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14일 목요일

두소지인斗筲之人 - 도량이 좁거나 보잘것없는 사람

두소지인斗筲之人 - 도량이 좁거나 보잘것없는 사람

두소지인(斗筲之人) - 도량이 좁거나 보잘것없는 사람

말 두(斗/0) 대그릇 소(竹/7) 갈 지(丿/3) 사람 인(人/0)

일을 처리할 때 조금도 굽히지 않고 시원시원하게 처리하는 사람을 배짱이 두둑하다고 한다. 한자어로 排布(배포)가 있다고 말할 때와 같다. 반면 규모가 작고 도량이 옹졸한 사람을 가리켜 ‘좁쌀영감’이라 손가락질한다. 이런 사람에겐 간이 콩알만 해서 ‘사발에 든 고기나 잡겠다’고 놀림감이 된다.

같은 뜻으로 도량이 좁거나 식견이 보잘것없는 사람을 쌀을 되는 말이나 밥을 담는 그릇(斗筲) 정도밖에 안 되는 사람(之人)에 비유하기도 한다. 똑 같은 뜻으로 斗筲小人(두소소인), 斗宵之器(두소지기), 斗宵之材(두소지재)라고도 한다.

이 성어는 ‘論語(논어)’의 子路(자로)편에 나온다. 孔子(공자)의 제자로 말재간이 좋고 이재에도 밝았던 子貢(자공)이 어떤 사람을 선비라고 하는지 여쭙는데 대한 답에서 언급했다. 공자는 자신의 잘못을 부끄러워할 줄 알고(行己有恥/ 행기유치) 사신으로 갔을 때 군주의 명을 욕되게 하지 않으면(不辱君命/ 불욕군명) 선비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효자로 칭송받고 마을 사람들이 공손하다고 말하면 다음의 선비이고, 말이 믿음직하고 행동에 과단성이 있으면(言必信 行必果/ 언필신 행필과) 융통성이 없더라도 그 다음 수준은 될 수 있다고 덧붙인다.

그 다음 질문에 대한 답이 압권이다. ‘요즘 정치하는 사람은 어떻습니까(今之從政者何如/ 금지종정자하여)?’ 공자는 탄식하며 말했다. ‘한 말 되가웃짜리 사람들을 어떻게 따져볼 가치가 있겠느냐(斗筲之人 何足算也/ 두소지인 하족산야)?’ 쌀의 부피를 재는 한 되는 1升(승)이 되고 열 되가 한 말, 斗(두)가 된다. 대그릇을 나타내는 筲(소)는 한 말과 두 되가 들어가는 그릇이라 한다. 도량이 작은 사람을 말한 斗筲(두소)는 원래 나라에서 받는 봉록이 적다는 것을 비유한 말이기도 했다. 쌀 한 말이 적은 분량은 아니지만 정치를 하려는 사람은 배포도 두둑해야 함을 말했다.

春秋時代(춘추시대, 기원전 770년~403년)에 나라를 다스렸던 사람들이 이런 평을 받았는데 2000년도 더 지난 오늘의 정치 지도자들은 얼마나 변했을까? 국민들에게서 가장 신뢰도가 낮고 미움을 가장 많이 받는 직업으로 항상 첫손가락에 꼽히니 조금도 나아진 것이 없겠다.

우리의 의원들이 불체포 특권이나 면책특권 등을 비롯한 500여 가지가 넘는다는 특권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말뿐이고, 제일 큰 의무인 법안 처리는 내 미락 네 미락하여 분통만 터지게 한다. 선거 때만이라도 정신을 차려 이런 사람들을 잘 가려내야 한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가유십도家有十盜 - 집안을 가난하게 하는 열 가지 도둑

가유십도家有十盜 - 집안을 가난하게 하는 열 가지 도둑

가유십도(家有十盜) - 집안을 가난하게 하는 열 가지 도둑

집 가, 있을 유, 열 십, 도둑 도

물질에 초탈한 선인이 아니라면 가난하게 살려고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세상은 고르지 않아 부자와 가난한 사람이 있을 수밖에 없다. 빈부의 격차를 어떻게 잘 줄일까 모두들 머리를 싸매지만 만인의 보편복지가 쉬울 리 없다. 옛날 殷(은)나라 폭군 紂王(주왕)을 멸하고 周(주)나라를 세운 武王(무왕)도 자나 깨나 백성들을 잘 살게 하는 것을 생각했으나 가난한 사람은 여전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자신을 도운 개국공신 姜太公(강태공)을 불러 사람이 세상을 사는데 어찌하여 귀천과 빈부가 고르지 않은지 물었다. 여기서 태공이 답한 가난한 집에는 다 연유가 있다며 10가지를 열거한 것이 家有十盜다.

