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11일 월요일

봉생마중蓬生麻中 - 삼밭의 쑥은 바르게 자란다.

봉생마중蓬生麻中 - 삼밭의 쑥은 바르게 자란다.

봉생마중(蓬生麻中) - 삼밭의 쑥은 바르게 자란다.

쑥 봉(艹/11) 날 생(生/0) 삼 마(麻/0) 가운데 중(丨/3)

친구를 사귈 때나 이웃의 중요성을 말 할 때 환경을 강조한 말은 많다. 요즘의 이웃이야 아파트 생활이 많아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잘 모르게 되었지만 공자의 가르침부터 보자. 마을의 풍속이 질서를 지키며 화목하다는 것은 아름다운 것이며(里仁爲美/ 리인위미) 이러한 마을을 잘 골라서 거처하지 않는다면 지혜롭지 못하다고 했다. 중국 宋季雅(송계아)라는 사람이 집값의 열배나 주고 이웃을 산 百萬買宅 千萬買隣(백만매택 천만매린)과 똑 같다. 앞서 소개한 近墨者黑(근묵자흑)은 사귀는 친구에 의해 바른 길로도, 나쁜 길로도 갈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쳤다.

삼밭 가운데(麻中) 자라는 쑥(蓬生)이라는 이 성어는 따라붙는 대구 不扶自直(불부자직)과 같이 쓰면 뜻이 명확해진다. 죽죽 곧은 삼밭에 있으면 원래 구불구불 자라는 쑥이 붙들어주지 않아도 곧게 된다는 의미로 역시 환경이 미치는 영향을 뜻한다. 중국 戰國時代(전국시대) 말기의 사상가로 性惡說(성악설)을 주창한 荀子(순자)의 저작 ‘순자’에 처음 실렸다.

첫 부분 勸學(권학) 편의 내용을 요약해보자. 남쪽 지방에 사는 蒙鳩(몽구)라는 새가 깃털로 둥지를 만들어 갈대 잎에 매달아 두었는데 바람에 가지가 부러져 알이 깨지고 말았다. 또 서쪽 지방에 자라는 射干(사간)이란 나무는 길이가 겨우 네 치밖에 되지 않지만 산꼭대기에 있다 보니 산 아래 백 길의 연못을 내려다본다.

몽구 새는 둥지가 튼튼해도 매어놓은 갈대가 흔들리기 때문에 알을 깨뜨렸고, 사간 나무는 줄기가 짧아도 서 있는 자리가 높기 때문에 멀리 볼 수 있다. 이런 예를 들고 말한다. ‘쑥이 삼밭에서 자라게 되면 떠받쳐주지 않아도 곧게 자라며, 흰 모래가 진흙 속에 있으면 모두 검게 된다(蓬生麻中 不扶而直 白沙在涅 與之俱黑/ 봉생마중 불부이직 백사재열 여지구흑)’. 涅은 개흙, 열반 열.

朱子(주자)의 小學(소학)과 기타 경전 중에서 알기 쉬운 내용들을 추린 아동용 四字小學(사자소학)에서는 朋友(붕우)편에 약간 다른 표현으로 나온다. ‘쑥이 삼 가운데서 자라나면 붙들어주지 않아도 저절로 곧아지고, 흰 모래가 진흙에 있으면 물들이지 않아도 저절로 더러워진다(蓬生麻中 不扶自直 白沙在泥 不染自汚/ 봉생마중 불부자직 백사재니 불염자오).’ / 글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2024년 3월 10일 일요일

외유내강外柔內剛 – 겉으로 부드러우나 속으로 꿋꿋하고 굳셈

외유내강外柔內剛 – 겉으로 부드러우나 속으로 꿋꿋하고 굳셈

외유내강(外柔內剛) – 겉으로 부드러우나 속으로 꿋꿋하고 굳셈

바깥 외(夕/2) 부드러울 유(木/5) 안 내(入/2) 굳셀 강(刂/8)

사람의 성격은 타고나는 것이지만 일상의 습관에서 더 많이 만들어진다. 좋은 습관으로 성격을 다스린다면 운명까지 바꿀 수 있다고 하니 말이다. 사람의 성격을 말할 때 많이 쓰는 표현이 있다. 겉보기에 부드럽고 마음도 어질어 도통 악의를 보이지 않는 사람을 ‘부처님 가운데 토막’ 같다고 한다.

