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6일 수요일

새옹지마塞翁之馬 - 새옹이 기르던 말, 길흉화복이 바뀜

새옹지마塞翁之馬 - 새옹이 기르던 말, 길흉화복이 바뀜

새옹지마(塞翁之馬) - 새옹이 기르던 말, 길흉화복이 바뀜

변방 새, 막힐 색(土-10) 늙은이 옹(羽-4) 갈 지(丿-3) 말 마(馬-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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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늘 돌고 돈다. 음지가 양지 되고 양지가 음지 된다는 말이 있다. 운이 나쁜 사람이 좋은 수를 만날 수 있고, 운이 좋은 사람도 어려운 시기가 닥친다. 轉禍爲福(전화위복)에서 말한 대로 이런 뜻을 가진 가장 잘 알려진 성어는 인간만사는 새옹지마라 할 때 쓰는 이 말이다. 塞翁(새옹)이란 노인이 기르던 말이 주인에게 화도 가져 오고 그것이 또 복으로 바뀐다. 이것을 통해 吉凶禍福(길흉화복)은 항상 변화가 많아 예측하기 어려우니 한 때의 일로 一喜一悲(일희일비)하지 말라는 교훈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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淮南王(회남왕) 劉安(유안)은 다양한 주제의 淮南子(회남자)란 책을 남겼다. 처세훈을 담은 人生訓(인생훈)에 나오는 유명한 얘기를 요약해 보자. 옛날 만리장성 변경에 점을 잘 치는 한 노인이 살았다. 사람들은 그를 塞上老人(새상노인) 또는 塞翁(새옹)이라 불렀다. 어느 날 새옹이 기르던 말 한 마리가 오랑캐 땅으로 도망쳤다. 동네 사람들이 위로하자 복이 될지 모른다고 태연했다. 과연 몇 달 뒤 말이 준마를 데리고 돌아오니 이번에는 사람들이 축하했다. 하지만 화가 될지 모른다며 기뻐하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노인의 아들이 준마를 타다 떨어져 다리가 부러졌고 사람들이 위로하니 또 모르는 일이라 했다. 얼마 지나 오랑캐들이 쳐들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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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장정들이 전장으로 소집돼 열에 아홉은 죽었지만 다리 다친 노인 아들은 면제돼 무사했다. 그러면서 덧붙인다. 복이 화가 되고 화가 복이 되는 등 변화는 끝이 없고 그 깊이는 예측할 수가 없다(福之爲禍 禍之爲福 化不可極 深不可測也/ 복지위화 화지위복 화불가극 심불가측야). 禍福如糾纆(화복여규묵, 纆은 노끈 묵)이란 약간 어려운 말도 같은 뜻이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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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사불이誓死不二 - 맹세와 죽음은 다르지 않다, 죽어도 결심을 바꾸지 않다.

서사불이誓死不二 - 맹세와 죽음은 다르지 않다, 죽어도 결심을 바꾸지 않다.

서사불이(誓死不二) - 맹세와 죽음은 다르지 않다, 죽어도 결심을 바꾸지 않다.

맹세할 서(言/7) 죽을 사(歹/2) 아닐 불(一/3) 두 이(二/0)

‘옳은 것은 옳다고 하고, 그른 것은 그르다고 하는 것이 바로 정직(是謂是 非謂非 曰直/ 시위시 비위비 왈직)’이란 말이 있다. 중국 고전 荀子(순자)에 나오는 말이다. 어린애도 알 수 있는 이 말이 더 어려운 것은 바른 말을 하는 것도 어려울뿐더러 남을 판단하는 것은 더 어렵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은 완전하지 못하면서 남과 비교하거나 판단하는 것은 모든 것이 부족한 사람이란 말이 있다. 그러니 남의 운명을 바꿀지도 모르는 재판은 그 중요성이 무엇보다 더하다. ‘돈에 따라 흑을 백으로 바꾸는 기술‘이란 혹평이 따르더라도 자신이 잘못내린 판결로 목숨까지 끊는 이야기에는 숙연함이 더한다.

