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6일 화요일

건곤일척乾坤一擲 - 하늘과 땅을 걸고 승부를 겨루다, 하늘에 운을 맡기고 단판으로 결행하다

건곤일척乾坤一擲 - 하늘과 땅을 걸고 승부를 겨루다, 하늘에 운을 맡기고 단판으로 결행하다. 

건곤일척(乾坤一擲) - 하늘과 땅을 걸고 승부를 겨루다, 하늘에 운을 맡기고 단판으로 결행하다.\xa0

하늘 건(乙/10) 따 곤(土/5) 한 일(一/0) 던질 척(扌/15)

하늘과 땅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 乾坤(건곤)이다. 天地(천지)와 달리 남녀 애정의 이치까지 포함하고, 더욱이 周易(주역)의 기본 四卦(사괘)인 乾坤坎離(건곤감리)의 앞자리도 된다. 하늘과 땅, 물과 불을 상징하여 우리 태극기의 빨강, 파랑 원을 둘러싸고 있다.

이 하늘과 땅의 모든 것을 운에 맡겨 한꺼번에 던진다(一擲)는 말은 흥망과 승패를 한꺼번에 거는 대모험을 뜻한다. 천하를 얻느냐 잃느냐, 죽느냐 사느냐가 달려 있는 큰 승부를 말할 때 곧잘 사용된다. 천하는 아니라도 도박판에서 가진 것을 몽땅 거는 孤注一擲(고주일척)과 마찬가지로 살벌하기까지 한 모험의 의미도 있다.

이 성어는 力拔山氣蓋世(역발산기개세)의 천하장사 項羽(항우)를 그린 시에서 나왔다. 秦始皇(진시황)이 죽은 뒤 楚(초)나라 명문 출신으로 싸움판에서 연전연승하고 3년 만에 覇王(패왕)에 오른 항우는 한미한 시골 읍장이었던 漢(한)의 劉邦(유방)에게 마지막 垓下(해하) 전투에서 패하고 최후를 맞이한다.

張良(장량)과 韓信(한신) 등 명신의 진언을 잘 받아들인 유방에 비해 范增(범증)도 내치고 막무가내인 항우가 다 이겨놓은 楚漢(초한) 전쟁의 패배자로 굴러 떨어진 결과였다. 후세의 唐(당)나라 시인 杜牧(두목, 803~852)은 항우를 ‘흙먼지를 날리며 돌아올 것을 미처 몰랐구나(捲土重來未可知/ 권토중래미가지)’라며 애석히 여기는 시를 남겼다.

이보다 앞선 당의 문장가 韓愈(한유, 768∼824)가 항우와 유방의 경계를 이뤘던 격전지를 지나며 지은 ‘홍구를 지나며(過鴻溝/ 과홍구)’란 시에서 유명한 성어가 나온다. 내용을 보자. ‘용도 지치고 범도 고달파 강과 들을 가르니(龍疲虎困割川原/ 용피호곤할천원), 억만의 창생이 목숨을 보전했네(億萬蒼生性命存/ 억만창생성명존).

누가 왕에게 말머리를 돌리게 해(誰勸君王回馬首/ 수권군왕회마수), 실로 한 번 던져 건곤을 걸게 했는가(眞成一擲賭乾坤/ 진성일척도건곤).’ 한유는 물러나려는 유방에게 항우와 일전을 권유한 장량과 陳平(진평) 등을 천하를 걸었던 도박으로 여기고 이렇게 회상했다.

패가망신을 원하며 도박판에 뛰어드는 이는 없다. 모두들 자신이 최후의 승자가 되리라 여긴다. 진짜 고수는 처음 빈손이 되다시피 잃다가도 최후의 일격으로 뒤집는다. 암수가 있을지언정 처음엔 양보도 한다. 그런데 양보는 없고 사생결단만 있는 곳이 우리 정치판이 아닌가 싶다.

독재정권을 이겨낸 후 민주정권이 들어서고 몇 차례 여야 교체도 있었지만 선거가 있을 때마다 상대를 후벼 파고, 승리했을 때는 과거의 행적을 들춰 칼을 들이댄다. 하늘과 땅을 걸었더라도 자체는 상하는 것이 없다. 일전을 겨루되 정당하게 해야 보답이 온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마정방종摩頂放踵 - 정수리부터 발꿈치까지 닳아 없어지다, 자기를 돌보지 않고 남을 사랑하다

마정방종摩頂放踵 - 정수리부터 발꿈치까지 닳아 없어지다, 자기를 돌보지 않고 남을 사랑하다.

