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3일 수요일

두점방맹杜漸防萌 – 퍼지기 전에 막아 싹이 못나오게 하다, 미연에 방지하다.

두점방맹杜漸防萌 – 퍼지기 전에 막아 싹이 못나오게 하다, 미연에 방지하다.

두점방맹(杜漸防萌) – 퍼지기 전에 막아 싹이 못나오게 하다, 미연에 방지하다.

막을 두(木/3) 점점 점(氵/11) 막을 방(阝/4) 움 맹(艹/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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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을 베면 뿌리를 없이하라’란 속담이 있다. 무슨 일이든 하려면 철저히 하라는 말이다. 나쁜 일을 없애려면 그 근본까지 없애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성어 斬草除根(참초제근)과 똑 같은 뜻이다. 마찬가지로 범죄를 끝까지 추적하여 소탕할 때 악의 뿌리까지 뽑는다고 으스스하게 拔本塞源(발본색원)이란 말을 많이 쓴다. 이보다 더하게 나쁜 일의 조짐이 보일 때 젖어들기 전에 처음부터 막아(杜漸) 싹이 나오지 못하게 한다(防萌)는 이 말 역시 화를 초기에 제거해야 나중 큰 해를 막을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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後漢(후한)의 초기에는 외척과 환관들의 세력다툼으로 혼란스러웠다. 3대 章帝(장제, 재위 75~88) 때는 선대 때와 달리 이들에 관대했기 때문에 서로 배척하거나 손잡거나 하며 권력을 장악했다. 4대 和帝(화제, 88~106)가 즉위할 때는 겨우 10세였기 때문에 장제의 황후인 竇太后(두태후)가 섭정을 하게 됐다. 자연히 그의 오빠인 竇憲(두헌)이 시중이 되어 국정을 좌우했고 동생들도 요직을 맡았다. 두헌은 지방의 호족들을 장악하고 사당을 조직하여 백성들의 재물을 빼앗는 등 횡포를 자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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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삼공의 하나인 司徒(사도)로 백성들의 신망을 받고 있던 丁鴻(정홍)이 나섰다. 두헌 형제가 사당 세력을 규합하여 반란을 꾀한다는 사실을 알고 화제에게 초기에 제거하여 후환을 없애야 한다고 상주했다. ‘폐하께서 만약 직접 정무를 장악하고 초반에 손을 써서 싹을 자르면 저들의 흉포한 일은 없어질 것이고 화는 사라져 평안할 것입니다(若敕政責躬 杜漸防萌 則凶妖銷滅 害除福湊矣/ 약칙정책궁 두점방맹 즉흉요소멸 해제복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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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가 정홍에 전권을 주고 두헌의 인수를 거둬들인 뒤 두씨 일족을 소탕했다. ‘後漢書(후한서)’ 정홍전에 실려 있다. 함께 공을 세운 환관 鄭衆(정중)을 제후에 봉했다. 이후 번갈아가며 환관과 외척이 피비린내 나는 정권다툼으로 나라가 기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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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이든 계획을 잘 세워야 한다. 나쁜 조짐만 아니고 일을 처리할 때 승산이 없는데도 붙잡고 늘어지는 일이 있다. 들인 시간이 얼만데, 매몰비용이 어떠니, 돈이 얼마나 들었는데 하며 미련을 가진다. 이렇게 미적거리다 더 큰 화를 부를 수가 있다. 더 큰 손해를 보기 전에 자란 싹이라도 자르는 것이 옳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천만매린千萬買隣 - 천만금을 주고 이웃을 사다.

천만매린千萬買隣 - 천만금을 주고 이웃을 사다.

천만매린(千萬買隣) - 천만금을 주고 이웃을 사다.

