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11일 월요일

회총시위懷寵尸位 - 총애만 믿고 헛되이 자리를 차지하다.

회총시위懷寵尸位 - 총애만 믿고 헛되이 자리를 차지하다.

회총시위(懷寵尸位) - 총애만 믿고 헛되이 자리를 차지하다.

품을 회(心/16) 사랑할 총(宀/16) 주검 시(尸/0) 자리 위(亻/5)

윗자리에 상사가 의젓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때 부하직원들은 복종한다. 그것이 자리에서 오는 위압감에서일 수도 있고 경험과 실력에서 나오는 존경심일 수도 있다. 하지만 겉으로는 그래도 대부분 부하들은 속을 꿰뚫어 보는 경우가 많다. 더 높은 사람의 배경으로 위세를 부리는 상사는 겉으로는 위하는 체해도 속으로는 경멸한다.

윗사람의 신임만 믿고(懷寵) 헛되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尸位)는 이 성어는 물러가야 할 때를 알고서 물러가지 않고 직위에 죽치고 있는 사람을 비유하는 말이다. 전번 尸位素餐(시위소찬)에 나온 대로 시위는 제사를 지낼 때 조상의 신위 대신 앉혀 접신되게 했던 아이 尸童(시동)이 앉은 자리를 가리킨다. 제상의 음식을 마음껏 먹을 수 있었던 시동과 같이 하는 일 없이 자리를 차지하고 녹을 받아먹는 공직자를 비꼴 때 썼다. 거기에 임금의 총애까지 받았으니 백성이 볼 때 세금도둑이 아닐 수 없다.

曾子(증자)가 스승 孔子(공자)에게서 받아 효도에 관한 내용을 엮은 ‘孝經(효경)’에 이런 글이 실려 있다. 아버지의 명령을 따르기만 하면 효도를 다한다고 할 수 있겠느냐고 여쭙자 공자가 답한다. 어른이나 임금에게 옳지 못하거나 잘못된 일을 고치도록 간절히 말하는 신하가 있으면 임금도 천하를 잃지 않고, 아버지에게 이런 자식이 있다면 의롭지 않은 일에 빠지지 않는다면서 ‘의롭지 못한 일을 당했을 때는 간쟁해야 하니 아버지의 명령만 따른다고 어찌 효도라 할 수 있겠는가(當不義則爭之 從父之令 又焉得爲孝乎/ 당불의즉쟁지 종부지령 우언득위효호)?’라고 했다.

諫諍(간쟁, 諍은 간할 쟁)에 나오는데 이것을 공자의 후손 孔安國(공안국)이 풀이하여 간쟁하지 않는 신하는 ‘懷寵尸位 國之姦人/ 회총시위 국지간인’이라 평했다. 총애만 믿고 물러갈 때를 놓친 사람으로 秦(진)나라 통일에 기여한 李斯(이사)가 많이 꼽힌다. 그는 간신 趙高(조고)와 함께 2세 황제 胡亥(호해)를 옹립하고 2인자의 지위를 누렸으나 결국 모함에 빠져 허리가 잘리는 腰斬(요참) 형을 받고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유교무류有敎無類 - 가르침에는 차별이 없다.

유교무류有敎無類 - 가르침에는 차별이 없다.

유교무류(有敎無類) - 가르침에는 차별이 없다.

있을 유(月/2) 가르칠 교(攵/7) 없을 무(灬/8) 무리 류(頁/10)