속마음은 의외로 강단이 있어 고집대로 일을 처리할 수 있는 성격을, 겉으로는 부드럽고 순하게 보이나(外柔) 속은 굳고 굳세다(內剛)란 표현을 쓴다. 이 성어를 앞뒤로 바꿔가며 반대의 뜻은 外剛內柔(외강내유)라 하고 外剛內剛(외강내강)이나 外柔內柔(외유내유) 등 갖가지 성격을 나타낼 수 있다.

唐(당)나라 盧坦(노탄, 748~817)이란 사람은 자가 保衡(보형)이고 河南(하남) 洛陽(낙양) 출신의 강직한 관리였다. 황제가 병으로 사망한 절도사 후임으로 姚南仲(요남중)이라는 사람을 임명하자 군대 감독관인 薛盈珍(설영진)을 비롯하여 많은 대신들이 반대했다. 글만 읽어 세상을 모르는 서생이라 그 자리에 적절하지 않다는 이유였다. 그때 노탄이 나서서 강력히 비호했다.

‘요남중은 겉으로는 약해 보이지만 속으로는 누구보다 강한 외유증강의 인물이다(姚大夫外柔中剛/ 요대부외유중강).’ 歐陽修(구양수) 등이 편찬한 ‘新唐書(신당서)’ 노탄전에 실린 내용이다. 이에 앞서 東晉(동진)의 시중을 지낸 甘卓(감탁, ?~322)이란 사람을 표현하면서 外柔內剛(외유내강)이라 나타냈다고 ‘晉書(진서)’에 나온다.

‘道德經(도덕경)’에서 老子(노자)는 일반적으로 부드러운 것이 강한 것을 이겨낸다고 일관되게 강조한다. 몸도 부드러워야 건강하지만, 마음이 유연해야 정신도 몸도 건강해 진다며 ‘부드럽고 약한 것이 굳세고 강한 것을 이겨 낸다(柔弱勝剛强/ 유약승강강)’고 했다. 36장 微明(미명)에서다.

76장 戒强(계강)과 78장 任信(임신)에도 이어진다. ‘굳고 강한 것은 죽음의 무리이고 부드럽고 연한 것은 삶의 무리이다(堅強者死之徒 柔弱者生之徒/ 견강자사지도 유약자생지도).’ ‘이 세상에서 물보다 더 부드럽고 약한 것은 없다. 그렇지만 굳고 강한 것을 치는 데 물보다 나은 것은 없다(天下莫柔弱於水 而攻堅強者莫之能勝/ 천하막유약어수 이공견강자막지능승).’

부드럽고 약한 것이 강한 것을 이겨낸다고 해서 아무런 준비가 없어도 막아낼 수가 있을까. 속으로는 실력을 갖추고 부드럽게 대해야 함부로 덤비지 못한다. 강자가 약자를 대할 때도 힘으로 누르기 보다는 부드러움으로 감싸야 진정으로 승복한다. 이럴 때라야 진정 柔能制剛(유능제강)이 된다. / 글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자한사보子罕辭寶 - 자한이 보물을 사양하다, 물질을 탐하지 않는 깨끗한 마음가짐

자한사보子罕辭寶 - 자한이 보물을 사양하다, 물질을 탐하지 않는 깨끗한 마음가짐

자한사보(子罕辭寶) - 자한이 보물을 사양하다, 물질을 탐하지 않는 깨끗한 마음가짐

아들 자(子/0) 드물 한(网/3) 말씀 사(辛/12) 보배 보(宀/17)

사람은 누구나 보물을 가지고 있다. 다만 귀한 가치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희귀한 광물 다이아몬드나 루비, 사파이어 등과 같은 보석일 수도 있고, 으리으리하게 꾸며놓은 집이나 풍요를 가져다주는 땅일 수도 있다. 이런 비싼 것이 없는 사람들은 보기만 해도 웃음을 머금게 하는 귀여운 자식일 수도 있고, 또 어떤 사람들은 말썽만 부리는 아들딸보다는 ‘무자식이 상팔자’라며 걱정 없는 것이 보물이라고 한다.

이처럼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보물을 가까이에서 찾지 않고 다른 곳에서 눈을 부릅뜬 채 찾고 있다. 위인들은 현재의 시간이 더 없는 보물이라 하고 나의 두 팔이 보물이라 하기도 한다. 시간을 아껴 부지런히 일을 하라는 뜻이다.

