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8일 월요일

【땅귀개】

【땅귀개】

【땅귀개】

귀개는 샘들이 잘 알고 계시는 귀 속의 귀지를 뽑아낼 때 사용하는 기구입니다. 꽃이 진 후 열매의 모양이 귀개를 닮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희귀식물로 등재되어 있고, 환경이 좋지 않으면 쉽게 멸종하는 종입니다. 고산의 습지에 자라는 식충식물이며 잎은 없습니다.

▷ 학명 : Utricularia bifida

▷ 분류 : 통발과

▷ 분포지역 : 전국각지

▷ 서식장소 : 산골짜기 습지 초원 양지

▷ 특징 : 땅귀이개, 이알초라고도 한다. 습지에서 자란다. 높이는 10cm 내외이다. 실같이 가는 흰색의 땅속줄기가 땅 속을 기면서 벋고 벌레잡이주머니가 군데군데 달린다. 잎은 줄 모양이고 땅속줄기의 군데군데에서 땅 위로 나오며 길이 6∼8mm로 녹색이고 밑부분에 흔히 1∼2개의 벌레잡이주머니가 있다.

서과피지西瓜皮舐 - 수박 겉 핥기, 내용도 모르면서 겉만 건드리다.

서과피지西瓜皮舐 - 수박 겉 핥기, 내용도 모르면서 겉만 건드리다.

서과피지(西瓜皮舐) - 수박 겉 핥기, 내용도 모르면서 겉만 건드리다.

서녘 서(襾/0) 외 과(瓜/0) 가죽 피(皮/0) 핥을 지(舌/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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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철에 인기 있는 과일 수박은 재배 역사가 오래다. 고대 이집트 시대부터 가꿔져 왔고, 우리나라에선 조선 燕山君(연산군)때 기록이 있어 그 이전부터 재배된 것으로 본다. 그래서 이름도 西瓜(서과), 水瓜(수과), 寒瓜(한과), 時瓜(시과) 등 다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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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수박은 껍질이 두꺼워 벗기고 먹어야 하는데 겉만 핥고서는(皮舐) 맛을 알 수 없다. ‘수박 겉 핥기’란 속담과 같은 이 말은 사물의 속 내용은 모르고 겉만 건드리는 일을 비유한다.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 체 하거나 일을 차근차근 하지 않고 건성으로 하는 것을 꾸짖을 때 사용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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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속담을 한역한 대표적인 旬五志(순오지) 외에 正祖(정조) 때의 실학자 丁若鏞(정약용)이 엮은 ‘耳談續纂(이담속찬, 纂은 모을 찬)’도 있는데 여기에 나오는 말이다. 표지 이름이 埜言(야언, 埜는 들 야)인 이 책은 모두 241수의 속담을 한자 8자로 표현하고 그 아래 한문으로 뜻을 적어 놓아 소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내용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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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박의 겉을 핥는 것은 속의 좋은 맛을 모르는 것이다. 사람들이 외모만 가지고 판단하고 알려 한다면 옳지 못하다(西瓜外舐 不識內美 言人不可以外貌知也(서과외지 불식내미 언인불가이외모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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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모르면서 함부로 나서지 말라는 교훈의 속담과 성어는 이외에도 숱하다. ‘개 약과 먹듯 한다’는 개가 약과의 참맛을 알 수 없으니 如狗食藥果(여구식약과)라 한다. ‘후추를 통째로 삼킨다’란 말도 내용은 모르고 겉만 취하는 어리석은 행동으로 약간 어려운 囫圇呑棗(홀륜탄조)라 했다. 囫은 온전할 홀, 圇은 완전할 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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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추를 통째로 삼켜 역시 자세히 분석하지도 않고 받아들임을 꼬집었다. ‘봉사 단청 구경’은 앞을 못 보는 장애인이 아름다운 그림이나 무늬를 볼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사물의 참된 모습을 보지 못한다고 盲玩丹靑(맹완단청)이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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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력을 닦지 않고 별로 든 것이 없는 사람이 앞에 나서 떠벌리면 되는 것이 없다. 바로 ‘속이 빈 깡통이 소리만 요란하다’고 손가락질 당한다. 瓦釜雷鳴(와부뇌명)도 같다. 모든 것을 안다고 우쭐대던 사람이 자리를 잡고 막상 일을 맡고서는 하는 일마다 서투르기 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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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아닌 사람이 정책을 펴다 일이 꼬이니 직접 영향을 받는 사람들은 죽을 맛이다. 光而不耀(광이불요)라고 ‘벼 이삭은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고 했는데 맛도 모르면서 수박 겉만 핥는 일이 너무 잦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제대비우齊大非耦 - 제나라는 너무 커 짝이 될 수 없다.