이 말을 한자 없이 언뜻 들으면 儒敎(유교)에 잘못이 없다거나 유교가 가장 뛰어나다는 뜻으로 알기 쉽다. 하지만 그런 의미가 아니라 가르치는 데(有敎)에는 차별이 있을 수 없다(無類)는 孔子(공자)님 말씀이다. 공자는 최고의 스승으로 꼽히는 만큼 교육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仁(인)을 실천하기 위한 교육에 빈부나 귀천, 노소를 불문하고 가르침에 차등을 두지 않았다. 그래서 최소한의 예의만 차리면 가르쳤던 束脩之禮(속수지례, 脩는 말린고기 수)란 말이 전한다. 가난해도 열 조각의 말린 고기만 있으면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論語(논어)’에는 곳곳에 공자의 교육에 관한 언급이 있는데 ‘가르침이 있을 뿐 대상에 빈부귀천의 차이는 없다(子曰 有敎無類/ 자왈 유교무류)’는 구절은 衛靈公(위령공)편에 실려 있다. 이에 대해 여러 학자들의 해석이 있는 중 南北朝(남북조) 梁(양)나라의 경학자 皇侃(황간, 侃은 강직할 간)의 주를 많이 따른다. 사람에게 귀천이 따르지만 재주에 따라 가르쳐야 한다며 ‘가르치면 선하게 되니, 차별은 없는 것(敎之則善 本無類也/ 교지즉선 본무류야)’이라 봤다. 宋(송)나라의 유학자 朱熹(주희)는 사람의 본성이 다 선하니 구분 없이 가르친다면 본래의 선을 회복한다고 해석한다.

공자가 가르침에 차등을 두지 않았다는 예는 여러 제자를 보고 알 수 있다. 수제자 顔回(안회)는 簞食瓢飮(단사표음, 食은 먹을 식, 밥 사)이란 말이 전하듯 끼니를 걱정할 정도였으나 子貢(자공)과 冉有(염유)는 부유한데다가 재산도 많이 모았다. 현명한 안회에 비해 우직한 子羔(자고)도 있었고, 덕행을 칭찬한 仲弓(중궁)이 있었는가 하면 子路(자로) 같은 불량배 출신도 껴안았다. 나이가 많고 적음은 더 문제가 안 되는 듯 안회의 아버지 顔路(안로)도 제자가 된 적이 있다. 태어난 魯(노)나라뿐 아니라 각국을 주유하다 보니 여러 나라 출신이 다양하게 제자로 들어왔다.

사람이 날 때부터 능력에 차별이 없을 리 없지만 공자는 스승이 제자의 개성을 파악하여 옳게 지도한다면 좋은 성과를 이룰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신분과 계급의 차이가 엄격했을 시기였을 텐데 공자의 이런 가르침은 오늘날 더욱 돋보인다. 모든 국민이 평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음에도 부유층은 사교육으로 어릴 때부터 앞서 나간다. 개천에서 용 나온다는 이야기는 司試(사시)가 폐지된 뒤로는 지역까지도 높이 성이 쳐져 옛이야기가 됐다. 차별이 없는 교육은 옛 책 속에만 있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일구지학一丘之貉 - 한 언덕에 사는 오소리, 구별하기 어려운 같은 종류

일구지학一丘之貉 - 한 언덕에 사는 오소리, 구별하기 어려운 같은 종류

일구지학(一丘之貉) - 한 언덕에 사는 오소리, 구별하기 어려운 같은 종류

한 일(一/0) 언덕 구(一/4) 갈 지(丿/3) 담비 학, 오랑캐 맥(豸/6)

실력이 어금버금하여 우열을 가리기 힘들 때 難兄難弟(난형난제)나 大同小異(대동소이)란 말을 쓴다. 속담 ‘도토리 키 재기’가 나타내듯이 두 비교되는 사람이나 사물이 낫고 못함이 적은 경우를 나타낸다. 반면 ‘그 나물에 그 밥’이나 속된 표현으로 ‘그 놈이 그 놈’이라 하면 부정적 의미가 강하다. 대립하는 양자의 수준이 나쁜 쪽으로 비슷할 때 쓴다. 당사자와는 떨어져 있는 입장에서 볼 때 별 차이도 없는 것들이 싸운다는 냉소적인 뜻이 담겼다. 양비론의 예시이기도 한데 五十步百步(오십보백보)와 상통한다.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족제빗과의 포유동물 오소리는 생긴 것도 호감을 못줘 한 곳에 모여 살면 어느 놈이 어느 놈인지 좋고 나쁜 것을 구별할 수 없다. 한 언덕(一丘)에서 사는 오소리(之貉)라는 성어도 서로 다를 바 없는 똑 같은 부류나 한통속인 나쁜 무리를 비유한다. 오소리 貉(학)은 담비라는 뜻도 있고, 오랑캐를 말할 때는 ‘맥‘으로 읽는다. 班固(반고)의 역사서 ’漢書(한서)‘에 실려 전한다.