한번 서약했으면 죽어도 바뀔 수 없다. 죽어도 결심을 바꾸지 않는다면 그 의지가 결연함을 보여준다. ‘史記(사기)’ 循吏(순리)열전에 나오는 春秋時代(춘추시대) 晉(진)나라 李離(이리)란 사람이 그러했다. 文公(문공)때 형벌에 관한 일을 심리하는 獄官(옥관)이었던 이리는 공정한 일 처리로 이름났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규정에 따라 똑 같이 죄를 따지고 벌을 주었다. 어느 때 이리는 사건 기록을 살피다 부하의 보고만 믿고 자신이 잘못 판결하여 무고한 사람을 처형한 것을 발견했다. 그것은 사형에 해당되는 죄였다.

이리는 부하들에게 자신을 포박하여 왕에게 데려가도록 했다. 문공은 이리에게 부하 관리가 잘못했다고 하여 상관이 죄가 되는 것은 아니라며 그렇다면 왕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했다. 그래도 이리는 조금도 굽히지 않고 ‘잘못 판결한 죄는 자신의 죄이며, 무고한 사람을 사형시킨 것은 자신도 사형입니다(失刑則刑 失死則死/ 실형즉형 실사즉사)’라 말하며 칼에 엎드려 목숨을 끊고 말았다. 잘못 판결했더라도 죽음으로 규정을 지킨 의지의 이리에게서 서약과 죽음(誓死)이 다르지 않다(不二)는 말이 나왔다.

우리나라서도 이에 못지않은 사람이 있다. 조계종 종정을 역임했던 曉峰(효봉)스님이다. 그가 일제 강점기 때 법관을 하던 중 한 피고인에 사형을 내렸다가 심한 가책과 회의감을 느끼고 엿장수로 유랑 걸식하다 출가했다 한다. 독립된 법관이 정치의 눈치를 본다거나 상급 행정처의 협조 요청에 응한 판결이라며 거센 항의를 받는 일이 있어 시끄러웠다. 재판이 미치는 영향을 생각하여 법관이 소신을 굳게 지키는 판결만 있어야겠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설선단겸薛宣斷縑 - 설선이 비단을 끊다, 잘잘못을 명확히 하다.

설선단겸薛宣斷縑 - 설선이 비단을 끊다, 잘잘못을 명확히 하다.

설선단겸(薛宣斷縑) - 설선이 비단을 끊다, 잘잘못을 명확히 하다.

성 설(艹/13) 베풀 선(宀/6) 끊을 단(斤/14) 합사비단 겸(糸/10)

사람이 모여 살다보면 다툼이 생기고 재판까지 가는 訟事(송사)가 생긴다. 誓死不二(서사불이)같이 추상같이 규정대로만 판결하면 억울함이 덜 하겠지만 ‘한편 말만 듣고 송사 못 한다’는 말대로 시비 가리기는 어렵다. 모두 자기만 옳고 재판에 이기기 위해 거짓과 모략까지 동원하니 말이다. 간혹 명판결과 명판관 이야기도 따른다. 孔子(공자)는 제자 子路(자로)를 몇 마디 말로써 공정한 판결을 내릴 수 있는 인물이라며 片言折獄(편언절옥)이라 했다. 이스라엘의 솔로몬(Solomon)은 한 아이를 두고 두 여자가 서로 어머니라고 주장하는 송사를 명쾌히 해결해 지혜의 왕이 되었다.

중국에서 어려운 송사를 슬기롭게 해결한 재판 기록집 중에 宋(송)나라 鄭克(정극)이 편찬한 ‘折獄龜鑑(절옥귀감)’이 있다. 고대부터의 주요사건을 망라하고 있다. 절옥은 역적이나 살인범 등의 중범죄를 다스려 처리하던 일을 가리킨다. 薛宣(설선)이란 사람이 비단을 끊었다(斷縑)는 사건도 그 중 하나이다. 五代(오대) 때 和凝(화응) 부자가 엮은 ‘疑獄集(의옥집)’에도 같은 사건을 다루고 있는데 斷縑追聽(단겸추청)이란 제목이다. 비단을 끊어 범인을 잡은 이야기를 보자.