제대비우齊大非耦 - 제나라는 너무 커 짝이 될 수 없다.

제대비우(齊大非耦) - 제나라는 너무 커 짝이 될 수 없다.

가지런할 제(齊/0) 큰 대(大/0) 아닐 비(非/0) 짝 우(耒/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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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은 자기와 동등한 자와 할 일이다. 자기보다 뛰어난 상대는 반려가 아니고 주인을 구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서양격언이다. 결혼에 대한 숱한 조언 중에서 상대를 잘 택해야 행복하다는 것이 많다. 앞서 소개한 野鼠之婚(야서지혼)이 잘 말해준다. 두더지가 자기 분수도 모르고 해와 달, 바람과 비에 청혼을 했다가 거절당하고 역시 종족인 두더지가 제일이라고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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齊(제)나라는 대국이어서(齊大) 자신의 짝이 될 수 없다(非耦)는 이 성어는 상대방과 너무 신분의 차이가 커서 감히 배우자로 맞이할 수 없다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耦는 쟁기 또는 가지런할 우인데 짝이라는 뜻도 있어 齊大非偶(제대비우)라 쓰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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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가 짝이 된다는 이야기가 아니고 제왕의 딸이 버겁다는 이야기다. 春秋(춘추)의 주석서 중에 左丘明(좌구명)이 역사적 실증적 해석을 중심으로 지은 ‘左氏傳(좌씨전)’에 내력이 실려 있다. 춘추시대 초기 제나라는 강국이었음에도 北戎(북융)의 잦은 침범에 골머리를 앓았다. 어느 해 또다시 침공을 당하자 제의 僖公(희공, 僖는 즐거울 희)이 이웃 나라에 도움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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鄭(정)나라에서 파견한 젊고 용감한 태자 忽(홀)은 단번에 적의 대장을 사로잡는 등 큰 전공을 세웠다. 이전에도 희공이 자기 딸을 그에게 시집보내려 했다가 거절당한 적이 있었는데 이번에 다시 혼사를 꺼냈지만 역시 응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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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그 이유를 묻자 홀 왕자는 대답했다. ‘사람은 저마다 자기에게 맞는 짝이 있는데 제나라는 대국이어서 짝이 될 수 없소(人各有耦 齊大 非吾耦也/ 인각유우 제대 비오우야)’. 그러면서 詩經(시경)에도 스스로 다복을 구하라고 했는데 행복을 구하는 것은 나에게 있는 것이지 큰 나라가 무슨 이점이 있겠느냐고 덧붙였다. 대국의 사위가 될 기회를 소국의 왕자가 스스로 걷어찬 것이다. 桓公(환공) 6년 조에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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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고의 재벌가 딸과 결혼했던 그룹 평사원이 이혼 소송문제로 다시 세간의 관심을 끌어었다. 평범한 중산층의 총각이 반대를 무릅쓰고 재벌가의 똑똑하기도 한 딸과 부부로 골인하자 ‘남성 신데렐라’라 부르며 선망과 질시를 받았었다. 끝까지 잘 살았으면 정나라 왕자 홀의 이야기가 잘못된 성어로 남겠지만 역시 가장 좋은 배필은 비슷한 혈통, 비슷한 재산을 가진 집안의 사람이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양수집병兩手執餠 - 두 손의 떡. 가지기도 버리기도 아깝다.

양수집병兩手執餠 - 두 손의 떡. 가지기도 버리기도 아깝다.

양수집병(兩手執餠) - 두 손의 떡. 가지기도 버리기도 아깝다.