楊惲(양운, 惲은 도타울 운)전의 내용을 간추려보자. 漢(한)나라 양운은 집안도 떵떵거릴만하고 어려서부터 외조부인 司馬遷(사마천)의 史記(사기)를 공부했기 때문에 학식도 남달라 젊은 나이에 요직에 발탁됐다. 청렴결백했지만 일찍 명성을 누려 미움도 많이 샀다. 당시 宣帝(선제)가 총애하던 長樂(장락)이란 사람과 특히 사이가 나빴다.

한번은 장락이 고소를 당하자 이를 양운의 소행이라 생각하고 왕에게 글을 올렸다. 이전 양운이 흉노의 우두머리가 살해된 것은 자신이 무도했기 때문이라며 ’옛날이나 지금이나 아둔한 임금은 한 곳에 모여 있는 오소리와 같다(古與今如一丘之貉/ 고여금여일구지학)‘고 표현한 부분을 들어 지금 왕을 비방했다고 한 것이다. 선제는 이에 넘어가 화를 내며 양운을 삭탈관직하고 말았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규구준승規矩準繩 - 목수가 쓰는 그림쇠와 자, 수준기, 먹줄. 일상생활에서 지켜야 할 법도

규구준승規矩準繩 - 목수가 쓰는 그림쇠와 자, 수준기, 먹줄. 일상생활에서 지켜야 할 법도

규구준승(規矩準繩) - 목수가 쓰는 그림쇠와 자, 수준기, 먹줄. 일상생활에서 지켜야 할 법도

법 규(見/4) 법 구(矢/5) 준할 준(氵/10) 노끈 승(糸/13)

나무로 집이나 가구를 만드는 木手(목수)를 죽은 나무에 두 번째의 목숨을 주는 사람이라 극찬하는 말이 있다. 요즘은 부분 나무판으로 짜 맞추는 DIY(do-it-yourself) 가구도 나왔지만 보통 사람이 따르지 못하는 손재주를 찬탄한 말이겠다. 魯(노)나라에서 궁중 목공일을 하는 慶(경)이라는 사람은 악기 틀을 어찌나 잘 만들었는지 보는 사람마다 귀신의 솜씨라며 놀라워했다고 莊子(장자)에서 이야기한다. 경은 딴 재주보다 7일간 재계한 뒤 숲에서 마음속에 그린 틀에 하나가 되는 나무를 골라 만들 뿐이라 했다. 이런 귀신같은 솜씨를 가졌더라도 맨손으로 작품을 낼 수는 없다.

목수가 작업을 할 때 꼭 필요한 것이 크고 작게 원을 그리는 컴퍼스인 걸음쇠와 ‘ㄱ’자 모양의 곱자(曲尺/ 곡척)다. 이 둘을 합쳐 規矩(규구)라 한다. 중국 전설의 창조신 伏羲(복희)와 女媧(여와)가 가진 것이 이것이라 한다. 여기에 면이 평평한지 눈금자로 알아보는 수준기와 먹을 묻혀 곧게 줄을 치는 먹줄도 빠질 수 없는데 이 둘은 합쳐 準繩(준승)이다. 이 네 가지 필수 연장은 목수뿐만이 아니라 아무리 뛰어난 재주를 가진 사람이라도 표준은 지킬 수 있는 규칙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해 준다. 그래서 일상생활에서 꼭 지켜야 할 법도를 가리키는 말이 됐다.

이 말을 강조하여 쓴 곳은 ‘孟子(맹자)’에서다. 離婁(이루) 상편 첫 부분부터 나온다. ‘이루의 밝은 시력과 공수자의 뛰어난 재주가 있어도 규구를 쓰지 않으면 네모와 원을 제대로 그리지 못한다(離婁之明 公輸子之巧 不以規矩 不能成方圓/ 이루지명 공수자지교 불이규구 불능성방원).’ 이루는 黃帝(황제) 때의 전설적인 인물로 백보 밖에서 가는 털 秋毫(추호)를 구분했고, 공수자는 이름이 般(반), 魯(노)나라에서 손재주가 뛰어난 기술자라 했다. 또한 성인은 밝은 눈으로 잘 살피고 ‘규구와 준승을 계속 사용하여(繼之以規矩準繩/ 계지이규구준승)’ 그 쓰임이 끝이 없었다고 덧붙인다.