前漢(전한)시대 설선이 태수로 있던 臨淮(임회)란 곳에서 있었던 일이다. 한 사람이 비단을 팔기 위해 장으로 가던 중 소낙비를 만났다. 근처 인가가 없어 비단을 펼쳐 비를 피했다. 한 사나이가 흠뻑 젖은 채 같이 피하자고 애걸하여 허락했다. 비가 개어 갈 길을 떠날 때 시비가 벌어졌다. 비를 피하게 해 준 사나이가 비단이 자기 것이라며 우겼다. 할 수 없이 비단 장수는 태수를 찾아갔다. 설선은 ‘아전을 불러 비단을 반으로 자르게 한 뒤 미행하게 해 이야기를 듣게 했다(呼騎吏中斷縑 人各與半 使追聽之/ 호기리중단겸 인각여반 사추청지)’. 비단 장수는 반을 뺏겨 불만을 늘어놓았고 사나이는 싱글벙글했다. 설선은 사나이를 잡아 족쳐 범행을 자백 받았다.

‘물에 빠진 놈 건져 놓으니까 내 봇짐 내라 한다’는 속담과 같이 이 사나이는 뻔뻔한 거짓말을 했다. 어느 편이 명백한 잘못이 있을 때도 이처럼 시비가 커지는데 대부분의 사건은 잘잘못이 아리송하고 뒤엉킨 경우가 많다. 억울한 일이 없도록 가려주는 현명한 판관이 많아야 정의사회가 실현된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수기치인修己治人 - 자신을 닦고 남을 다스린다.

수기치인修己治人 - 자신을 닦고 남을 다스린다.

수기치인(修己治人) - 자신을 닦고 남을 다스린다.

닦을 수(亻/8) 몸 기(己/0) 다스릴 치(氵/5) 사람 인(人/0)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닦고(修己) 그 뒤에 남을 다스린다(治人)는 이 말은 수양을 위해 좋은 뜻을 가졌다. 이 성어는 대뜸 修身齊家(수신제가) 또는 자세히 修身齊家治國平天下(수신제가치국평천하)를 떠올린다. 먼저 몸과 마음을 닦아 수양하여 집안을 안정시킨 후에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평정한다는 뜻이다. 큰 뜻을 가진 사람들, 꼭 나라를 위해 자기의 꿈을 펼치지 않을 사람도 부단히 인격을 수양하여 사회에 이바지하게 되는 셈이니 나쁠 것이 없다.

이 말이 나오는 ‘大學(대학)’은 四書(사서)에 들어가는 유교의 주요 경전이다. 원래 禮記(예기)에 포함되어 있던 것을 독립시켰다. 孔子(공자)의 가르침을 曾子(증자)와 그 제자들이 기술했다 하고 朱子(주자) 등 후세의 학자들이 깊이 연구했다. 선비들이 갖춰야 할 철학과 덕목을 담고 있어 중시했던 이 책의 첫 머리를 보자. ‘큰 학문의 길은 밝은 덕을 밝히는 데 있고, 백성을 올바로 이끌어 새롭게 함에 있으며, 이런 것들을 지극히 훌륭한 경지에 이르도록 하는 데 있다(大學之道 在明明德 在親民 在止於至善/ 대학지도 재명명덕 재친민 재지어지선).’

이것을 三綱領(삼강령, 明明德, 親民, 止於至善)이라 부르고 삼강령을 실천하기 위한 것이 八條目(팔조목)이다. 예기의 편명으로 있었을 때는 없었다가 사서의 하나로 격상될 때 사용됐다고 한다. 팔조목은 格物致知(격물치지), 正心誠意(정심성의), 修身齊家(수신제가), 治國平天下(치국평천하)를 말한다. 사물의 이치를 알아 뜻과 마음이 바르게 되어야만 마음이 닦이고 가정이 다스려진 이후에 나라가 잘 다스려지면 천하가 평화롭다는 뜻이다.