고려 충렬왕 때의 문신 秋適(추적)이 금언과 명구를 모아 놓은 책 ‘明心寶鑑(명심보감)’에 실려 있다. 처음 한자를 배우는 어린이가 千字文(천자문)을 뗀 후 童蒙先習(동몽선습)과 함께 기초과정의 교재로 사용했던 책이다. 공자를 비롯한 성현들의 말씀을 제시하면서 시작하는 繼善篇(계선편)부터 19편이 실려 있는데 이 성어는 立敎篇(입교편)에 나온다. 삼강오륜을 중심으로 조심스럽게 처신하고 노력할 것과 충성과 효도를 강조하는 장이다.

태공이 무왕의 물음에 ‘부귀는 성인의 덕과 같아서 천명에 달려 있는데 부자는 쓰는데 절제가 있고 아닌 자는 집안에 열 가지 도둑이 있기 때문(富貴如聖人之德 皆有天命 富者用之有節 不富者 家有十盜/ 부귀여성인지덕 개유천명 부자용지유절 불부자 가유십도)’이라고 답한다. 그러면 열 도둑은 무엇을 말하는지 다시 물으니 차례로 설명한다.

익은 곡식을 거둬들이지 않고(時熟不收/ 시숙불수), 쌓는 일을 마치지 않고(收積不了/ 수적불료), 일 없이 등불을 켜고 잠자는 것(無事燃燈寢睡/ 무사연등침수), 게을러서 밭 갈지 않고(傭懶不耕/ 용라불경. 懶는 게으를 라), 공력을 베풀지 않으며(不施功力/ 불시공력), 교활하고 해로운 일만 하는 것(專行巧害/ 전행교해), 딸을 너무 많이 기르는 것(養女太多/ 양녀태다), 대낮에 잠자고 아침에 늦게 일어나며(晝眠懶起/ 주면라기), 술을 탐하고 색욕을 즐기며(貪酒嗜慾/ 탐주기욕), 남을 심하게 시기하는 것(强行嫉妬/ 강행질투) 등 열 가지다. 딸 많이 기르는 것이 왜 들어가는지 모를 일이지만 부지런히 일하고 이웃과 화합하면 가난을 탈피할 수 있다는 것이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폐추천금弊帚千金 - 몽당 빗자루를 천금같이 생각하다, 분수도 모르고 잘난 체하다.

폐추천금弊帚千金 - 몽당 빗자루를 천금같이 생각하다, 분수도 모르고 잘난 체하다.

폐추천금(弊帚千金) - 몽당 빗자루를 천금같이 생각하다, 분수도 모르고 잘난 체하다.

해질 폐(廾/12) 비 추(巾/5) 일천 천(十/1) 쇠 금(金/0)

소용되는 물건을 소중히 여기고 아끼는 것은 필요하다. 남이 별스럽게 여기지 않는데도 제가 가진 물건은 제일 귀하다. 또 자기가 가진 재주는 남이 따라올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나다. ‘나는 바담 풍 해도 너는 바람 풍 해라’는 식의 능력밖에 없는데도 남보다 앞선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제일이라는 자부심은 필요해도 정도가 지나치면 탈이다.

자기 집에서 쓰던 빗자루(弊帚)는 다 닳아 너덜너덜해도 千金(천금)같이 여긴다. 아끼는 것은 좋지만 효과가 있을 리 없다. 이처럼 자신의 지위나 능력 따위는 생각지도 않고 분수도 없이 잘난 체하는 것을 뜻하는 것이 이 성어다.

중국 三國時代(삼국시대, 220년~280년)를 호령한 曹操(조조)의 사후 그의 아들 曹丕(조비)가 魏(위)나라 초대 왕이 된다. 七步詩(칠보시)로 유명한 아우 曹植(조식)에 못지않게 조비도 시부에 능하여 중국 최초의 문학 평론서라는 ‘典論(전론)‘을 썼다고 한다. 이 책의 원본은 전하지 않고 그 중의 한 편이 ’文選(문선)‘에 실려 전한다. 南朝(남조) 梁(양)나라의 태자였던 蕭通(소통)이 秦漢(진한) 이후의 대표적인 문장가 130여 명의 시문을 모은 책이다. 여기에 남은 조비의 글에서 내려오는 말이라며 이 성어가 인용됐다. 부분을 보자.