마정방종(摩頂放踵) - 정수리부터 발꿈치까지 닳아 없어지다, 자기를 돌보지 않고 남을 사랑하다.

문지를 마(手/11) 정수리 정(頁/2) 놓을 방(攵/4) 발꿈치 종(足/9)

자기 몸을 돌보지 않고 온 힘을 다하여 일을 할 때 粉骨碎身(분골쇄신)이라 한다. 원뜻대로 뼈가 가루가 되고 몸이 부서질 정도는 아니라 해도 못지않은 과장의 말이 있다. 머리 꼭대기부터 갈아 닳아져서(摩頂) 발꿈치까지 이른다(放踵)는 이 성어다. 자기 일을 위해 열심히 일한다기보다 온몸을 바쳐 남을 사랑하고 타인에 희생한다는 뜻이 담겨 더 고귀하다.

孟子(맹자)가 兼愛說(겸애설)을 주장한 墨子(묵자)를 가리켜 이렇게 표현한 것이 ‘맹자’ 盡心(진심) 상편에 실려 전한다. 性善說(성선설)의 맹자가 유가에 대립되는 묵자를 이렇게 평가한 것은 그만큼 利他(이타)의 사랑엔 인정이 필요했을 것이다.

본명이 墨翟(묵적)인 묵자는 孔子(공자)와 거의 같은 시기의 사람으로 처음에는 유학도 배웠다고 한다. 하지만 신분의 고하와 재산의 빈부, 힘과 지식의 우열에도 모두 평등해야 한다는 점에서 번거로운 예의를 숭상하는 유가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자타를 구별화지 않는 묵자의 평등, 박애 사상은 상류층에 고통 받는 백성들에 큰 인기를 끌어 천하의 학설이 한때 爲我說(위아설)을 주장한 楊朱(양주)와 겸애설의 묵적에 모두 돌아갔다고 맹자가 한탄했다. 양주의 자기만의 쾌락 추구와 묵자의 차별 없는 사랑은 군주와 어버이를 부정하는 것이라 비판한 것이다.

그래 놓고서 魯(노)나라의 현자 子莫(자막)과 함께 세 사람을 평가한 대목에서는 점수를 준다. 양주는 나만을 위할 것을 주장해 천하를 이롭게 하는데 자기의 털 한 올도 뽑지 않는다며 이어간다. ‘묵자는 차별 없는 사랑을 주장해 정수리부터 발뒤꿈치까지 닳아 없어지더라도 천하를 이롭게 할 수 있다면 그렇게 했다(墨子兼愛 摩頂放踵利天下 爲之/ 묵자겸애 마정방종리천하 위지).’ 또 중간을 택한 자막에 대해서는 그것을 붙잡기만 하고 융통성이 없다면 집착과 같다며 좋은 것이 아니라 했다. 군신과 친족은 차등이 있어야 함에도 모든 사람을 위한 사랑에는 어쩔 수 없었던 모양이다.

사랑의 차이는 별개로 하고 단체나 나라를 위해서 분골쇄신하겠다고 거창한 명분을 내세우는 지도자일수록 실천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음지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묵묵히 남을 위한다. 국토를 방위하는 장병들이나 항상 사고에 대비하는 119 소방대원 등이다. 그리고 정기적으로 인간사회에 재앙을 뿌리는 바이러스가 창궐할 때 자신의 감염위험을 개의치 않는 의사나 간호사들이다. 온 몸을 감싼 방호복으로 땀에 뒤범벅된 모습에 정수리부터 발끝까지 성할 데가 없이 희생하기 때문이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초순건설焦脣乾舌 - 입술이 타고 혀가 마르다, 몸과 마음이 몹시 괴롭다.

초순건설焦脣乾舌 - 입술이 타고 혀가 마르다, 몸과 마음이 몹시 괴롭다.

초순건설(焦脣乾舌) - 입술이 타고 혀가 마르다, 몸과 마음이 몹시 괴롭다.