이런 여러 가지 보물 중에 子罕(자한)이라는 사람은 보물을 사양하는 것(辭寶)이 보물이라고 하여 보물 중에 최고라는 칭찬을 받는다. 論語(논어)에 자한편이 있어 제자로 잘못 알기 쉬우나 여기선 ‘공자가 드물게 말했다’는 뜻이고, 보물을 사양한 사람은 중국 春秋時代(춘추시대) 宋(송)나라의 현인 樂喜(낙희)를 말한다.

그는 현명하고 재주가 많아 많은 사람의 존경을 받았는데 토지와 민사에 관한 일을 맡아보던 벼슬 司城(사성)을 맡았기 때문에 司城子罕(사성자한)이라고 불렸다. ‘春秋左氏傳(춘추좌씨전)’ 襄公篇(양공편)에 유래가 실렸고 ‘韓非子(한비자)’의 喩老(유로)편이나 唐(당) 李澣(이한)의 ‘蒙求(몽구)’에도 전한다.

내용을 보자. 송나라 사람이 귀중한 보옥을 얻어 사성의 벼슬을 하는 자한을 찾아 드리려 했다. 자한이 받지 않자 그는 옥 전문가가 보물이라고 했다며 꼭 받기를 원했다. ‘나는 옥을 탐하지 않는 것을 보물로 여기고 그대는 옥을 보물로 여기네(我以不貪爲寶 爾以玉爲寶/ 아이불탐위보 이이옥위보)’ 자한이 이렇게 말하며 이어간다.

‘만약 이 옥을 나에게 준다면 모두 자신의 보물을 잃게 되니 각각 자신의 보물을 갖는 것보다 못할 것이네(若以與我 皆喪寶也 不若人有其寶/ 약이여아 개상보야 불약인유기보).’ 이렇게 자한은 자신의 마음가짐을 지켜서 좋고 송나라 사람은 보물을 그대로 가져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있을 수 없다고 했다.

자한을 말한 ‘菜根譚(채근담)’에서도 ‘옛사람이 탐하지 않은 것을 보배로 삼았는데 이것이 일세를 초월하는 방법(古人以不貪爲寶 所以度越一世/ 고인이불탐위보 소이도월일세)’이라 했다. 욕심이 없는 사람은 있을 수 없지만 한 번 이익을 탐하면 깨끗한 마음이 물들어 더러워진다.

일반인보다 국민의 세금을 쓰는 공직자들의 자세는 더욱 곁눈을 팔지 않아야 하는데 잊을만하면 오직사건이 드러난다. 예전에 비해 액수도 낮고 건수도 훨씬 줄어 ‘김영란법’의 효과라 해도 선진국들에 비해 아직 멀었다는 평가다. 부패와 거리 두는 마음이 보물이다. / 글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방약무인傍若無人 - 곁에 사람이 없는 것처럼 함부로 말하고 행동하다.

방약무인傍若無人 - 곁에 사람이 없는 것처럼 함부로 말하고 행동하다.

방약무인(傍若無人) - 곁에 사람이 없는 것처럼 함부로 말하고 행동하다.

곁 방(亻/10) 같을 약(艹/5) 없을 무(灬/8) 사람 인(人/0)

마치 옆에(傍若) 사람이 아무도 없다(無人)고 여기며 거리낌 없이 함부로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은 자신은 속이 후련할지 몰라도 주변서 모두 손가락질할 것이다. 돈을 좀 벌었거나 지위가 높아진 사람이 그러한 경우가 많다. 또한 술자리에서 빈 깡통이 요란하다고 자기주장만 펼치는 사람도 종종 볼 수 있다.

이 모두 傍若無人의 행동이다. 자기 눈 아래에 사람이 없는 듯이 날뛰는 眼下無人(안하무인)도 똑 같은 뜻이다. 지난번 국민들의 분통을 터뜨렸던 대한항공 부사장의 행위나 모녀가 백화점 주차장에서 아르바이트하는 주차요원들을 무릎 꿇린 일 등 사회 곳곳에 도사린 갑질의 사례가 여기에 꼭 들어맞는 성어다.

傍若無人은 이처럼 오만불손하여 미움을 사는 행동이지만 처음 이 말이 사용될 때는 부정적이지는 않았다. 성격이 활달하여 남의 이목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행동하는 것이 눈살 찌푸릴 정도는 아니었던 모양이다.중국이 세계에 자랑하는 司馬遷(사마천)의 ‘史記(사기)’에서 많이 읽히는 列傳(열전) 중에 다섯 명의 자객을 다룬 刺客列傳(자객열전)은 흥미진진하다.