일천 천(十/1) 일만 만(艹/9) 살 매(貝/5) 이웃 린(阝/12)

이웃을 나타내는 隣(린)의 글자 생성이력을 보면 재미있다. 음을 나타내는 粦(린)은 도깨비불이나 반딧불을 가리킨다. 쌀알米/ 미처럼 작은 불이 서로 어긋나게舛/ 천 반짝이는 데서 나왔다. 반딧불이가 어우러져 반짝이듯 서로 어우러져 살게 됐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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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자 鄰(린)은 阝가 오른쪽에 붙은 언덕 阜(부)였다가 邑(읍)을 말하는 왼쪽의 左阝(좌부) 한자 隣(린)이 더 많이 쓰이게 됐다. 글자 변천은 어떠하든 듣기만 해도 포근한 이웃이 들어간 명언도 푸근하다. 성경에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했고 孔子(공자)님은 어진 사람이 모인 곳이 아름답다고 里仁爲美(리인위미)를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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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과 이웃을 돈으로 따져 속되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많은 돈을 들여야 하는 저택보다 더 이웃사람을 높이 쳤다는 이 성어가 오히려 그 생각을 부끄럽게 만든다. 집보다 열배나 비싸게 천만금을 주고(千萬) 이웃을 샀다(買隣)는 이 말은 중국 南朝(남조) 梁(양)나라의 宋季雅(송계아)라는 사람이 먼저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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後漢(후한)이 망하고 양쯔강揚子江/ 양자강 남쪽에 있었던 여섯 왕조는 唐(당)나라 초기의 역사가 李延壽(이연수)에 의해 ‘南史(남사)’로 정리돼 남았다. 北朝(북조)를 쓴 그의 北史(북사)와 함께 중국 정사 二十四史(이십사사)에 모두 포함될 만큼 사료적 가치도 충분하다고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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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나라 武帝(무제)때 군의 관직명 冠軍將軍(관군장군)을 지낸 呂僧珍(여승진)의 열전에 내용이 기록돼 있다. 여승진은 사람됨이 청렴 성실했고 학문에도 뛰어났다고 한다. 송계아가 여승진이 사는 이웃집으로 이사를 왔다. 여승진이 무제에게 천거하여 탁월한 정치업적을 남긴 사람인데 은퇴하고 이웃으로 살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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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때 송계아가 인사를 왔다. ‘여승진이 집값이 얼마인지 물었더니 천백만금이라 답했다(僧珍問宅價 曰一千一百萬/ 승진문택가 왈일천일백만). 너무 비싼 것을 괴이하게 여기자, 계아가 백만금으로 집을 사고 천만금으로 이웃을 샀다고 말했다(怪其貴 季雅曰 一百萬買宅 千萬買鄰/ 괴기귀 계아왈 일백만매택 천만매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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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계아의 말이 과장된 면이 있다고 해도 조그만 아파트 한 채 값이 10억대가 넘는다는 오늘날 사람들은 이웃 값을 더 들인 것에 어리둥절할 것이다. 옆집에 누가 사는지 몇 년이 지나도 모르고, 어쩌다 이사 와서 인사한다고 해도 경계심부터 앞세우니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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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환경을 위해 세 번이나 이사한 孟子(맹자) 어머니의 三遷之敎(삼천지교)도 배우기 좋은 곳이 몇 배나 더 비싼 곳이라 이해가 간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큰 일이 났을 때에는 이웃뿐이다. 遠水不救近火(원수불구근화)가 바로 ‘먼 친척보다 가까운 이웃이 낫다’는 속담과 같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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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장난명孤掌難鳴 - 외손뼉으로는 소리를 내지 못한다, 혼자서는 일을 이루지 못한다.

고장난명孤掌難鳴 - 외손뼉으로는 소리를 내지 못한다, 혼자서는 일을 이루지 못한다.

고장난명(孤掌難鳴) - 외손뼉으로는 소리를 내지 못한다, 혼자서는 일을 이루지 못한다.