모든 사람이 자신의 장점을 드러내는 데에는 뛰어나다. 단지 문장은 한 가지만 있는 것이 아니고 모든 종류의 글을 다 잘 할 수도 없다. 그래서 각자의 장점을 가지고 다른 사람의 단점을 업신여긴다고 하면서 비유한다.

‘속언에 자기 집안에 있는 몽당 빗자루는 천금처럼 여긴다고 했듯이 이것은 스스로를 돌아보지 못하는 데서 생긴 폐해이다(里語曰 家有弊帚 享之千金 斯不自見之患也/ 이어왈 가유폐추 향지천금 사부자현지환야).’ 자기의 능력만 뛰어나고 남의 재주는 보잘 것 없다고 깔보는 것은 文人相輕(문인상경)이라 하여 특히 문인들이 더하다고 이 문장의 앞부분에서 지적한다.

나의 것을 아끼고 제일이라 여기는 것을 누가 뭐라 할 수는 없다. 남에게 앞서야 살아날 수 있다고 어릴 때부터 경쟁에 내몰렸으니 그런 면도 있다. 다만 그것이 지나쳐 남의 것은 하찮고 아무 짝에도 쓸데없다고 생각하면 문제다. 서로 도우며 살아가야 할 사회에서 남을 인정하지 않으면 독불장군이 된다. 상대가 잘 하는 것은 잘 한다고 칭찬할 수 있어야 밝은 사회를 이끈다. 사생결단으로 맞서기만 하는 정치권에서 더욱 필요한 자세인데 몰라서 하지 않는 게 아니니 더욱 문제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내우외환內憂外患 - 나라 안팎의 걱정근심

내우외환內憂外患 - 나라 안팎의 걱정근심

내우외환(內憂外患) - 나라 안팎의 걱정근심

안 내(入/2) 근심 우(心/11) 바깥 외(夕/2) 근심 환(心/7)

안에서 근심걱정(內憂)이 있는 차에 밖에서도 걱정거리(外患)가 찾아든다. 하나 해결하면 다시 걱정이 닥치니 죽을 지경, 진퇴양난이다. 불행은 언제나 홀로 오지 않고 꼭 겹쳐 온다는 禍不單行(화불단행)과 닮았다. 같은 근심이라도 憂(우)는 머리(頁/ 혈)가 위에서 무겁게 마음을 짓누른다는 뜻으로 마음의 걱정, 患(환)은 괴로움의 뜻을 나타내기 위해 串(관)이란 꼬챙이 모양을 합쳐 아픔이 따르는 걱정이란 의미로 구분한다. 어느 것이나 아픔이니 집안이나 나라 안팎의 여러 가지 어려움을 뜻한다. 일상에 많이 쓰이고 뜻도 쉬운 이 성어에 조어가 아닌 고사가 따르니 흥미롭다.

먼저 ‘管子(관자)’에 나오는 이야기를 보자. 春秋時代(춘추시대) 齊(제)나라의 桓公(환공)이 음식을 들지도 않으면서 외전에서만 지내고 있었다. 궁녀들을 관장하는 女官(여관)이 이제 임금이 거둥할 때가 됐으니 모시라고 일렀다. 환공이 여관을 불러 화를 내며 거둥할 때를 어떻게 알았느냐고 물었다. 내관은 걱정거리가 있을 때 외전에서 주무시고 음식도 들지 않았는데 ‘지금은 다른 내우가 없으니 필시 다른 외환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君外舍而不鼎饋 非有內憂 必有外患/ 군외사이불정궤 비유내우 필유외환)’고 했다. 내우는 아니니 곧 일어날 것이라 여겼다는 여관의 지혜에 환공은 기특히 여겼다. 饋는 먹일 궤.

춘추시대 중엽 晉(진)나라가 이웃 약소국가를 정벌하던 중 막강한 楚(초)나라의 침공을 받았다. 초와도 일전을 벌이자는 말에 대부 范文子(범문자)가 반대했다. 공격을 당하면 퇴치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그러다가 나라가 위태해질 수가 있다며 말한다.