마지막에 나오는 荊軻(형가, 荊은 가시 형, 軻는 수레 가) 이야기 속에 傍若無人의 성어가 나온다. 衛(위)나라 사람인 형가는 술과 글을 좋아하고 검술에 뛰어난 인물이었지만 못 알아본 왕에 등용되지 못하자 주유하며 현인과 협객을 두루 사귀었다.\xa0

燕(연)나라로 건너갔을 때 田光(전광)이란 처사가 그를 비범한 사람으로 알아보고 후원했다. 또한 그곳서 筑(축/ 대나무로 만든 비파 비슷한 악기)의 명수 高漸離(고점리)란 사람과 의기투합하여 날마다 장마당에 나가 술을 마시며 악기를 연주하고 노래하며 즐기면서 함께 울기도 하여 마치 옆에 사람이 없는 듯이 행동했다(高漸離擊筑 荊軻和而歌於市中 相樂也 已而相泣 旁若無人者). 旁과 傍은 똑같이 곁 방.

음주에 高聲放歌(고성방가) 했지만 큰 피해를 주지 않아 뜻을 펼치지 못한 인재의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상인들이 좋게 봐준 모양이다. 형가는 뒤에 秦始皇(진시황)을 암살하러 떠났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는다. / 글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전심치지專心致志 - 온 정신을 한 군데로 집중하다.

전심치지專心致志 - 온 정신을 한 군데로 집중하다.

전심치지(專心致志) - 온 정신을 한 군데로 집중하다.

오로지 전(寸/8) 마음 심(心/0) 이를 치(至/4) 뜻 지(心/3)

목표한 일을 두고 끊임없이 노력하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다. 좋은 뜻의 말인 만큼 선인들이 남긴 예화와 명언도 넘친다. 무쇠도 갈면 바늘이 되고, 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는다. 한자로도 잘 쓰는 磨斧作鍼(마부작침)이고 轉石不生苔(전석불생태)다. 물방울이 바위를 뚫는 水滴穿石(수적천석)도 잘 인용된다.

호랑이로 알고 정신을 집중하여 활을 쏘았더니 바위에 박혔다는 中石沒鏃(중석몰촉)은 중국 前漢(전한) 장수 李廣(이광)의 일화다. 무엇보다 친숙한 명구 ‘정신을 집중하여 한결같이 노력하면 어떤 일이라도 이룰 수 있다(精神一到 何事不成/ 정신일도 하사불성)’는 朱子(주자)의 어록에서 나왔다.

‘孟子(맹자)’에도 빠질 수 없다. 오로지 마음을 한 곳에 두고(專心) 끊임없이 노력하면 목표한 뜻에 이를 수 있다(致志)는 말이다. 맹자와 같은 시대 학자로 이름은 알려지지 않은 告子(고자)와 性善說(성선설)을 두고 논쟁을 펼치는 告子上(고자상)에 실려 있다. 맹자는 왕이 총명하지 못한 것은 다 이유가 있다고 하면서 전설상 바둑에서 무패를 자랑한 고수 奕秋(혁추, 奕은 클 혁, 또는 바둑 혁)의 예를 들어 설명한다. 魯(노)나라 출신의 명인에 추가 이름이라 하기도 하고, 秋(추)지방의 사람이라 이런 이름으로 불린다고도 하는 바둑 고수의 대명사다.

이런 명성을 듣고 제자가 되겠다고 하는 사람이 모여 들었어도 혁추는 두 사람만 받았다. 그런데 두 제자는 학습 태도가 달랐다. ‘한 사람은 전심으로 집중하여 혁추의 말만 듣고(其一人專心致志 惟奕秋之爲聽/ 기일인전심치지 유혁추지위청)’, 한 사람은 말을 들어도 마음속에는 백조가 날아오면 활을 쏠 것을 생각했다.