외로울 고(子/5) 손바닥 장(手/8) 어려울 난(隹/11) 울 명(鳥/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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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 일을 잘 할 수 있는 특수한 영역 말고는 대부분 힘을 합쳐야 큰일을 이룬다. ‘도둑질을 해도 손발이 맞아야 한다’는 비유가 뭣하지만 잘 나타냈다. ‘외손뼉이 못 울고 한 다리로 가지 못한다’는 순화된 속담도 한 가지다. 두 손뼉이 마주 쳐야 소리가 나지 외손뼉만으로는(孤掌) 소리를 내기 어렵다(難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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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성어는 혼자서는 일을 이룰 수 없음을 말하거나, 서로 의견이 맞지 않아 성사가 지지부진할 때 비방하는 뜻이 담겼다. 대꾸하고 맞서는 사람이 없으면 싸움이 되지 않음을 비유할 때도 쓴다. 獨掌不鳴(독장불명)이나 외가닥 실은 선을 이루지 못한다는 單絲不成線(단사불성선)도 아무 쓸모가 없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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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 같은 말은 아니지만 비슷한 뜻으로 쓰인 예를 ‘韓非子(한비자)’에서 찾는다. 중국 法家(법가)의 확립자 韓非(한비)가 쓴 이 책의 功名(공명)편에 나온다. 글자대로 공적과 명성이란 뜻의 이편에서 군주가 대업을 이루기 위해서는 천시와 인심, 다스리는 기능도 중요하지만 권세와 지위가 우뚝해야 백성이 따른다고 했다. 어리석은 군주라도 현명하고 능력 있는 신하를 다스릴 수 있는 것은 권세와 지위가 있기 때문이다. 부분을 인용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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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과 실제가 서로 의존하며 이루어지고 형체와 그림자가 서로 호응하듯 존립하듯이(名實相持而成 形影相應而立/ 명실상지이성 형영상응이립) 신하와 군주는 기대하는 것은 같으나 직분은 달리 하는 사이다. 군주의 걱정은 신하가 호응하지 않을 것을 걱정하니 ‘한 손으로 박수를 쳐서는 제아무리 빠르게 칠지라도 소리가 나지 않는다(一手獨拍 雖疾無聲/ 일수독박 수질무성)’고 했다. 그러면서 잘 다스려지는 나라에서는, 군주는 북채와 같고 신하는 북과 같으며, 신하의 재능은 마차와 같고 그의 임무는 마차를 끄는 말과 같다고 덧붙인다. 각각의 직분을 다하면서 서로 협조해야 나라가 편안해진다는 뜻이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타인한수他人鼾睡 - 다른 사람의 코고는 소리, 악의 없는 행위가 나에게 방해가 됨