두 량(入/6) 손 수(手/0) 잡을 집(土/8) 떡 병(食/8)

만약 배가 고파 허덕일 때 양손에 떡이 쥐어졌다고 하자. 한 번에 먹으려면 한손의 떡도 바로 먹지 못하고 체한다. 눈앞의 욕심만 부리니 한손에 주어졌을 때보다 더 못하게 된다. 이와 같이 두 손(兩手)에 떡을 쥐고 있다(執餠)는 뜻의 兩手執餠은 한꺼번에 두 가지 좋은 일이 생기면 무엇부터 해야 할지 모르는 경우를 이르는 말이다. 이 성어도 조선 인조 때의 학자 玄默子(현묵자) 洪萬宗(홍만종)의 문학평론집 ‘旬五志(순오지)’에 나온다.

한 가지 좋은 일이 닥쳤는데 다시 좋은 일이 생긴다면 錦上添花(금상첨화)라고 누구나 좋아할 일이다. 하지만 "福無雙至 禍不單行(복무쌍지 화불단행/ 복은 짝지어 오지 않으며 재앙은 홀로 다니지 않는다)‘이라는 말이 있듯이 화는 두 가지 연속으로 올 수 있어도 복은 연속으로 오는 일이 좀처럼 없다고 하니 兩者擇一(양자택일)의 갈등은 크게 걱정 안 해도 될까. 만일을 대비할 일이다.

鷄肋(계륵)이라는 말도 쓰임이 비슷하다. 닭의 갈비뼈를 말하는데 맛이 없는 이 부위를 먹기는 싫고 버리려 하니 아깝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니 쓸모가 없다. 魏(위)나라 건국의 기초를 닦은 曹操(조조)의 수하였던 楊修(양수)가 이 말의 뜻을 잘 헤아려 오늘날까지 이른다.

劉備(유비)를 치기 위해 漢中(한중)을 진격했을 때 별다른 이득이 없어 進退兩難(진퇴양난)이 되자 조조가 암호로 ‘계륵’을 내렸는데 지혜 많은 양수가 철군을 시켰다고 한다. ‘한중 땅이 아깝지만 먹기에 맛이 없어 버리려 한다’고 해석한 것이다..

사회에 진출하는 젊은이들에게는 먹고 체하더라도 양손에 떡이 쥐어지기를 바랄 것이다. 하나라도 버리기 아까운 두 가지 진로가 눈앞에 닥쳤다고 하면 주위의 의견도 물어보고 먼 후일까지 생각하여 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준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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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분오열四分五裂 - 여러 갈래로 갈기갈기 찢어지다.

사분오열四分五裂 - 여러 갈래로 갈기갈기 찢어지다.

사분오열(四分五裂) - 여러 갈래로 갈기갈기 찢어지다.

넉 사(囗/2) 나눌 분(刀/2) 다섯 오(二/2) 찢어질 렬(衣/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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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기갈기 찢어지는 것보다 단결하면 큰 힘을 낼 수 있는 것은 당연하다. 초대 이승만 대통령이 국민들에게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라고 호소했던 이후 어디서나 잘 통용된다. 각 분야에서 맡은 일을 각기 잘 해야 전체가 잘 짜여가는 조직도 있을 수 있지만 힘을 모아야 더욱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 대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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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나온바 있는 흙이 무너지고 집이 내려앉는 土崩瓦解(토붕와해)처럼 넷으로 나눠지고(四分) 다섯으로 찢어진다(五裂)는 이 말도 지역이나 의견이 여러 갈래로 갈라지거나 세력이 질서 없이 어지럽게 흩어지는 것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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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쉬운 말로 조합된 말이라도 일찍이 六韜(육도)나 史記(사기) 등에서 사용됐던 성어다. 前漢(전한)시대의 학자 劉向(유향)의 ‘戰國策(전국책)’에도 나온다. 이 책은 周(주)나라부터 秦始皇(진시황)에 이르기까지 여러 인사들의 책모와 변론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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戰國時代(전국시대) 말엽 七雄(칠웅)으로 일컬어졌던 秦楚燕齊韓魏趙(진초연제한위조) 중에서 商鞅(상앙)의 변법을 받아들인 진나라가 국력이 날로 강해지자 나머지 여섯 나라가 위협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에 蘇秦(소진)이 6국이 힘을 합쳐야 진나라에 대항할 수 있다고 하며 合縱策(합종책)을 주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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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진이 여섯 나라를 순회하며 유세했는데 위나라 哀王(애왕)을 찾아 설득한 내용을 보자. 위나라는 땅도 그렇게 넓지 않고 병사도 겨우 30만에 지나지 않는데, 지세 또한 평탄하여 사방에서 적이 쳐들어오면 막을 만한 산이나 요새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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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다 사방에 있는 나라가 호시탐탐 노리고 있으니 이들과 연합하지 않으면 공격당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고선 ‘이것을 바로 사분오열의 도라고 하는 것(此所謂四分五裂之道也/ 차소위사분오열지도야)’이라고 논리적으로 설명했다. 소진의 합종이 6국을 묶는데 성공하자 진나라는 15년 동안 기를 펴지 못했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결자해지結者解之 - 맺은 사람이 풀다.

