 제왕학의 교과서라며 중시했다.

이 책의 仁義(인의)편에 공자의 인과 의를 통치의 기반으로 인식한 태종이 신하들에게 말하는 내용이 실려 있다. ‘숲이 울창하면 새가 깃들고, 수면이 넓으면 물고기가 노닐며, 인의가 두터우면 백성들이 즐거운 마음으로 따를 것이오(林深則鳥棲 水廣則魚遊 仁義積則物自歸之/ 임심즉조서 수광즉어유 인의적즉물자귀지).’ 인의의 길은 항상 마음에 담고서 끊임없이 생각해야 하며, 덕이 충만하면 사람뿐만 아니라 만물이 제자리로 귀의한다고 했다.

정권이 바뀌면 의욕을 갖고 새로운 정책을 실천하려 전력을 기울인다. 하지만 몇몇의 정치 지도자가 원칙만 갖고서 밀어붙인다면 반감을 사게 된다. 반대 측의 의견도 받아들이면서 순리에 따라 집행한다면 국민의 마음을 얻는다. 덕을 쌓으면 일이 순조로운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입추지지立錐之地 - 송곳 하나 세울 만한 땅, 조금의 여유도 없음

입추지지立錐之地 - 송곳 하나 세울 만한 땅, 조금의 여유도 없음

입추지지(立錐之地) - 송곳 하나 세울 만한 땅, 조금의 여유도 없음

설 립(立/0) 송곳 추(金/8) 갈 지(丿/3) 따 지(土/3)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어서 집이나 땅이나 많이 가질수록 좋다고 여긴다. ‘사람에게는 얼마나 많은 땅이 필요한가’라는 톨스토이(Leo Tolstoy)의 단편이 있다. 비슷한 내용의 이야기가 우리 설화에도 있다. 최고의 땅 부자가 되고 싶은 욕심쟁이에게 보이는 땅 전부를 가지라고 한다. 단 조건이 해가 지기 전에 출발점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것이다. 죽을 뚱 살 뚱 안간힘을 다해 뛰었지만 돌아와서 쓰러지고 만다. 그리고선 한 평도 안 되는 땅에 묻혔다. 돌아갈 때 필요한 땅은 한 평에 불과하다. 아니 화장이 대중화된 요즘은 그 땅도 필요하지 않다.

송곳의 날카로운 끝을 세울(立錐) 땅도 없다는 말은 물론 과장이지만 매우 좁아 조금의 여유도 없음을 이르는 말이다. 발 들여놓을 데가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꽉 들어찬 경우를 비유하기도 한다. 置錐之地(치추지지), 彈丸之地(탄환지지)라고도 한다. 司馬遷(사마천)은 뛰어난 기지와 해학으로 인간의 어리석음을 깨우친 인물들을 ‘史記(사기)’의 滑稽(골계)열전에 모았다. 春秋時代(춘추시대) 楚(초)나라 莊王(장왕)때에 풍자에 능했던 배우 優孟(우맹)이라는 사람의 이야기에 성어가 나온다.

우맹의 재주와 인품을 알고 당시의 청렴했던 재상 孫叔敖(손숙오, 敖는 거만할 오)는 그를 따뜻이 대해 주었다. 얼마 뒤 손숙오가 죽게 되자 아들들에게 어려울 때 우맹을 찾으라고 했다. 남긴 재산이 없어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워지자 아들들은 우맹을 찾았다. 이들의 모습을 보고 우맹은 손숙오의 생전 모습을 하고 장왕을 찾았다. 죽은 손숙오가 살아 돌아온 것으로 여겼던 장왕은 재주 좋은 우맹을 재상으로 삼으려 했다. 다음날 우맹이 말했다. ‘초나라의 재상을 지내고서도 그 아들은 송곳조차 세울 땅이 없어, 땔나무를 져서 끼니를 해결하고 있습니다(其子無立錐之地 貧困負薪以自飲食/ 기자무립추지지 빈곤부신이자음식)’면서 재상직을 거절했다. 장왕이 크게 깨닫고 손숙오의 아들들에게 400호를 하사했다.

비유가 적합해서인지 많은 고전에서 이 말이 인용됐다. 그래도 실생활에선 욕심이 넘쳐난다. 수십억 원하는 집을 여러 채 갖고서 더 사들이려 하고, 졸부로 만들어준 땅도 기회만 되면 늘리려 한다. 온갖 규제도 무위로 만드니 재주가 좋은 사람들이다. 하지만 空手來空手去(공수래공수거), 그 많은 재산을 갖고 떠나는 재주는 갖고 있지 못할 터인데 괜히 걱정이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