이렇게 하면 지혜가 같더라도 정신을 쏟지 않은 뒤의 제자는 뜻을 이룰 수가 없게 된다는 이야기다. 사냥을 생각한 이 제자는 마음이 엉뚱한 데 있어 일이 몸에 배지 않는다는 鴻鵠將至(홍곡장지)란 성어로 남았다. 왕이 꾸준히 현인을 곁에 두지 않으면 간신이 득실거리고 정치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가르침이기도 하다.\xa0

자신이 남보다 뛰어나다고 머리만 믿고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뜻을 이루기 어렵다. 작은 걸음이라도 쉬지 않고 걸으면 천리를 간다. 오르고 또 오르면 태산도 발 아래 놓일 때가 있다. 꾀가 많은 사람은 용렬한 사람의 노예라는 巧者拙之奴(교자졸지노)란 말이 있다. 머리가 둔해도 끝까지 끊임없는 노력을 하는 사람이 제 재주만 믿는 사람보다 큰일을 하게 된다는 뜻이다. 천재도 노력하는 둔재에게는 못 미치는 법이다. / 글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이하부정관李下不整冠  – 자두나무 아래서 갓끈을 고치지 말라, 의심 사는 행동을 하지 말라

이하부정관李下不整冠  – 자두나무 아래서 갓끈을 고치지 말라, 의심 사는 행동을 하지 말라

이하부정관(李下不整冠) \xa0– 자두나무 아래서 갓끈을 고치지 말라, 의심 사는 행동을 하지 말라

오얏 리(木/3) 아래 하(一/2) 아닐 불, 부(一/3) 가지런할 정(攵/12) 갓 관(冖/7)

껍질 표면에 털이 없이 발갛고 매끈한 자두는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돈다. 자두의 옛 이름이 오얏인데 누구나 탐스러워 하는 이 과수밭을 지날 때면 조심해야 한다. 귀한 과일을 서리하는 일이 잦아 주인도 신경을 곤두세우기 때문이다. 오얏나무 밑(李下)을 지나갈 때 손을 들어 쓰고 있던 관을 고쳐 쓰지 말라(不整冠)고 하는 것은 공연히 남에게 의심을 사는 행위를 하지 말라는 교훈이다.

이 말의 앞에 있는 오이 밭에서는 신발을 고쳐 신지 말라는 瓜田不納履(과전불납리)라는 말과 짝으로 사용된다. 앞부분 두 글자씩만 떼어 瓜田李下(과전이하)라는 말도 쓰는데 앞서 소개한 바 있다.

유교 문화권 최초로 여성을 정면으로 다뤘다는 ‘列女傳(열녀전)’은 前漢(전한) 시대의 학자 劉向(유향)의 저작이다. 경전이나 역사에 전해져오던 賢母(현모) 烈女(열녀) 惡妻(악처) 등 여러 인물을 재구성한 전기집인데 여기에 등장하는 虞姬(우희)가 한 말로 나온다. 項羽(항우)가 사랑했던 虞美人(우미인)도 우희라 하지만 물론 다른 사람이다.

이름이 娟之(연지)인 우희는 戰國時代(전국시대) 齊(제)나라 威王(위왕)의 후궁이었다. 왕이 즉위한지 9년이 지나도록 국정이 어수선했다. 간신인 周破胡(주파호)가 국정을 손아귀에 넣고 충신을 따돌렸기 때문이었다. 이를 보다 못한 우희가 위왕에게 주파호는 속이 검은 사람이라 물리치고 덕망 있는 北郭先生(북곽선생)을 기용해야 한다고 호소했다.\xa0

이것을 안 주파호는 거꾸로 우희와 북곽이 사통하는 사이라고 모함하며 9층 누각에 감금했다. 매수된 담당 관원이 날조한 보고서가 앞뒤가 맞지 않자 왕이 직접 우희를 불러 심문했다. 우희는 진심으로 왕을 위해 힘썼지만 불찰이 있다면 ‘오이 밭에서 신발을 고쳐 신지 않고, 오얏나무 아래를 지나갈 때 관을 바로하지 않는다는 교훈을 지키지 않은 것(瓜田不納履 李下不整冠/ 과전불납리 이하부정관)’이라고 애소했다. 그러면서 주파호의 죄목을 아뢰자 그제야 잘못을 깨달은 위왕은 간신을 烹殺(팽살)하고 내정을 바로잡았다.

자신이 떳떳하다고 해도 남이 오해를 하여 의심을 사는 경우는 흔하다. 잘못 보일 행동을 조심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먼저다. 다음으로는 억울하지만 극구 변명하기 보다는 이치에 맞게 차근차근 해명해야 한다. 더 큰 의심을 사서 돌아서고 나면 되돌리기 어렵다. 갓끈을 조심하는 것이 생활화되면 좋겠다. / 글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괴여만리장성壞汝萬里長城 - 너의 만리장성을 허물려고 하느냐, 어리석게 보호막을 없애다.