타인한수他人鼾睡 - 다른 사람의 코고는 소리, 악의 없는 행위가 나에게 방해가 됨

타인한수(他人鼾睡) - 다른 사람의 코고는 소리, 악의 없는 행위가 나에게 방해가 됨

다를 타(亻/3) 사람 인(人/0) 코고는소리 한(鼻/3) 졸음 수(目/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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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코든, 남의 코든 코가 높다거나 코를 쳐든다면 욕을 먹는다. 눈보다는 가치를 낮게 잡아도 코는 인간의 의지를 나타내기 위해 솟아 자존심을 나타낸다는 말도 있다. 자기가 급하면 吾鼻三尺(오비삼척)이라 내 코가 석자라며 남을 돌볼 처지가 안 되고, 정신 못 차리게 바쁘면 眼鼻莫開(안비막개)라 눈코 뜰 새가 없다. 이렇게 자주 코를 앞세우지만 전혀 환영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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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르렁드르렁 소리를 내며 코를 골 때다. 더 고약한 것이 자신이 골 때는 느끼지 못하고, 남이(他人) 자면서 코를 고는 소리(鼾睡)는 같이 자는 사람들의 숙면을 방해한다. 더군다나 지적해주면 골지 않았다고 화부터 내니 전혀 도움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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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성어가 자신의 세력이나 이익을 침범한다거나 눈에 거슬리며 방해가 된다는 뜻으로 처음 사용한 사람은 宋(송)나라를 개국한 趙匡胤(조광윤)이었다. 後周(후주)의 친위대장이던 그는 부하들이 陳橋兵變(진교병변)을 일으켜 7세의 어린 황제에게서 선양받는 형식으로 960년 太祖(태조)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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五代(오대) 최후의 왕조가 이처럼 망하고 남쪽의 十國(십국)도 하나씩 흡수해 중국 전역의 통일을 앞두고 있었다. 마지막까지 버티고 있던 南唐(남당)의 後主(후주) 李煜(이욱)은 송의 정벌이 두려워 외교에 능한 徐鉉(서현)을 사신으로 보냈다. 元(원)나라 때의 托克托(탁극탁)이 지은 사서 ‘宋史(송사)’ 등에 성어가 사용된 전후를 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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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현이 태조 앞에서 대국 송나라를 공손히 섬기니 강남은 죄가 없다고 남당을 공격하지 말 것을 요청했다. 평화적으로 합병하려던 태조는 ‘강남무죄론‘만을 고집스럽게 되뇌는 것에 화가 났다. ’강남이 역시 무슨 죄가 있겠는가, 그러나 단지 천하는 한 집안인데(江南亦有何罪 但天下一家/ 강남역유하죄 단천하일가), 침대 곁에서 다른 사람이 코를 골며 자는 소리를 어떻게 들을 수 있겠는가(臥榻之側 豈容他人鼾睡乎/ 와탑지측 기용타인한수호)?‘ 榻은 긴걸상 탑. 강남 지역도 송의 영토인데 그곳에 다른 세력을 묵과할 수 없다는 위협이었다. 서현은 겁을 먹고 물러났고 남당은 얼마 뒤 송나라에 항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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耳鳴鼻鼾(이명비한)이란 말이 있다. 귀울림이란 이명은 다른 소리가 없는데 자기만 들린다고 생각하는 중세이고 비한은 자기만 듣지 못하는 코골이다. 燕巖(연암) 朴趾源(박지원)이 비유를 기막히게 한 글이 ‘孔雀館文稿(공작관문고)’에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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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 인정하지 않는데 자기만 옳다고 여기는 사람과 모두가 아는 자신의 장점을 혼자 모를 때 ‘비유하자면 바로 귀가 울리고 코를 고는 소리와 같다(譬如耳鳴而鼻鼾/ 비여이명이비한)’고 한 것이다. 코를 골지 않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지적할 때 잡아떼는 것이 더 문제다. 내가 하는 것은 항상 바르고 남이 할 때는 나쁜 ‘내로남불’의 정치인들이 새겨야 할 말이다. / 제공: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설중송탄雪中送炭 - 추위 속에 땔감을 보내다.

설중송탄雪中送炭 - 추위 속에 땔감을 보내다.

설중송탄(雪中送炭) - 추위 속에 땔감을 보내다.

눈 설(雨/3) 가운데 중(丨/3) 보낼 송(辶/6) 숯 탄(火/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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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차가와지면서 양지쪽만 찾고, 난방에만 앉아 있으려 한다. 생활수준의 향상과 도시가스의 보급으로 요즘의 대도시에선 소비가 큰 폭으로 줄어든 연탄이지만 아직까지 고지대에선 난방의 주류인 곳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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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 ‘방구들 선득선득해지는 날부터 이듬해 봄까지/ 조선팔도 거리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은/ 연탄차가 부릉부릉/ 힘쓰며 언덕길 오르는’(안도현 ‘연탄 한 장’) 것이라고 노래했듯이 한 겨울에 연탄이 그득하면 그 이상 반가울 수가 없다. 눈 오는(雪中) 추운 날 땔감을 보낸다(送炭)는 고사는 오늘날 방을 데우지 못해 냉골에서 떠는 저소득층 사람들에게 선물하는 사랑의 연탄으로 남았다.