결자해지結者解之 - 맺은 사람이 풀다.

결자해지(結者解之) - 맺은 사람이 풀다.

맺을 결(糸/6) 놈 자(耂/5) 풀 해(角/6) 갈 지(丿/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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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벌여 놓기만 하고 마무리를 못한다면 중간 과정이 좋더라도 결과가 없다. 이 일엔 적격이라 큰 소리를 떵떵 치다가 마지막 단계서 제대로 되지 않을 것을 예상하고 발을 빼거나 남에게 미뤄버린다면 책임감 있는 사람이 못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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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의 아니게 실수를 했다고 해도 일을 저지른 당사자가 깨끗이 책임지는 자세가 바로 매듭을 묶은 사람(結者)이 풀어야 한다(解之)는 이 성어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한 사람이 실컷 일을 꼬이게 해 놓고 수습하는 사람은 따로 있는 것을 자주 보는데 올바른 조직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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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에 130여 종의 속담이 한역되어 있는 ‘旬五志(순오지)’의 우리 성어다. 여러 번 나왔듯이 조선 인조 때 洪萬宗(홍만종)이 보름이 걸려 완성했다고 하여 책 이름에 열흘 旬(순)자를 썼다. 여기에는 ‘맺은 자가 그것을 풀고 일을 시작한 자가 마땅히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結者解之 其始者 當任其終/ 결자해지 기시자 당임기종)’고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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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해 내려오는 속담이라 어원은 밝히지 못하더라도 이 말은 朝鮮王朝實錄(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한 문집에 종종 비유로 사용됐다. 한 예로 熱河日記(열하일기)를 쓴 燕巖(연암) 朴趾源(박지원, 趾는 발 지)은 당시 지식인들이 일상적으로 쓰는 글과는 달리 문체가 파격적이어서 비난을 받았다. 하지만 독자들엔 인기를 끌어 모방하는 사람이 늘어나자 正祖(정조)가 직접 하교를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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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하일기가 세상에 유행한 뒤로 문체가 이와 같으니 마땅히 문제를 만든 자가 해결해야 할 일이다(熱河記行于世後 文軆如此 自當使結者解之/ 열하기행우세후 문체여차 자당사결자해지).’ 軆는 몸 체, 體와 같다. ‘燕巖集(연암집)’에 실려 있다.

똑 같은 뜻으로 중국에서는 방울을 풀 사람은 방울을 단 사람이란 解鈴繫鈴(해령계령)을 쓴다. 일을 야기 시킨 사람이 해결에 나서야 한다는 南唐(남당) 泰欽(태흠)선사의 고사 解鈴還是 系鈴人(해령환시 계령인)에서 나왔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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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신상담臥薪嘗膽 - 섶에 누워 자고 쓸개를 맛보다, 원수 갚으려 고초를 견디다.

와신상담臥薪嘗膽 - 섶에 누워 자고 쓸개를 맛보다, 원수 갚으려 고초를 견디다.

와신상담(臥薪嘗膽) - 섶에 누워 자고 쓸개를 맛보다, 원수 갚으려 고초를 견디다.