‘오직 성인만이 밖으로의 근심도 안으로의 걱정도 없게 할 수 있겠지만(唯聖人能外內無患/ 유성인능외내무환), 우리의 경우 밖의 재난이 없으면 내부 근심이 있기 마련이다(自非聖人 外寧必有內憂/ 자비성인 외녕필유내우).’ 그러니 내부의 문제부터 정리하자는 의견이었다. 춘추 8국의 역사를 左丘明(좌구명)이 정리한 ‘國語(국어)’에 나오는 내용이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인빈지단人貧智短 - 사람이 구차해지면 지혜가 옅어진다.

인빈지단人貧智短 - 사람이 구차해지면 지혜가 옅어진다.

인빈지단(人貧智短) - 사람이 구차해지면 지혜가 옅어진다.

사람 인(人/0) 가난할 빈(貝/4) 지혜 지(日/8) 짧을 단(矢/7)

‘가난 구제는 나라님도 못한다’는 말이 있어서인지 가난을 인정하고 반어적으로 말한 경구가 제법 된다. ‘너무 적게 가진 것이 가난이 아니라 더 많은 것을 바라는 사람이 가난하다’, ‘가난은 수치가 아니라 단지 불편한 것’, ‘아무도 가난을 훔치려 하지 않을 테니까 그 사람이 부자‘ 등등이다. 孟子(맹자)는 ’빈천한 상황에서도 의지에 변함이 없다면(貧賤不能移/ 빈천불능이)‘ 그런 사람이 대장부라고 했다. 하지만 以食爲天(이식위천), 밥이 하늘인 보통 사람들이야 금강산 구경도 식후경인데 대장부고, 도덕이고 모두 사치일 뿐이다.

중국 堯(요)임금 때 태평성대를 노래한 鼓腹擊壤(고복격양)은 백성들이 굶주리면 나올 수 없다. 한 노인이 배를 두드리고 땅을 치면서 덕을 찬양한 것은 요임금이 농민들의 의식주 걱정을 하지 않게 했기 때문이다. 가난에 대해서 가장 직설적인 말이 있다. 사람이 가난하면(人貧) 지혜가 얕아진다(智短)고 했다. 먹고 살기 바쁘다면 다른데 신경 쓸 겨를이 없다. 사람이 가난하고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되면 생활을 하는데 불편할 뿐 아니라 어떤 일에 닥쳐도 헤쳐 나갈 용기를 잃고 매사에 나약하게 된다. 禪宗(선종)의 통사로 알려진 ‘五燈會元(오등회원)’에서 유래한 말이다.

宋(송)나라 때 普濟(보제)의 명으로 제자 慧明(혜명) 등이 傳燈錄(전등록), 廣燈錄(광등록) 이하 다섯 가지의 燈史(등사)를 모았다는 이 책은 禪(선)의 대의를 밝힌 입문서로 평가된다. 한 수행승이 五祖法演(오조법연) 선사에게 조사님의 가르침이 부처님의 가르침과 같은지 여쭈었다. 선사가 말했다. ‘사람이 구차해지면 지혜가 짧아지고, 말이 여위면 털이 길어 보이는 법이다(人貧智短 馬瘦毛長/ 인빈지단 마수모장).’ 자신을 변화시키는 수행을 열심히 하지 않으면 어떠한 면에서든 단점이 드러나게 마련이다. ‘明心寶鑑(명심보감)’ 에서는 이 말을 확장한다. ‘사람이 가난하면 지혜가 얕아지고, 복에 이르면 마음이 슬기로워진다(人貧智短 福至心靈/ 인빈지단 복지심령).’ 省心篇(성심편) 상편에 있다.

빈부에 대해 이런 말도 이어진다. ‘가난하게 살면 장터에서도 아는 사람이 없고, 넉넉하게 살면 깊은 산골에 살아도 친구가 찾아온다(貧居鬧市無相識 富住深山有遠親/ 빈거료시무상식 부주심산유원친).’ 鬧는 시끄러울 료. 管子(관자)가 말한 ‘의식이 풍족해야 영욕을 안다(衣食足則知榮辱/ 의식족즉지영욕)’는 뜻을 몰라서 행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요즘 젊은이들이 발등에 떨어진 문제인 의식주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가정을 꾸리고 나라를 위할 수 있을 텐데 갈수록 어려워진다고 한다. 청년층이 기력을 잃고서야 어찌 앞날의 희망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전호후랑前虎後狼 - 앞에는 호랑이 뒤에는 이리, 재앙이 끝없이 닥치다.