탈 초(灬/8) 입술 순(肉/7) 마를 건(乙/10) 혀 설(舌/0)

입술과 혀가 말을 정확히 하는데 중요한 구실을 하는 만큼 말을 조심해야 한다는 성어가 많다. 말을 잘못하면 재앙을 받게 되니 말조심을 하라고 舌底有斧(설저유부), 혀 아래 도끼 들었다고 한다. 칼이나 창과 같이 사람을 해친다고 舌劍脣槍(설검순창)이라 했다.

입술과 혀를 헛되게 놀리면 徒費脣舌(도비순설), 아무 보람이 없으며, 입술을 움직이고 혀를 차는 搖脣鼓舌(요순고설)은 함부로 남을 비평하는 것이 된다. 어느 것이나 입을 함부로 놀리면 남을 해쳐 자기에게 득 될 것이 없다는 가르침이다. 이와 같은 뜻과는 달리 입술이 타고(焦脣) 혀가 마르는(乾舌) 일은 몸과 마음이 매우 괴로운 상태를 나타낸다. 舌乾脣焦(설건순초)라 해도 같다.

이 정도로 자기 몸이 괴롭다고 표현한 사람은 중국 戰國時代(전국시대) 때 남방에 위치한 越(월)나라의 왕 句踐(구천)이었다. 오랫동안 원수 사이로 있는 관계를 吳越(오월)이라 하듯이 구천은 吳(오)나라의 夫差(부차)에게 會稽(회계)에서 굴욕적인 항복을 하고 복수의 칼을 갈았다.

온갖 어려움을 참고 견디며 복수할 때를 기다린다는 臥薪嘗膽(와신상담, 薪은 섶 신)에서 쓸개를 핥은 이가 구천이다. ‘史記(사기)’의 仲尼(중니) 제자열전과 ‘吳越春秋(오월춘추)’에 실려 있다. 後漢(후한)의 趙曄(조엽)이 역사적인 사실에다 문학적인 재미를 가해 기술한 것이 뒤의 책이다.

齊(제)나라가 모국 魯(노)를 침입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孔子(공자)는 언변이 좋은 제자 子貢(자공)을 보내 해결하게 했다. 제나라를 설득한 자공은 구천을 만나러 갔다. 오나라가 제를 침략할 것이니 국력이 쇠퇴할 때까지 기다리라고 조언했다. 반색한 구천이 말했다.

‘회계에서 곤욕을 당하고 그 고통이 뼛속까지 사무쳐 밤낮 입술이 타고 혀는 마릅니다(困於會稽 痛入於骨髓 日夜焦脣乾舌/ 곤어회계 통입어골수 일야초순건설).’ 복수의 일념에 불타는 구천이 자공의 계획대로 오왕 부차를 따르는 척 하며 군사와 무기를 보냈고 연이은 전쟁으로 국력이 쇠약해진 부차는 멸망의 길로 갔다.

‘입술에 침도 마르기 전에 돌아앉는다’는 말이 있다. 약속을 금방 내팽개칠 때 하는 말이다. 입술이 탈 정도로 말을 했다면 입이 아플 정도로 많이 지껄였다는 말도 된다. 입이 바싹바싹 마를 정도면 많이 긴장했거나 어려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몸과 마음이 괴로움에 시달렸을 때다.

지진이나 큰 산불 등 재난이나, 주기적으로 엄습하는 전염병으로 비상이 걸렸을 때는 담당자들뿐만 아니라 온 국민이 입술을 태우며 긴장한다. 이럴 때일수록 함부로 날뛰다간 더 그르치니 차근차근 정해진 대응책으로 따라야 한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이령지혼利令智昏 - 이익은 지혜를 어둡게 만든다.

이령지혼利令智昏 - 이익은 지혜를 어둡게 만든다.

이령지혼(利令智昏) - 이익은 지혜를 어둡게 만든다.