北宋(북송)의 2대 황제 太宗(태종)은 이름이 趙光義(조광의)로 처음 나라를 세운 太祖(태조) 趙匡胤(조광윤)의 아우다. 건국 초기부터 군인들을 억압하고 문관을 우대하는 등 강력한 중앙집권을 밀어붙였다. 토지합병으로 기득권층의 불만이 높아지고 일반 백성들은 생활이 궁핍해졌다. 차와 소금 등을 전매로 하자 밀매자가 늘어나는 등 불만이 팽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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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 4년인 서기 993년, 견디다 못한 농민들은 王小波(왕소파)와 李順(이순) 등을 우두머리로 하여 四川(사천)지방에서 들고 일어났다. 그해 겨울 여러 날 동안 눈이 내리고 강추위가 계속됐다. 태종은 이러한 추위에도 농민들이 봉기를 계속할까 염려하여 사람을 시켜 외롭거나 늙고 가난한 백성들에게 얼마의 돈과 쌀, 땔감을 보냈다(雨雪大寒 遣中使賜孤老貧窮人千錢米炭/ 우설대한 견중사사고로빈궁인천전미탄). 이런 방식으로 민심을 수습하려 한 태종은 사관에게 기록까지 명했다. ‘宋史(송사)’ 태종 本紀(본기)에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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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성난 민심을 달래기 위해 속보이는 당근책으로 나왔더라도 추위에 굶주린 백성들에겐 큰 도움이 됐기에 이 성어는 급히 필요한 사람에게 도움을 준다는 뜻으로 자주 쓰인다. / 제공: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수두상기垂頭喪氣 - 머리를 수그리고 기운을 잃다.

수두상기垂頭喪氣 - 머리를 수그리고 기운을 잃다.

수두상기(垂頭喪氣) - 머리를 수그리고 기운을 잃다.

드리울 수(土/5) 머리 두(頁/7) 잃을 상(口/6) 기운 기(气/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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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를 바짝 치켜들고 무서움이 없이 나아가는 기세가 意氣揚揚(의기양양)이다. 높은 벼슬하는 주인을 태운 마차의 마부가 길을 비키는 사람들을 보고선 자신이 잘 나서 그러는 줄 알고 우쭐대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晏子之御(안자지어)에 나온 그 마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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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량한 배경이라도 있으면 거들먹거리는 세상에서 이와는 달리 머리를 푹 수그리고(垂頭) 기운을 잃었다면(喪氣) 보기에 딱하다. 어떤 일을 해도 잘 풀리지 않거나 잘 나가다 기세가 꺾여 의기소침한 모습을 가리킨다. 垂首喪氣(수수상기), 低頭喪氣(저두상기)라고 써도 같은 뜻을 나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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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당)나라 말기 安史(안사)의 난(755~763)과 黃巢(황소)의 난(875∼884)이 일어난 후 조정은 쇠약해져 군웅할거의 시대가 됐다. 後梁(후량)의 태조가 되는 朱全忠(주전충)과 陝西(섬서, 陝은 땅이름 섬) 일대서 세력을 떨치는 李茂貞(이무정)이 전국을 양분했고, 조정의 신하들도 두 패로 갈려 비위를 맞추기에 급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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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전충이 정변을 일으켜 수도로 진격하자 환관 韓全誨(한전회) 일파는 왕을 협박하여 결탁한 이무정의 본거지로 함께 달아났다. 이곳을 포위한 주전충에 성문을 닫아걸고 맞섰지만 군량이 떨어져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자 이무정은 화의를 청했다. 이것을 본 한전회는 ‘대세가 기운 것을 보고는 계책도 소용이 없어 고개를 떨구며 기운을 잃고(自見勢去 計無所用 垂頭喪氣/ 자견세거 계무소용 수두상기)’ 말았다. ‘新唐書(신당서)’ 한전회전에 나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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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당송팔대가)에 꼽히는 韓愈(한유, 愈는 나을 유)의 ‘送窮文(송궁문)’에서도 사용됐다. 정월 그믐날에 가난을 가져오는 귀신인 窮鬼(궁귀)를 물리치는 풍습을 의인화한 글이다. 5가지 궁귀들이 자신에게서 떠나달라는 주인에게 바보스런 짓이라며 되레 큰소리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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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오래 살지 않지만 가난과 함께 이룬 명성은 백세 뒤에도 마멸되지 않는데 어찌 쫓아내려 하느냐고 했다. 그러자 주인은 ‘머리를 떨어뜨리고 기가 죽어 두 손 들고 사과했다(垂頭喪氣 上手稱謝/ 수두상기 상수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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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세를 올리던 사람이 떨어진 것이 아니고, 앞날이 창창한 사람이 고개를 꺾은 모습은 보기에 딱하다. 졸업과 취업을 앞둔 많은 젊은이의 의기소침은 나라의 활력을 잃게 만든다. 금수저와 낙하산들이 저지르는 각종 비리와 갑질 행태는 지도층에 더욱 신뢰를 잃게 만든다. 경제 침체와 함께 모든 것이 꽉 막힌 정국을 시원하게 뚫어줄 묘안은 없는지 모두들 답답하다. /\xa0\xa0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감당유애甘棠遺愛 - 선정 베푼 사람을 그리워하는 마음