괴여만리장성壞汝萬里長城 - 너의 만리장성을 허물려고 하느냐, 어리석게 보호막을 없애다.

괴여만리장성(壞汝萬里長城) - 너의 만리장성을 허물려고 하느냐, 어리석게 보호막을 없애다.

무너질 괴(土/16) 너 여(氵/3) 일만 만(艹/9) 마을 리(里/0) 긴 장(長/0) 재 성(土/7)

萬里長城(만리장성)이라 하면 중국의 상징처럼 먼저 떠올려지는 기나긴 성이다. 실제 길이는 2700㎞에, 지형의 높낮이를 반영한 길이로도 6352㎞라 하니 만리엔 턱없이 모자란다. 하지만 달에서도 보인다는 인류최대의 토목공사임은 모두 인정하여 일찍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됐다.

일상에서도 여러 곳에 비유로 사용되는데 서로 넘나들지 못하는 장벽이나 창창한 앞날을 가리킨다. ‘하룻밤을 자도 만리성을 쌓는다’는 우리 속담은 남녀의 은밀한 만남이나 잠간 사귀더라도 깊은 정을 맺을 수 있음을 말했다. 一夜萬里城(일야만리성)이나 一夜之宿 長城或築(일야지숙 장성혹축)으로 한역된다.

‘너의 만리장성을 허물려고 하느냐(壞汝萬里長城)’란 뜻의 이 성어는 순간적 욕심에 든든한 방패막이를 제거하는 어리석은 짓을 나타낸다. 自毁長城(자훼장성)이라고도 하는데 이 말의 원주인은 宋(송)나라의 장군 檀道濟(단도제, ?~436)다. 혼란스런 南北朝(남북조, 420~589) 시대의 송나라는 北魏(북위)가 호시탐탐 노렸으나 백전노장 단도제가 굳건히 지키고 있어 침략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언제나 명성엔 시기하는 무리가 따르는 법이라 간신들이 단도제를 제거하고 권력을 마음대로 좌우하기 위한 음모를 꾸몄다. 唐(당)의 李延壽(이연수)가 쓴 ‘南史(남사)’의 내용이다.

단도제를 총애하던 3대 文帝(문제)가 병석에 누운 틈을 타 왕족 劉義康(유의강), 劉湛(유담) 등이 어명이란 구실로 그를 수도 建康(건강)으로 불러들여 투옥했다. 뒤늦게 속은 것을 안 단도제는 불같이 화를 냈는데 눈빛이 횃불이 타는 것처럼 이글거렸다.

目光如炬(목광여거, 炬는 횃불 거)란 성어가 여기서 나왔다. ‘그리고 두건을 벗어 땅에 내팽개치고선 너희들이 스스로 만리장성을 허물려고 하는 짓인가 하며 고함을 질렀다(乃脫幘投地 曰 乃壞汝萬里長城/ 내탈책투지 왈 내괴여만리장성).‘ 幘은 머리쓰개 책. 단도제가 분사하고 가족까지 몰살당하자 기다렸다는 듯 북위가 밀고 내려왔다. 권신들이 안전을 스스로 무너뜨리고 위험을 자초한 것이다.

편안하게 안전한 생활을 누리는 사람들은 누군가 그것을 지켜주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가정이든 직장이든 나라든 알게 모르게 안전을 위해 고생하는 사람이 있다. 자기가 잘 났다는 어리석은 사람은 누가 진정으로 자신을 생각해 주는지 알지 못한다. 위험이 눈앞에 닥쳐야 그것을 막아준 만리장성이 누구였는지 알게 되지만 때는 늦었을 경우가 많다. / 글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과유불급過猶不及 - 정도를 지나침은 미치지 못함과 같다.

과유불급過猶不及 - 정도를 지나침은 미치지 못함과 같다.

과유불급(過猶不及) - 정도를 지나침은 미치지 못함과 같다.

지날 과(辶/9) 오히려 유(犬/9) 아닐 불(一/3) 미칠 급(又/2)

무슨 일이거나 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하는 것과 같다. 어른들이 집안 자녀들을 훈계하는 말씀 중에 꼭 들어 있다. 孔子(공자)님 말씀이라며 두고두고 가르쳤다. 그런데 일을 처리하거나 수행할 때 목표를 초과 달성한 것이 모자란 것과 같다는 말인데 언뜻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일반 회사에서의 실적을 두고 보면 목표를 넘겼을 때 표창할 텐데 모자란 것과 같다니. 물론 이 말은 물질적 성과만 가지고 성패를 따지는 것은 아니다. 지나친 것도 모자라는 것도 경계한 中庸(중용)의 중요함을 강조한 것이다.