이할 리(刂/5) 하여금 령(人/3) 슬기 지(日/8) 어두울 혼(日/4)

눈앞에 이익을 보고 그냥 지나치기는 완전히 초월한 도인이 아니고선 없을 것이다. 그 이익이 합당한 것이 아니면 취하지 말라는 가르침은 많다. 孔子(공자)는 ‘이익에 끌려 행동하면 원망이 많아진다(放於利而行 多怨/ 방어리이행 다원)’라 했고 孟子(맹자)는 梁惠王(양혜왕)에게 인과 의를 말씀하지 않고 어찌 이익을 찾느냐고 면박 준다(何必曰利/ 하필왈리).\xa0그러나 이런 성인이 꾸짖더라도 인간은 날 때부터 이기적이니 누구나 자기 이익에 따라 행동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다만 그 가르침을 따르지 않아 이익에 눈이 어둡게 되면 사리분별을 제대로 못하게 되니 탈이다.

利令智昏이 바로 이익은 지혜를 혼미하게 한다는 가르침을 주는 성어다. 이익을 보거든 의를 생각하라는 見利思義(견리사의)나 이름을 돌아보며 의를 생각하라는 顧名思義(고명사의)와 대조적이다. 戰國時代(전국시대, 기원전 403년~221년) 韓(한)나라가 秦(진)의 침략을 받았을 때 이웃 성의 성주 馮亭(풍정, 馮은 성 풍)이 망하기 직전 趙(조)나라에 성을 넘겨줄 테니 보호해 달라고 했다.

왕이 대신들에게 의견을 물었더니 한 사람은 명분 없는 이익을 추구하면 재앙을 초래한다며 반대했고 平原君(평원군)은 대가없이 주는데 안 받으면 어리석은 일이라며 접수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왕이 평원군을 따라 趙括(조괄)을 대장군으로 하여 출병시키자 분노한 진나라는 白起(백기) 장군에 대군을 주어 잔인한 살육전을 펼쳤다. 조괄은 전사하고 40만 조나라 군사는 생매장을 당했다. 이것이 유명한 長平(장평)전투다.

司馬遷(사마천)이 ‘史記(사기)’에서 평원군을 평하면서 이 말을 썼다. ‘그는 혼란한 세상 속에서도 능력과 지혜가 빛났던 공자였지만 나라를 다스리는 이치에는 어두웠다. 이익은 지혜를 어둡게 한다(利令智昏)고 했는데 잘못 판단하여 40만 군사를 잃고 도읍인 邯鄲(한단, 邯은 조나라서울 한, 鄲은 한단 단)마저도 잃을 뻔했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공곡공음空谷跫音 - 빈 골짜기에서 들리는 발자국 소리, 뜻밖의 즐거운 일이나 반가운 소식

공곡공음空谷跫音 - 빈 골짜기에서 들리는 발자국 소리, 뜻밖의 즐거운 일이나 반가운 소식

공곡공음(空谷跫音) - 빈 골짜기에서 들리는 발자국 소리, 뜻밖의 즐거운 일이나 반가운 소식

빌 공(穴/3) 골 곡(谷/0) 발자국소리 공(足/6) 소리 음(音/0)

온갖 소리에 뒤섞여 살아가는 사람에게 가장 듣기 좋은 소리는 어떤 것일까. 저마다 내세울 수 있는 좋은 소리가 있겠지만 조선시대 해학집에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한다. 문필로도 쟁쟁한 대신들이 주석에서 흥을 돋우다 가장 아름다운 소리는 무엇일까를 내세워보기로 했다.

모두들 달밤 누각에 구름 지나는 소리, 잠결에 듣는 아내의 술 거르는 소리, 초당에서 선비가 시 읊는 소리 등등 내세우는데 李恒福(이항복) 대감의 유머러스한 이야기에 자지러졌다. 근엄한 선비들의 뒤통수를 친 ‘아름다운 여인의 치마 벗는 소리(佳人解裙聲/ 가인해군성)’라 한 것이다.

寓言(우언)의 기지가 넘치는 ‘莊子(장자)’에 등장하는 소리도 보자. 텅 빈 골짜기(空谷)에서 저벅저벅 다가오는 발자국 소리(跫音)다. 空谷足音(공곡족음)이라 해도 같다. 기다리던 소식을 가져오는 사람의 기척이나 낯선 길에서 길을 잃었을 때 들려오는 발자국 소리는 더 이상 기쁠 수가 없다.

이런 비유를 한 사람이 戰國時代(전국시대) 魏(위)나라의 은자 徐無鬼(서무귀)라면 더 그럴듯하다. 재상 女商(여상)을 통해 武侯(무후)를 만난 서무귀는 산속에서 홀로 사는 것이 힘들겠다고 하는 임금에게 도로 위로해 드려야 한다면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대화가 끝날 때 무후가 크게 기뻐하면서 웃었다.