감당유애甘棠遺愛 - 선정 베푼 사람을 그리워하는 마음

감당유애(甘棠遺愛) - 선정 베푼 사람을 그리워하는 마음

달 감(甘-0) 아가위 당(木-8) 남길 유(辶-12) 사랑 애(心-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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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슬에 종사한 사람은 자신의 이름을 더럽히지 않고 업적이 오랫동안 칭송되는 것이 꿈일 것이다. 지역 곳곳에 수령이나 관리가 백성을 아끼고 그 고장을 발전시켰을 경우 공적을 기린 善政碑(선정비)가 보존되어 있다. 비석은 탐관오리가 억지로 세우게 한 것도 있다고 하니 공덕을 노래한 찬가가 더욱 영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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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周(주)나라 召公(소공)을 찬미하는 노래가 아마도 가장 오래된 것이 아닌가한다. 甘棠(감당)은 일명 팥배나무라고도 하고 배나무와 비슷하다고 한다. 키가 작고 흰 꽃이 피어 배보다 작은 열매가 열리는 것이 차이라는데 소공이 이 나무 아래서 송사를 듣고 공정하게 판결한데서 유래했다. 甘棠愛(감당애), 甘棠之愛(감당지애)로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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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공은 주나라의 현인으로 칭송받는 周公(주공)의 사촌동생인데 함께 어린 成王(성왕)을 보필하여 초기 기틀을 확립한 사람이다. 그들은 주나라가 다스렸던 지역을 동서로 양분하여 제후들을 관리하고 조정의 치세를 잘 도왔다. 소공이 남쪽을 순시하다가 漢水(한수) 상류 일대의 한 시골 마을을 들렀을 때 팥배나무 아래서 백성들의 어려움을 해결해 주어 큰 신망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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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공이 죽자 그의 공적을 대대로 그리워했다. 특히 폭군으로 유명한 12대 幽王(유왕)에 이르러서는 한층 더 소공이 사무쳐 이전 순시할 때 쉬어 갔다는 甘棠樹(감당수)를 정성껏 보호하고 민요까지 불리게 됐다고 한다. 그 내용이 "詩經(시경)"의 國風(국풍) 召南(소남)편에 있는 甘棠(감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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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거진 팥배나무, 자르지도 베지도 마소, 소공이 여기서 쉬어 갔다오(蔽芾甘棠 勿翦勿伐 召伯所茇/ 폐불감당 물전물벌 소백소발)." 芾은 우거질 불, 翦은 자를 전, 剪과 같은 자, 茇은 풀뿌리 발. "史記(사기)"에는 "소공의 정치를 그리워하여 감당수를 베지 못하게 하고, 노래를 불러 칭송하며 감당이라는 시를 지었다(懷棠樹不敢伐 哥詠之作甘棠之詩/ 회당수불감벌 가영지작감당지시)"고 燕召公世家(연소공세가)에 기록했다. /\xa0\xa0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가도사벽家徒四壁 - 집에 사방 벽만 있다.