성군인 堯舜(요순)은 자의적으로 정치를 행하지 않고 이전의 도를 잘 지켜 인정을 베풀었고 천하를 잘 다스릴 수 있었다. 전해 내려오는 훌륭한 전통이나 법도가 있어도 처박아두고 지키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재량이 있는 자리에 앉은 사람이라도 항상 자신이 행하는 일이 법도에 맞는 일인지, 아랫사람의 불만을 사는 일이 아닌지 잘 살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태산불사토양泰山不辭土壤 - 태산은 흙을 사양하지 않는다.

태산불사토양泰山不辭土壤 - 태산은 흙을 사양하지 않는다.

태산불사토양(泰山不辭土壤) - 태산은 흙을 사양하지 않는다.

클 태(水/5) 메 산(山/0) 아닐 불(一/3) 말씀 사(辛/12) 흙 토(土/0) 흙덩이 양(土/17)

중국의 泰山(태산)은 山東省(산동성)에 있는 높이 1,532m 밖에 안 되지만 五岳(오악) 중에서도 으뜸이며 예로부터 역대 황제들이 하늘의 뜻을 받는 封禪儀式(봉선의식)을 치러 중국인들이 가장 성스럽게 여겼던 산이다. 그래서 泰山鳴動 鼠一匹(태산명동 서일필), 泰山北斗(태산북두), 泰山梁木(태산양목) 등 태산이 들어가는 성어도 많다. 그 중에서도 가장 교훈적인 말이 태산처럼 큰 산도 작은 흙덩어리를 가리지 않고 받아들임으로써 그 높이를 이룰 수 있었다는 이 성어다. 사소한 의견이나 의견 다른 사람도 수용할 수 있는 사람만이 도량이 큰 인물이 될 수 있음을 비유하는 말이다.

司馬遷(사마천, 기원전 145년~80년)의 불멸의 ‘史記(사기)’ 李斯列傳(이사열전)에 씌어 있다. 李斯는 指鹿爲馬(지록위마)에 나온 바로 그 사람이다. 그는 楚(초)나라 사람이었는데 荀子(순자)에게서 통치술을 배워 秦(진)으로 가서 始皇帝(시황제)의 신임을 얻었다. 그즈음 韓(한)나라에서 온 사람이 음모를 꾸미다 발각돼 왕족과 대신들은 타국에서 온 사람들을 추방하자고 들고 일어났다. 축출의 대상에 든 이사가 유명한 ‘諫逐客書(간축객서)’를 올렸다.

‘태산은 한 줌의 흙도 사양하지 않으므로 그렇게 높아질 수 있었고, 하해는 작은 물줄기 하나도 가리지 않으므로 그 깊음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泰山不讓土壤 故能成其大 河海不擇細流 故能就其深/ 태산불양토양 고능성기대 하해불택세류 고능취기심).’ 황제는 추방령을 거두었고 이사는 통일 정국을 안정시키는데 공헌했지만 환관 趙高(조고)와 공모하는 잘못된 판단으로 자신도 장터에서 처형되고 말았다. 不辭와 不讓은 같은 뜻이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제하분주濟河焚舟 – 강을 건넌 뒤 배를 불사르다.

제하분주濟河焚舟 – 강을 건넌 뒤 배를 불사르다.

제하분주(濟河焚舟) – 강을 건넌 뒤 배를 불사르다.

건널 제(氵/14) 물 하(氵/5) 불사를 분(火/8) 배 주(舟/0)

막다른 곳에 몰렸을 때 한 곳을 뚫지 않으면 몰살한다. 죽을 각오로 임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한다. 이럴 때 비장한 결심을 나타내는 성어는 여럿이다. 강을 등지고 적과 결전하는 韓信(한신)의 背水之陣(배수지진), 솥을 깨뜨리고 배를 가라앉히는 項羽(항우)의 破釜沈舟(파부침주)가 가장 잘 알려졌다. 이외에도 背城借一(배성차일)이나 捨量沈船(사량침선)도 있다. 강을 건넌 다음에 다리를 부숴버린다는 過河折橋(과하절교)는 전혀 뜻이 다르니 주의해야 한다. 다리를 잘 건너고는 그 고마움을 잊고 부순 목재를 훔쳐가니 더 이상의 이기주의가 없다.