자리에서 나온 서무귀에게 재상 여상이 다가갔다. 자신은 詩書禮樂(시서예악)에 대해 말하고 공도 많이 세웠는데도 웃지 않은 임금이 어떻게 파안대소했는지 궁금해 했다. 서무귀는 자기 나라를 떠난 사람이 오래 될수록 고향을 더 생각하고 비슷한 사람만 만나도 반가운 법이라며 비유하여 말한다.

‘사람의 발자국 소리를 듣기만 해도 기쁨이 얼마나 크겠소(聞人足音 跫然而喜矣/ 문인족음 공연이희의)?’ 서무귀는 임금이 인가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외롭게 지내는 것과 같이 곁에서 마음속에 닿는 진실한 이야기를 많이 듣지 못한 것 같다고 말한 것이다.

반드시 귀로 듣는 것만이 소리가 아니라고 말한 사람이 있다. 피부로 느끼고 마음으로 깨달을 수 있는 것도 모두 소리란 것이다. 세상에는 듣기 좋은 이러한 소리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해도 소음이 너무 많다.

서로 자기가 잘 났다고, 자기만 옳다고 하며 조금도 양보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이전투구하는 정치권일수록 더하다. 빈 골짜기에서 들려오는 반가운 발자국 소리처럼 남을 위해 양보할 줄 알고 인격수양이 잘 된 사람의 목소리가 더 크게 울렸으면 좋겠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목종승정木從繩正  - 나무는 먹줄을 따르면 곧아진다, 직언을 들으면 순조롭다.

목종승정木從繩正  - 나무는 먹줄을 따르면 곧아진다, 직언을 들으면 순조롭다.

목종승정(木從繩正) \xa0- 나무는 먹줄을 따르면 곧아진다, 직언을 들으면 순조롭다.

나무 목(木/0) 좇을 종(彳/8) 노끈 승(糸/13) 바를 정(止/1)

잘못된 것을 바로 잡아주는 충고를 달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드물다. 몸에 좋다고 하는 약은 삼키기에 달콤한 것이 없다. 이럴 때 良藥苦口 忠言逆耳(양약고구 충언역이)의 성어가 바로 떠오른다. 이 말은 중국 고대부터 전해졌던 경구로 여러 곳에서 등장하지만 이외에도 史記(사기)에는 ‘독약은 입에 쓰나 병에 이롭다(毒藥苦於口 而利於病/ 독약고어구 이리어병)’로 나온다. 韓非子(한비자)에는 ‘충성스런 말은 귀에는 그슬리지만 밝은 임금이 듣는 것은 큰 공을 이루게 됨을 알기 때문이다(忠言拂於耳 而明主聽之 知其可以致功也/ 충언불어이 이명주청지 지기가이치공야)’라고 外儲說左上(외저설좌상)에 실려 있다.

굽은 나무라도 먹줄을 따라 대패로 켠다면 바른 목재를 얻을 수 있다는 이 성어도 충고를 잘 들으면 매사가 순조롭다는 이야기다. 처음 사용됐을 때는 임금이 신하의 간언을 잘 들으면 올바른 정치를 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중국 고대의 정치문서를 집성한 ‘書經(서경)’에 처음 등장한 후 唐(당)의 ‘貞觀政要(정관정요)’ 등 곳곳에 인용됐다.

서경 說命篇(열명편)에는 殷(은)나라 高宗(고종)이 담을 쌓던 노예 출신의 傅說(부열)을 정승으로 발탁하여 그의 보좌로 중흥주가 됐다고 실려 있다. 부열이 임금께 이르기를 ‘나무는 먹줄을 따르면 곧아지고, 임금은 간언을 따르면 성스러워집니다(木從繩則正 君從諫則聖/ 목종승즉정 군종간즉성)’고 하며 그렇게 되면 신하들이 명하지 않아도 뜻을 받들게 된다고 강조했다.