공자의 제자 중에 고생도 함께 하고 각 분야에 뛰어난 10명을 孔門十哲(공문십철)이라 한다. 이들을 덕행, 언어, 정사, 문학의 四科(사과)로 나누어 평가를 한 내용이 "선진편(先進篇)"에 나온다. 바로 "德行 顔淵 閔子騫 冉伯牛 仲弓, 言語 宰我 子貢, 政事 冉有 季路, 文學 子游 子夏(덕행 안연 민자건 염백우 중궁, 언어 재아 자공, 정사 염유 계로, 문학 자유 자하)"이다. 騫은 이지러질 건, 冉은 늘어질 염.

過猶不及에 거론되는 자하와 십철에는 빠져있는 子張(자장)을 비교해 자공이 묻는 것에 대해 공자가 답한다. "자장은 지나치고 자하는 미치지 못한다/ 師也過 商也不及(사야과 상야불급)"고 말하면서 "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하는 것과 같다(過猶不及)"고 설명한다. 師는 자장, 商은 자하의 이름이다. 공자는 자장의 극단적인 경향과 자하의 소극적인 면을 의식하고 그들에게 중용의 깨우침을 주기 위해 평가한 것이다. / 글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육회명六悔銘 - 여섯 가지 뉘우칠 일에 대한 계율

육회명六悔銘 - 여섯 가지 뉘우칠 일에 대한 계율

육회명(六悔銘) - 여섯 가지 뉘우칠 일에 대한 계율

여섯 륙(八/2) 뉘우칠 회(心/7) 새길 명(金/6)

때에 맞춰 일을 처리하면 좋으련만 사람이 살아가다 보면 기회를 놓치고 뒤늦게 후회하는 일을 많이 본다. 성인이나 앞을 내다보는 예언자가 될 수 없는 보통 사람들은 그때 왜 그랬을까 하며 땅을 치지만 되돌릴 수 없을 때가 대부분이다. 엎지른 물은 다시 담을 수 없기 때문이다. 기회를 놓쳐서 별 볼 일 없게 되면 ‘파장에 수수엿 장수’ 신세가 된다. 그렇더라도 후회한다고 소용이 없다면서 후회만 해서는 앞날이 없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거나 ‘도둑맞고 사립 고친다’고 비아냥대더라도 잘못을 두 번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필요한 일이다.

가장 좋은 일은 좋은 자리에 있을 때, 잘 나갈 때 후회할 일을 하지 않는 것인데 이게 어렵다. 어려운 것이 아니라 잘 알면서도 잘 잊고 까마득히 지나간다. 잘 알려진 朱子十悔(주자십회)와 함께 여섯 가지의 뉘우칠 일에 대한 계율, 즉 六悔銘(육회명)을 보면 더욱 그렇다. 보배로운 말과 글을 모아 옛날 서당에서 학동들에 가르치던 ‘明心寶鑑(명심보감)’에 실려 누구에게나 익었다. 고려 말기 명신 秋適(추적)이 편찬한 이 책의 存心(존심)편에 寇萊公(구래공)이 한 말이라면서 나온다. 구래공은 北宋(북송)의 정치가 겸 시인 寇準(구준, 961~1023)의 별칭이다.\xa0

내용을 보자. ‘관원은 사사롭고 굽은 일을 행하면 벼슬을 잃을 때 후회하고(官行私曲失時悔/ 관행사곡실시회), 부자는 검소하지 않으면 가난해졌을 때 후회하며(富不儉用貧時悔/ 부불검용빈시회), 어렸을 때 배우지 않으면 시기가 지났을 때 뉘우치고(學不少勤過時悔/ 학불소근과시회), 일을 보고 아니 배우면 필요할 때 뉘우치며(見事不學用時悔/ 견사불학용시회), 취한 뒤에 함부로 말하면 술이 깨었을 때 후회하고(醉後狂言醒時悔/ 취후광언성시회), 몸이 편안할 때 조심하지 않으면 병이 들었을 때 후회한다(安不將息病時悔/ 안불장식병시회).’\xa0