황하를 건넌 뒤(濟河) 배를 불사른다는(焚舟) 이 성어도 전장에서 살아 돌아가기를 기약하지 않는 굳은 의지를 나타낸다. 앞의 유사한 성어보다 훨씬 먼저 ‘春秋左氏傳(춘추좌씨전)’에 등장했다. 文公(문공) 3년 조에 秦穆公(진목공)이 晉(진)나라 정벌에 나선 기사에 나온다. ‘진백이 진나라를 쳤다. 황하를 건너자 타고 간 배를 불에 태우고 진나라 땅 王官(왕관)과 郊(교)를 빼앗았다. 그러나 진나라 군대는 성 밖으로 나오지 않고 지키기만 했다(秦伯伐晉 濟河焚舟 取王官及郊 晉人不出/ 진백벌진 제하분주 취왕관급교 진인불출).\xa0

간단한 이 이야기를 ‘東周列國志(동주열국지)’에는 살을 붙인다. 진나라에 잇따라 패배한 秦(진)의 장군 孟明(맹명)은 문책하지 않는 목공을 위해 또 복수를 위해 군사를 조련했다. 길일을 잡아 군대를 일으킨 진군이 ‘황하를 건너자 맹명은 타고 온 배를 모두 불사르게 했다(既渡黃河 孟明出令 使盡焚其舟/ 기도황하 맹명출령 사진분기주)’. 필사의 각오로 나선 맹명의 군대에 진나라는 성을 굳게 지키기만 했다. 할 수 없이 이전 전투에서 패했을 때 전사한 유골을 수습해 귀국했다. 백성들은 목공이 소복을 입고 친히 지낸 위령제에 모두들 감동했다.

壬辰倭亂(임진왜란)때 의병을 일으킨 鄭經世(정경세, 1563~1633)는 금주를 위해 이 말을 사용해 흥미롭다. 누룩이나 술잔을 집안에 두지 않기를 ‘솥단지를 깨고 막사를 불태우며, 강을 건넌 뒤 배를 불태우는(如破釜甑燒廬舍 濟河焚舟底勇決/ 여파부증소려사 제하분주저용결)’ 것과 같이 한다고 했다. 술을 끊는데도 이와 같이 선언을 하는데 인생을 살아가면서 큰일에 부딪칠 때는 비장한 각오를 않을 수 없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낭중지추囊中之錐 – 주머니 속의 송곳, 재주는 저절로 드러난다.

낭중지추囊中之錐 – 주머니 속의 송곳, 재주는 저절로 드러난다.

낭중지추(囊中之錐) – 주머니 속의 송곳, 재주는 저절로 드러난다.

주머니 낭(口/19) 가운데 중(丨/3) 갈 지(丿/3) 송곳 추(金/8)

송곳은 자루에 있어도 뾰족한 부분이 밖으로 삐져나와 위치를 알린다. 재능이 뛰어난 사람은 아무리 자신의 재주를 숨기려 해도 주변에서 먼저 알아본다는 성어로 脫穎而出(탈영이출, 穎은 이삭 영)이 있다. 선하거나 악한 일은 숨겨지지 않고 자연히 드러난다는 뜻으로 ‘주머니에 들어간 송곳이라‘, ’자루 속의 송곳‘ 등의 속담을 자주 쓴다. 이것을 한역한 듯이 똑 같은 이 성어가 앞의 脫穎而出과 함께 ’史記(사기)‘에 이야기가 나와 역사가 오래 됐다. 줄여서 錐囊(추낭)이라고도 하고 錐處囊中(추처낭중)으로 써도 같다.