가도사벽家徒四壁 - 집에 사방 벽만 있다.

가도사벽(家徒四壁) - 집에 사방 벽만 있다.

집 가(宀/7), 무리 도(彳/7), 넉 사(囗/2), 벽 벽(土/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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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 구제는 나라도 못한다‘란 말이 있듯이 남의 가난한 살림을 도와주기란 끝이 없는 일이어서, 개인은 물론 나라의 힘으로도 구제하지 못한다. 사회보장제도가 없었던 옛날에는 빈한한 사람이 더욱 많았을 수밖에 없지만 이를 나타내는 성어가 참으로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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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에서도 집이 덩그러니 바람만 피할 수 있는 벽뿐이라는 이 성어는 겉으로 드러나는 가난이라 더 딱하다. 여기서 徒는 무리라는 의미 외에 다만이란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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前漢(전한)의 뛰어난 문인으로 賦(부)에 재능을 보였던 司馬相如(사마상여)는 젊었을 당시 왕이 문인을 중시하지 않았기 때문에 빛을 보지 못했다. 그가 사냥터 관리라는 말직을 버리고 臨邛(임공, 邛은 땅이름 공)이란 곳으로 내려갔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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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살고 있는 卓王孫(탁왕손)이란 부호가 어느 날 귀빈을 초청한 연회서 그의 딸 卓文君(탁문군)이 거문고를 타는 사마상여의 풍도에 반해 사랑에 빠졌다. 사마상여도 남편과 사별한 탁문군에 호감이 있었지만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여 내색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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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탁왕손도 가난을 이유로 두 사람의 결혼을 반대했다. 하지만 탁문군의 머리에는 사마상여의 생각만 가득해 사랑의 야반도주를 결행했다. 여자가 한밤에 도망쳐 나오자 사마상여는 말을 달려 고향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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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문군이 집에 와 보니 그가 가진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고 집안 네 벽만 덩그러니 서 있었다(文君夜亡奔相如 相如馬馳歸成都 家徒四壁立/ 문군야망분상여 상여마치귀성도 가도사벽립). 奔은 달릴 분, 馳는 달릴 치. ‘史記(사기)’의 司馬相如(사마상여)열전과 班固(반고)가 지은 ‘漢書(한서)’의 司馬相如傳(사마상여전)에 실려 있다. /\xa0\xa0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상명지통喪明之痛 - 눈이 멀 정도의 아픔, 자식의 죽음

상명지통喪明之痛 - 눈이 멀 정도의 아픔, 자식의 죽음

상명지통(喪明之痛) - 눈이 멀 정도의 아픔, 자식의 죽음

잃을 상(口-9) 밝을 명(日-4) 갈 지(丿-3) 아플 통(疒-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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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이르는 말에는 갖가지가 있다. 생전의 지위에 따라, 종교에 따라 각기 다르다. 하늘이 무너진 天崩(천붕)은 임금의 죽음을 말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아픔을 말하게 됐고 地崩(지붕)은 반대로 어머니의 죽음을 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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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나 조부모보다 자식이 먼저 갔을 때의 慘慽(참척)과 함께 쓰는 斷腸之哀(단장지애)는 어미 원숭이의 창자가 끊어진 데서 나왔다고 했다. 이 성어는 西河之痛(서하지통)과 유래가 같다. 하늘과 땅이 무너지는 부모상보다 애끊고 눈이 멀게 된 자식의 죽음이 평생 가슴에 새겨진다는 말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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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을 먼저 보내고 시력을 잃은 불행의 주인공은 孔子(공자)의 제자 子夏(자하)다. 그는 공자보다 44세 아래로 스승으로부터 詩經(시경)을 함께 논할 수 있다고 할 정도로 문학이 뛰어난 孔門十哲(공문십철)의 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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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史記(사기)" 내용을 보자. "자하는 서하에 살면서 학생들을 가르치다 위문후의 스승이 되었다. 자식이 죽은 뒤 너무 슬퍼하여 소리 내어 울다가 눈이 멀었다(子夏居西河教授 爲魏文侯師 其子死 哭之失明/ 자하거서하교수 위위문후사 기자사 곡지실명)." 仲尼弟子(중니제자) 열전에 간단히 언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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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禮記(예기)" 檀弓上(단궁상)에는 이야기가 나온다. 자하가 아들을 잃고 상심하여 통곡하다 그만 시력을 잃고 말았다(喪其子而喪其明/ 상기자이상기명). 역시 공자의 뛰어난 제자 曾子(증자)가 문상했을 때 자하는 더욱 서러워하며 죄도 없는데 아들이 죽었다고 하늘을 원망했다. 증자가 꾸짖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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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하의 백성들이 공자로 떠받들어도 변명 않았고, 부모상을 당했을 때보다 더 애통해했고, 거기에 눈을 잃을 정도로 슬퍼하니 죄가 크다고 했다. 자하가 지팡이를 던지며 잘못을 시인했다. /\xa0\xa0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효학반斅學半 - 가르치는 것이 배움의 반