貞觀之治(정관지치)로 이름 높은 太宗(태종)은 간언을 적극적으로 구했다. 군주와 신하의 만남이 물고기와 물과 같다면 나라는 태평할 것이라며 직언하는 신하를 항상 곁에 두었다. 吳兢(오긍)이 집성한 정관정요의 求諫篇(구간편)에도 ‘굽은 나무도 먹줄을 따라 자르면 바르게 되고, 군주가 신하의 간언을 받아들이면 사리에 밝아질 수 있다(木從繩則正 後從諫則聖/ 목종승즉정 후종간즉성)’며 諫議大夫(간의대부)인 王珪(왕규)가 한 말이 나온다.

직언은 어렵다. 옛날에는 목숨이 왔다갔다했고 오늘날은 밥줄이 걸린 일이라 공직사회나 일반 직장에서도 보기 드물다. 잘못을 바로잡는 일은 하급자의 용기가 필요한 일인데다가 윗사람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분란만 생긴다. 직언의 분위기 조성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노마지지老馬之智 - 늙은 말의 지혜

노마지지老馬之智 - 늙은 말의 지혜

노마지지(老馬之智) - 늙은 말의 지혜

늙을 로(老/0) 말 마(馬/0) 갈 지(丿/3) 지혜 지(日/8)

늙은 말이면 인간 사회에선 뒷방 늙은이 퇴물이다. 이 늙은 말의 지혜(老馬之智)를 잘 끌어내어 위기를 모면한 이야기에서 이 성어가 나왔다. 작금 우리나라는 모든 문제에서 첨예하게 대립되는 갈등사회다.\xa0

조금도 손해 보려 하지는 않고 상대방의 양보만 강요하여 늘상 시끄럽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원로들의 경험과 지혜가 녹은 일침이다. 하지만 모두 존경하는 종교인 등 원로들이 세상을 뜬 뒤부터는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 탓에 웬만해선 어른들이 나서지 않는다. 하찮은 동물 말의 지혜도 빌렸는데 원로들의 경험을 사장할 판이다.

春秋時代(춘추시대, 기원전 770년~403년) 桓公(환공)을 도와 齊(제)나라를 부국의 지위에 올린 명재상 管仲(관중)과 관련된 이야기가 ‘韓非子(한비자)’에 나온다. 환공이 관중과 대부 隰朋(습붕)을 거느리고 소국 孤竹(고죽)을 공격한 일이 있었다. 간단히 제압할 줄 알았던 소국과의 싸움이 의외로 길어져 그해 겨울에야 겨우 철수를 시작했다. 그런데 혹한 속에 귀국을 서두른 나머지 제나라 병사들은 길을 잃고 엉뚱한 곳에서 헤매게 되었다. 이때 관중이 나서 안심시켰다.

\xa0‘늙은 말의 지혜가 필요하다(老馬之智). 그들이 우리를 안내해 줄 것이다.’ 앞장세운 말이 고스란히 봄에 왔던 길을 찾아 갔기 때문에 무사히 회군할 수 있었다. 또 한 번은 산길을 행군하다 식수가 떨어져 갈증에 시달렸다. 이번엔 습붕이 나섰다. ‘개미는 겨울철엔 산 남쪽 양지에 집을 짓고 산다. 흙 쌓인 개미집 땅 속을 파면 물이 있는 법이다.’ 군사들이 개미집을 찾아 파 내려가니 과연 물이 나와 갈증을 벗어났다.

‘지혜로운 관중과 습붕이라도 알지 못하는 일에 봉착하면 늙은 말과 개미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그런데도 지금 사람들은 성인의 지혜를 본받을 줄 모른다‘고 2200년이나 앞선 시대에 한비자가 개탄했다.\xa0 /\xa0글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파사현정破邪顯正 - 그릇된 생각을 버리고 올바른 도리를 행함

파사현정破邪顯正 - 그릇된 생각을 버리고 올바른 도리를 행함

파사현정(破邪顯正) - 그릇된 생각을 버리고 올바른 도리를 행함

깨뜨릴 파(石/5) 간사할 사(阝/4) 나타날 현(頁/14) 바를 정(止/1)

사악하고 그릇된 것을 깨뜨리고(破邪) 바른 것을 드러낸다(顯正)는 깊은 뜻을 지닌 성어다. 원래 불교 교리에서 나왔다. 부처의 가르침에 어긋나는 악한 생각을 버리고 올바른 도리를 따른다는 의미다. 부처님의 가르침에는 타파하고 배척할 생명체는 없이 모두 존귀한 존재이지만 자비가 널리 번지는 것을 막는 사악한 마귀는 타파해야 하는 존재가 된다. 줄여서 破顯(파현)이라고도 쓰고 유가에서 말하는 정의를 지키고 사악한 것을 배척한다는 斥邪衛正(척사위정)이나 僻邪衛正(벽사위정)과도 상통한다.