몸을 닦는다는 말은 쉽고도 어렵다. 대학에서 말하는 것처럼 복잡한 단계를 알 필요는 없다. 단지 부지런히 자신과 남을 생각하고 솔선수범하여 가정을 평온히 한다. 정치 지도자들이 집안의 추문을 온 나라에 드러내 망신을 당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수신은 몰라도 제가가 실패했다. 그래도 얼굴을 들고 나온다면 유권자의 권리를 행사해야 한다. 나라를 다스리는 지도자부터 일반 국민에 이르기까지 집집마다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닦는 것을 근본으로 삼으면 모든 것이 순조롭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일모도원日暮途遠 - 날은 저물고 갈 길은 멀다.

일모도원日暮途遠 - 날은 저물고 갈 길은 멀다.

일모도원(日暮途遠) - 날은 저물고 갈 길은 멀다.

날 일(日/0) 저물 모(日/11) 길 도(辶/7) 멀 원(辶/10)

해는 뉘엿뉘엿 저물어 오는데(日暮) 갈 길이 멀다면(途遠) 조바심이 난다. 이 말이 쓰이는 데는 다양하다. 할 일은 많은데 마감은 다가오고 시간이 없어 쩔쩔맨다. 사업 계획은 세워 놓고 독촉 받는 실무자들도 똑 같다. 나이가 들어 살아갈 날이 얼마 없는데 해야 할 일은 많고 이룬 것은 별로 없는 노인이 이런 기분이다. 고사성어의 보고 ‘史記(사기)’에 나온다. 순리를 어기고 거꾸로 행했다는 倒行逆施(도행역시)의 유명한 말과 함께 복수의 화신 伍子胥(오자서) 열전이 출처다.

오자서는 楚(초)나라 平王(평왕) 밑에서 태자의 사부인 부친을 모시고 형과 함께 지냈다. 간신 費無忌(비무기)의 모함을 받고 부친은 옥에 갇히고 태자는 망명했다. 후환이 두려운 비무기는 음모를 꾸며 오자서 형제에게 자진 출두하면 부친을 살려 주겠다고 했다. 자수한 형과 함께 부친은 죽음을 당했고 오자서는 복수를 기약하며 宋(송)나라를 거쳐 吳(오)나라로 피신했다. 세월이 흘러 5년, 평왕이 죽고 더욱 권세를 떨치던 비무기도 내분의 와중에 죽음을 당하고 말았다.

不俱戴天(불구대천)의 두 사람을 노리던 오자서는 오나라 闔閭(합려)가 왕위를 차지하자 그를 도와 초나라 정벌에 나섰다. 수도를 함락시킨 뒤 원수를 찾았으나 이미 죽은 뒤라 평왕의 무덤을 파헤치고 뼈를 들춘 뒤 시체에 300대의 매질을 가했다. 이 소식을 들은 옛날 친구 申包胥(신포서)가 편지를 써서 너무 잔인한 복수라고 꾸짖었다. 그러자 오자서는 ‘해는 지고 갈 길은 먼데 도리에 어긋난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吾日暮途遠 故倒行而逆施之/ 오일모도원 고도행이역시지)’라고 변명했다.

오자서의 집념은 사후에도 계속된다. 합려가 죽고 실권을 잡은 그 아들 夫差(부차)가 모함에 빠져 오자서에 자결을 명했다. 오자서는 망하는 모습을 보겠다며 눈알을 도려내 성문에 걸어달라고 당부하고는 자결했고 오나라는 과연 그의 말대로 패망했다. 司馬遷(사마천)은 고초를 이겨 공명을 이룬 대장부라고 의외로 그를 높이 평했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실언실인失言失人 – 말을 잘 못하고, 할 때 말을 않아 사람을 잃는다.