전호후랑前虎後狼 - 앞에는 호랑이 뒤에는 이리, 재앙이 끝없이 닥치다.

전호후랑(前虎後狼) - 앞에는 호랑이 뒤에는 이리, 재앙이 끝없이 닥치다.

앞 전(刂/7) 범 호(虍/2) 뒤 후(彳/6) 이리 랑(犭/7)

한 가지 화를 피하려다 더 큰 화를 당할 때 비유적으로 ‘여우 피해서 호랑이를 만났다’거나 ‘귀신 피하려다 호랑이 만나다’라는 속담을 쓴다. 사나운 늑대, 이리를 만나 전력으로 도망치는데 앞에는 더 무서운 호랑이가 떡하니 버티고 있으면 진퇴양난이다. ‘엎친 데 덮친 격’이다.

호랑이를 막으려고 전력을 다해 앞문을 막고 있는데(前虎) 뒷문으로 이리가 들어오면(後狼) 살아날 길이 없다. 나쁜 일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것을 두고 일컫는 표현이다. 구덩이를 피하려다 우물에 빠지는 避坎落井(피감낙정)이나 노루를 피하다 호랑이를 만난다는 避麞逢虎(피장봉호, 麞은 노루 장)도 마찬가지다.

後漢(후한) 초기 환관의 폐해가 본격적으로 펼쳐지던 때의 이야기다. 3대 章帝(장제)가 죽은 뒤 열 살의 어린 나이로 和帝(화제)가 제위에 올랐다. 임금이 어린 나이에 등극하면 외척이나 환관이 득세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화제가 꼭 그런 경우로 이름만 황제였다. 장제의 황후인 竇太后(두태후)와 오빠 竇玄(두현)이 정권을 잡아 좌지우지하게 된 뒤로는 허수아비와 다름없는 화제를 제거하고 직접 왕위에 오르려는 음모를 꾸몄다.

그러나 이 사실을 측근을 통해 알게 된 화제는 환관 鄭衆(정중)을 시켜 두씨 일족을 체포하도록 했고 그 직전 두현은 자살했다. 큰 우환을 없앴다고 왕권이 강화된 것은 아니었다. 이번에는 환관 정중이 권력을 쥐고 정사에 관여하기 시작해 여기서 싹튼 폐해가 후한을 멸망의 길로 이끌었다.

元(원)나라 문인 趙雪航(조설항)이란 사람이 지은 ‘評史(평사)’에 이 당시를 묘사한 표현이 나온다. ‘두씨가 제거되었지만 환관의 권세가 이로부터 성하게 되었다. 속담에 말하기를 앞문의 호랑이를 막으니 뒷문으로 이리가 들어온다고 했다(竇氏雖除 而寺人之權從茲盛矣 諺曰 前門拒虎 後門進狼/ 두씨수제 이시인지권종자성의 언왈 전문거호 후문진랑).’ 절 寺(사)는 관청, 환관, 내시를 나타낼 때는 ‘시’로 읽는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붕우유신朋友有信 - 벗 사이에 지켜야 할 도리는 믿음에 있다, 오륜의 하나

붕우유신朋友有信 - 벗 사이에 지켜야 할 도리는 믿음에 있다, 오륜의 하나

붕우유신(朋友有信) - 벗 사이에 지켜야 할 도리는 믿음에 있다, 오륜의 하나

벗 붕(月/4) 벗 우(又/2) 있을 유(月/2) 믿을 신(亻/7)

朋(붕)이나 友(우) 모두 벗을 말한다. 중국에서 老朋友(노붕우, 라오펑유)는 오랜 친구를 뜻한다. 우리나라를 이렇게 불러놓고는 중국이 사드 등으로 온갖 졸렬한 짓거리를 하고 겉으로는 태연한 제멋대로이긴 하지만 말이다. 모두 벗을 뜻해도 朋友(붕우)는 차이가 있다. 論語(논어) 첫 머리에 벗이 먼 곳에서 찾아온다는 有朋自遠方來(유붕자원방래)의 朋(붕)은 한 스승 아래서 공부한 동문을 뜻한다고 한다. 이에 반해 友(우)는 뜻이 같고 마음이 통하는 사람이다. 朋情(붕정)이란 말은 없고 友情(우정)이 있듯이 아무래도 동문보다는 故友(고우)가 더 가까운 벗이다.