누울 와(臣/2) 섶 신(艹/13) 맛볼 상(口/11) 쓸개 담(肉/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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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라.’ 예수님의 가르침이다. 하지만 혈족을 중시했던 고대 중국에선 정반대로 깨우친다. 아버지를 살해한 원수와는 不俱戴天(불구대천)이라 하여 같은 하늘 아래 함께 살 수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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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수를 잊지 않기 위해 장작을 쌓은 섶 위에서 자고(臥薪), 쓰디쓴 곰의 쓸개를 핥으며(嘗膽) 복수의 칼날을 벼른다는 이 성어가 온갖 수모를 견디고 고초를 이겨낸다는 많은 말 중에서도 대표적이다. 한 때의 욕되는 것을 참아 큰일을 이루어낸다는 忍辱負重(인욕부중)보다 더욱 처절하다. 꼭 원수 갚는 것이 아니라도 큰 뜻을 이루기 위해 분투하는 것을 가리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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春秋時代(춘추시대, 기원전 770년~403년) 인접한 吳(오)나라와 越(월)나라는 吳越之間(오월지간)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적대적인 관계였다. 이 두 나라의 일진일퇴 피 튀기는 세력다툼이 ‘史記(사기)’나 ‘十八史略(십팔사략)’에 흥미진진하게 실려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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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왕 句踐(구천)과의 싸움에서 화살을 맞은 오왕 闔閭(합려)는 상처가 악화돼 죽으면서 태자 夫差(부차)에게 반드시 원수를 갚으라며 유언을 남겼다. 부차는 섶 위에서 자면서 복수를 다짐했고, 출입하는 신하에게도 부친의 유언을 외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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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천이 范蠡(범려, 蠡는 좀먹을 려)의 간언도 듣지 않고 복수심에 불타는 부차를 공격했다가 대패하여 會稽山(회계산)까지 쫓겨 포위당했다. 이번에는 거꾸로 구천이 부차의 신하가 되겠다는 굴욕적인 항복을 하고 3년간 마구간을 치우는 수모를 견딘다. 오나라의 속령이 된 월나라로 돌아온 구천은 곁에 쓸개를 두고 앉으나 서나 쓴맛을 보며 회계의 치욕을 상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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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계획을 세우고 은밀히 군사를 훈련하는 한편 부차에게 미인 西施(서시)를 바치고 간신 伯嚭(백비, 嚭는 클 비)를 비롯한 그의 신하들에게 뇌물을 뿌렸다. 마침내 월왕 구천은 오왕 부차를 쳐 항복을 받아내는데 성공했다. 구천이 승자의 아량으로 오왕에게 여생을 보내도록 했으나 부차는 자결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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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한국전쟁은 일제에 강탈당한 우리 강토를 되찾은 지 5년 만에 다시 초토화시켰다. 자원도 없는데다 모든 것이 파괴되어 1인당 GNP 50달러 전후의 세계 최빈국으로 꼽혔던 한국이 온갖 고초를 이겨내며 세계 10위권의 경제국으로 변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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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이 지나도 복구되지 못할 것이라는 맥아더 장군의 비관적 전망을 깼다, 한 영국인이 쓰레기통에서 장미꽃 피기를 기다리는 것과 같다고 했던 민주화도 이뤘다. 모든 악조건을 이겨낸 성취를 생각하며 근래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희망을 가질 일이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수오지심羞惡之心 - 옳지 못함을 부끄러워하고 착하지 못함을 미워하는 마음