효학반斅學半 - 가르치는 것이 배움의 반

효학반(斅學半) - 가르치는 것이 배움의 반

가르칠 효(攴-16) 배울 학(子-13) 반 반(十-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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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은 지식과 기술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인격을 길러주는 것이 우선이다. 孟子(맹자)는 군자의 三樂(삼락) 중에 "천하의 뛰어난 인재들을 구해 가르치는 것(得天下英才而教育之/ 득천하영재이교육지)"을 포함시킬 정도로 중요시했다. 盡心(진심) 상편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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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남을 가르치는 가운데 배운다. 그래서 가르치는 것이 두 번 배우는 것이란 말까지 나왔다. 전번 敎學相長(교학상장)에서 나온 것처럼 가르치는 일이나 배우는 일 모두 서로에게 도움을 줘 발전하게 된다는 것이다. "배우지 않으면 도를 모른다(人不學 不知道/ 인불학 부지도)"고 하여 사람 구실을 하는데 배움이 먼저인 것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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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더해 남을 가르치는 것(斅)이 자기 배움의 반을 차지(學半)한다는 이 성어는 교육이 자신의 학문을 닦는 데에도 크게 도움이 된다는 점을 강조한 말이다. 중국 고대의 기록으로 尙書(상서)라고도 하는 "書經(서경)"에 이 말이 사용됐다. 殷(은)나라 武丁(무정) 임금 때의 재상 傅說(부열, 說은 말씀 설외에 기쁠 열)이 배움(學)에 대해서 알기 쉽게 풀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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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열은 원래 토목공사의 일꾼이었는데 재상으로 등용되어 중흥을 이끌었던 사람이라 한다. 인용된 부분을 보자. 왕이 가르침을 청하자 부열은 옛날의 교훈을 배우고 본받아야 일을 이룰 수 있고, 배움의 뜻을 겸손하게 하고 독실히 믿어야 몸에 쌓인다고 아뢴다. 그러면서 "가르침은 배움의 반이니 처음부터 끝까지 배움을 잊지 않고 시종 배움에 힘쓰면 덕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갖추어질 것(惟斅學半 念終始典于學 厥德修罔覺/ 유효학반 염종시전우학 궐덕수망각)"이라고 말했다. 說命(열명) 하편에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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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칠 敎(교)와 같이 가르칠 斅(효)에는 칠 攵(복), 攴(복)이 함께 들어 있어 매를 가지고 아이를 길들인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敎鞭(교편)이나 鞭撻(편달)이란 말이 회초리를 뜻한다고 하지만 학생들이 학대로 느낀다면 정도를 넘어선 것이다. 체벌, 욕설, 폭언 등은 아동학대 및 학교 폭력 정의에 포함돼 엄연히 법률 위반행위에 해당된다니 학교에서는 사랑의 매라도 주의할 일이다. /\xa0\xa0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