戰國時代(전국시대) 趙(조)나라에 毛遂(모수)라는 사람이 있었다. 당시의 귀족들은 수천 명의 식객을 거느리고 왕 못지않게 세력을 떨치고 있었다. 모수는 조나라에서 사공자에 들어가는 平原君(평원군) 밑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있었는데 3년이 지나도록 별다른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었다. 秦(진)나라가 조나라의 서울 邯鄲(한단)을 공격해오자 조나라왕은 동생인 평원군에게 楚(초)나라로 가서 구원을 청하도록 했다. 평원군은 식객 가운데 문무를 겸비한 20명을 골라 함께 가기로 했는데 19명까지 고른 뒤에는 더 이상 적당한 사람이 없었다. 이 때 모수가 자신이 가겠다고 나섰다. 毛遂自薦(모수자천)이 여기서 나왔다.

평원군은 모수가 3년이나 있었다는데 처음 보는 얼굴이라 반대했다. ‘현명한 사람이 세상에 처해 있는 것은 비유하자면 송곳이 주머니 속에 있는 것과 같아서 그 끝이 튀어나온다고 했소(夫賢士之處世也 譬若錐之處囊中 其末立見/ 부현사지처세야 비약추지처낭중 기말입견).’ 모수는 물러설 사람이 아니었다. 만약 일찍 주머니에 넣어주기만 했더라면 송곳 끝이 아니라 자루까지 나왔을 것이라 주장했다. 평원군은 마지못해 모수를 일행에 합류시켰다. 초왕과 협상이 지지부진할 때 모수가 비수를 들고 당당한 언변을 펼쳐 마침내 합종을 성사시켰다. 평원군은 후일 백만의 군대보다 모수의 혀가 강했다며 상객으로 삼았다. 平原君虞卿列傳(평원군우경열전)에 실려 있다.

모수처럼 재주도 있는 사람이 스스로 어려운 일을 맡는다면 윗사람의 일은 술술 풀린다. 제가 잘 났다고 스스로 나서는 사람이 일을 맡았을 때 망치는 경우는 숱하다. 재주가 있으면서도 드러내지 않고 사양하는 사람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므로 인사가 만사라는 말이 생겼겠다. 편을 고르지 않고 三顧草廬(삼고초려)하는 정신이 물론 앞서야 한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욕개미창欲蓋彌彰 - 덮으려 하다가 더욱 드러나다.

욕개미창欲蓋彌彰 - 덮으려 하다가 더욱 드러나다.

욕개미창(欲蓋彌彰) - 덮으려 하다가 더욱 드러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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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자할 욕(欠/7) 덮을 개(艹/10) 미륵 미(弓/14) 드러날 창(彡/11)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린다고 해서 하늘이 다 가려질 수 없다. 잘못을 알려지지 않게 덮으려고(欲蓋) 한 일이 도리어 더 드러나게 되는(彌彰) 것을 가리킬 때 이 말을 쓴다. 봄철 산란기 때 꿩이 숲속에 몰래 알을 낳으려다 스스로 울어 사냥꾼에 잡히는 어리석음이나 개구리가 시끄럽게 울어 뱀의 먹이가 되는 것과 같다. 欲蓋彌章(욕개미장)으로도 쓴다. 미륵 彌(미)는 더욱이란 뜻이 있다. 하나의 잎사귀가 눈을 가린다는 一葉蔽目(일엽폐목)이란 말과 비슷할 것 같지만 이는 일시적인 현상에 빠져 전체적인 것을 보지 못한다는 뜻으로 차이가 있다.

孔子(공자)가 엮은 사서 春秋(춘추)는 단순한 역사적 사실만을 전달하지 않고 명분에 따라 준엄하게 기록하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어떤 사실에 대해 평론하거나 힐책하거나 찬양하는 데에도 원칙에 의해 간결한 문체로 기록하여 春秋筆法(춘추필법)이란 말까지 생겼다.

魯(노)나라 昭公(소공) 때의 일이다. 周(주)나라의 대부 黑肱(흑굉, 肱은 팔뚝 굉)이란 사람이 항복해오자 다스리던 영지 濫(남)도 노나라 땅이 되었다. 공자는 ‘겨울, 흑굉이 남 지역을 갖고 들어옴’이라고 간단히 기록했다. 춘추의 원칙에서 본다면 신분이 높지 않은 흑굉은 굳이 밝힐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도 이렇게 한 까닭을 左丘明(좌구명)이 ‘春秋左氏傳(춘추좌씨전)’에서 해석한다.