수오지심羞惡之心 - 옳지 못함을 부끄러워하고 착하지 못함을 미워하는 마음

수오지심(羞惡之心) - 옳지 못함을 부끄러워하고 착하지 못함을 미워하는 마음

부끄러울 수(羊/5) 악할 악, 미워할 오(心/8) 갈 지(丿/3) 마음 심(心/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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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戰國時代(전국시대)의 사상가 孟子(맹자, 기원전 372~289)는 孔子(공자)의 유교사상을 계승 발전시켜 亞聖(아성)으로 불린다. 공자의 손자인 子思(자사)의 문하생에게서 가르침을 받았고 도덕정치인 王道(왕도)를 실현하려 노력했기 때문이다. 맹자라 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이 아들의 교육을 위해 세 번이나 이사를 한 孟母三遷之敎(맹모삼천지교)의 고사와 함께 인간의 본성은 본래 선하게 태어났다는 性善說(성선설)일 것이다. 그리고 이 성선설을 설명하며 내세운 四端(사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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옳지 못함을 부끄러워하고 착하지 못함을 미워하는 羞惡(수오)의 마음도 그 중의 하나다. 맹자의 제자인 公孫丑(공손추)와의 문답으로 이루어진 ‘공손추 上(상)’에는 왕도와 覇道(패도)에 대한 이야기에서 시작하여 浩然之氣(호연지기)가 충만한 인간상을 주창한다. 끝부분에 성선설의 근거가 되는 不忍人之心(불인인지심), 사람들은 누구나 남의 고통을 견디지 못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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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유명한 비유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지는(孺子入井/ 유자입정) 이야기가 따른다. 누구라도 그 아이의 위험을 보고 측은히 여겨 구하려 할 것인데, 이는 아이의 부모와 교분을 맺기 위해서도 아니고, 다른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기 위해서도 아니며, 아이의 울부짖는 소리가 싫어서는 더욱 아니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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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이 없거나,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없고, 사양하는 마음이 없거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마음이 없다면 사람이 아니라고 강조한다(無惻隱之心 非人也 無羞惡之心 非人也 無辭讓之心 非人也 無是非之心 非人也/ 무측은지심 비인야 무수오지심 비인야 무사양지심 비인야 무시비지심 비인야). 惻隱(측은) 羞惡(수오) 辭讓(사양) 是非(시비)의 마음이 四端說(사단설)이고, 그것이 각각 仁(인) 義(의) 禮(예) 智(지)의 근원을 이루는 단서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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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바른 것에서 벗어난 것은 자신이나 남이나 가리지 않고 미워해야 한다. 사적인 이익을 추구해서 자기 것이 아닌 것을 넘본다거나, 또는 지위를 남용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게을리 하는 일은 모두 배척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지만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부터 수시로 추문만 돌아 어쩐지 정의가 아득한 것 같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이사난열 易事難說 – 섬기기는 쉬워도 기쁘게 하기는 어렵다.

이사난열 易事難說 – 섬기기는 쉬워도 기쁘게 하기는 어렵다.

이사난열 (易事難說) – 섬기기는 쉬워도 기쁘게 하기는 어렵다.

쉬울 이(日/4) 일 사(亅/7) 어려울 난(隹/11) 말씀 설, 기뻐할 열(言/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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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나 윗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이 쉬운 일일까. 부모라면 자식이 어긋난 길을 가지만 않는다면 모든 것이 기특하여 즐거이 뒷받침할 것이다. 직장의 상사가 기뻐할 때는 그때그때의 기분을 맞춰주기보다는 맡은 직무를 충실히 하여 실적을 냈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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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성과를 냈더라도 범죄를 저지르는 등 부당한 방법으로 했다면 나중에 상관까지 책임이 돌아간다. 어디까지나 올바른 방법으로 일을 처리해야 뒤탈이 없음은 말할 필요가 없다. 마찬가지로 위에서 일을 맡길 때에도 합리적으로 해야 일을 잘 처리할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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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비슷한 뜻을 가진 성어가 직분을 충실히 하여 윗사람을 섬기기는 쉬워도(易事) 기쁘게 하기는 어렵다(難說)는 이 말이다. ‘論語(논어)’의 子路(자로)편에 孔子(공자)가 한 말로 나온다. 30장으로 된 이 편에는 군자가 나라를 위하고 백성을 교육하는 일에 대한 언급이 많다. 군자는 화합하나 附和雷同(부화뇌동)하지 않는다거나, 정치를 바로 하려면 반드시 명분을 바로 잡아야 한다는 正名(정명) 등이 실려 있다. 25장에 실려 있는 내용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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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자는 섬기기는 쉬워도 기쁘게 하기는 어렵다. 그를 기쁘게 하려 할 때는 올바른 도리로써 하지 않으면 기뻐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군자가 사람을 부릴 때에는 그 사람의 역량에 따라 각자 그릇에 맞게 쓴다(君子易事而難說也 說之不以道 不說也 及其使人也 器之/ 군자이사이난열야 열지불이도 불열야 급기사인야 기지).’ 아랫사람이 부당한 방법으로 기쁘게 하려 해도 올바른 방법이 아니면 거들떠보지도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군자는 사람을 쓸 때도 역량에 맞춰 그릇에 맞게 일을 시킨다. 반대되는 경우를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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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인은 섬기기는 어려워도 기쁘게 하기는 쉽다. 그를 기쁘게 하려 할 때는 올바른 도리로써 하지 않더라도 기뻐한다. 하지만 소인이 사람을 부릴 때에는 능력을 다 갖추고 있기를 요구한다(小人難事而易說也 說之雖不以道說也 及其使人也 求備焉/ 소인난사이이열야 열지수불이도열야 급기사인야 구비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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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랫사람이 일을 할 때도 도리에 맞게 해야 하지만 윗사람이 일을 시킬 때도 확연히 드러난다. 역량에 맞게 일을 분배했을 때는 위아래가 손발이 맞아 잘 돌아간다. 상사가 무리하게 일을 맡겼을 때는 실적을 독촉하고 따라 오지 못할 경우 억지를 부리고 책임을 부하에 전가한다. 위나 아래나 올바른 길을 가야 한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면후심흑面厚心黑 - 얼굴이 두껍고 마음이 검다.