어떤 벗이든 벗 사이에(朋友) 지켜야 할 도리는 믿음에 있다(有信)는 이 성어는 三綱五倫(삼강오륜)의 하나이다. 우리나라에서 오랫동안 인륜의 기준으로 삼아 온 이것은 孔孟(공맹)의 학설에 기초하여 前漢(전한)의 유학자 董仲舒(동중서)가 논한 三綱五常說(삼강오상설)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삼강은 임금과 신하, 부자, 부부 사이에 지켜야 할 도리인 君爲臣綱(군위신강), 父爲子綱(부위자강), 夫爲婦綱(부위부강)이다. 붕우유신은 父子有親(부자유친), 君臣有義(군신유의), 夫婦有別(부부유별), 長幼有序(장유유서)의 뒤에 오는 오륜에 들어간다. 신라 圓光(원광) 법사의 五戒(오계) 중 交友以信(교우이신)과 통하는 말이다.

조선 世宗(세종)대왕 때 三綱行實圖(삼강행실도)를 편찬한 뒤 이에 관한 여러 종류의 책이 발간되었다. 中宗(중종)때 학자 朴世茂(박세무)가 펴낸 ‘童蒙先習(동몽선습)’은 학동들이 배우는 초급교재로 오륜을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붕우편에서 논어를 인용하여 정직하고(友直/ 우직), 성실하며(友諒/ 우량), 견문이 많은 (友多聞/ 우다문) 친구를 사귀면 유익할 것이라 했다. 또 ‘벗들에게 신임을 얻지 못하면 윗사람에게서도 인정받지 못하고(不信乎朋友 不獲乎上矣/ 불신호붕우 불획호상의)’, ‘어버이에게 순종하지 못한다면 벗들에게서도 믿음을 얻지 못한다(不順乎親 不信乎朋友矣/ 불순호친 불신호붕우의)’.

朱子(주자)가 교열했다는 小學(소학)이 너무 어려워 우리나라에서 쉽게 풀어 쓴 ‘四字小學(사자소학)’에도 ‘사람이 귀한 이유는 오륜과 삼강 때문(人所以貴 以其倫綱/ 인소이귀 이기윤강)’이라고 했다.

오늘날 군신관계는 없어졌고 오륜을 따지면 케케묵었다고 손가락질 받기 십상이다. 하지만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인성이 곧은 사람은 알게 모르게 지키게 된다. 너무나 살벌한 범죄가 잦은 사회에서는 이런 바른 사람이 잘 살 수 있게 교육이 이뤄지면 좋겠다.. /제공 : 안병화(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불야성不夜城 - 밤에도 대낮같이 밝은 곳

불야성不夜城 - 밤에도 대낮같이 밝은 곳

불야성(不夜城) - 밤에도 대낮같이 밝은 곳

아닐 불(一/3) 밤 야(夕/5) 재 성(土/7)

글자대로 하면 낮만 계속돼 밤이 오지 않는 성이란 뜻이다. 밤에도 등불이 휘황찬란하게 켜져 있어 낮처럼 밝은 곳은 장관이다. 북극이나 남극에 가까운 지방에서 한여름에 태양이 지평선 아래로 내려가지 않는 白夜(백야)를 연상시킨다. 번쩍이는 불빛에 항상 사람들로 붐벼 번잡한 밤거리 풍경을 비유하거나 경기가 아주 좋아 흥청대는 경우를 가리키는 말이 됐다.

그런데 不夜(불야)는 밤이 없어서가 아니고 특이하게 지명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중국 北宋(북송)의 지리학자 樂史(악사, 930~1007)가 편찬했다는 현존 가장 오래된 지리지 ‘太平寰宇記(태평환우기)’에 처음 등장한다. 寰은 임금고을 환. 현재의 山東省(산동성) 煙台(연태) 부근이었다는 東萊郡(동래군)의 17개 현 중에서 不夜縣(불야현)이 있었다고 한다. 부분의 표현을 보자.

‘불야성은 춘추시대 내자가 설치한 읍으로 동쪽에서 해가 떴으므로 불야로 이름 지었다(不夜城卽春秋時萊子所置邑 以日出於東 故以不夜爲名/ 불야성즉춘추시래자소치읍 이일출어동 고이불야위명).’ 다른 곳에서도 등장하지만 실제로 밤에 해가 떴다기보다 가장 일찍 일출을 맞이한다는 뜻으로 이런 이름을 붙였다고 해석한다.