실언실인失言失人 – 말을 잘 못하고, 할 때 말을 않아 사람을 잃는다.

실언실인(失言失人) – 말을 잘 못하고, 할 때 말을 않아 사람을 잃는다.

잃을 실(大/2) 말씀 언(言/0) 잃을 실(大/2) 사람 인(人/0)

말은 하기도 어렵고 안 하기도 어렵다. 말이 입에서 떨어지는 순간 모든 재앙이 그로부터 나온다고 口禍之門(구화지문)이나 禍生於口(화생어구)란 말이 겁을 준다. ‘침묵은 금’이라며 알고 있는 것이라도 굳이 입 밖에 내지 않는 것을 높이 쳤다. 그러니 장부의 한 마디 말이 값지다며 丈夫一言 重千金(장부일언 중천금)이라고 말조심을 시켰다. 그러나 이 말은 말을 해야 할 때는 해야 가치를 발휘한다고도 볼 수 있다. 불의를 보고도 꾹 참는 것은 噤若寒蟬(금약한선)이란 말대로 찬바람 맞은 매미처럼 볼품없는 법이다.

실수로 말을 잘못하는 失言(실언)은 사람들이 평시에 자주 한다. 무심중에 하지 않을 말을 불쑥 하면 실언이고, 상대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실례되는 말을 한 것도 실언이다. 孔子(공자)는 말할 만한데도 하지 않는 것을 포함하여 모두 실언이라며 그렇게 하면 결국 失人(실인), 사람을 잃게 만든다고 가르쳤다. 衛靈公(위령공)편에 있는 내용을 보자. ‘더불어 말을 할 만한데도 그와 말을 하지 않으면 사람을 잃을 것이고(可與言而不與之言失人/ 가여언이불여지언실인), 더불어 말하지 않아야 할 때인데도 그와 말을 하면 말을 잃는다(不可與言而與之言失言/ 불가여언이여지언실언), 지혜로운 사람은 사람을 잃지도 않고 말을 잃지도 않는다(知者不失人 亦不失言/ 지자불실인 역불실언).’ 말을 할 때하지 않거나, 하지 않아야 할 때 헛소리를 하다간 친구라도 벌어질 수밖에 없다.

‘韓非子(한비자)‘에도 유세의 어려움을 말한 說難(세난)에서 이렇게 말한다. ’간단하게 줄여 말하면 지혜롭지 못하다 하고, 쌀 소금처럼 상세하게 주장을 펴면 말만 많다고 평가한다(徑省其說則 以爲不智而拙之 米鹽博辯則 以爲多而交之/ 경성기설즉 이위부지이졸지 미염박변즉 이위다이교지).‘ 자칫하면 실언이 되니 어려울 수밖에 없다.

말은 입 밖에 나오면 주워 담을 수 없다. 말이 직업인 사람들이 걸핏하면 설화를 입는다. 그러니 하기 전에 두 번 생각하고 조심해야 한다. 말이 많으면 쓸 말이 적다고 했으니 꼭 해야 할 때를 잘 가려 최소한의 말만 해야 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 제공 : 안병화(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수석침류漱石枕流 - 돌로 양치질하고 흐르는 물로 베개 삼다, 잘못을 인정 않고 억지 쓰다.

수석침류漱石枕流 - 돌로 양치질하고 흐르는 물로 베개 삼다, 잘못을 인정 않고 억지 쓰다.

수석침류(漱石枕流) - 돌로 양치질하고 흐르는 물로 베개 삼다, 잘못을 인정 않고 억지 쓰다.

양치할 수(氵/11) 돌 석(石/0) 베개 침(木/7) 흐를 류(氵/7)

사람은 누구나 잘못을 저지른다. 알고도 잘못하는 사람은 적겠지만 모르는 사이에 잘못할 수도 있다. 그런데 자기의 큰 잘못은 넘어가고 남의 사소한 잘못만 눈에 띈다. 그래서 孔子(공자)도 잘못을 저지르고 이를 고치지 않는 것이 진짜 과오(過而不改 是謂過矣/ 과이불개 시위과의)라며 인간에게는 허물이 없을 수 없는데 이를 적게 하고 고치는 것이 도에 가까워지는 법이라고 했다. 하지만 성경에서 ‘형제의 눈에 있는 티끌을 보면서 자기 눈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 하는가’라고 깨우쳐도 어리석은 인간은 남의 탓만 한다.