‘흑굉은 낮은 자이지만 땅을 갖고 적국에 항복했기 때문에 영토의 변경을 가져왔다. 이름을 기록한 것은 불의한 일을 없어지지 않게 하려는 의미다. 군자는 행동에 예의와 의리를 잊지 말아야 한다. 어떤 사람은 이름나기를 바라지만 얻지 못하고, 어떤 사람은 악명을 감추려 해도 안 되는 법이다(或求名而不得 或欲蓋而名章/ 혹구명이부득 혹욕개이명장).’.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난상가란卵上加卵 - 알 위에 알을 포개다, 정성이 지극하면 하늘도 감동한다. 

난상가란卵上加卵 - 알 위에 알을 포개다, 정성이 지극하면 하늘도 감동한다. 

난상가란(卵上加卵) - 알 위에 알을 포개다, 정성이 지극하면 하늘도 감동한다.\xa0

알 란(卩/5) 윗 상(一/2) 더할 가(力/3) 알 란(卩/5)

계란은 지금은 어디든 굴러다니는 흔한 식품이다. 양계가 기업화되어 양산된다. 30~40년 전만 해도 귀한 손님이나 집안 어른 상에만 올라 꼬마들의 군침을 돋웠다. 조그만 몸피에 단백질 등 영양 덩어리라 가치를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계란을 이야기한 속담 중 ‘달걀에도 뼈가 있다’가 있다. 모처럼 맞은 좋은 기회에도 재수 없어 일을 그르치는 것으로 鷄卵有骨(계란유골)이다. ‘계란으로 바위 치기’는 以卵擊石(이란격석)으로 번역되어 도저히 불가능한 것에 도전하는 것을 이른다. 알을 쌓아놓은 것처럼 위험하면 累卵之危(누란지위)가 된다.

달걀 위(卵上)에 달걀을 더하여 포개놓는다(加卵)는 말은 위험하다는 말이 아니고 아예 될 수 없는 일을 뜻한다. 타원의 둥그런 계란을 세로로 세우기도 힘든데 그 위에 얹는 것은 더 어려운 일이다. 그 불가능한 일을 간절한 기도로 이루어낸 이야기에서 지극한 정성을 나타내는 말이 됐다. 조선 후기의 작자 미상 한문 笑話集(소화집) ‘醒睡稗說(성수패설)’에 실려 전한다. 稗는 피 패. 패설은 민간에 떠도는 기이한 이야기를 모은 것인데 음담도 몇 편 들어있어 古今笑叢(고금소총)에 인용되기도 한 책이다. \xa0

이름 높던 한 벼슬아치가 임금에 죄를 지어 먼 곳으로 귀양을 가게 되었다. 그의 부인이 언제 돌아올 수 있을지 물었다. 그는 알 위에다 알을 포갤 수 있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으면 살아서 돌아오기 어렵다고 대답했다. 부인은 달걀 두 개를 소반 위에 얹고서 밤낮을 쉬지 않고 포개지도록 축수했다. 하지만 애초 불가능한 일이 이뤄지지는 않아 부인은 애통한 소리만 낼 뿐이었다. 어느 날 임금이 微行(미행)을 나갔다가 축원을 듣고 사람을 시켜 곡절을 알아보게 했다. 부인의 지성을 측은히 여긴 임금은 죄인을 석방하도록 했다. 그를 불러 풀려난 이유를 아느냐 하니 성은이 망극할 따름이라 했다. 임금이 말했다. ‘그렇지 않고 알 위에 알을 포갰기 때문이오(不然卵上加卵故也/ 불연난상가란고야).’