지명의 유래는 그렇다고 하고 오늘날 쓰임새와 비슷하게 사용한 시가 있다. 唐(당)나라 때 여러 관직을 지냈던 문학가 蘇頲(소정, 670~727)의 ‘廣達樓下夜侍酺宴應製詩(광달루하야시포연응제시)’ 중 한 구절이다. 頲은 곧을 정, 酺는 연회 포. ‘누대의 빼어난 풍경이 실로 봄 동산이라, 등불은 연이어져 불야성과 같구나(樓臺絶勝宜春苑 燈火還同不夜城/ 누대절승의춘원 등화환동부야성).’ 휘황찬란한 등불이 밤을 밝힌 것이 번화한 도심의 거리를 가리키게 됐다.

우리 시문에서도 많이 보이는데 조선 중기 문신 金尙憲(김상헌, 1570~1652)의 ‘淸陰集(청음집)’에 실린 한 구절만 보자. ‘명월궁의 궁궐 안은 불야성을 이뤘는데, 계수나무 가지 잡고 장생술을 배우누나(明月宮中不夜城 攀援桂樹學長生/ 명월궁중불야성 반원계수학장생).’ 攀은 더위잡을 반.

밤에도 불이 환한 거리는 보기만 해도 풍성하다. 코로나19로 어렵다며, 모두들 웅크리고 있어 곳곳에서 비명이 들린다. 흥청망청 낭비도 좋지 않지만 불 꺼지지 않는 거리는 필요하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좌중유강남객座中有江南客 - 자리에 강남 손님이 있다, 말을 삼가야 할 인물이 있다.

좌중유강남객座中有江南客 - 자리에 강남 손님이 있다, 말을 삼가야 할 인물이 있다.

좌중유강남객(座中有江南客) - 자리에 강남 손님이 있다, 말을 삼가야 할 인물이 있다.

자리 좌(广/7) 가운데 중(丨/3) 있을 유(月/2) 강 강(氵/3) 남녘 남(十/7) 손 객(宀/6)

강의 남쪽지방을 일컫는 江南(강남)은 지역마다 다수 있다. 강남이라 하면 서울 漢江(한강)의 남쪽으로 많은 사람이 알아듣는다. 개발된 지 50년 조금 넘었어도 대표적인 부촌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隨友江南(수우강남)이나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온다‘고 할 때의 강남은 물론 우리나라가 아니다.

중국에서 長江(장강)이라 불리는 양쯔강揚子江/ 양자강의 남쪽을 가리킨다. 이중삼중의 은유가 있어 복잡하지만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 가운데(座中有) 강남에서 온 손님이 있다(江南客)는 말은 기피하거나 경계해야 할 인물이 있으므로 말을 조심하라는 것을 비유한 성어다.

우선 唐(당)나라 말기 鄭谷(정곡, 849~911)이란 시인의 시구부터 보자. 정곡은 7세 때부터 시를 잘 지었다고 하며 全唐诗(전당시)에 300곡이 넘는 시가 수록돼 있다는 대시인으로 꼽힌다. 그가 지은 ‘席上貽歌者(석상이가자)’란 시의 뒷부분이다.

‘좌중에 또한 강남의 나그네 있으니, 봄바람 향해서 자고새를 노래하지 마세요(座中亦江南客 莫向春風唱鷓鴣/ 좌중역강남객 막향춘풍창자고).’ 鷓鴣(자고)는 꿩과의 메추라기와 비슷한 자고새를 말하는데 당시 유행했던 노래 자고곡을 가리켰다고 한다. ‘자고새는 날 때 남쪽으로만 날지 북쪽을 향하지 않는다(鷓鴣飛但南 不向北/ 자고비단남 불향북)’는 특성을 지녔다고 여러 책에서 설명한다.

또한 자고새의 우는 소리가 ‘가면 안 돼, 형‘이란 뜻의 行不得也哥哥(행부득야가가)라고 들려 슬프고 구성진 가락으로 여겼다. 그래서 자고를 노래한 가사마다 헤어질 때 험난한 인생살이나 이별의 슬픔을 표현했다고 한다.

만약 사람의 가슴 속을 후벼 파는 애절한 이 노래를 부르면 자고새의 울음소리의 의미를 알고 있는 강남의 손님은 흐르는 눈물을 멈출 수 없게 된다. 분위기 깨는 자고새의 노래를 부르지 말라고 한 것에서 자리를 같이 한 사람 중에 기피하거나 경계해야 할 인물이 있다는 뜻으로 사용하게 됐다는 이야기다.