돌로 이를 닦고(漱石) 흐르는 물을 베개 삼을 수(枕流)는 없다. 옛말을 인용하려다 잘못 거꾸로 말했는데 그것을 지적해도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그럴듯하게 꾸며댈 때 이 말을 쓴다. 일의 앞뒤가 맞지 않거나 남에게 지기 싫어서 자기 것만 옳다고 억지를 부리는 것을 빗대 사용하기도 한다. 牽强附會(견강부회)나 我田引水(아전인수)다.

西晉(서진, 서기265~316) 때의 孫楚(손초)라는 사람은 문학적으로 뛰어났고 임기응변에도 대단히 능했다. 성격이 시원시원했지만 오만하고 남을 우습게보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가 젊었을 당시 사대부 간에는 老莊(노장)의 철리를 중히 여겨 자연 속에 은둔하는 淸談(청담)이 유행했었다.

손초도 속세를 떠나기로 작정하고 친구인 王濟(왕제)를 찾아가 자신의 흉금을 토로했다. 그는 ‘돌을 베개 삼아 잠자고 흐르는 물로 양치질하며 심신을 닦으려 한다(枕石漱流/ 침석수류)’고 말한다는 것이 거꾸로 ‘돌로 양치질하고 흐르는 물로 베개 삼겠다’고 말했다. 친구가 잘못을 지적하자 흐르는 물을 베개로 삼으려는 것은 옛날 潁川(영천, 潁은 물이름 영)에서 귀를 씻은 許由(허유)처럼 쓸데없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귀를 씻기 위해서라고 억지 부렸다. ‘晉書(진서)’ 손초전과 ‘世說新語(세설신어)’ 排調(배조)편에 전한다. / 제공 : 안병화(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성하지맹城下之盟 - 성 밑에서 적군과 맺는 맹약, 적과 맺는 굴욕적 맹약

성하지맹城下之盟 - 성 밑에서 적군과 맺는 맹약, 적과 맺는 굴욕적 맹약

성하지맹(城下之盟) - 성 밑에서 적군과 맺는 맹약, 적과 맺는 굴욕적 맹약

재 성(土/7) 아래 하(一/2) 갈 지(丿/3) 맹세 맹(皿/8)

전쟁은 평화를 위해서 있다. 그러니 전쟁을 하지 않고 평화를 지키는 것이 최상이다. 孫武(손무)는 孫子兵法(손자병법)에서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최상이라고 했다. 非危不戰(비위부전), 위기가 아니면 싸우지 않아야 하지만 부득이하게 싸울 때가 왔다면 존망이 걸려 있으니 이겨야 한다. 兵不厭詐(병불염사)란 말이 있듯이 어떤 속임수를 쓰더라도 이기면 비난받지 않는다. 성을 굳게 지키다 속임수에 빠져 무너지고 성 아래(城下)에서 굴욕적인 맹약(之盟)을 맺는 것과는 비교될 수 없다.

春秋時代(춘추시대) 강대한 楚(초)나라의 침략을 받은 작은 絞(교)나라는 상대가 되지 않는 것을 잘 알았다. 초군이 도성의 남문까지 육박해 오자 성문을 굳게 닫고 籠城(농성)작전을 펼치며 밖으로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장기전으로 들어가자 초나라 진중에 屈瑕(굴하)라는 사람이 초군 장수에게 계책을 말했다. 교나라 사람들이 경솔하고 지략이 부족하므로 유인책을 건의했다. 먼저 나무하는 초부들을 병사 호위 없이 보내면 교나라 병사들이 성 밖으로 나와 잡아갈 것이라 했다.