부인의 간절한 기도로도 알을 포개지는 못했다. 그래도 결과는 임금을 움직여 남편을 풀려나게 했다. 정성이 지극하면 하늘도 감동하게 된다는 至誠感天(지성감천)이 여기 해당된 셈이다. 사회에 진출한 젊은이들의 앞에는 모든 것이 아득한 장벽뿐이라 포기만 기다린다. 이런 절망 앞에선 아무리 알을 포개려 해도 힘들겠지만 하늘 아래인데 뫼만 높다고만 하지 않았는지 다시 한 번 돌아볼 필요는 있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능언앵무能言鸚鵡 - 앵무새도 능히 말을 한다, 말만 앞세우고 실속이 없다.

능언앵무能言鸚鵡 - 앵무새도 능히 말을 한다, 말만 앞세우고 실속이 없다.

능언앵무(能言鸚鵡) - 앵무새도 능히 말을 한다, 말만 앞세우고 실속이 없다.

능할 능(肉/6) 말씀 언(言/0) 앵무새 앵(鳥/17) 앵무새 무(鳥/7)

사람들의 말이나 소리를 흉내 내서 귀여움을 받는 새 鸚鵡(앵무)는 이칭도 많다. 작은 앵무새를 흔히 말하는 잉꼬는 鸚哥(앵가)의 일본식 발음에서 왔다. 중국 唐(당)나라 玄宗(현종)과 楊貴妃(양귀비)의 사랑을 듬뿍 받은 雪衣娘(설의랑)은 하얀 앵무새를 가리켰다. 八哥(팔가)라 하여 스님의 염불도 따라 할 줄 안다고 한 새는 앵무새라 하기도 하고 달리 말 흉내 내는 九官鳥(구관조)를 가리킨다고도 한다. 어쨌든 영리한 놈은 100단어 가량 외우기도 한다니 사랑을 독차지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앵무새는 말 잘하여도 날아다니는 새다’란 속담은 말만 번지르르하고 실천이 따르지 않는 사람을 가리킨다.

능히 말을 할 수 있는(能言) 앵무새(鸚鵡)라는 말은 재주를 칭찬하는 것이 아니라 말만 앞세우고 행실이나 학식은 따르지 못하는 사람을 비꼰다. 孔子(공자)가 강조한 訥言敏行(눌언민행), 말을 느리고 잘못 하더라도 실천을 앞세우라고 한 것과도 대비된다. 유교 경전 ‘禮記(예기)’는 五經(오경)의 하나인데 大學(대학)과 中庸(중용)이 四書(사서)로 독립하기 전엔 여기에 포함됐다. 예의 이론과 실제를 담아 경서의 첫손에 꼽히는 이 책은 모두 49편이 전하는 중 제일 첫 편이 曲禮(곡례) 상편이다. 성어가 나오는 이 편 앞부분에도 좋은 말이 있으니 짚고 가면 좋겠다.

‘도덕과 인의는 예가 아니면 완성되지 않으며, 교훈으로 풍속을 바로잡는 것도 예를 따르지 않으면 이룰 수 없다(道德仁義 非禮不成 教訓正俗 非禮不備/ 도덕인의 비례불성 교훈정속 비례불비).’ 다음 절에 앵무가 등장한다. ‘앵무새는 능히 말을 할 줄 알지만 하늘을 나는 새일 뿐이며(鸚鵡能言 不離飛鳥/ 앵무능언 불리비조), 성성이란 원숭이도 말을 할 수 있지만 짐승에 지나지 않는다(猩猩能言 不離禽獸/ 성성능언 불리금수).’ 그러니 사람으로서 예절을 지키지 못하면 금수의 마음과 같다는 가르침이다.

웅변가의 청산유수 같은 말은 口若懸河(구약현하)라 하여 들을 때는 넋을 놓고 빠져든다. 특히 지도자를 뽑는 연설회에선 말 잘 하는 후보자가 압도적으로 유리하다. 이스라엘 민족을 이집트의 노예 상태에서 해방시킨 지도자 모세도 말에는 자신이 없었다고 하고, 역사상 뛰어난 웅변가 중에서도 말더듬이가 많았다고 한다. 말을 잘 하는 것보다 청중과 공감하고 본질을 잘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 말을 앞세워 지도자가 된 사람들, 실천도 못할 空約(공약)을 내세워 사후에는 나몰라하는 사람들은 앵무와 같은 셈이다. 아니 귀여움과는 거리가 머니 앵무보다 못하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