부처님의 심오한 가르침을 제자 迦葉(가섭, 葉은 잎 엽, 고을이름 섭)만이 알아듣고 拈華示衆(염화시중, 拈은 집을 념)의 미소를 지을 수도 있다. 특수한 전문가들의 모임 말고 일반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강남의 손님만 알아듣는 고차원의 이야기를 한다고 흥미를 돋울 수는 없다.

그렇다고 누구나 아는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놓으면 ‘도사 앞에서 요령 흔든다’고 핀잔만 받는다. 어디까지나 청중의 성향이나 수준을 잘 알고 이야기를 끌어가야 효과를 높일 수 있다. 말로써 인기를 끄는 사람은 더욱 그렇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상저옥배象著玉杯 - 상아 젓가락과 옥 술잔, 하찮은 낭비가 사치로 이어짐

상저옥배象著玉杯 - 상아 젓가락과 옥 술잔, 하찮은 낭비가 사치로 이어짐

상저옥배(象著玉杯) - 상아 젓가락과 옥 술잔, 하찮은 낭비가 사치로 이어짐

코끼리 상(豕/5) 나타날 저(艹/9) 구슬 옥(玉/0) 잔 배(木/4)

‘산호 기둥에 호박 주추다’란 말이 있다. 귀한 珊瑚(산호)로 기둥을 세우고 보석 琥珀(호박)으로 주춧돌을 세웠으니 호화의 극치다. 아름다운 비단 옷에 흰 쌀밥, 요즘은 크게 사치는 아닌데도 錦衣玉食(금의옥식)도 호화생활을 뜻했다.

唐(당)의 杜牧(두목)이 阿房宮(아방궁)의 秦始皇(진시황) 생활을 묘사한 것이 있다. ‘귀중한 정이 가마솥 같고, 금은 흙덩이에 진주는 조약돌 취급(鼎鐺玉石 金塊珠礫/ 정쟁옥석 금괴주력)’했으니 굴러다니는 것이 보석이었다. 鐺은 솥 쟁, 礫은 조약돌 력.

상아로 만든 젓가락(象著)과 옥으로 만든 술잔(玉杯)도 옛날에는 사치품이었다. 이것을 태연히 만들게 하고 사용한 사람이 중국 商(상)나라 紂王(주왕, 紂는 주임금 주)이라면 그럴 듯하다. 앞서 夏(하)나라 桀王(걸왕)과 함께 桀紂(걸주)로 불리는 폭군의 대명사다. 妲己(달기, 妲은 여자이름 달)라는 요녀에 빠져 酒池肉林(주지육림)에서 질탕하게 향락을 즐겼고, 간하는 충신들에겐 숯불로 달군 구리기둥을 건너가게 한 炮烙之刑(포락지형, 炮는 통째로구울 포)으로 죽였으니 악명으로 걸왕을 능가했다.

주왕이 상아로 젓가락을 만들게 하자 箕子(기자)가 걱정했다. 기자는 주왕의 숙부인데 학정에 남아나는 사람이 없는 중에 나라의 운명을 생각했다. ‘상아 젓가락을 쓰게 되면 토기를 버리고 무소뿔이나 옥으로 만든 그릇을 사용할 것이다(象箸必不加於土鉶 必將犀玉之杯/ 상저필불가어토형 필장서옥지배).’ 鉶은 국그릇 형. 다음은 거기에 맞게 진귀한 음식을 담으려 하고, 그 다음은 먹을 때의 복장, 그 다음은 호화스런 궁전을 생각할 것이다.

점차로 사치가 도를 넘을 것이기 때문에 상아 젓가락이 단초가 되어 국가의 재정을 고갈시키고 멸망에 이르게 된다고 생각했다. 과연 그 뒤 주왕의 사치와 포학이 지나쳐 나라는 망했다. ‘韓非子(한비자)’의 喩老(유로)편에 실려 있는 이야기다.

어려운 시기를 지나 조금 잘 살게 되면 지난 세월의 고생은 잊고 싶다. 그렇다고 물 쓰듯이 낭비에 집착하면 오래지 않아 옛날로 돌아간다. 상아 젓가락 하나를 보고 사치의 지름길임을 알아채는 지혜는 없더라도 작은 것의 의미는 생각하며 살아야겠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