초의 장수가 실행했더니 과연 교나라 군사들이 초부들을 30명이나 붙잡아 갔다. 다음번에는 초의 병사들을 나무꾼으로 변장시켜 나무하게 했더니 역시 교나라 사람들이 다투어 나와 산중으로 추격했다. 이때 미리 ‘매복해 있던 초나라 군사들이 도성의 북문을 막고 교의 군사들을 크게 쳐부순 다음 성벽 아래에서 맹약을 맺고 돌아갔다(楚人坐其北門 而覆諸山下 大敗之 爲城下之盟而還/ 초인좌기북문 이복제산하 대패지 위성하지맹이환)’. 병사를 나무꾼으로 변장시켜 木馬(목마)작전으로 성공한 셈이다. ‘左氏傳(좌씨전)’ 桓公(환공) 12년조에 실려 있는 이야기다.

계략에 넘어간 교나라가 대패하고 성벽 아래에서 맺은 맹약은 굴욕적인 것을 의미하게 됐다. 총성 없는 전쟁이라는 오늘날의 외교전에서도 국력의 차이와 지략의 유무에 따라 희비가 엇갈린다. 전번 세계의 이목을 끌었던 싱가포르의 미국과 북한 정상회담에서도 벼랑 끝 전술을 펼치다 황급히 거둬들이는 등 치열한 대결을 펼쳤다. 성벽 아래에 있었던 나라는 해석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세성기호勢成騎虎 - 호랑이를 타고 다니는 기세, 어쩔 수 없는 위험에 빠짐

세성기호勢成騎虎 - 호랑이를 타고 다니는 기세, 어쩔 수 없는 위험에 빠짐

세성기호(勢成騎虎) - 호랑이를 타고 다니는 기세, 어쩔 수 없는 위험에 빠짐

형세 세(力/11) 이룰 성(戈/3) 말탈 기(馬/8) 범 호(虍/2)

사나운 호랑이의 등에 타게 됐다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 달리는 호랑이의 등에서 뛰어내릴 수도 없고, 끝까지 간다 해도 죽은 목숨이다. 이처럼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경우는 騎虎難下(기호난하) 또는 騎虎之勢(기호지세)라는 성어로 잘 알려져 있다. 중국 南北朝(남북조, 221∼589년)시대 말기 혼란스러울 때 정권을 잡은 楊堅(양견)이 우물쭈물하자 부인 獨孤(독고)씨가 말을 탄 기세라며 황위에 오르도록 부추긴 데서 나왔다. 고려 太祖(태조) 王建(왕건)이 난폭한 弓裔(궁예)의 휘하에 있을 때 역시 神惠(신혜)왕후가 장수들의 추대를 받아들이라며 이 말을 썼다고 한다.

호랑이를 타고(騎虎) 다니는 기세(勢成)라는 이 말은 똑 같은 의미를 가졌지만 출전은 달리 한다. 東晋(동진, 317~420년)의 3대 成帝(성제) 때 장수 蘇峻(소준)이 반란을 일으켰다. 이들이 수도를 압박해오자 江州(강주)자사였던 溫嶠(온교, 嶠는 산길 교)가 군사를 일으켜 荊州(형주)자사인 대장군 陶侃(도간, 侃은 강직할 간)을 맹주로 추대하고 토벌에 나섰다. 도간은 歸去來辭(귀거래사)의 시인 陶淵明(도연명)의 증조부로 알려져 있다. 많은 무공이 있었던 도간은 그러나 이 전투에서 고전했다.