면후심흑面厚心黑 - 얼굴이 두껍고 마음이 검다.

면후심흑(面厚心黑) - 얼굴이 두껍고 마음이 검다.

낯 면(面/0) 두터울 후(厂/7) 마음 심(心/0) 검을 흑(黑/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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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자기의 얼굴을 선택하는 자유는 없다. 하지만 ‘사람의 얼굴은 열 번 변한다’는 속담이 내려오는 것으로 보아 마음을 가꾸는 데 따라 달리 보이게 할 수는 있다. 자기 얼굴 못생긴 것은 생각지 못하고 거울만 깨뜨려서는 나아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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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첫 印象(인상)은 人相(인상)이 좌우하기 마련이다. 아주 험악하게 생기지 않았다면 사람의 얼굴이 두꺼운지 알 수가 없다. 그런데도 낯이 두꺼워 부끄러움을 모른다는 厚顔無恥(후안무치)는 남에게 피해가 가건 말건 제 잇속만 차리는 사람을 일컬으니 행동에 따른 말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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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소개한 적이 있는 대로 厚顔(후안)은 詩經(시경)에서부터 등장했다. 小雅(소아) 巧言(교언)편에 ‘피리 불듯 교묘한 말은 창피도 모르는 뻔뻔한 자들이 내뱉는다네(巧言如簧 顔之厚矣/ 교언여황 안지후의)’란 구절에서 왔다. 簧은 생황 황. 낯이 두꺼운 것(面厚)을 넘어 마음까지 시커멓다(心黑)면 더 가관이겠다. 이것을 줄여 厚黑(후흑)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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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淸(청)나라 말기의 기인 李宗吾(이종오)가 저술한 ‘厚黑學(후흑학)’에서 유래한다. 그를 소개한 것을 보면 고대 역사를 통해 승자가 되기 위해서는 뻔뻔하고 음흉해야 한다고 했다. 왕조의 흥망성쇠를 논한 사관들의 평은 잘못됐고, 낯가죽이 두껍고 마음은 시커먼 사람들이 나라를 차지하는데 성공했다고 결론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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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지도자는 다른 사람의 공격에 상처받지 않고 마음이 미동도 않아야 자격이 있다는 것이다. 春秋時代(춘추시대) 越(월)나라의 句踐(구천)은 吳(오)의 夫差(부차)에게 패한 뒤 애첩 西施(서시)를 바치고 10년 동안 신하를 지내면서 치욕을 견뎌내어 마침내 설욕한다. 臥薪嘗膽(와신상담) 고사의 주인공 부차가 중국 역사를 통틀어 최고의 후흑 대가라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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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서 발간된 ‘楚漢志(초한지) 후흑학’(신동준 저)에서는 項羽(항우)와 劉邦(유방)의 쟁패전 때 활약한 영웅들을 面薄心白(면박심백)부터 면후심흑까지 4단계로 나눠 분석하여 흥미롭다. 더 잔인하고 뻔뻔했던 유방이 모든 조건에서 앞선 항우를 물리치고 최후의 승리를 차지했다. 이처럼 나라를 이끌려는 원대한 포부를 가진 사람 말고 일반 사회에서 이런 낯을 가져서는 배척받는다. 남이 어떻게 생각하든 제갈 길만 가다가 역풍을 맞는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