인도 대승불교에서 시작된 三論宗(삼론종)은 중국에서 크게 번창했고 高句麗(고구려)에 불교를 처음 전한 順道(순도)도 이 종파였다고 한다. 그래서 삼국시대 각국에서도 발전하여 신라의 元曉(원효)나 백제의 慧顯(혜현)이 삼론을 강설했다고 하고 일본으로 전한 불교도 이 종파였다. 중국 삼론종의 중흥조로 추앙받는 隋(수)나라의 吉藏(길장, 549~623)의 저서에 ‘三論玄義(삼론현의)’가 있다. 여기에 이 성어가 나오는 부분을 보자.

‘다만 論(논)에 비록 세 가지가 있지만, 義(의)는 오직 두 가지 길 뿐이다. 첫째는 바른 것을 드러내는 것이요, 둘째는 그릇된 것을 깨뜨리는 것이다. 사악한 것을 깨뜨리면 아래로 가라앉은 것을 건져내고, 바른 것을 드러내면 위로 큰 법이 넓혀진다(但論雖有三 義唯二轍 一曰顯正 二曰破邪 破邪則下拯沈淪 顯正則上弘大法/ 단론수유삼 의유이철 일왈현정 이왈파사 파사즉하증침륜 현정즉상홍대법).’ 轍은 바퀴자국, 흔적 철, 拯은 건질 증, 淪은 빠질 륜. 거짓된 것을 깨뜨리면 밝음이 오지만 이것이 뒤섞여 구분이 안 되니 세상이 어지러운 것이다.

교수선정 성어로 이 말이 등장했는데 거짓과 탐욕, 불의와 부정이 판치는 세상을 바로 잡아야 한다는 의미에서였다. 사악한 것을 버리고 무엇이 옳고 그른지 시시비비를 가리는 지혜가 필요하다. 하지만 촛불집회 이후로도 눈앞의 욕심으로 온갖 이합집산과 불의는 여전하여 매년 선정해도 해당하는 성어가 아닐 수 없다. / 제공 : 안병화(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사본축말捨本逐末 - 기본을 버리고 지엽적인 것을 쫓다.

사본축말捨本逐末 - 기본을 버리고 지엽적인 것을 쫓다.

사본축말(捨本逐末) - 기본을 버리고 지엽적인 것을 쫓다.

버릴 사(扌/8) 근본 본(木/1) 쫓을 축(辶/7) 끝 말(木/1)

‘뿌리 없는 나무가 없다’는 너무나 당연한 말은 모든 사물에는 근본이 있다는 뜻이다. ‘물은 근원이 없어지면 끊어지고 나무는 뿌리가 없어지면 죽는다’고 모두 근본을 중시했다. 여우가 죽을 때 머리를 제가 살던 굴이 있는 언덕으로 돌린다는 狐死首丘(호사수구)는 난 곳을 그리워하는 것을 나타냈다. 짐승도 그러한데 사람은 더하다. 막돼먹은 짓을 하면 근본도 없는 놈이라고 호통 친다. 원래 있을 자리에 있지 않고 발이 위에 있는 足反居上(족반거상)이나 머리에 쓸 관이 신발과 자리가 바뀐 冠履倒置(관리도치)는 사물의 위치가 뒤집힌 것을 뜻했다. 本末倒置(본말도치)와 같다.

정작 필요한 본질적인 것을 버리고(捨本) 지엽적인 것을 쫓는다(逐末)면 근본적인 문제를 파악하지 못해 일을 그르친다. 중국 前漢(전한)의 왕족 출신으로 많은 저작을 남긴 劉向(유향)은 특히 ‘戰國策(전국책)’으로 잘 알려졌다. 戰國時代(전국시대, 기원전 403년~221년)에 활약한 전략가들의 일화를 흥미진진하게 엮어 春秋時代(춘추시대)를 잇는 시대를 명명했을 정도로 유명하기 때문이다. 齊策(제책) 부분에 백성이 근본이고 왕은 그에 따르는 것이라고 말한 부분이 나온다.