도간이 지휘하는 토벌군은 반란군에 밀려 패전을 거듭했고 군량을 공급하는데도 차질이 생겼다. 자신감이 떨어진 도간은 온교를 불러 부대를 철수할 테니 조건이 되면 다시 나서자고 했다. 난감해진 온교가 적은 지략이 없으니 반드시 이길 수 있다며 설득한다. ‘오늘의 상황에서 의로운 뜻을 되돌릴 수 없으니, 이는 사나운 짐승의 등에 타고 있는 것과 같은데 어찌 내려올 수 있겠습니까(今之事勢 義無旋踵 騎猛獸安可下哉/ 금지사세 의무선종 기맹수안가하재)?’ 생각을 바꾼 도간은 힘을 합쳐 적을 공격하고 반란 수장 소준의 목을 베었다. 唐太宗(당태종)때 房玄齡(방현령) 등이 편찬한 ‘晉書(진서)’ 온교전에 나온다.

뜻은 같아도 출전은 다른 두 가지 성어 모두 지휘자보다 부하나 부인이 지혜롭게 건의한 데서 난관을 돌파한 점이 닮았다. 이리 갈까 저리 갈까 판단이 어려울 때 결단해야 하는 사람은 고독하다. 밑에서 사정을 잘 알고 바른 길을 건의하면 위에서는 잘 판단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잘못된 길을 가고 있는데 아무도 제지를 못한다면 위나 아래나 낭패를 못 면한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인민이후유부부人民而後有夫婦 - 사람이 있은 후에 부부가 있다.

인민이후유부부人民而後有夫婦 - 사람이 있은 후에 부부가 있다.

인민이후유부부(人民而後有夫婦) - 사람이 있은 후에 부부가 있다.

사람 인(人-0) 백성 민(氏-1) 말이을 이(而-0) 뒤 후(彳-6) 있을 유(月-2) 지아비 부(大-1) 며느리 부(女-8)

남자와 여자가 만나 가정을 꾸리는 결혼에 대해 의외로 부정적인 말이 많다. 결혼은 필요악이라거나, 결혼은 해도 후회, 하지 않아도 후회할 것이라고 말한 철학자도 있다. 곧이곧대로 듣지 않아야 할 것이 모두 결혼을 잘 이끌어가도록 조언한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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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양이 조화한 뒤에야 비를 내리고, 부부가 화합해야 비로소 집안이 번영한다(陰陽和而後雨澤降 夫婦和而後家道成/ 음양화이후우택강 부부화이후가도성)는 詩經(시경)의 가르침이나 부부 있은 후에 부자 형제 생겼으니/ 부부 곧 아니면 오륜이 갖을소냐/ 이 중에 生民(생민)이 비롯하니 부부 크다 하노라 하는 朴仁老(박인로)의 시조는 부부의 존귀함을 잘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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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있은 후(人民而後)에 부부가 있다(有夫婦)는 쉬우면서도 직설적인 이 말처럼 결혼에 대해 잘 표현한 말이 있을까. 사람으로 태어나서는 반드시 가정을 꾸려야 한다는 이 말은 顔氏家訓(안씨가훈)에 나온다. 중국 南北朝(남북조) 시대 말기의 귀족 顔之推(안지추)가 자손을 위하여 가족도덕이나 대인관계와 학문 등 다양한 내용을 담은 교훈서다. 兄弟(형제)편 제일 첫 머리에 나오는 부분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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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사람이 있은 뒤에 부부가 있고, 부부가 있은 후에 부자가 있고, 부자가 있은 후에 형제가 있다(夫有人民而後有夫婦 有夫婦而後有父子 有父子而後有兄弟/ 부유인민이후유부부 유부부이후유부자 유부자이후유형제). 그러면서 한 집안의 친족관계는 부부, 부자, 형제의 三親(삼친)에서 비롯돼 九族(구족, 자기를 중심으로 위로 4대조, 아래로 4대손)에 이르기까지 근본이 되니 돈독함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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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와 여자가 만나고 새 생명이 태어나 인류문화가 이어져 왔고 앞으로도 계속 이어져 내려간다. 이처럼 중요한 결혼에 대해서 통계청의 사회조사 결과에 의하면 40% 이상이 해도 좋고 하지 않아도 된다고 나왔다고 한다. 최근 한국의 사회지표 발표에는 결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비율이 2008년 68%에서 최근 50%이하로 줄었다고 한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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