조선 英祖(영조)때의 대학자 李瀷(이익, 1681~1763, 瀷은 강이름 익)도 ‘星湖僿說(성호사설, 僿는 잘게 부술 사)’에서 육회명을 남겼다. ‘행동이 때에 못 미치면 지난 뒤에 후회하고(行不及時後時悔/ 행불급시후시회), 이익 보고 의를 잊으면 깨달을 때 후회하며(見利忘義覺時悔/ 견리망의각시회), 등 뒤에서 논단하면 면대할 때 뉘우치고(背人論短面時悔/ 배인론단면시회), 일을 처음에 못 살피면 실패할 때 뉘우치며(事不始審僨時悔/ 사불시심분시회), 분으로 인해 몸을 잊다 어려울 때 후회하고(因憤忘身難時悔/ 인분망신난시회), 농사에 게으르면 수확할 때 후회하네(農不務勤穡時悔/ 농불무근색시회).’ 僨은 넘어질 분. 두 육회명 모두 상식적으로 아는 일인데 실천이 어렵다. / 글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작정산밀斫正刪密 – 똑바로 베고 빽빽하면 솎아내다.

작정산밀斫正刪密 – 똑바로 베고 빽빽하면 솎아내다.

작정산밀(斫正刪密) – 똑바로 베고 빽빽하면 솎아내다.

쪼갤 작(斤/5) 바를 정(止/1) 깎을 산(刂/5) 빽빽할 밀(宀/8)

쪼개다, 베다, 자르다는 뜻의 斫(작)은 長斫(장작)이라는 쓰임 외에 ‘아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는 성어 知斧斫足(지부작족)의 그 글자다. 깎다, 삭제하다는 뜻인 刪(산)은 필요 없는 글자를 지우는 刪削(산삭), 편지에서 인사는 생략한다는 뜻의 刪蔓(산만)에 쓰는 글자다. 깎고 자른다고 하면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프로크루스테스(Procrustes)를 먼저 연상할 수 있다. 나그네를 집에 초대해 침대 길이에 맞춰 사람을 늘이거나 늘려 죽였다는 강도다. 하지만 바르게 베고(斫正) 빽빽한 것을 덜어내는 것(刪密)은 매화의 가지치기를 말했다.

淸(청)나라의 학자 겸 시인 龔自珍(공자진, 1792~1841, 龔은 공손할 공)의 유명한 산문 ‘病梅館記(병매관기)’의 구절에서 유래했다. 공자진은 외조부인 고증학자 段玉裁(단옥재)로부터 배워 당시 정치의 혼란상에 대해 울분을 토하는 시문을 많이 남겼다. 불의에 모든 사람이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을 만 마리의 말이 일제히 벙어리가 된다고 萬馬齊瘖(만마제음, 瘖은 벙어리 음)이라 표현하기도 했다. 공자진은 이 산문에서 문인화가들이 건강한 것 보다는 기울어지고 구부러진 병든 모습의 매화를 더 귀하게 여기는 세태를 비판하고 있다.\xa0

앞부분에서 매화는 굽은 것을 아름다움으로 삼기 때문에 곧으면 맵시가 없다고 하고, 비스듬히 기운 것을 볼만하다 하고, 성긴 것을 곱다고 하니 빽빽하면 모양이 없다고 하며 이어진다. 이러한 취미를 알아챈 업자들이 매화를 가만 둘리 없다. ‘바른 둥치를 잘라 옆가지를 배양하고, 촘촘한 것을 솎아내어 어린 가지를 죽이고, 곧은 것을 쳐 내서 생기를 억제하여, 비싼 값을 받게 했다(斫其正 養其旁條 刪其密 殀其稚枝 鋤其直 遏其生氣 以求重價/ 작기정 양기방조 산기밀 요기치지 서기직 알기생기 이구중가).’ 殀는 일찍죽을 요, 鋤는 호미 서, 遏은 막을 알.

공자진은 그래서 매화가 모두 병이 들었다면서 압제에서 해방시킨다고 병매관을 지어 돌봤다. 그는 매화만을 위해서였을까. 그랬다면 불필요한 부분을 잘라 더 잘 자라게 한다는 분재 애호가들에게 반발을 살 일이다. 그는 일정한 틀 속에서 인재를 구속하는 과거제를 비판하고 나아가 전제주의를 반대하며 인격의 해방을 갈망했다고 평가받는다. 제도를 바꾼다면서 함부로 없애고 붙이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 글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