趙(조)나라의 威后(위후)는 惠文王(혜문왕)의 사후 아들이 孝成王(효성왕)에 오르자 수렴청정을 하며 슬기롭게 난국을 이끌었다. 秦(진)나라가 쳐들어왔을 때 친정 나라인 齊(제)에 구원병을 청하여 막아내기도 하는 등 명망이 높았다. 제나라 襄王(양왕)이 어느 때 사신을 위후에 보내 국서를 전달하게 했다. 위후가 사신을 맞아 농사는 어떤지 백성들은 평안한지 물었다. 왕의 안부를 먼저 묻지 않았다고 사신이 지적하자 위후가 백성 없는 왕이 어디 있겠느냐며 답했다. ‘그렇게 한다면 근본을 버리고 지엽적인 것을 묻는 것과 같습니다(故有問 舍本而問末者耶/ 고유문 사본이문말자야).’ 집 舍(사)는 버릴 捨(사)의 뜻도 있다.

지엽말단에만 매달려 일을 하다 보면 전체의 줄기를 잃어 실패하기 쉽다. 본질을 잘 파악하고 거기에서 파생될 문제점을 점검하여 대비해야 한다. 그렇다고 근본만 중요하다고 하여 이론대로 신념을 굽히지 않으면 종교에서 문제가 되는 근본주의, 펀더멘털리즘(fundamentalism)이 되기 쉽다. 이런 사람들일수록 변화를 수용하지 않고 자기만 옳다고 여기는 경향이 강해 끊임없는 분란이 일어난다. 다른 사람도 옳을 수 있으므로 상대존중 傾聽(경청)이 필요하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풍중낙엽風中落葉 - 바람맞은 낙엽, 실의에 빠진 사람 

풍중낙엽風中落葉 - 바람맞은 낙엽, 실의에 빠진 사람 

풍중낙엽(風中落葉) - 바람맞은 낙엽, 실의에 빠진 사람\xa0

바람 풍, 가운데 중, 떨어질 락, 잎 엽\xa0

젖은 낙엽이란 말이 있다. 남편이 정년퇴직 후 하루 종일 집에 있으면서 집안일은 도와주지 않고 나갈 때만 따라나서는 쓸모없는 존재란 뜻으로 일본에서 먼저 사용됐다고 한다.\xa0바람맞은 낙엽이란 뜻의 風中落葉은 훨씬 먼저 중국에서 씌었다. 明淸(명청) 대의 문필가 盧存心(노존심, 1690-1758)이 ‘臘談(납담)’이란 글에서 사람의 행적에 대해 나타낸 말이다. ‘득의를 만나면 뒤꿈치를 들고 기운이 드높아지니 이를 일러 물 위의 부평초라고 한다. 실의를 만나면 고개를 숙이고 기운을 잃으니 이를 바람맞은 낙엽이라고 한다. 오직 특이한 사람이라야 능히 반대로 한다.\xa0

통달한 사람은 또한 평소와 다름이 없다(逢得意則趾高氣揚 謂之水上浮萍 遇失意卽垂頭喪氣 謂之風中落葉 惟畸人乃能相反 在達者亦只如常/ 봉득의즉지고기양 위지수상부평 우실의즉수두상기 위지풍중낙엽 유기인내능상반 재달자역지여상).’ 趾는 발 지, 萍은 부평초 평, 畸는 불구 기, 只는 다만 지.\xa0약간 성공했다고 돈이 조금 있다고 뜻이 조금 폈다고 알랑거려서는 안 된다. 작은 실의로 낙담하는 것도 안 될 짓이다. 어떤 상황에도 기죽지 않고 아예 흔들림이 없어야 하는 것이 좋다고 가르친다.

‘낙엽은 결코 고독하지 않다. 낙엽은 결코 죽지 않는다.\xa0낙엽이 떨어지고 있는 것은 보다 새로운 생이 준비되어 가고 있는 목소리이며 나무보다 더 큰 생명의 모태를 영접하는 몸치장인 것이다.’ 청년들이 風中落葉같은 낙담을 딛고 희망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